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03자) · 소원 → 하람 · 12월 둘째 주
증거보전
막차까지 삼 분 · 진해솔
재심의 접수증은 십이월 둘째 주 화요일에 일산 집으로 왔다.
원래는 신청인 정하람에게 가는 통지였다. 소원이 참고 자료 제출인으로 이름을 올려서 사본 한 장이 따라왔고, 우편함에서 그걸 먼저 꺼낸 사람은 어머니였다. 소원이 낮잠에서 깨어 거실에 나왔을 때 식탁 위에 봉투가 뜯긴 채 놓여 있었다. 어머니 권미경은 식탁 맞은편에 앉아 두 손을 무릎에 포개고 있었다. 마늘도 까지 않았고 텔레비전도 꺼져 있었다. 보일러 도는 소리만 바닥 아래에서 웅웅 올라왔다.
심의 예정일, 2027년 1월 21일. 참고 자료, 사고조사 보고서 초안 사본 1부, 제출인 윤소원.
“이게 뭐니?”
“아빠 서재에 있던 거예요. 제가 삼월에 가져갔어요.”
“네 아버지 서랍을 뒤졌어?”
“정리하다가 나왔어요.”
어머니가 접수증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종이가 식탁 유리에 붙어 구겨지지도 않았다.
“도 본부장이 어제 전화했다. 네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으려고 한다고. 그 사람이 네 아버지 추도사를 읽었어. 울면서 읽었어.”
“그 사람이 그날 새벽에 관제실에 전화해서 원인을 바꾸라고 했어요. 아빠는 그걸 결재했고요.”
“네 아버지는 서명 하나 한 거야.”
어머니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소원은 그 높이에서 어머니가 이 말을 오래 준비해 왔다는 걸 알았다.
“본부장이 하루에 서명을 몇 개 하는 줄 알아? 올라오는 대로 하는 거야. 밑에서 다 해서 올리면.”
“초안에 설비라고 적혀 있었어요. 아빠가 볼펜으로 두 번 긋고 옆에 승객이라고 썼어요. 한 번 긋고 멈췄다가 한 번 더 그었어요. 잉크가 뭉쳐 있어요.”
소원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가람, 두 글자. 어머니가 그 글씨를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 남편 글씨를 모를 리 없었다.
“그 서명 하나로 칠 년이 갔어요. 그 사람 동생이 칠 년 동안 밤에만 앉아 있었어요.”
어머니가 한참 봉투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베란다 창 너머로 겨울 해가 아파트 동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네 아버지가 새벽 다섯 시에 들어왔어. 차를 주차장에 대 놓고 한 시간을 안 올라오더라. 내가 베란다에서 봤어. 차 안에 불도 안 켜고.”
어머니가 손등으로 코밑을 문질렀다. 식탁 위 유리 밑에는 오래된 가족사진이 한 장 깔려 있었는데, 어머니의 손이 그 사진 속 아버지 얼굴 위에서 멈췄다가 비켜 갔다.
“나는 안 물었다. 물으면 대답해야 되니까. 대답하면 그다음엔 뭘 해야 되니까.”
“아빠는 이걸 안 버렸어요. 파쇄기가 서재에 있었는데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원은 봉투를 도로 가방에 넣고 일어섰다.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묶는데 등 뒤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가라. 가서 해. 대신 나는 거기 안 간다.”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나서 행주를 집어 이미 깨끗한 식탁 유리를 두 번 닦았다.
“알아요.”
“그리고 밥은 먹고 다녀.”
소원은 끈을 다 묶고도 한참 현관에 앉아 있었다. 식탁 쪽에서 봉투 뜯긴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어머니가 접수증을 다시 읽는 것 같았다.
*
소원이 그 이력을 찾은 것은 목요일 밤이었다.
새로 받은 용역 과제는 서울시 교통정책과가 발주한 「도시철도 지연 사유 분류 체계 개선」이었다. 도경환의 공사가 아니라 시청 일이었고, 그래서 공사 설비 이력 조회 권한을 사흘짜리로 받을 수 있었다. 연구원을 그만두고 받은 첫 과제였고, 보수는 전보다 삼분의 일이 적었다. 대신 결론을 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소원은 일산 집 방에서 노트북으로 가람역 내선 11-4번 안전문의 설비 이력을 열었다. 안전문 옆 기둥에 달린 비상통화장치의 호출 기록이 같이 붙어 있었다.
2019년 11월 5일 00시 51분 12초, 호출 1건. 음성 보존, 증거보전 요청분, 보존 중. 요청자, 당시 당직 부장.
사고 열이틀 전이었다. 비상통화 음성은 삼십 일 뒤에 지워진다. 이건 칠 년째 안 지워져 있었다. 누군가 증거보전을 걸었고, 그 누군가는 이름 대신 직책으로만 적혀 있었다.
소원은 그 줄을 오래 봤다. 칠 년 전 누군가 이 음성을 들었고, 들은 뒤에 지우지 못하게 걸어 두었다. 걸어 둔 사람은 그걸 꺼내지도 않았다. 소원은 화면을 캡처해 하람에게 보냈다. 새벽 한 시 반이었다. 하람은 근무 중일 시각이었다.
「이 날짜 당직 부장이 누구였는지, 근무표는 오 년 보관이라 이제 없대요.」
답은 이 분 뒤에 왔다.
「없어도 압니다. 오늘 물어볼게요.」
*
새벽 세 시, 관제실에는 열차가 없었다.
막차가 다 들어간 지 두 시간이 넘었고 점검 열차는 그날 쉬는 날이었다. 화면 벽에 검은 선만 남았고, 공조기가 그 위로 바람을 흘렸다. 하람은 휴대폰 속 캡처 화면을 한 번 더 보고 일어섰다. 김 차장 자리까지 열두 걸음이었다. 칠 년 동안 매일 지나다닌 거리인데 오늘은 발바닥에 매트 무늬가 하나하나 느껴졌다.
“차장님.”
“어.”
김 차장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이번 주부터 모니터 모서리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야간조 열하나 가운데 마지막이었다. 그가 적은 7에는 허리에 줄이 두 개 그어져 있었다. 하나로는 못 믿겠다고 했다.
“2019년 11월 5일 새벽에 가람 11-4에서 비상통화가 한 건 들어왔습니다. 음성에 증거보전이 걸려 있습니다. 요청자가 당시 당직 부장입니다.”
김 차장이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11월 17일, 그날 밤 당직 부장은 누구였습니까?”
관제실에 소리가 없었다. 새벽 세 시에는 원래 소리가 없는데, 그날은 공조기 소리마저 한 칸 낮아진 것 같았다. 막내 관제사가 컵라면 뚜껑을 반쯤 뜯다가 멈췄다. 뜯다 만 뚜껑 틈으로 김이 가늘게 새어 올라갔다.
김 차장이 안경을 벗었다.
“나야.”
하람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김 차장이 턱으로 옆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하람은 앉지 않았다.
“그날 03이었어.”
김 차장이 안경을 셔츠 자락에 닦았다. 닦을 게 없는 안경을 천천히, 한쪽 알을 다 닦고 다른 쪽 알로 넘어갔다.
“내가 한 시 반에 03으로 올렸어. 너는 그때 경찰 무전 받느라 정신이 없었고. 세 시 반에 설비처장이 전화를 했다. 도경환이. 07로 바꾸라고.”
“왜요?”
“03이면 가람 안전문 준공검사를 다시 봐야 되거든. 그 검사에 이름 올린 사람이 여럿이었어. 그 사람이 맨 위였고. 한 사람은 이미 갔으니, 산 사람들까지 다치게 하지 말자고 하더라.”
김 차장이 안경을 다시 썼다.
“바꾸는 데 삼 초 걸렸다. 0 누르고 7 누르고 저장.”
하람의 손이 책상 모서리를 잡았다. 손끝이 하얘졌다.
“비상통화 음성은요?”
“그건 못 지우겠더라. 열이틀 전 녹음을 들었거든. 사고 난 날 아침에 찾아서 들었어. 문이 제멋대로라고, 사람이 넘어졌다고. 삼 초 만에 코드는 바꿨는데 그건 삼 초 만에 못 하겠더라. 증거보전 걸어 놓으면 규정상 못 지워. 걸어 놓고 칠 년 동안 아무도 안 찾았다.”
“칠 년 동안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누가 물어야 말을 하지. 네가 처음 물었다.”
김 차장이 모니터 모서리의 포스트잇 한 장을 떼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도 본부장이 지난주에 전화했어. 정년 뒤에 촉탁으로 이 년 더 있게 해 주겠대. 심의 날 몸이 아프면 좋겠다고 하더라. 웃으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김 차장이 포스트잇을 책상 위에 반듯이 붙였다.
“다 생각했다. 심의 날짜 알려 줘.”
“왜요?”
“가야지. 이 년 더 있으면 뭐 해. 여기 이 년 더 앉아서 또 누가 07 누르는 걸 보라고?”
하람이 그제야 옆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다리가 떨렸다. 김 차장은 그걸 못 본 척하고 서랍에서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하람 쪽으로 밀었다. 화면에는 점이 하나도 없었다.
“하나만 더 여쭤도 됩니까? 왜 칠 년 동안 밤에 계셨습니까? 주간 가실 연차잖아요.”
김 차장이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그건 대답 안 할란다.”
그 말투가 하람의 말투와 너무 똑같아서, 하람은 웃음인지 기침인지 모를 소리를 한 번 냈다. 김 차장도 코로 짧게 웃었다. 막내가 그제야 컵라면 뚜껑을 마저 뜯었다. 국물 냄새가 관제실에 퍼졌다.
*
그날 아침 교대 조가 들어오고 나서, 하람은 인수인계 서류를 들고 나가는 김 차장의 등을 봤다. 서류를 집다가 손이 미끄러져 한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람이 주워 건넸다. 김 차장이 받으며 말했다.
“고마워.”
계단을 올라가며 하람은 소원에게 한 줄을 보냈다.
「차장님이었어요. 오신대요.」
답이 금방 왔다.
「저도 엄마한테 말했어요. 엄마는 안 온대요. 밥은 먹고 다니래요.」
하람은 계단 서른 몇 번째 칸에서 멈춰 그 문자를 한 번 더 읽었다. 밥은 먹고 다니래요. 하람의 엄마도 전화할 때마다 그 말을 했다. 부산 영도에서, 김밥 말던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하람은 칠 년 동안 그 전화를 세 번에 한 번만 받았다.
계단을 반쯤 더 올라갔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가 아니라 전화였다. 소원이 전화를 건 것은 처음이었다.
“안 주무세요?”
“하람 씨 퇴근 시간 맞춰서 일어났어요. 알람 맞췄어요.”
하람은 계단 난간에 기댔다. 소원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조금 잠겨 있었다. 막 일어난 사람의 목소리였다.
“차장님은 어땠어요?”
“안경을 한참 닦으셨어요. 닦을 게 없는데요.”
소원이 웃었다. 웃음소리가 수화기에 부딪혀 하람의 귀 안쪽을 간지럽혔다. 하람은 휴대폰을 반대쪽 귀로 옮겼다. 옮기고 나서야 왜 옮겼는지 몰랐다.
“하람 씨, 설에 부산 가세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가시면 김밥 사진 보내 주세요. 그 집 김밥이요.”
“사진으로 뭘 합니까?”
“보기만 하려고요. 먹는 건 나중에요.”
나중이라는 말이 계단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원도 기다렸다. 이번에는 이 분도 안 걸렸다.
“같이 가시든가요.”
말해 놓고 하람은 자기 입을 의심했다. 휴대폰 너머가 조용해졌다가, 이불 스치는 소리가 났다.
“진짜요?”
“심의 끝나고요. 그 전엔 안 됩니다.”
“네. 그 전엔 안 되죠.”
전화를 끊고 나서, 이번 설에는 내려가야겠다고, 하람은 예순두 칸을 다 올라가서야 생각했다. 겨울 아침 햇빛은 여름처럼 쏟아지지 않았다. 낮게 깔려서, 눈을 뜨고도 볼 수 있었다. 그달 말까지 관제실에서 잰 일 분은 천사백팔십이 됐다. 야간조 열하나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