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19자) · 하람 · 8월 10~12일
승객 1명
막차까지 삼 분 · 진해솔
넷째 주 월요일 새벽 두 시에 소원이 물었다.
막차가 다 들어가고 화면 벽이 검은 선만 남은 시각이었다. 소원은 노트북을 옆으로 밀어 두고 의자를 하람 쪽으로 반 바퀴 돌렸다. 지난 금요일에 한 번만 더 묻겠다고 한 사람이 그 한 번을 쓰려고 몸을 돌리는 소리가, 의자 바퀴가 바닥 매트를 긁는 소리로 났다.
“왜 밤에만 일하세요?”
이번에는 「관제사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하람은 그게 들렸다.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키보드를 당겨 운행 기록 조회 화면을 열었다. 날짜 칸에 커서를 두고 숫자를 하나씩 쳤다. 2019, 11, 17. 칠 년 동안 이 화면에서 이 날짜를 친 게 몇 번인지 하람은 세지 않았다. 손가락이 자리를 외우고 있어서 쳤다는 느낌도 없었다.
화면이 뜨자 한 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00:52, 가람역 내선, 12열차, 출발 지연 일 분, 사유 코드 07. 비고 칸에 한 줄이 있었다.
승객 1명 선로 진입.
사고조사 보고서 요약이 그 아래 연결돼 있었다. 하람이 그것도 열었다. 일시, 장소, 편성, 피해 내역. 피해 내역 칸에는 네 글자가 있었다.
승객 1명.
하람은 화면을 소원 쪽으로 돌렸다. 소원이 화면을 읽는 동안 하람은 소원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화면 벽 어딘가, 차량기지로 꺾여 들어가는 마지막 점을 보고 있었다.
“제 언니입니다.”
소원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공조기 소리가 그 숨을 덮지 못했다.
“이름은 정하윤입니다. 그날 스물아홉이었고, 야근하고 막차를 탔습니다. 가람에서 내려서 여기로 걸어오려고 했습니다. 새벽 한 시에 제 쉬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야식 갖다준다고요.”
하람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은 높이였다. 무전을 받을 때 쓰는 높이였다. 그 높이가 아니면 끝까지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날 제가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00시 20분에 두 역에서 안전문 이상 신호가 떴습니다. 가람 11-4, 은행정 3-2. 설비에 무전을 넣었고, 막차 뒤에 보겠다고 했습니다. 은행정에서 공연이 끝나서 승강장에 사람이 넘쳤습니다. 저는 삼십 분 동안 은행정만 봤습니다.”
“관제사님.”
“가람 11-4는 사용 중지를 걸 수 있었습니다. 문 하나만 잠그고 역무원을 세우면 됐습니다. 제가 안 걸었습니다.”
화면 속 비고 칸의 한 줄이 두 사람 사이에서 하얗게 떠 있었다. 하람은 그제야 소원을 봤다.
하람이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 창 하나를 열었다. 칠 년 동안 지우지 않은 창이었다. 맨 아래 말풍선이 00시 38분에 와 있었다. 막차 탔다. 김밥 두 통. 한 시에 문 앞으로 나와.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람이 보낸 답장도 없었다. 그 시각에 하람은 은행정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답장을 안 했습니다. 바빠서요.”
하람은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액정이 책상에 닿는 소리가 딱 하고 났다.
“이게 대답입니다. 칠 년 동안 여기 앉아 있는 이유요.”
*
소원이 노트북을 덮었다.
하람은 그 동작을 삼 주 동안 봤다. 불편한 말을 들으면, 아니면 불편한 말을 해야 할 때, 이 사람은 뚜껑부터 만진다. 소원이 덮은 노트북 위에 두 손을 포개 얹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회의실로 가 주시겠어요?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관제실 옆 작은 회의실은 형광등이 반만 들어왔다. 나머지 반은 누가 끄고 나갔는지 몰랐다. 소원이 가방 안쪽 주머니에서 누런 봉투를 꺼냈다. 봉투 모서리가 닳아 둥글어져 있었고, 겉에 볼펜 글씨로 「가람」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 서재에서 나왔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셨고, 올해 삼월에 서랍을 정리하다가요.”
소원이 봉투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열아홉 쪽짜리 사고조사 보고서 초안이었다. 소원이 여덟째 장을 폈다. 원인 칸에 타자로 친 글씨가 있었다. 승강장안전문 개폐 신호 이상(설비). 그 글씨 위로 볼펜 줄이 두 번 그어져 있었고, 옆 여백에 손글씨로 「승객」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맨 아래 결재란에는 운영본부장 윤태석의 도장이 붉게 번져 있었다.
“아버지 글씨입니다.”
하람은 종이를 들지 않았다. 들면 손이 떨릴 것 같아서 책상 위에 둔 채로 읽었다. 볼펜 줄 두 개가 겹친 자리에 잉크가 뭉쳐 있었다. 한 번 긋고, 망설이다가, 한 번 더 그은 자국이었다.
“알고 오셨습니까?”
“네.”
“이 파견, 일부러 지원하셨습니까?”
“네.”
하람이 의자를 뒤로 밀었다. 바퀴가 회의실 바닥에서 드르륵 소리를 냈다.
“그래서 오셨습니까? 그거 물으려고 한 달 동안 제 옆에 계셨습니까?”
“처음엔 그랬어요. 초안하고 최종본이 왜 다른지, 그 일 분이 뭐였는지.”
“처음엔이요?”
“관제사님이 그 사람 동생인 줄은 몰랐습니다. 첫날도, 둘째 주도요. 셋째 주에 가람을 물었을 때 대답을 안 하셔서, 그때 조금 알았습니다.”
소원이 초안을 봉투에 도로 넣으려다 멈췄다.
“알고 나서 말을 못 했어요. 제가 이 봉투를 꺼내면 관제사님이 제 옆에 안 앉으실 것 같아서요.”
하람은 소리 없이 웃었다.
“연구원님, 저도 첫날부터 알았습니다.”
소원이 고개를 들었다.
“본부장이 윤태석 본부장님 따님이라고 소개했을 때요. 결재란 이름은 칠 년 동안 외웠으니까요. 삼 주 동안 커피를 두 잔 타면서, 이 사람 아버지가 언니를 승객 1명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둘은 한참 서로를 봤다. 형광등이 한 번 깜박였다. 둘 다 삼 주 동안 봉투 하나씩을 들고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나는 가방 안에, 하나는 결재란에.
“그러면 우리 둘 다 거짓말을 한 거네요.”
“말을 안 한 겁니다.”
“관제사님은 그게 다르다고 하시잖아요. 대답을 안 하는 거랑 기분 나쁜 거랑.”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하람이 먼저 회의실을 나갔다.
*
화요일 밤에는 커피가 한 잔이었다.
하람은 탕비실에 가지 않았다. 여섯 시 십 분에 소원이 들어와 앉았을 때 하람의 키보드 왼쪽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소원의 자리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둘은 인사도 하지 않았다. 첫 주보다 더 멀었다. 맞은편 김 차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막내 관제사에게 턱짓을 했고, 막내가 괜히 목소리를 높여 오늘 날씨 얘기를 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열 시쯤 소원이 일어나 탕비실에 다녀왔다. 한 잔만 들고 왔다. 그 한 잔을 하람 키보드 왼쪽에 놓았다. 설탕을 반만 넣은 냄새가 났다. 소원은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자기 잔은 없었다.
하람은 그 잔을 한참 보다가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바닥이 데일 만큼 뜨거웠는데, 식을 때까지 놓지 않았다.
그 밤에 잰 일 분이 여든여덟이 됐다. 열림 신호가 늦은 것이 서른하나였다. 하람은 포스트잇에 두 시각을 적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삼 주가 거짓말이 되는 것 같았다.
새벽 세 시에 소원의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진동했다. 소원은 받지 않고 화면만 봤다. 하람의 자리에서도 발신자 이름이 보였다. 채민호 팀장. 문자가 뒤따라 왔다. 목요일 최종보고 열 시, 청소 대기 사십으로 맞춰 오세요, 본부장님 지시입니다. 소원은 그 문자를 읽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고는 노트북을 열어 새 문서를 만들었다. 제목 칸에 「최종보고」라고 치고, 원인 칸이라고 적힌 표를 하나 그렸다. 그 칸을 비워 둔 채로 커서가 한참 깜빡였다.
하람은 그 빈 칸을 곁눈으로 봤다. 소원이 그 칸에 무엇을 넣을지, 넣지 않을지, 하람은 묻지 않았다. 묻고 싶었는데 물을 자격이 어제 회의실에서 반쯤 없어진 것 같았다.
*
수요일 아침 아홉 시, 교대하고 나오는데 차량기지 정문 앞에서 배옥선이 하람을 불렀다.
옥선은 퇴근하는 길이었다. 고무장갑을 벗은 손이 물에 불어 하얗게 쪼글쪼글했고, 한 손에 빈 물통을 들고 있었다. 소원이 하람 뒤에서 두 걸음쯤 떨어져 따라 나오고 있었다.
“관제 아가씨.”
“네, 반장님.”
“어제 새벽에 옆 회의실에 불 켜져 있던데. 거기 기지 쪽 창에서 다 보여.”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옥선이 물통을 내려놓았다.
“칠 년 전 가람역 거, 그 사람 동생이라며. 김 차장이 술 먹고 한 번 그러더라.”
“네.”
옥선이 한동안 말을 안 했다. 아침 햇빛이 기지 담장 위로 올라와 옥선의 얼굴 한쪽을 하얗게 비췄다. 매미가 담장 너머 가로수에서 한꺼번에 울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 내가 그 승강장 치웠어요.”
소원이 뒤에서 걸음을 멈췄다.
“첫차 전에 다 치우라고 해서 우리 다섯이 갔어. 치우면서 봤지. 11-4 안전문 고무가 한쪽 빠져 있었어요. 문 닫히는 데 끼는 고무, 그게 반쯤 빠져서 덜렁거리고.”
“그거 누구한테 말씀하셨습니까?”
옥선이 웃었다. 웃는데 눈이 안 웃었다.
“누구한테요? 그때 나는 용역이었어요. 지금도 용역이고.”
옥선이 물통을 다시 들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봤다.
“아가씨.”
“네.”
“그때 그 사람 가방이 승강장에 있었어요. 안에 도시락통 두 개 있었고.”
옥선이 기지 안쪽으로 사라지고 나서, 하람은 그 자리에 섰다가, 기지 담장 아래 시멘트 턱에 앉았다. 다리가 먼저 접혔다. 소원이 두 걸음을 마저 걸어와 옆에 앉았다. 한 칸 떨어진 자리가 아니라 바로 옆이었다. 시멘트가 벌써 햇볕에 데워져 허벅지 밑이 따뜻했다.
“언니가 그날 김밥을 쌌습니다.”
소원이 하람을 봤다.
“엄마가 부산에서 김밥집을 하십니다. 언니가 엄마한테 배워서, 제 야식 싸 준다고 막차를 탔어요. 두 통이요. 하나는 제 거, 하나는 같이 먹자고.”
하람은 무릎에 이마를 댔다.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칠 년 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깨가 한 번, 두 번 들썩였다. 숨이 제멋대로 끊겼다.
소원이 손을 뻗었다. 하람의 어깨에 얹으려다 멈췄다. 손이 어깨 위 한 뼘 높이에서 떠 있었다. 매미 소리가 그 사이를 채웠다. 멈췄다가, 소원은 그냥 얹었다.
얇은 셔츠 너머로 손바닥이 생각보다 따뜻했다. 하람은 그 손을 밀지 않았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기지 정문 앞을 지나갔다. 아무도 둘을 보지 않았다. 한참 뒤에 하람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말했다.
“연구원님.”
“네.”
“그 봉투 버리지 마십시오.”
“안 버립니다.”
“초안 원인 칸에, 설비라고 되어 있었죠.”
“네.”
“그 두 글자, 제가 칠 년 동안 07을 누르면서 한 번도 못 쓴 겁니다.”
소원의 손이 하람의 어깨 위에서 조금 더 무거워졌다. 하람은 그 무게를 세어 보려다가 그만뒀다. 이건 세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