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29자) · 소원 → 하람 · 8월 13~14일
막차까지 삼 분
막차까지 삼 분 · 진해솔
최종보고서의 원인 칸은 비어 있었다.
윤소원은 수요일 낮에 잠을 자지 않고 그 보고서를 썼다. 일산 집 방 책상에 앉아 암막 커튼을 친 채로, 어머니가 문밖에서 두 번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 아래 틈으로 된장국 냄새가 들어왔다가, 식으면서 천천히 옅어졌다. 표지 한 장, 본문 여덟 쪽, 그 뒤에 별지 열두 쪽. 별지 제목은 한 줄이었다. 「일 분」, 지연 사유 분류가 담지 못하는 것.
넉 주 동안 잰 일 분이 백서른하나였다. 그 가운데 마흔아홉은 열림 신호가 늦었다. 청소 대기가 원인인 지연은 사 퍼센트였다. 가람역 내선 11-4에서는 열림 신호가 열한 번 늦었고, 열한 번 다 0.8초였다.
소원은 마지막 장에 표 하나를 더 붙였다. 표 아래 작은 글씨로, 이 가운데 일흔두 건은 야간 관제사 한 명이 포스트잇에 직접 적은 시각에서 옮겼다고 썼다. 이름은 쓰지 않았다.
*
목요일 오전 열 시, 소원은 야간 근무를 마친 얼굴 그대로 본사 오 층 본부장실에 서 있었다.
본부장실은 넓었고 창이 남쪽으로 나 있어서 여름 햇빛이 카펫 위에 커다란 사각형으로 누워 있었다. 책상 뒤 벽에는 준공 기념 사진들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흰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테이프를 자르는 사진이었다. 그 가운데 한 장에 소원은 아버지 얼굴을 알아봤다. 안전모 아래로 웃고 있었다. 옆에 선 사람이 지금보다 머리가 덜 까만 도경환이었다.
도경환은 보고서를 두 장 넘기고 덮었다. 덮는 소리가 에어컨 바람에 묻혀 거의 나지 않았다.
“원인 칸이 비어 있네요.”
“비워 뒀습니다.”
“반려 사유입니다. 아시잖아요.”
“압니다. 그래서 별지를 붙였습니다.”
채민호가 소파 끝에 앉아 볼펜을 딸깍거렸다. 딸깍 소리가 에어컨 바람보다 컸다. 들어올 때 그는 오늘도 명함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가, 이미 두 장 받았다는 소원의 말에 멋쩍게 도로 넣었다.
“연구원님, 청소 대기 사십은요?”
“사 퍼센트입니다. 사십으로 적으면 제 표가 아니라 팀장님 표가 됩니다.”
도경환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가죽이 눌리는 소리가 났다.
“하나만 묻죠. 연구원님은 이 보고서로 뭘 얻고 싶으신 겁니까?”
“가람역 11-4를 설비처가 한 번 보게 하는 거요.”
“그건 과제가 아닙니다.”
“그럼 안전개선 접수로 올리겠습니다. 공사 직원이든 파견이든 누구나 올릴 수 있고, 올리면 번호가 붙잖아요. 번호가 붙으면 지울 수 없고요.”
도경환의 웃음이 이번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한 번 보고, 책상 위 명패를 손가락으로 반 뼘쯤 밀었다가 도로 당겼다.
“연구원님 아버님하고 저, 가람 안전문 같이 세웠습니다. 사진 보셨죠. 그 준공검사에 제 이름이 있어요. 03이면 준공검사가 틀렸다는 소리가 되고, 그러면 사람 여럿이 걸립니다. 그때 검사한 사람들, 결재한 사람들, 그 사람들 식구들.”
“그날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압니다. 그 한 사람은 이미 갔어요. 남은 사람들을 또 걸어서 뭐가 돌아옵니까?”
소원의 손이 가방 끈을 쥐었다. 가방 안에 누런 봉투가 있었다. 아버지 글씨가 든 봉투였다. 소원은 그걸 아직 꺼내지 않았다. 지금 꺼내면 아버지가 이 방에서 한 번 더 도경환 편에 서게 될 것 같았다.
“정규직 심사, 구월이시죠.”
“네.”
“평가서는 제가 씁니다.”
“쓰십시오.”
소원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자기 목소리가 떨리지 않은 것에 놀랐다. 무릎은 떨리고 있었는데 목소리는 멀쩡했다. 도경환이 보고서를 책상 한쪽으로 밀었다.
“파견은 내일까지시죠. 연장은 없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본부장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소원은 휴대폰으로 안전개선 접수 화면을 열었다. 제목을 치고, 별지 열두 쪽을 붙이고, 제출 버튼을 눌렀다. 삼 초 뒤에 번호가 떴다. 접수 제2026-0814-114호. 소원은 그 번호를 캡처해서 저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채민호가 뒤따라 타면서 두 손으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참고로 보시라고요. 기지 청소 용역 재계약 명단입니다. 연구원님 원자료 덕에 편성당 청소 시간이 깔끔하게 나왔습니다. 이십칠 분 사십 초.”
명단에 열두 줄이 있었고, 그 가운데 다섯 줄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세 번째 줄에 문세아라는 이름이 있었다.
소원은 그 종이를 받지 않았다. 채민호가 종이를 도로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닿을 때까지 둘 다 말이 없었다.
*
세아는 그날 저녁 여섯 시, 소원이 마지막 야간 근무에 들어가기 전에 기지 뒤 철계단에 앉아 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있었고, 손에 재계약 불가 통지서를 들고 있었다. 소원이 계단 아래에서 올려다보자 세아가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안 됐어요. 사유는 안 적혀 있어요. 원래 안 적어 줘요.”
“이십칠 분 사십 초요. 그거 제가 잰 숫자예요.”
“알아요. 그거 제 편성이었어요. 연구원님이 초시계 들고 제 뒤에 서 있었잖아요.”
소원은 계단에 앉지 못하고 난간을 잡고 서 있었다. 쇠 난간이 저녁 해에 달궈져 손바닥이 뜨거웠다. 세아가 옆자리를 손으로 쳤다. 소원이 그제야 앉았다.
“반장님이 그러는데, 연구원님이 청소는 사 퍼센트라고 끝까지 우겼다면서요. 본사에서.”
“우겼는데 소용없었어요.”
“소용없어도 적힌 건 적힌 거죠.”
세아가 통지서를 반으로 접었다.
“저도 재 볼래요. 다음 데 가서도. 제 일이 몇 분 걸리는지 제가 재 놔야, 누가 이십칠 분이라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있잖아요.”
세아가 휴대폰을 꺼내 초시계 앱을 깔았다. 소원의 휴대폰에 깔린 것과 같은 앱이었다. 소원이 쓰는 법을 알려 주자 세아는 시작 버튼을 두 번 눌러 보고, 멈춤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반 박자 늦다고 투덜거렸다. 깔리는 동안 둘은 기지 안에서 나는 물소리를 들었다. 백스무 편성 위로 고압 세척기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멀리서 파도처럼 났다.
“시험은 언제예요?”
“다음 달이요. 잘린 김에 한 달은 낮에 잘 수 있겠네요.”
세아가 웃었다. 소원은 따라 웃지 못했다. 세아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초시계를 눌렀다. 대걸레 없이 걷는 제 걸음이 몇 초인지부터 재 보는 것 같았다.
*
마지막 야간은 조용했다.
여섯 시 십 분에 소원이 들어오자 김 차장이 제 책상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머리가 빨갛고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압정 하나였다.
“기념품이야. 내가 이 회사 게시판 압정 반은 꽂았어. 그중에 제일 오래된 놈.”
“이걸 어디다 씁니까?”
“종이를 꽂지. 누가 떼면 티 나게.”
소원이 압정을 받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봤다. 막내 관제사가 옆에서 차장님 저는 왜 안 주세요, 하자 김 차장이 너는 아직 뗄 종이도 없잖아, 했다. 관제실에 넉 주 만에 처음으로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공조기가 그 웃음 위에서 여느 때처럼 돌았다.
새벽 두 시에 커피가 두 잔이었다. 소원은 인쇄해 온 별지 마지막 장을 하람 키보드 옆에 놓았다. 하람이 표 아래 작은 글씨를 읽었다. 이 가운데 일흔두 건은 야간 관제사 한 명이 포스트잇에 직접 적은 시각에서 옮겼다.
“한 명이라고만 쓰셨네요.”
“이름은 제가 정할 게 아니라서요.”
하람이 그 줄을 손끝으로 한 번 짚었다. 프린터에서 막 나와 아직 미지근할 종이였다.
“다음엔 쓰십시오.”
“다음이요?”
“연구원님이 다음에 뭘 쓰시든, 거기 제 이름이 들어갈 자리가 있으면 쓰십시오.”
소원이 하람을 봤다. 하람은 화면을 봤다. 소원은 대답 대신 커피를 마셨고, 설탕을 다 넣은 쪽이 오늘은 달지 않았다. 그날 밤 지연이 두 번 났고, 하람은 두 번 다 두 시각을 적었다. 07은 한 번만 눌렀다. 나머지 한 번은 입력창을 열어 둔 채로 오래 있다가, 막내가 대신 눌렀다.
*
아침 아홉 시, 교대하고 나오는 계단은 예순두 칸이었다.
정하람은 칠 년 동안 이 계단을 혼자 올라갔다. 오늘은 옆에 한 사람이 있었다. 뒤가 아니라 옆이었다. 소원이 노트북 가방을 멘 채 하람과 같은 칸을 밟았고, 한 칸을 올라갈 때마다 가방이 소원의 엉덩이에 부딪혀 툭툭 소리가 났다. 맨 위에서 햇빛이 쏟아졌다. 둘 다 눈을 반쯤 감았다.
길을 건너 지하철 입구까지 걸었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계단에서 쏟아져 올라왔다가 흩어졌다. 입구 앞에서 소원이 가방을 열었다.
“이거 갖고 계세요.”
「가람」 두 글자가 적힌 누런 봉투였다. 넉 주 동안 가방 안쪽에서 모서리가 더 닳아 있었다.
“연구원님 아버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갖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하람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이거 받으면 연구원님이 안 오실 것 같아서요.”
소원의 손이 봉투를 든 채로 멈췄다. 출근하는 사람 하나가 둘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다. 소원은 봉투를 가방에 도로 넣었다.
“그러면 제가 갖고 있을게요. 다시 와야 하니까요.”
하람이 웃었는데,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고 눈가가 따라 접히는, 소원이 넉 주 동안 한 번도 못 본 얼굴이었다. 소원이 그 얼굴을 보다가, 참고 있던 숨을 한 번에 크게 뱉었다.
“연구원님.”
“네.”
“막차 앞에 삼 분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하람이 지하철 입구 계단을 내려다봤다. 지하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올라와 둘의 머리카락을 한꺼번에 흩었다.
“막차 삼 분 전이 제일 조용합니다. 탈 사람은 다 탔고, 다음 차는 없고, 그때 승강장에 남는 사람들이 있어요. 못 탄 게 아니라 안 탄 사람들이요. 누구를 기다리거나, 아직 말을 다 못 했거나.”
“그거 보고서에 못 적겠네요.”
“압니다. 그래서 말로 합니다.”
하람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 내밀었다. 소원이 그 손을 잡았다. 악수라고 하기엔 오래 잡았다. 밤새 키보드를 친 소원의 손가락 끝은 차가웠고 손바닥 가운데만 따뜻했다. 하람은 그 온도 차이를 기억해 두려고 손에 힘을 조금 더 줬다.
“하람 씨.”
넉 주 동안 소원은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관제사님, 관제사님, 관제사님. 하람은 자기 이름이 지하철 입구 앞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소리 사이에서 불리는 것을 들었다. 목 뒤가 뜨거워졌다.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목이 잠겨서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들이 계속 옆을 지나갔다. 아무도 둘을 보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레일이 먼저 울리고, 바람이 먼저 밀려오고, 열차는 한참 뒤에 온다. 지하에서는 늘 그렇다. 소리가 먼저 오고 열차가 나중에 온다. 둘은 손을 잡은 채 그 소리를 같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