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86자) · 하람 · 7월 20~24일

점으로 움직이는 것들

칠 년 동안 밤에만 일한 관제사 · 진해솔

관제실에서 제일 먼저 들리는 것은 공조기다⁠.

화면 백열두 개가 하루 종일 열을 내니까 냉방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천장 송풍구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칠 년째 같은 높이로 윙윙거리며 식은 믹스커피 냄새를 책상 사이로 밀고 다닌다⁠. 야간조는 이 소리를 「⁠제일 오래된 선배⁠」라고 부른다⁠. 선배 중에 한 번도 쉬지 않은 건 저것뿐이라서다⁠.

정하람은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다⁠. 여기 오래 있은 사람은 대개 공조기를 못 듣게 되는데⁠, 하람은 칠 년이 지나도 이 소리가 귀에서 빠지지 않았다⁠.

화면에서 열차는 점이다⁠. 순환선 쉰여덟 역 위로 초록 점이 백스무 개쯤 미끄러지고⁠, 늦는 점은 노랗게 변한다⁠.

7월 20일 월요일 오후 여섯 시 십 분에 관제실 문이 열렸다⁠. 운영본부장 도경환이 먼저 들어왔고⁠, 기획조정팀장 채민호가 뒤에서 문을 잡았고⁠, 마지막으로 노트북 가방을 멘 여자가 들어오다가 문턱에서 멈췄다⁠.

“⁠신발 갈아 신으셔야 합니다⁠.⁠”

하람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여자가 슬리퍼 칸에서 한 켤레를 꺼내 신었는데⁠, 오른쪽과 왼쪽이 바뀌어 있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여자는 그대로 화면 벽 앞까지 걸어가서 한참 서 있었다⁠.

“⁠많네요⁠.⁠”

“⁠백열두 개입니다⁠.⁠”

“⁠이걸 다 보십니까⁠?⁠”

“⁠다는 안 봅니다⁠. 이상한 게 있으면 그것만 보입니다⁠.⁠”

도경환이 웃으면서 여자의 어깨 뒤에 섰다⁠. 쉰여섯이라는데 머리가 까맣게 염색돼 있었고⁠, 넥타이핀에 공사 마크가 박혀 있었다⁠.

“⁠윤소원 연구원입니다⁠. 교통연구원에서 한 달 파견 왔습니다⁠. 야간 지연 원인 분석이고요⁠.⁠”

채민호가 명함을 두 손으로 하람에게 내밀었다가⁠, 받는 걸 보고 한 장을 더 꺼내 두 손으로 또 내밀었다⁠. 하람은 두 장을 다 받아 키보드 옆에 겹쳐 놓았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도경환이 화면 벽을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야간 지연의 육십 퍼센트가 승객 승하차⁠, 그리고 차량기지 청소 대기입니다⁠. 연구원님은 숫자만 채워 주시면 됩니다⁠. 그 숫자로 내년 예산을 짭니다⁠.⁠”

윤소원이 도경환을 돌아봤다⁠. 삼십 대 초반쯤⁠, 짧게 자른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있었고⁠, 말하기 전에 한 번 숨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숫자가 결론을 정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숫자를 잘 뽑는 분을 모셨죠⁠.⁠”

도경환이 웃었는데⁠, 웃음이 먼저 나오고 대답이 나중에 나오는 사람이었다⁠.

“⁠윤 연구원 아버님이 이 센터를 만드신 분입니다⁠. 윤태석 본부장님⁠. 따님이라 믿고 맡깁니다⁠.⁠”

하람의 손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화면에서 점 하나가 노랗게 변했다가 다시 초록으로 돌아왔다⁠. 하람은 이 점을 보는 척했다⁠.

본부장 일행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맞은편 관제석의 김상묵 차장이 안경을 이마로 올렸다⁠. 내년 유월이 정년인 사람이었고⁠, 주간으로 갈 연차가 한참 지났는데도 칠 년째 야간에 서 있었다⁠.

“⁠본부장이 관제실에 직접 오는 거⁠, 내가 여기서 처음 본다⁠.⁠”

“⁠그렇습니까⁠?⁠”

“⁠결론이 나와 있는 과제는 원래 사람을 안 보내⁠. 메일로 표만 받지⁠.⁠”

김 차장이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하람 쪽으로 의자를 조금 굴렸다⁠.

“⁠정 관제사⁠, 옆자리 사람한테 화면 너무 많이 보여 주지 마⁠. 보여 주면 적고⁠, 적으면 남아⁠.⁠”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 차장은 이걸 알아들었다는 듯 의자를 도로 굴려 갔는데⁠, 바퀴 하나가 매트 턱에 막혀 두 번 삐걱거렸다⁠. 이 소리에 막내 관제사가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

첫 주에는 인사만 했다⁠.

소원은 매일 여섯 시 십 분에 들어와 하람의 오른쪽 빈 관제석에 앉았다⁠. 이 자리는 칠 년 동안 비어 있었다⁠. 야간조 열하나가 다 제 자리가 있고⁠, 이 한 자리는 누가 쓰다 나간 뒤로 모니터에 먼지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소원은 첫날 이 덮개를 벗겨서 접어 서랍에 넣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아침 아홉 시에는 반대로 했다⁠.

“⁠들어가세요⁠.⁠”

“⁠들어가십시오⁠.⁠”

이 사이 열다섯 시간 동안 둘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소원은 노트북에 지연 기록을 받아 표를 만들었고⁠, 하람은 무전을 받고 점을 봤다⁠. 하람은 옆에서 키보드 치는 소리가 나는 게 칠 년 만이라는 것을 사흘째에 알았다⁠. 공조기 소리 위에 작은 소리가 하나 얹혀 있었다⁠.

수요일 밤 아홉 시 사십이 분에 첫 지연이 났다⁠.

화면에서 점 하나가 역에 오래 서 있었다⁠. 하람이 무전을 잡았다⁠.

“⁠3열차⁠, 관제⁠. 출발 지연 사유⁠.⁠”

“⁠3열차⁠, 승강장 하차 지원 중입니다⁠. 문 한 번 더 열었습니다⁠.⁠”

“⁠관제 확인⁠.⁠”

하람은 마이크를 놓자마자 입력창을 열고 0과 7을 눌렀다⁠. 누르는 데 일 초도 안 걸렸다⁠.

“⁠방금 그건 뭡니까⁠?⁠”

소원이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었다⁠. 하람은 대답 대신 입력창을 소원 쪽으로 조금 돌렸다⁠. 사유 코드가 스물둘 줄로 나열돼 있었다⁠.

“⁠07⁠, 승객 승하차 지연입니다⁠.⁠”

“⁠03은 뭡니까⁠?⁠”

“⁠신호·설비 계통입니다⁠. 03을 누르면 다음 날 아침에 설비팀이 전화합니다⁠. 무슨 일이었냐고 묻습니다⁠.⁠”

“⁠07을 누르면요⁠?⁠”

하람이 화면을 봤다⁠. 점은 다시 초록이 되어 다음 역으로 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소원이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다가 손을 멈췄다⁠.

“⁠그러면 칠 년 동안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거네요⁠.⁠”

하람은 이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소원도 더 묻지 않았다⁠. 다만 다음부터는 지연이 날 때마다 소원이 몸을 조금 하람 쪽으로 기울였고⁠, 하람은 이게 신경 쓰였다⁠.

목요일 밤 열한 시에는 소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소원은 관제실 밖 복도로 나가 받았는데⁠, 방화문이 덜 닫혀서 채민호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금요일까지 중간표⁠, 청소 대기 항목은 따로 빼서⁠, 본부장님이 보시기 편하게⁠. 소원은 네⁠, 네⁠, 하다가 한 번만 아니요⁠, 라고 했다⁠. 들어와서 자리에 앉을 때 소원은 노트북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고⁠, 하람은 이 사람이 불편한 말을 들으면 뚜껑부터 만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

목요일 새벽 두 시에 소원이 물었다⁠.

막차가 다 들어가고 화면이 거의 까맣게 된 뒤였다⁠. 점이 빠지면 화면 벽은 검은 선만 남고⁠, 이 위에 차량기지로 들어가는 마지막 점 두셋이 느리게 기어간다⁠. 이 시각에는 관제실 사람들도 조용해진다⁠. 누구는 눈을 감고⁠, 누구는 컵라면 물을 받으러 간다⁠.

“⁠관제사님⁠.⁠”

“⁠네⁠.⁠”

“⁠칠 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왜 야간만 하십니까⁠?⁠”

“⁠야간 수당이 붙습니다⁠.⁠”

“⁠그거뿐입니까⁠?⁠”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원은 다시 묻지 않았고⁠, 사과하지도 않았다⁠. 노트북을 덮지도 않았다⁠. 그냥 옆에 앉아 있었다⁠. 공조기가 돌았고⁠, 화면에서 점 하나가 차량기지 선로로 꺾여 들어갔고⁠, 누군가의 컵라면 뚜껑이 뜯기는 소리가 났다⁠. 일 분이 지났고 이 분이 지났다⁠. 칠 년 동안 이 시각에 하람이 대답을 안 하면 사람들은 다른 데로 갔다⁠. 이 사람은 가지 않았다⁠.

사 분쯤 지나서 하람이 말했다⁠.

“⁠대답을 안 하는 거지⁠, 기분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소원이 그제야 웃었다⁠. 하람은 이 웃음을 곁눈으로 봤다가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목 뒤가 조금 뜨거웠다⁠.

*

금요일 밤⁠, 막차가 가람역에 들어간 것은 열두 시 오십일 분이었다⁠.

하람은 이 역 이름이 화면에 뜨면 늘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가람역은 관제센터에서 세 정거장이다⁠. 칠 년 전 십일월⁠, 이 역 내선 승강장 11-4번 안전문 앞에서 한 사람이 선로로 떨어졌다⁠. 이날 관제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하람이었다⁠.

점이 노랗게 변했다⁠.

“⁠12열차⁠, 관제⁠. 가람 출발 지연 사유⁠.⁠”

“⁠12열차⁠, 하차 지원 중입니다⁠. 11-4 쪽에서 사람이 몰려서요⁠.⁠”

하람의 오른손이 입력창으로 갔다⁠. 손가락이 0 위에 얹혔다⁠. 이때 옆에서 소원이 말했다⁠.

“⁠잠깐만요⁠.⁠”

소원이 하람의 화면 아래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승강장 안전문 신호가 작은 글씨로 흘러가고 있었다⁠. 열차 정차 신호 00⁠:51⁠:40⁠.0⁠, 안전문 열림 신호 00⁠:51⁠:40⁠.8⁠. 소원은 휴대폰 초시계를 켜 놓은 채였다⁠.

“⁠열차가 서고 나서 안전문이 0⁠.8초 늦게 열렸습니다⁠. 다른 문은 다 같이 열렸는데 11-4만요⁠.⁠”

“⁠0⁠.8초는 사람이 못 느낍니다⁠.⁠”

“⁠느끼지는 못해도⁠, 문이 열릴 줄 알고 발을 떼면 아직 안 열려 있습니다⁠. 한 번 멈칫하면 뒤에서 밀리고⁠, 밀리면 기관사가 문을 한 번 더 엽니다⁠.⁠”

소원이 초시계 화면을 하람에게 보였다⁠.

“⁠그게 일 분입니다⁠. 이건 승객이 아니라 설비예요⁠.⁠”

하람은 입력창을 내려다봤다⁠. 커서가 코드 칸에서 깜빡였다⁠. 03을 누르면 아침에 설비팀이 전화하고⁠, 그러면 가람역 11-4라는 글자가 다시 누군가의 입에 오른다⁠. 칠 년 동안 하람은 이 글자를 아무 입에도 올리지 않았다⁠.

“⁠연구원님⁠.⁠”

“⁠네⁠.⁠”

“⁠그건 연구원님 표에 적으십시오⁠. 저는 07을 누르겠습니다⁠.⁠”

“⁠왜요⁠?⁠”

“⁠여기서는 그렇게 합니다⁠.⁠”

소원이 하람을 똑바로 봤다⁠. 하람은 이 눈을 피하지 않으려고 턱에 힘을 줬다⁠.

“⁠관제사님이 방금 누르려던 건 0이었습니다⁠. 제가 말 안 했으면 칠까지 눌렀겠죠⁠. 그 전에 신호는 안 보셨고요⁠.⁠”

“⁠맞습니다⁠.⁠”

“⁠그러면 칠 년 동안 07 가운데 몇 개가 07이 아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네요⁠.⁠”

하람은 07을 눌렀다⁠. 딸깍하는 소리가 공조기 소리에 묻혔다⁠.

소원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 표 맨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7월 24일⁠, 가람 내선 11-4⁠, 00⁠:51⁠, 열림 신호 0⁠.8초⁠. 그리고 이 줄 옆에 1이라고 썼다⁠. 하람은 이 숫자를 봤고⁠, 봤다는 걸 소원이 알았다⁠.

*

아침 아홉 시에 교대하고 나오면 계단이 예순두 칸이다⁠.

관제센터는 지하 이 층이라⁠, 출구 계단을 다 올라가야 지상이다⁠. 여름 아침 햇빛은 계단 맨 위에서부터 하얗게 쏟아져서⁠, 야간조는 다들 눈을 반쯤 감고 올라간다⁠. 하람은 칠 년 동안 이 계단을 혼자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다리가 무거워지고⁠, 맨 위 칸에 닿으면 그제야 밤이 끝난다⁠.

이날은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슬리퍼를 갈아 신고 나온 운동화 소리였다⁠.

“⁠관제사님⁠.⁠”

하람은 서지 않았다⁠. 소원도 서라고 하지 않았다⁠. 둘은 세 칸쯤 떨어져서 나란히 아닌 채로 올라갔다⁠.

“⁠다음 주에도 그 숫자 적을 겁니다⁠.⁠”

“⁠적으십시오⁠.⁠”

“⁠관제사님 화면에서 읽어야 적을 수 있는데요⁠.⁠”

하람은 맨 위 칸에서 햇빛에 눈을 찡그렸다⁠.

“⁠제 화면은 원래 옆에서 다 보입니다⁠.⁠”

소원이 뒤에서 작게 웃었다⁠. 이 웃음소리가 계단 벽에 부딪혀 한 번 돌아왔다⁠. 하람은 길 건너 지하철 입구 쪽으로 걸어갔고⁠, 입구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손바닥을 한 번 펴 봤다⁠. 0을 누르던 손가락 끝이 아직 저렸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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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필깎이2026.10.12· 1화

    07을 누르면 아무도 안 묻는다는 게 관제 용어인가요?

    • 진해솔작가2026.10.13

      소설 속에서 쓰는 근무 번호예요. 누르는 순간 그 사람의 밤이 정해지는데, 왜 골랐는지는 다들 안 묻습니다. 한 사람만 빼고요.

  • 진해솔작가2026.10.09· 1화

    작가 진해솔입니다. 07을 누르면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1화의 관제실에서 점으로 움직이는 열차들을 보며, 여러분은 누가 물어 주기를 바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