10화(5,142자) · 소원 → 하람 · 2월 ~ 2027년 7월 19일
옆자리
막차까지 삼 분 · 진해솔
결과 통지는 2월 3일 수요일에 왔다.
윤소원은 일산 집 식탁에서 그 메일을 열었다. 하람이 첨부 파일을 그대로 넘겨 줬다. 어머니가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수돗물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파일이 열리는 동안 계속 났다.
사고조사 결과 정정. 원인, 승객 요인 및 설비 요인 병존. 설비, 승강장 안전문 개방 신호 지연(0.8초) 확인. 피해 내역, 유족 신청에 따라 정정.
원인 칸은 여전히 「승객 요인」으로 시작했다. 그 줄을 지우지는 못했다. 대신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붙었다. 소원은 그 두 줄을 오래 봤다. 반이었다. 칠 년을 들여서 반을 얻었다.
같은 날 저녁 뉴스에서 공사 사장 공모 결과가 나왔다. 도경환의 이름은 없었다. 기사 끝에 한 문단이 붙어 있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2019년 가람역 사고조사 보고서 작성 과정에 대해 공문서 허위 작성 혐의로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당시 결재자 가운데 한 명은 사망했다.
사망했다, 라는 세 글자에서 소원의 숟가락이 멈췄다. 어머니가 수도를 잠그고 돌아섰다. 기사를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행주로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네 아버지 이름이 거기 나오니?”
“안 나와요. 결재자 가운데 한 명.”
“그럼 됐다.”
어머니가 다시 수도를 틀었다. 됐다는 말이 무엇이 됐다는 건지, 소원은 묻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해야 되니까. 그 대신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릇이 하나씩 건조대에 얹히는 소리가 났다.
징계 결과는 그다음 주에 나왔다. 정하람 견책. 김상묵 감봉 석 달, 정년 넉 달 앞이라 석 달 치만 깎였다. 배옥선은 새 용역사 재계약 명단에 없었다. 옥선은 전화로 잘됐다고 했다. 손녀 봐야 된다고, 열아홉 해 물 만졌으면 됐다고. 목소리가 밝았고, 끝에 한 번 코를 풀었다.
견책 통지서에 서명하러 하람이 본사에 가던 날, 소원은 따라가 로비에서 기다렸다. 서명은 오 분이면 끝난다고 했다. 하람은 이십 분 만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옆에 도경환이 있었다. 도경환은 대기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그 뒤에 채민호가 종이 상자 하나를 두 손으로 들고 서 있었다. 상자 위로 무사고 천 일 기념패 모서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로비 한가운데서 셋이 멈췄다. 유리문 밖으로 이월 오후의 흰 햇빛이 대리석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고, 회전문이 돌 때마다 찬바람이 한 줄씩 밀려 들어왔다.
“반쪽 이기셨네요. 병존.”
도경환이 하람에게 말했다. 웃지 않았다. 웃음이 먼저 나오지 않는 그의 얼굴을 소원은 처음 봤다. 표정이 없는 게 아니라, 뭘 먼저 내보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반이면 많습니다. 칠 년 동안 영이었습니다.”
“그 반쪽으로 뭘 하시게요?”
“다음에 씁니다. 다음에 어디서 문이 늦게 열리면, 병존이라는 두 글자가 이미 있습니다. 처음 만드는 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도경환이 소원 쪽으로 눈을 돌렸다. 소원은 피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읽던 목소리가,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경환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 회전문 쪽으로 걸어갔다. 채민호가 상자를 든 채 따라가다가, 하람 앞에서 멈칫하더니 상자를 한 손으로 옮겨 들고 남은 손으로 명함을 내밀려다 그만뒀다. 두 손이 모자랐다. 회전문이 두 사람을 밖으로 밀어냈다.
소원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뱉었다. 하람이 소원의 팔꿈치를 가볍게 잡았다.
“견책은 뭐라고 써 있어요?”
“관제 소홀. 제가 쓴 문장이랑 같았습니다.”
*
설 전날, 소원은 하람과 부산역에 내렸다.
영도 다리를 건너 골목 셋을 지나자 김밥집이 나왔다. 간판에는 「하윤김밥」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택시 기사도, 골목 입구 슈퍼 주인도, 그 가게를 영도 할매 김밥이라고 불렀다. 가게 유리문에 김이 서려 있었고, 문을 열자 참기름 냄새와 밥 짓는 김이 한꺼번에 얼굴에 덮였다. 도마 위에서 칼이 김밥을 써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났다.
“니가 그 연구원이가.”
하람의 어머니 오말순이 김발을 말다 말고 소원을 위아래로 봤다. 앞치마에 밥풀이 붙어 있었다.
“이제 연구원 아니에요. 용역 과제 해요.”
“용역이면 우리 반장님 같은 기가.”
“비슷해요.”
“비슷하면 됐다. 김밥 몇 줄 묵을래.”
“한 줄이요.”
“서울 사람은 한 줄 묵고 두 줄 싸 간다. 석 줄 말아 주께.”
하람이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소원은 그게 웃음을 참는 모양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 가게 구석 식탁에 앉자 어머니가 김밥 석 줄을 썰어 접시에 담아 왔다. 단무지가 두껍고 계란이 두 겹이었다. 소원이 한 입 먹는 동안 어머니가 하람이 내민 종이를 읽었다. 결과 통지 사본이었다.
어머니는 안경을 쓰고 한참 읽었다. 피해 내역 칸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승객 1명이 있던 자리에 정하윤, 스물아홉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 전에도 있었잖아.”
“있었어. 이름이 없었어.”
어머니가 안경을 벗어 앞치마에 닦았다. 닦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마 위 칼이 멈춰 있어서 가게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소원은 김밥을 씹다가 멈췄다.
“니 언니가 이거 보면 뭐라 캐겠노.”
하람이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종이를 접어 계산대 서랍에 넣었다.
“배고프다 카겠지. 김밥 싸라 카겠지. 니 야식 싸 준다꼬.”
어머니가 도마 앞으로 돌아갔다. 칼 소리가 다시 났다. 하람은 김밥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씹는 동안 턱이 조금 떨렸는데, 삼키고 나서 소원 접시에 제 김밥 한 조각을 옮겨 놓았다. 계란이 제일 두꺼운 조각이었다.
*
삼월에 관제 화면이 바뀌었다.
시스템팀 담당자는 두 시각을 적지 말라는 공문을 떼 가면서, 안 되는 걸 막는 것보다 되는 걸 쉽게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지연이 나면 입력창에 열림 신호와 출발 신호 시각이 저절로 붙었다. 포스트잇이 필요 없어졌다. 관제사 스물여섯의 모니터 모서리에서 노란 종이가 하나씩 떨어졌고, 정하람은 마지막 한 장을 떼어 공책 맨 뒤에 붙였다. 7의 허리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막내는 노란 종이가 없어지니 허전하다며 한 주를 더 빈 포스트잇을 붙이고 다녔다.
그달 03이 작년 같은 달보다 열네 배로 늘었다. 07이 준 만큼 03이 늘었다. 없던 고장이 생긴 게 아니었다. 고장이던 것이 사람 탓으로 적히지 않게 됐다.
삼월 마지막 주 새벽 네 시에 가람 내선 11-4 안전문을 바꿨다. 하람은 관제석에서 그 역을 두 시간 봤다. 설비팀이 작업하는 것은 화면에 뜨지 않았다. 점이 없는 역을 두 시간 보고 있다가 무전을 받았다.
“교체 완료했습니다. 시험 개폐 열 번, 편차 영입니다.”
하람은 관제 일지에 적었다. 04:07 가람 내선 11-4 안전문 교체 완료. 그리고 비고란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접수 2019-1105 관련. 칠 년 전 새벽, 심의 자료에서 이름을 처음 본 한지수라는 스물여덟 살 여자가 비상통화 버튼을 누르고 받은 번호였다.
유월에 김 차장이 나갔다. 마지막 근무는 본인이 신청해서 야간이었다. 관제실에서 떡을 조금 돌렸고, 김 차장은 코르크판 앞에 서서 압정 하나를 뽑아 주머니에 넣었다. 회사에서 준 시계는 무거워서 안 찬다고 했다. 그가 나간 뒤에 공지 한 귀퉁이가 들려 있었다. 하람이 자기 압정을 꽂아 눌렀다.
*
7월 19일 월요일 오후 여섯 시 십 분에 관제실 문이 열렸다.
하람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슬리퍼 칸 앞에서 누가 신발을 갈아 신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오른쪽과 왼쪽이 맞았다. 발소리가 화면 벽 앞을 지나 하람의 오른쪽 관제석에서 멈췄다. 칠 년 동안 먼지 덮개가 씌워져 있다가 작년 여름 한 달 벗겨졌던 자리였다. 올봄에 하람이 덮개를 다시 씌우지 않았다.
그 사이 하람의 휴대폰에는 문자가 두 번 왔다. 사월에 세아가 보냈다. 붙었어요, 안전공학에 A운영사 나왔어요, 틀릴 수가 없었어요. 오월에 옥선이 보냈다. 손녀가 걸음마 뗐다, 아가씨 그 연구원한테 김밥 잘 멕이라. 하람은 두 문자를 다 지우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또 오셨습니까?”
“이번엔 파견 아니에요. 서울시 권고로 관제센터에 지연 분석 담당이 생겼어요. 여기 소속이에요.”
소원이 목에 건 것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방문증이 아니라 사원증이었다. 사진 속 소원은 머리가 조금 길어져 있었다. 소원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바퀴가 매트를 긁는 소리가 공조기 소리 위에 얹혔다.
키보드 왼쪽에 종이컵이 하나 먼저 놓여 있었다. 설탕을 다 넣은 쪽이었다. 하람의 왼손에는 설탕을 반만 넣은 잔이 들려 있었다.
그날 밤 막차는 열두 시 오십일 분에 가람역에 들어갔다. 막차 삼 분 전, 하람은 승강장 카메라 화면을 크게 띄웠다. 탈 사람은 다 탔고 다음 차는 없었다. 승강장에 몇 사람이 남아 있었다. 누구는 휴대폰을 보고, 누구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한 사람은 11-4번 문 앞에 서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새 문의 고무가 형광등 빛에 반들거렸다. 열차가 들어왔다. 열림 신호와 정차 신호가 같은 초에 떴다. 입력창이 열리지 않았다. 지연이 없었다.
소원이 옆에서 조용히 숨을 내쉬었는데, 그 숨 끝이 조금 떨렸다. 하람은 화면을 계속 보고 있었다. 전화를 하던 사람이 열차에 올랐다. 문이 닫혔다.
*
아침 아홉 시에 교대하고 나오면 계단이 예순두 칸이다.
하람은 칠 년 동안 이 계단을 혼자 올라갔다. 작년 여름 넉 주 동안은 한 사람이 뒤에서, 그다음엔 한 칸 뒤에서, 마지막 날엔 옆에서 올라왔다. 오늘은 처음부터 옆이었다. 둘은 같은 칸을 밟았다. 소원의 가방이 올라갈 때마다 하람의 팔에 스쳤고, 하람은 비켜서지 않았다.
맨 위에서 여름 햇빛이 하얗게 쏟아졌다. 둘 다 눈을 반쯤 감았고, 소원이 한 손을 들어 하람의 눈 위에 그늘을 만들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길 건너 지하철 입구로 쏟아져 내려갔고, 아무도 계단을 올라오는 두 사람을 보지 않았다.
“하람 씨, 칠 년 동안 이 시간에 뭐 하셨어요?”
“집에 갔습니다. 잤고요.”
“오늘은요?”
하람이 계단 맨 위 칸에서 걸음을 멈췄다. 발밑 환풍구에서 지하의 미지근한 바람이 올라와 둘의 머리카락을 흩었다. 그 바람 속에 레일이 울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첫차는 벌써 떠났고, 다음 열차가 어디쯤에서 오고 있었다. 지하에서는 늘 소리가 먼저 오고 열차가 나중에 온다. 그 사이가 삼 분쯤이다.
“아침 먹고 가려고요. 김밥집이 하나 있어요. 부산 거만큼은 아닌데.”
“같이요?”
하람은 대답 대신 소원의 손을 잡았다. 소리가 먼저 왔고, 둘은 그 소리를 등에 지고 마지막 한 칸을 같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