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58자)
점으로 움직이는 것들
막차까지 삼 분 · 진해솔
관제실에서 제일 먼저 들리는 것은 공조기다.
화면 백여 개가 열을 내니까 냉방이 계속 돈다. 그 소리가 하루 종일 나고, 그래서 여기 오래 있은 사람은 그 소리를 안 듣는다.
정하람은 그 소리를 듣는 쪽이었다.
칠 년째다. 야간조는 오후 여섯 시에 들어와 다음 날 아침 아홉 시에 나간다. 그 사이에 열차가 백스무 대쯤 들어오고 나간다.
화면에서 열차는 점이다.
“하람 씨.”
옆자리 관제사가 말했다.
“내일부터 파견 하나 온대.”
“…….”
“연구원. 지연 데이터 본다고.”
하람이 화면에서 눈을 안 뗐다.
“한 달이래?”
“어.”
“…….”
“야간에 붙는대.”
하람이 그때 고개를 돌렸다.
“왜 야간에.”
“지연이 야간에 많다고.”
“…….”
“막차 앞이 제일 많지.”
윤소원은 다음 날 오후 여섯 시 십 분에 왔다.
출입증을 목에 걸고 노트북 가방을 메고 있었다. 관제실은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온다. 소원이 그것을 몰라서 문 앞에서 삼십 초쯤 서 있었다.
“신발 갈아 신으셔야 합니다.”
하람이 말했다.
“아, 네.”
“…….”
“저기 있습니다.”
소원이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갈아 신고 들어와서 화면 벽을 봤다.
한참 봤다.
“…….”
“많네요.”
“백열두 개입니다.”
“…….”
“다 보십니까?”
하람이 자기 자리로 갔다.
“다 안 봅니다.”
“…….”
“이상한 게 있으면 그것만 보입니다.”
소원이 옆에 앉았다. 노트북을 폈다.
“정하람 관제사님이시죠.”
“네.”
“윤소원입니다. 한 달 동안 신세 지겠습니다.”
“…….”
“무엇을 보십니까?”
소원이 화면을 켰다. 표가 하나 떴다.
“지연 시간입니다. 작년 것부터요.”
“…….”
“평균 일 분 사십 초인데, 이게 이상합니다.”
하람이 표를 봤다.
“어디가요.”
“일 분대가 너무 많습니다.”
소원이 그래프를 넘겼다.
“설비 고장이면 십 분 이상 갑니다. 기상이면 노선 전체가 같이 밀립니다. 그런데 일 분에서 이 분 사이가 전체의 육십 퍼센트입니다.”
“…….”
“이건 원인이 뭡니까?”
하람이 화면을 봤다. 열차 점 하나가 역에 멈춰 있었다.
“승객입니다.”
“…….”
“보고서 원인 칸에 그렇게 적습니다.”
소원이 노트북에 뭔가를 쳤다.
“그 칸에 승객이라고 적으면요.”
“…….”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하람이 소원을 봤다.
“무슨 뜻입니까?”
“…….”
“설비라고 적으면 정비가 나갑니다. 기상이면 예보를 봅니다. 승객이라고 적으면요?”
하람이 다시 화면을 봤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첫 지연은 아홉 시 사십이 분에 났다.
화면에서 점 하나가 역에 오래 있었다. 하람이 그것을 보고 무전을 잡았다.
“3열차, 여기 관제. 출발 지연 사유.”
무전이 잡음을 냈다.
“3열차. 승강장 승객 하차 지원 중입니다.”
“…….”
“관제 확인.”
하람이 마이크를 놓았다. 화면에 시간을 적었다. 일 분 이십 초.
소원이 옆에서 봤다.
“하차 지원이 뭡니까?”
“…….”
“못 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기관사가 문을 다시 엽니다.”
“…….”
“그게 일 분입니다.”
소원이 노트북에 적었다.
“그러면 원인은 승객이 아니라 하차 지원인데요.”
하람이 그를 봤다.
“…….”
“칸이 세 개입니다.”
“…….”
“설비, 기상, 승객. 그 셋 중에 골라야 합니다.”
“다른 칸을 만들면요.”
“…….”
“그건 제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막차는 열두 시 사십오 분에 들어왔다.
들어오면 관제실이 조용해진다. 화면에서 점이 하나씩 사라지고, 마지막 하나가 차량기지로 들어가면 벽이 거의 다 검어진다.
그때부터 다른 화면이 켜진다. 차량기지 화면이다.
“저건 뭡니까?”
소원이 물었다.
“차량기지입니다.”
“…….”
“밤에 뭘 합니까?”
하람이 커피를 따랐다.
“청소합니다.”
“…….”
“첫차 전까지 백스무 대를 다 해야 합니다.”
소원이 화면을 봤다. 사람이 몇 명 움직이고 있었다. 화면이 흑백이라 얼굴은 안 보였다.
“몇 명이 합니까?”
“…….”
“열두 명쯤 됩니다.”
“열두 명이 백스무 대를요?”
하람이 커피를 마셨다.
“그래서 첫차 전까지입니다.”
새벽 두 시에 소원이 물었다.
“관제사님.”
“네.”
“칠 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왜 야간만 하십니까?”
하람이 화면을 봤다.
“야간 수당이 붙습니다.”
“…….”
“그거뿐입니까?”
하람이 대답하지 않았다.
소원이 노트북을 덮었다.
“죄송합니다. 물을 게 아니었네요.”
“…….”
“아닙니다.”
하람이 커피 잔을 놓았다.
“…….”
“대답을 안 하는 거지 기분 나쁜 건 아닙니다.”
소원이 웃었다.
“그러면 됐습니다.”
새벽 세 시 반에 소원이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을 때 손에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열람 신청서였다.
하람이 그것을 봤다.
“그거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자료실이요.”
“…….”
“야간에도 사람 있더라고요.”
하람이 종이를 봤다. 신청 항목 칸에 날짜가 하나 적혀 있었다.
칠 년 전 십일월 십칠일.
하람의 손이 잔에서 미끄러졌다. 커피가 조금 쏟아졌다.
“관제사님?”
“…….”
“괜찮으십니까?”
하람이 휴지를 뽑았다. 닦았다.
“괜찮습니다.”
“…….”
“이 날짜는 왜 보십니까?”
소원이 종이를 접었다.
“지연 자료 중에 이날 것만 없습니다.”
“…….”
“다른 날은 다 있는데 이날만 파일이 안 열립니다.”
하람이 화면을 봤다. 차량기지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관제사님.”
“…….”
“이날 무슨 일 있었습니까?”
하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잡을 이유가 없었는데 잡았다.
“…….”
“사고가 있었습니다.”
소원이 노트북을 열었다.
“…….”
“어떤 사고입니까?”
하람이 화면에서 눈을 안 뗐다.
“승객이 선로에 떨어졌습니다.”
“…….”
“그날 원인 칸에 뭐라고 적혔는지 아십니까?”
하람이 대답했다.
“승객입니다.”
관제실이 조용해졌다. 공조기 소리만 났다.
소원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관제사님.”
“…….”
“그날 근무자가 누구였습니까?”
하람이 화면을 봤다.
점 하나가 차량기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열차였다.
“접니다.”
아침 아홉 시에 교대했다.
관제실을 나오면 지상이다. 여름 아침 햇빛이 너무 밝아서 야간조는 다들 눈을 반쯤 감고 나온다.
소원이 따라 나왔다.
“관제사님.”
“…….”
“아까 그거요.”
하람이 걸었다.
“연구원님.”
“네.”
“그날 자료는 안 열립니다.”
“…….”
“왜요.”
“모릅니다.”
하람이 멈췄다.
“…….”
“칠 년 동안 세 번 신청했습니다.”
소원이 그를 봤다.
“…….”
“세 번 다 안 열렸습니다.”
소원이 노트북 가방을 고쳐 멨다.
“제가 신청하면 열릴 수도 있습니다.”
“…….”
“왜요.”
“파견 연구원은 권한 등급이 다릅니다.”
하람이 소원을 봤다. 오래 봤다.
“연구원님.”
“네.”
“왜 열려고 하십니까?”
소원이 잠깐 대답을 못 했다.
“일 분이 안 맞아서요.”
“…….”
“그거뿐입니까?”
소원이 눈을 내렸다.
“…….”
“지금은 그렇습니다.”
문세아를 처음 만난 것은 사흘 뒤 새벽이었다.
소원이 차량기지를 직접 보겠다고 했다. 지연이 아침 첫차부터 밀리는 날이 있는데, 그게 정비 때문인지 청소 때문인지를 봐야 한다고.
하람이 같이 갔다.
차량기지는 관제실과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소리가 많았다. 물소리, 압축기 소리, 쇠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사람 소리.
“조심하이소.”
누가 소리쳤다. 물이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배옥선 반장이었다. 예순셋이라고 나중에 들었다.
“관제에서 나왔습니까?”
“네.”
“무슨 일로.”
소원이 명함을 꺼냈다. 옥선이 안 받았다.
“손 젖었어요.”
“…….”
“말로 하이소.”
소원이 명함을 도로 넣었다.
“지연 원인을 보고 있습니다.”
“지연이 우리 때문이라고요?”
“…….”
“그건 아직 모릅니다.”
옥선이 웃었다.
“모르는 사람이 오네.”
그때 옆에서 누가 지나갔다.
스물 몇쯤 된 사람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손에 대걸레를 들고 있었는데, 걸으면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소원이 그것을 들었다.
“……민법 제삼백이십조.”
세아였다.
“쟤는 문세아라예.”
옥선이 말했다.
“…….”
“공부하면서 일해요.”
소원이 세아 쪽을 봤다. 세아는 이미 차량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무슨 공부요.”
“몰라요.”
“…….”
“물어보면 안 되나요?”
옥선이 물통을 옮겼다.
“물어봐도 대답 안 해요.”
“…….”
“여기서는 다들 안 물어봐요. 물으면 다음 계약 없다고 배웠거든.”
새벽 네 시에 세아가 밖으로 나왔다.
기지 뒤쪽에 계단이 있고 거기 앉으면 아무도 안 보인다. 세아는 거기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소원이 옆에 섰다.
“앉아도 됩니까?”
세아가 휴대폰을 껐다.
“…….”
“네.”
소원이 앉았다.
“문세아 씨죠.”
“네.”
“…….”
“아까 민법이라고 하셨습니까?”
세아가 대답하지 않았다.
“…….”
“죄송합니다. 물을 게 아니었네요.”
세아가 무릎을 안았다.
“…….”
“공무원 시험이요.”
소원이 고개를 돌렸다.
“…….”
“두 번 떨어졌습니다.”
“…….”
“올해가 세 번째입니다.”
소원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밤에 일하면 낮에 공부가 됩니까?”
세아가 웃었다. 웃는 소리가 짧았다.
“안 됩니다.”
“…….”
“근데 학원비를 벌어야 되니까요.”
소원이 계단 아래를 봤다. 열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백스무 대라고 했다.
“세아 씨.”
“네.”
“이거 몇 시에 끝납니까?”
“다섯 시 반이요.”
“…….”
“그러고 집에 가면 일곱 시입니다.”
“…….”
“그러면 언제 잡니까?”
세아가 무릎에 턱을 놓았다.
“여덟 시에 자서 열두 시에 일어납니다.”
소원이 그를 봤다.
“네 시간이요.”
“네.”
“…….”
“그러면 몸이.”
세아가 일어섰다.
“연구원님.”
“…….”
“네.”
“이거 보고서에 씁니까?”
소원이 대답을 못 했다.
“…….”
“쓰면 뭐가 달라집니까?”
“…….”
“모르겠습니다.”
세아가 고무장갑을 다시 꼈다.
“그러면 안 쓰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
“왜요.”
세아가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 돌아봤다.
“여기서 뭐가 문제라고 적히면요.”
“…….”
“사람을 줄입니다.”
세아가 들어갔다.
소원은 계단에 앉아 있었다.
하람이 뒤에서 왔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다.
“연구원님.”
“…….”
“들으셨습니까?”
하람이 계단에 앉았다.
“다요.”
“…….”
“관제사님.”
“네.”
소원이 무릎을 봤다.
“저 지금까지 일 분을 세고 있었습니다.”
“…….”
“그 일 분이 왜 생기는지 알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람이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세면 셀수록.”
소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 일 분이 사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동쪽이 밝아지고 있었다. 첫차는 다섯 시 삼십 분이다.
기지 안에서 물소리가 났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