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05자) · 하람 · 8월 3~7일

밝기

칠 년 동안 밤에만 일한 관제사 · 진해솔

세 번째 주에는 말없이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말이 줄어든 게 아니라 말이 필요 없어졌다고⁠, 정하람은 월요일 새벽 한 시쯤 생각했다⁠. 소원이 탕비실에 가면 하람이 무전을 받았고⁠, 하람이 무전을 받으면 소원이 화면 아래 신호 줄을 읽어 표에 옮겼다⁠. 지연이 나면 둘 다 몸을 앞으로 숙였고⁠, 지연이 풀리면 둘 다 동시에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이 등받이 두 개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공조기 소리 위에서 박자를 맞췄다⁠. 맞은편 김상묵 차장이 이 소리를 듣고 안경 너머로 한 번 쳐다봤다가 모른 척했다⁠.

포스트잇은 하루에 서너 장씩 늘었다⁠. 하람은 07을 누르기 전에 두 시각을 먼저 적었고⁠, 적은 종이는 모니터 오른쪽 모서리⁠, 소원 쪽으로 붙였다⁠. 소원은 아침마다 이것을 떼어 가서 표에 옮기고⁠, 떼어 낸 자리에 빈 포스트잇을 한 장 붙여 두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

수요일 밤까지 잰 일 분이 예순넷이었다⁠. 이 가운데 스물셋은 열림 신호가 늦었고⁠, 스물셋 가운데 아홉이 가람역이었다⁠.

하람은 이 아홉이라는 숫자를 소원의 표에서 봤을 때 무릎 위에서 손을 폈다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 있었다⁠.

화요일 새벽에는 소원이 포스트잇 한 장을 들고 하람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관제사님 7이 1처럼 보입니다⁠. 이게 01⁠:17입니까⁠, 01⁠:11입니까⁠?⁠”

하람은 종이를 받아 들여다봤다⁠. 볼펜 끝이 급하게 꺾여서 7의 머리가 거의 없었다⁠. 무전을 받으면서 한 손으로 적은 숫자였다⁠.

“⁠17입니다⁠.⁠”

“⁠그러면 여기 이것도 17입니까⁠?⁠”

“⁠그건 11입니다⁠.⁠”

“⁠둘이 똑같이 생겼는데요⁠.⁠”

하람은 대답 대신 볼펜을 들어 7의 허리에 짧은 줄을 하나 그었다⁠. 유럽 사람들이 쓰는 7이었다⁠. 소원이 이 줄을 보고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맞은편에서 김 차장이 안경을 코끝으로 내리며 말했다⁠.

“⁠정 관제사⁠, 칠 년 동안 그렇게 쓴 적 없잖아⁠.⁠”

“⁠칠 년 동안 누가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막내 관제사가 컵라면 국물을 들이켜다 사레가 들렸다⁠. 김 차장이 혀를 차면서 휴지를 던져 줬고⁠, 휴지는 막내 머리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날부터 하람의 포스트잇에 적힌 7은 전부 허리에 줄이 있었다⁠.

*

수요일 밤 열한 시에 도경환이 관제실에 다시 왔다⁠.

본부장이 야간에 관제실에 오는 일은 없다⁠. 문이 열리자 야간조 열하나가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고⁠, 도경환은 손을 내저어 앉으라고 한 다음 곧장 탕비실 쪽으로 갔다⁠. 소원이 커피를 타고 있던 자리였다⁠. 탕비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하람의 자리에서는 소원의 등과 도경환의 옆얼굴이 같이 보였다⁠.

“⁠연구원님 정규직 전환 심사가 구월이시죠⁠?⁠”

도경환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는데⁠, 공조기 바람이 이 말을 관제실 쪽으로 실어 왔다⁠.

“⁠과제 평가서는 발주처가 씁니다⁠. 제가 씁니다⁠. 청소 대기가 사십 퍼센트면 모두가 편합니다⁠. 연구원님도⁠, 저도⁠, 예산도요⁠.⁠”

“⁠청소 대기 표는 이미 가져가셨잖아요⁠.⁠”

“⁠그 표로는 사 퍼센트밖에 안 나와서요⁠.⁠”

도경환이 웃었다⁠. 소원은 커피 봉지를 반쯤 뜯은 채 손을 멈추고 있었다⁠. 봉지 끝에서 커피 가루가 조금씩 흘러 싱크대 위에 갈색 줄을 그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은 금요일까지만 하시고요⁠.⁠”

도경환이 탕비실에서 나오다가 하람의 자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하람의 모니터 모서리에 붙은 포스트잇 석 장을 봤다⁠. 00⁠:12⁠:03⁠.4⁠, 00⁠:12⁠:04⁠.2⁠, 가람⁠. 도경환의 눈이 이 글자에서 한 번 멈췄다가 하람의 얼굴로 올라왔다⁠.

“⁠정 관제사⁠, 칠 년째 야간이라면서요⁠.⁠”

“⁠네⁠.⁠”

“⁠그날 이후로요⁠?⁠”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경환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편하면 계속 밤에 계세요⁠. 그것도 사람 사는 방법이니까⁠.⁠”

하람이 의자를 조금 돌려 도경환을 올려다봤다⁠. 목 안쪽이 바짝 말라서 첫 마디가 갈라졌다⁠.

“⁠본부장님⁠, 가람 11-4를 설비처에서 한 번 봐 주십시오⁠. 열림 신호가 0⁠.8초씩 늦습니다⁠. 이번 주에만 아홉 번입니다⁠.⁠”

“⁠지연 코드가 뭐로 들어갔습니까⁠?⁠”

“⁠07입니다⁠.⁠”

“⁠그러면 설비처가 볼 수가 없죠⁠. 07은 승객입니다⁠. 관제가 03을 눌러야 설비처가 움직입니다⁠.⁠”

도경환이 포스트잇 한 장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종이 끝이 들렸다가 도로 붙었다⁠.

“⁠누르세요⁠, 그럼⁠. 누를 수 있으면⁠.⁠”

하람은 책상 아래에서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쥐었다⁠. 손목이 제멋대로 떨리려는 것을 누르느라 엄지에 힘이 들어갔고⁠, 손톱이 살에 파고드는 따끔한 느낌이 오히려 고마웠다⁠.

도경환은 문으로 걸어갔다⁠. 채민호가 문을 잡고 있었고⁠, 둘이 나간 뒤에 방화문이 쉬익 소리를 내며 닫혔다⁠. 관제실 사람들이 하나씩 제 화면으로 돌아갔다⁠. 소원이 탕비실에서 커피 두 잔을 들고 나왔다⁠. 한 잔을 하람 키보드 왼쪽에 놓았다⁠. 무전이 울리면 옮겨야 하니까 처음부터 왼쪽이었다⁠.

“⁠들으셨죠⁠?⁠”

“⁠다요⁠.⁠”

이날 밤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지연이 세 번 났고⁠, 하람은 세 번 다 두 시각을 적고 07을 눌렀다⁠.

*

목요일 새벽 네 시⁠, 탕비실 개수대 앞에서 김 차장이 하람을 불러 세웠다⁠.

김 차장은 종이컵을 헹구고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가늘게 흘렀고⁠, 컵 바닥에 눌어붙은 커피 자국이 잘 안 지워져서 엄지로 한참 문질렀다⁠.

“⁠포스트잇 봤다⁠.⁠”

“⁠네⁠.⁠”

“⁠두 시각 적지 마⁠.⁠”

김 차장이 물을 잠갔다⁠. 탕비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벽 너머에서 공조기만 돌았다⁠.

“⁠적으면 03 눌러야 되는 날이 와⁠. 적어 놓고 07 누르면 그건 거짓말이 되거든⁠. 안 적고 07 누르면 그냥 관행이고⁠.⁠”

“⁠관행이면 괜찮습니까⁠?⁠”

“⁠괜찮은 게 아니라 안 다치는 거지⁠.⁠”

김 차장이 젖은 컵을 엎어 놓았다⁠. 물방울이 쟁반으로 굴러 내려갔다⁠.

“⁠03 누르고⁠, 아침에 설비팀이 전화하고⁠, 그 전화가 가람까지 가면 말이야⁠. 그다음엔 그날 근무 기록부터 꺼내⁠. 정 관제사 기록⁠.⁠”

하람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개수대 모서리를 잡았다⁠.

“⁠차장님은 그날 뭐 하셨습니까⁠?⁠”

김 차장이 하람을 봤다⁠. 안경 너머 눈가가 한 번 떨렸다⁠. 이 떨림을 감추려는 듯 안경을 벗어 셔츠 자락에 닦았다⁠. 닦을 것이 없는 안경이었다⁠.

“⁠그날 얘기는 하지 말자⁠. 너나 나나⁠.⁠”

“⁠차장님⁠, 저는 칠 년 동안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하지 말라는 거야⁠. 그 연구원은 다음 주면 가⁠. 가고 나면 포스트잇만 남아⁠. 남은 건 누가 봐도 정 관제사 글씨고⁠.⁠”

김 차장이 이 말을 하면서 하람의 어깨 너머 관제실 쪽을 봤다⁠. 문틈으로 소원의 뒷모습이 보였다⁠. 모니터에 거의 코를 댈 듯이 숙이고 있었다⁠.

김 차장이 먼저 나갔다⁠. 하람은 개수대 앞에 혼자 서서 수도꼭지를 다시 틀었다⁠. 찬물에 손목을 한참 대고 있었다⁠. 물줄기가 손목 안쪽 맥 뛰는 자리를 때렸고⁠, 이 박자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

이날 아침⁠, 교대하기 전에 하람은 자기 기록을 뽑았다⁠.

관제사는 자기가 입력한 지연 코드를 조회할 수 있다⁠. 근무 평가에 쓰이기 때문에 열어 두었다⁠. 하람은 칠 년을 걸었다⁠. 출력하는 데 사 분이 걸렸다⁠. 프린터가 종이를 한 장씩 밀어낼 때마다 따뜻한 토너 냄새가 올라왔다⁠.

지연 입력 칠천팔백두 건⁠. 07 승객 승하차 지연 사천삼백열아홉 건⁠. 03 신호·설비 계통 마흔한 건⁠.

하람은 이 종이를 반으로 접어 사물함에 넣었다⁠. 사물함 문 안쪽에는 테이프 자국 네 개가 네모나게 남아 있었다⁠. 거기 붙어 있던 사진을 삼 년 전에 뗐다⁠. 밤마다 문을 열 때마다 보는 게 힘들어서 뗐고⁠, 떼고 나서는 뗐다는 게 힘들었다⁠.

사천삼백열아홉 번 가운데 몇 번이 정말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때 재지 않았고⁠, 재지 않은 것은 07을 누르면 아무도 묻지 않아서였다⁠. 하람은 사물함을 닫고 이마를 철문에 잠깐 댔다⁠. 쇠가 시원했다⁠.

교대하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하람은 처음으로 세어 봤다⁠. 예순두 칸 가운데 소원이 뒤에서 따라온 칸이 몇이었는지⁠. 소원은 스물 몇 번째 칸쯤에서 따라잡았고⁠, 다음부터는 세 칸이 아니라 한 칸 뒤에 있었다⁠. 하람은 이것을 세고 있는 자기가 이상했는데⁠, 세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맨 위 칸에서 햇빛이 쏟아질 때 소원이 옆에서 한 손으로 눈을 가렸고⁠, 하람은 이 손그늘이 제 얼굴까지 조금 드리운 것을 모른 척했다⁠.

*

금요일 새벽 세 시⁠, 소원의 눈이 빨갰다⁠.

세 번째 주 끝이었다⁠. 낮에 네 시간씩 자고 밤에 열다섯 시간을 앉아 있으면 세 번째 주쯤에 눈이 먼저 망가진다⁠. 하람도 첫해에 그랬다⁠. 소원은 표를 보다가 눈을 자꾸 비볐고⁠, 비빌 때마다 모니터 흰 바탕이 더 하얗게 쏘아 댔다⁠.

하람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소원의 모니터 아래쪽 버튼을 찾아 밝기를 세 칸 내렸다⁠. 흰 바탕이 누그러지며 연한 회색이 됐고⁠, 화면빛에 떠 있던 소원의 얼굴이 한 톤 가라앉았다⁠. 하람은 손을 거두면서 자기 모니터 밝기도 세 칸 내렸다⁠. 둘의 얼굴에 앉은 청록빛이 같은 밝기가 됐다⁠.

소원이 하람을 봤다⁠. 하람은 화면을 봤다⁠.

“⁠고맙습니다⁠.⁠”

“⁠첫해엔 저도 그랬습니다⁠.⁠”

하람의 첫해는 낮과 밤이 섞여 있었다⁠. 삼월에 들어와 가을까지는 주간도 섰고⁠, 야간이 끝나는 아침이면 언니가 가끔 센터 앞에서 기다렸다가 해장국을 사 줬다⁠. 같은 해 십일월 뒤로 하람의 근무표에서 낮이 없어졌다⁠. 누가 없앤 게 아니라 하람이 한 칸씩 지웠다⁠.

이후로 한참 둘 다 말이 없었다⁠. 차량기지 화면에서 사람들이 물을 뿌리고 있었다⁠. 흑백 화면이라 얼굴은 안 보였지만⁠, 대걸레를 미는 사람 하나가 입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민법을 외우는 사람이었다⁠.

“⁠관제사님⁠.⁠”

“⁠네⁠.⁠”

“⁠가람역엔 뭐가 있습니까⁠?⁠”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원은 기다렸다⁠. 첫 주 목요일처럼 노트북을 덮지 않았고⁠, 다시 묻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사 분이 지나도 하람이 입을 열지 않았다⁠. 오 분이 지나고⁠, 십 분이 지났다⁠. 하람은 대답을 고르는 게 아니었다⁠. 대답은 칠 년 전에 이미 있었고⁠, 이걸 꺼내는 순서를 몰랐다⁠.

소원이 먼저 움직였다⁠. 자기 모니터에 붙어 있던 빈 포스트잇을 떼어 하람 쪽으로 밀었다⁠.

“⁠다음 주에 여쭤보겠습니다⁠. 한 번만 더요⁠.⁠”

“⁠다음 주가 마지막 주입니다⁠.⁠”

“⁠그래서 한 번만이요⁠.⁠”

하람이 포스트잇을 받아 모니터 모서리에 붙였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노란 종이가 청록 화면빛을 받아 연둣빛으로 보였다⁠. 공조기가 돌았다⁠. 칠 년째 쉬지 않는 선배가⁠, 오늘따라 조금 낮은 소리로 돌았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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