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12자) · 소원 · 7월 27~31일

두 잔

칠 년 동안 밤에만 일한 관제사 · 진해솔

관제센터 삼 층 자판기는 오백 원짜리를 두 번 뱉어야 받는다⁠.

윤소원은 이걸 두 번째 주 월요일까지 몰랐다⁠. 동전을 넣으면 기계 속에서 한 바퀴 굴러 내려오는 소리가 나고⁠, 반환구로 짤랑 떨어지고⁠, 다시 넣으면 또 떨어진다⁠. 세 번째에 소원은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기계를 한참 노려봤다⁠. 복도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고⁠, 자판기 안의 냉각기가 웅 하고 돌기 시작했다⁠.

“⁠두 번은 뱉어요⁠. 세 번째부터 먹어요⁠.⁠”

지나가던 막내 관제사가 알려 주고 갔다⁠. 소원은 네 번째에 믹스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내려왔다⁠.

관제석에 돌아오니 제 자리 키보드 옆에 종이컵이 하나 먼저 놓여 있었다⁠. 김이 아직 올라오고 있었다⁠. 옆자리 정하람은 화면을 보고 있었고⁠, 하람의 손에도 같은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소원은 두 잔을 앞에 놓고 앉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먼저 온 잔부터 마셨다⁠. 설탕이 하나 덜 들어간 맛이었다⁠. 자판기 커피가 아니라 탕비실에서 봉지를 뜯어 탄 커피였다⁠.

“⁠잘 마시겠습니다⁠.⁠”

“⁠자판기 커피는 안 드시는 게 좋습니다⁠.⁠”

하람은 이 말만 하고 무전을 받았다⁠. 소원은 자판기에서 받아 온 잔을 들고 한참 있다가⁠, 다음 날 저녁에는 탕비실에 가서 봉지 두 개를 뜯었다⁠. 설탕을 한 잔에는 다 넣고 한 잔에는 반만 넣었다⁠. 반만 넣은 잔을 하람 키보드 옆에 놓았을 때 하람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 잔을 쥐는 손이 조금 빨랐다⁠.

두 번째 주에는 커피가 두 잔이 됐다⁠.

이 주에 소원은 하람에 대해 세 가지를 알았다⁠. 설탕은 반만 넣는다⁠. 뜨거운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참 식힌 뒤에야 마신다⁠. 그리고 무전이 울리면 잔을 반드시 키보드 왼쪽으로 옮겨 놓는데⁠, 오른쪽은 소원의 자리라서 그렇다는 것을 소원은 수요일쯤에야 알아챘다⁠.

*

화요일 새벽 세 시 반에 소원은 차량기지에 내려갔다⁠.

중간표에 넣을 청소 대기 시간을 직접 봐야 했다⁠. 첫차가 기지에서 늦게 나오는 날이 있는데⁠, 이게 청소 때문인지 정비 때문인지는 관제 화면에 안 뜬다⁠. 하람이 헤드셋을 벗고 따라 일어섰다⁠.

“⁠혼자 가시면 길 잃으십니다⁠.⁠”

차량기지는 관제실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백스무 편성이 줄지어 선 선로 사이로 물안개가 끼어 있었고⁠, 형광등 빛이 이 물기에 번져 사방이 뿌옜다⁠. 고압 세척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 압축기가 숨을 뱉는 소리⁠, 고무장갑 낀 손이 손잡이를 훔치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쇠 냄새와 세제 냄새가 섞여서 목구멍 안쪽이 따가웠다⁠.

“⁠조심하이소⁠. 바닥 젖었어요⁠.⁠”

물통을 든 여자가 소리쳤다⁠. 청소 반장 배옥선이었다⁠. 예순셋이라고 하람이 귀띔했다⁠. 소원이 명함을 꺼내자 옥선이 고무장갑 낀 손을 들어 보였다⁠.

“⁠손 젖었어요⁠. 말로 하이소⁠.⁠”

“⁠지연 원인을 보고 있습니다⁠. 청소 시간을 좀 재 보려고요⁠.⁠”

“⁠지연이 우리 때문이라꼬요⁠?⁠”

“⁠그건 재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옥선이 웃었다⁠. 웃는데 눈가 주름이 하나도 안 풀렸다⁠.

“⁠재는 사람들이 올 때마다 우리 몇 명 줄더라⁠.⁠”

이때 옆으로 대걸레를 민 사람이 지나갔다⁠. 마스크 위로 눈만 보였고⁠, 걸레를 한 번 밀 때마다 입속으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소원은 이 중얼거림을 들었다⁠.

“⁠민법 제삼백구십조⁠,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쟤는 문세아라예⁠. 공부하면서 해요⁠.⁠”

“⁠무슨 공부요⁠?⁠”

“⁠그 법 좀 청소하는 사람 편 들어 주나⁠, 내가 매일 묻는데 대답을 안 해요⁠.⁠”

하람이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 소원은 하람의 어깨가 한 번 떨리는 것을 봤다⁠. 웃은 것 같았는데⁠, 얼굴을 보니 아무 표정이 없었다⁠.

새벽 네 시 반에 소원은 기지 뒤 철계단에서 세아를 다시 만났다⁠. 세아는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휴대폰으로 기출문제를 보고 있었다⁠.

“⁠앉아도 됩니까⁠?⁠”

“⁠네⁠.⁠”

“⁠공무원 시험이세요⁠?⁠”

“⁠세 번째요⁠. 두 번 떨어졌어요⁠.⁠”

세아가 휴대폰을 껐다⁠. 계단 아래로 열차 지붕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이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 없이 났다⁠.

“⁠연구원님이 청소 시간 재러 오신 거죠⁠?⁠”

“⁠네⁠.⁠”

“⁠그거 보고서에 씁니까⁠?⁠”

“⁠써야죠⁠. 그게 과제라서요⁠.⁠”

“⁠쓰면 뭐가 달라집니까⁠?⁠”

소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세아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벌써 소문 돌아요⁠. 내년에 청소 로봇 들어오고 우리 열둘이 일곱 된다고요⁠. 누가 뭐가 문제라고 적어 주기만 기다린대요⁠.⁠”

“⁠제가 그걸 적는 사람이라는 겁니까⁠?⁠”

“⁠여기서 뭐가 문제라고 적히면요⁠.⁠”

세아가 고무장갑을 다시 끼고 일어섰다⁠.

“⁠사람을 줄입니다⁠.⁠”

세아가 계단을 내려갔다⁠. 소원은 무릎 위에 올려 둔 초시계를 내려다봤다⁠. 청소 한 편성에 이십칠 분 사십 초⁠. 재기는 쟀는데⁠, 적고 싶지 않았다⁠.

뒤에서 하람이 내려왔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몰랐다⁠.

“⁠다 들으셨습니까⁠?⁠”

“⁠다요⁠.⁠”

하람이 소원 옆에 앉았다⁠. 한 칸 떨어진 자리였다⁠.

“⁠저 지금까지 일 분을 세고 있었어요⁠. 그 일 분이 왜 생기는지 알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면 셀수록 그 일 분이 사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계단 난간에 맺힌 물방울 하나를 손끝으로 훑었다⁠. 동쪽이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고⁠, 기지 안에서는 물소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수요일 오후에 소원은 일산 집에서 눈을 떴다⁠.

야간 파견을 하고부터 잠은 낮에 네 시간씩 잘려서 왔다⁠. 암막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빛이 방바닥에 칼금처럼 누워 있었고⁠,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났다⁠. 어머니 권미경은 소파에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도마 위에 까 놓은 마늘이 하얗게 쌓여 있었고⁠, 매운 냄새가 거실 공기에 얇게 배어 있었다⁠.

“⁠밥 먹고 가⁠.⁠”

“⁠가서 먹을게요⁠.⁠”

“⁠밤에 일하는 데 가서 뭘 먹어⁠. 앉아⁠.⁠”

소원은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가 된장국을 데우며 등을 보인 채 말했다⁠.

“⁠그 센터에는 왜 간다고 했지⁠?⁠”

“⁠과제요⁠. 지연 원인 보는 거⁠.⁠”

“⁠네 아버지가 만든 데라고 누가 그러더라⁠. 도 본부장이 전화했어⁠. 딸 잘 쓰고 있다고⁠.⁠”

국자가 냄비 가장자리에 부딪혀 쨍 소리를 냈다⁠. 소원은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엄마⁠, 아빠 서재 정리한 거 그대로예요⁠?⁠”

“⁠그대로지⁠. 누가 손대⁠.⁠”

어머니가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소원은 아버지 서재 책상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온 것이 삼월이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봉투 겉에는 아버지 글씨로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가람⁠. 어머니는 이 봉투가 없어진 것을 아직 몰랐다⁠.

“⁠도 본부장한테 잘해라⁠. 네 아버지 장례식 때 추도사 읽어 준 사람이야⁠.⁠”

“⁠알아요⁠.⁠”

소원은 된장국을 반쯤 먹고 일어섰다⁠.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묶는 동안 어머니가 마늘 까는 소리가 다시 났다⁠. 톡⁠, 톡⁠, 껍질이 벗겨지는 소리가 일정했다⁠.

*

목요일 오후 두 시⁠, 소원은 본사 오 층 회의실에서 중간보고를 했다⁠.

창밖으로 성동구 공장 지붕들이 햇빛에 번들거렸다⁠. 에어컨이 너무 세서 팔뚝에 소름이 돋았는데⁠, 채민호는 양복 윗도리를 벗지 않고 앉아 있었다⁠. 도경환은 상석에서 보고서 첫 장만 넘겨 보고 있었다⁠.

“⁠야간 지연 가운데 청소 대기가 원인인 건 사 퍼센트입니다⁠. 첫차 출고만 그렇고⁠, 영업 중 지연은 청소와 관계가 없습니다⁠.⁠”

“⁠사 퍼센트요⁠.⁠”

채민호가 볼펜을 딸깍거렸다⁠.

“⁠청소 대기 항목⁠, 한 줄 더 넣으시죠⁠. 출고 지연이랑 첫차 연쇄 지연을 합치면 숫자가 달라지잖아요⁠.⁠”

“⁠합치면 두 번 세는 겁니다⁠.⁠”

“⁠두 번 세는 게 아니라 넓게 보는 거죠⁠.⁠”

소원이 노트북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리고 영업 중 일 분 지연 일부는 승객이 아니라 안전문 신호 편차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람역 11-4에서 열림 신호가 0⁠.8초 늦는 게 세 번 잡혔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도경환이 보고서를 덮었다⁠.

“⁠연구원님⁠, 과제 이름이 뭡니까⁠?⁠”

“⁠야간 지연 원인 분석입니다⁠.⁠”

“⁠안전문 점검은 설비처 소관입니다⁠. 과제 범위를 넘으시면 곤란합니다⁠.⁠”

“⁠범위 안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숫자는 범위를 모르죠⁠. 그래서 사람이 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 퍼센트는 누가 사십으로 정합니까⁠?⁠”

채민호가 볼펜을 내려놓고 헛기침을 했다⁠. 연구원님⁠, 말씀이 좀⁠, 하고 끼어들려는 것을 도경환이 손바닥 하나로 눌렀다⁠. 에어컨 바람이 보고서 모서리를 들썩이게 했고⁠, 도경환은 이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펴 눌렀다⁠.

“⁠사십이라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연구원님이 사 퍼센트를 어떻게 세셨는지⁠, 세는 법을 한 번만 더 보시라는 거죠⁠. 넓게 보면 숫자는 늘 달라집니다⁠.⁠”

“⁠좁게 봐도 달라지는데요⁠. 가람 11-4 하나만 봐도요⁠.⁠”

도경환의 웃음이 처음으로 반 박자 늦게 나왔다⁠.

도경환이 웃으며 일어섰다⁠. 나가다가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윤 본부장님이었으면 이렇게 안 쓰셨을 겁니다⁠. 그분은 끝을 볼 줄 아는 분이었어요⁠.⁠”

소원의 목덜미가 굳었다⁠. 가방 안쪽 주머니에는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누런 봉투가 있었다⁠. 아버지 서재에서 나온 봉투였다⁠. 소원은 무릎 위로 가방 끈을 꽉 쥐었다⁠.

보고가 끝나자 채민호가 두 손으로 USB 하나를 내밀었다⁠.

“⁠원자료는 저희도 받아 둬야 해서요⁠. 청소 대기 시간 표요⁠.⁠”

“⁠아직 정리가 안 됐습니다⁠.⁠”

“⁠정리는 저희가 합니다⁠.⁠”

채민호는 웃고 있었다⁠. 소원은 노트북에서 파일 하나를 옮겨 주면서⁠, 세아가 계단에서 한 말을 떠올렸다⁠. 옮기는 막대가 끝까지 차는 데 삼 초가 걸렸다⁠.

*

금요일 밤⁠, 관제석에 돌아오니 하람의 모니터 가장자리에 노란 포스트잇이 한 장 붙어 있었다⁠.

소원은 자리에 앉으며 이 글씨를 읽었다⁠. 작고 반듯한 숫자 두 줄이었다⁠.

01⁠:02⁠:11⁠.3 정차 01⁠:02⁠:12⁠.0 열림

이 아래 볼펜으로 한 줄⁠. 0⁠.7⁠, 가람 아님⁠.

소원이 포스트잇에서 하람 쪽으로 눈을 옮겼다⁠. 하람은 무전 마이크를 입가에 댄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방금 난 지연은 07로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잇에는 두 시각이 적혀 있었다⁠.

“⁠적으셨네요⁠.⁠”

“⁠연구원님 표에 옮기십시오⁠. 저는 07 눌렀습니다⁠.⁠”

“⁠알아요⁠.⁠”

소원은 표에 줄을 하나 더했다⁠. 이 주에 잰 일 분이 열일곱 개였고⁠, 이 가운데 여섯은 열림 신호가 늦었다⁠. 소원이 열한 개를 쟀고⁠, 여섯은 하람의 포스트잇에서 옮겼다⁠.

새벽 두 시에 소원이 탕비실에서 커피 두 잔을 타 왔다⁠. 하람의 잔에는 설탕을 반만 넣었다⁠. 하람이 잔을 받으며 포스트잇을 한 장 더 뜯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음 지연을 기다리는 빈 종이였다⁠.

소원은 이 빈 포스트잇이 모니터 모서리에 붙는 것을 보면서 커피를 마셨다⁠. 설탕을 다 넣은 잔이 오늘따라 너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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