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39자) · 하람 · 2027년 1월 7~15일

도시락통 두 개

막차까지 삼 분 · 진해솔

징계위원회 소집 통지는 1월 7일 목요일에 왔다.

전자결재 알림으로 한 번, 코르크판에 종이로 한 번. 종이 쪽은 채민호가 직접 와서 꽂았다. 점검 공지와 기록 중지 공문 사이에 빈틈이 없어서, 그는 두 종이의 모서리를 겹쳐 놓고 압정 하나로 둘을 한꺼번에 눌렀다.

대상자 정하람. 사유, 2019년 11월 16일부터 17일까지 야간 근무 중 관제 소홀. 안전문 이상 신호 발생 역에 대한 사용 중지 미조치. 개최일 1월 14일.

재심의 이레 전이었다. 하람은 종이 앞에 서서 날짜를 두 번 셌다. 심의대에 유족으로 앉기 전에, 그날 밤 책임자로 먼저 앉히려는 날짜였다. 징계 기록이 붙은 유족은 이해관계자가 된다. 이해관계자의 말은 반만 들린다.

“칠 년 묵은 걸 이제 와서 징계를 해?”

김 차장이 종이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코웃음 끝이 떨렸다.

“시효 없대요. 안전 관련이라서요.”

막내가 휴대폰으로 규정을 찾아 읽어 줬다. 김 차장이 막내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그런 건 찾지 말라는 뜻이었다. 막내가 억울한 얼굴로 뒤통수를 문질렀다.

그 주에 주간조에서도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주간조 선임 방미라가 인수인계를 받다가 하람의 모니터 모서리를 보고, 이거 우리도 적으라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하람은 적으라고 한 적 없다고 했다. 방미라는 그럼 적을게요, 하고 갔다. 다음 날부터 주간조가 하나둘 따라 적더니, 그 주 금요일에는 주간조 열다섯이 다 모니터 모서리에 노란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두 시각을 적는 사람이 스물여섯이 됐다. 관제실에서 잰 일 분은 삼천이백넷이었다.

그 숫자를 공책에 옮겨 적던 날, 휴대폰 뉴스 알림이 떴다. 수도도시철도공사 사장 공모, 최종 후보 둘. 둘 가운데 하나가 도경환이었다. 기사 사진 속 도경환은 무사고 천 일 기념패를 들고 웃고 있었다. 하람은 그 사진을 보다가 알림을 지웠다.

*

토요일 오후 두 시, 관제센터 정문 앞에 배옥선이 서 있었다.

하람은 야간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일찍 나왔다. 옥선이 문자로 불렀다. 문자는 한 줄이었다. 아가씨 두 시에 정문. 옥선은 두꺼운 패딩 조끼를 입고, 비닐봉지 하나를 손목에 걸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정문 앞 은행나무 가지를 흔들었고, 가지 끝에 매달린 마른 잎 몇 장이 쇳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아가씨, 징계 받는다며.”

“아직 안 받았습니다. 받으러 가는 겁니다.”

“말은.”

옥선이 비닐봉지를 하람 손에 쥐여 줬다. 귤이었다. 봉지 밖으로 새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새 용역 회사 사장이 나를 불렀어. 예순 넘은 인원은 원래 안 받는데 나는 봐준다 카더라. 열아홉 해 했으니까. 대신 그 징계위원회인가 뭔가, 거기서 부르면 모른다 카라고. 본사 채 팀장이 부탁했대.”

“반장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알겠다 캤지.”

옥선이 손을 조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가 바람에 찢겼다.

“알겠다 캐 놓고 여기 왔다. 아가씨 얼굴 보고 정할라고.”

하람은 귤 봉지를 든 채로 서 있었다. 무슨 얼굴을 해야 할지 몰라서, 평소 얼굴을 했다. 무전 받을 때의 얼굴이었다.

“반장님, 안 오셔도 됩니다. 반장님 재계약까지 걸 일은 아닙니다.”

옥선이 하람을 한참 봤다. 주름진 눈가에 바람 때문인지 물기가 비쳤다.

“아가씨는 칠 년 걸었잖아.”

옥선이 돌아서서 걸어갔다. 대답을 안 하고 가는 걸음이었다. 하람은 그 등을 보며, 칠 년 동안 자기가 사람들에게 저런 뒷모습을 보였겠다고 생각했다. 귤 봉지가 손가락에 파고들었다.

*

1월 14일 아침 아홉 시, 예순두 칸 맨 위에 소원이 서 있었다.

양손에 편의점 커피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하람이 계단을 반쯤 올라왔을 때 소원이 한 잔을 들어 보였고, 하람은 그걸 보고도 걸음을 빨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겨울 아침 공기가 차서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이 하얗게 나왔고, 맨 위에 닿았을 때 소원의 코끝이 빨갰다. 한참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설탕 반이요. 편의점에선 반만 넣는 게 안 돼서, 두 개 사서 하나 반 섞었어요.”

“그게 무슨 계산입니까?”

“하람 씨 계산이요.”

하람은 잔을 받아 두 손으로 감쌌다. 뜨거웠다가 금방 미지근해지는 종이컵이었다.

“오늘 세 시죠. 같이 가요.”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

“저 관계자인데요. 재심의 참고 자료 제출인.”

“그건 다음 주 거고요. 오늘은 징계입니다. 연구원님은 저 징계하는 데 관계없습니다.”

소원이 입을 삐죽였다. 여름 관제실에서는 한 번도 못 본 표정이었다. 하람은 그게 우스워서 커피를 마시는 척 고개를 숙였다.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요. 본사 일 층 로비에요.”

“몇 시에 끝날지 모릅니다.”

“하람 씨가 대답 안 할 때도 기다렸잖아요. 그거보다 짧을 거예요.”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소원의 빨간 코끝을 봤다가, 자기 목도리를 풀어 소원 목에 한 바퀴 감아 줬다. 소원이 목도리에 턱을 묻었다. 목도리에서 관제실 공조기 냄새가 난다고, 소원이 웅얼거렸다.

*

1월 14일 오후 세 시, 본사 삼 층 회의실은 난방이 너무 셌다.

긴 탁자 한쪽에 위원 다섯이 앉았다. 가운데가 인사처장, 오른쪽 끝에 도경환, 벽 쪽 보조 의자에 간사 채민호가 노트북을 펴고 있었다. 하람은 맞은편 의자 하나에 혼자 앉았다. 탁자 위 물병에 김이 서려 있었고, 창밖 성동구 지붕들 위로 겨울 해가 벌써 기울고 있었다.

인사처장이 사유서를 읽었다. 읽는 목소리에 높낮이가 없었다. 다 읽고 나서 도경환이 손을 들었다.

“하나만 확인하겠습니다. 정 관제사님, 그날 00시 20분에 가람 내선 11-4와 은행정 3-2에서 동시에 안전문 이상 신호가 떴죠?”

“네.”

“설비에 무전을 넣었고, 막차 뒤에 본다는 답을 받았고요.”

“네.”

“그다음 삼십 분 동안 은행정만 보고 계셨죠? 가람 11-4에 사용 중지를 걸 수 있었는데 안 거셨고요.”

“네. 안 걸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채민호의 타자 소리만 났다. 도경환이 서류를 덮었다. 이미 끝난 사람의 얼굴이었다.

“본인이 인정하시니 더 여쭐 게 없겠네요. 유족으로서 억울한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날 관제석에 앉아 있던 분이 원인을 다시 쓰자고 하시는 건, 글쎄요.”

하람은 두 손을 탁자 아래에서 맞잡았다. 손바닥이 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칠 년 동안 이 문장을 누군가 해 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네가 그날 다른 역을 보고 있었다고. 이제 누가 해 줬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이 잠기지 않았다.

“제 삼십 분은 제가 지겠습니다. 징계를 주시면 받겠습니다.”

하람이 고개를 들어 도경환을 봤다.

“그 삼십 분 뒤에 칠 년이 있습니다. 새벽 한 시 반에 03으로 올라간 게 세 시 반에 왜 07이 됐는지, 초안의 설비가 왜 승객이 됐는지. 그 칠 년은 누가 지는지, 다음 주 심의에서 보겠습니다.”

도경환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넥타이핀을 손가락으로 한 번 만졌다.

“그건 이 자리 안건이 아닙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배옥선이 서 있었다. 패딩 조끼 차림 그대로,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채민호가 벌떡 일어섰다.

“어르신, 여기 관계자 외에는……”

“관계자다. 그날 밤 그 승강장 치운 사람이다.”

옥선이 성큼성큼 들어와 인사처장 앞에 종이를 놓았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진술서였다. 맞춤법이 군데군데 틀려 있었고, 맨 아래 서명 옆에 지장이 찍혀 있었다.

“그날 새벽 두 시에 우리 다섯이 가람 내선 승강장 청소하러 갔어요. 11-4 안전문 닫히는 데 끼는 고무가 한쪽 반쯤 빠져서 덜렁거리고 있었어요. 문이 제대로 안 닫히는 문이었어요. 사람이 아니고 문이었어요.”

인사처장이 진술서를 들여다봤다. 도경환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 칠 년 전 일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기억하십니까?”

옥선이 도경환을 봤다. 위아래로, 천천히.

“그 문 앞에 가방이 있었어. 도시락통 두 개 든 가방. 그걸 내가 주웠어. 그런 건 안 잊어버려요, 본부장님.”

옥선이 돌아서 채민호를 봤다.

“채 팀장, 새 용역 회사 사장한테 전해라. 모른다 칼라 캤는데 알아서 못 하겠다고.”

옥선이 나갔다. 문이 닫히면서 난방 바람이 한 번 출렁였다. 인사처장이 헛기침을 하고, 진술서를 사유서 위에 겹쳐 놓았다. 그리고 결정을 재심의 뒤로 미룬다고 했다.

본사 일 층 로비에 내려가니 소원이 하람의 목도리를 두른 채 유리문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노트북을 펴 놓고 있었는데, 화면은 꺼져 있었다. 하람을 보자 소원이 일어섰다.

“어떻게 됐어요?”

“미뤘습니다. 반장님이 들어오셨어요.”

소원이 눈을 크게 떴다. 하람은 로비 유리문 너머로 겨울 해가 지는 것을 봤다. 옥선의 패딩 조끼는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소포는 그다음 날 저녁에 원룸 문 앞에 와 있었다.

보낸 사람 칸이 비어 있었다. 테이프를 뜯자 신문지에 싸인 것이 나왔다. 신문지를 벗기는 동안 하람의 손가락이 두 번 헛돌았다. 도시락통 두 개였다.

플라스틱 뚜껑이 누렇게 바래 있었다. 씻어서 말린 것이었는데, 모서리 홈마다 칫솔로 문지른 자국이 났다. 뚜껑 위에 이름표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색이 다 빠져서 글씨가 겨우 보였다. 하나는 하윤, 하나는 하람. 언니 글씨였다.

도시락통 사이에 쪽지 한 장이 끼어 있었다.

유실물은 일 년 지나면 처분한다. 일 년 되던 날 내가 찾아왔다. 누가 찾으러 올 것 같아서. 여섯 해를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와서 내가 보낸다.

하람은 도시락통을 식탁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방 안에 난방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냉장고가 웅 하고 한 번 떨었다. 하람은 하람이라고 적힌 뚜껑을 열었다. 안은 비어 있었다. 오래된 플라스틱 냄새와, 그 밑에 아주 희미하게, 참기름 냄새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칠 년이었다.

하람은 뚜껑을 연 채로 오래 앉아 있었다. 칠 년 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던 것이 목 안쪽에서 올라왔다. 막으려고 이를 물었는데 턱이 떨려서 안 됐다. 식탁 위에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다. 하람은 그걸 손바닥으로 닦다가, 닦는 걸 그만두고 도시락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뜨거운 커피잔을 쥘 때처럼.

한참 뒤에 휴대폰을 들었다. 부산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세 번 가고, 가게 소음 너머로 엄마 목소리가 났다.

“하람이가? 웬일이고, 니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엄마.”

“와. 무슨 일 있나?”

하람은 도시락통 뚜껑의 바랜 이름표를 엄지로 쓸었다.

“설에 내려갈게. 한 사람 데리고.”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김밥 마는 발이 도마에 탁 내려지는 소리가 났다.

“누구?”

“다음 주에 말할게. 다음 주에 일이 하나 있어.”

“밥은.”

“먹고 다녀.”

엄마가 전화를 끊지 않고 한참 숨소리만 냈다. 하람도 끊지 않았다. 부산의 가게 소음과 서울 원룸의 냉장고 소리가 전화선 하나에 같이 실려 있었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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