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96자)
인사가 길다
제자 셋 남은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 한도윤
「육손」
엄대호가 향을 가리키며 말했소.
“꺼지면, 실격.”
향이 다 타도록 인사를 못 마치면 그 판은 진다는 말이오. 그러니 나는 인사를 끝내지 않되, 향이 꺼지기 전에는 끝내야 했소. 장문인이 오면 인사를 끝내지 않은 채 내려가서 바꾸면 되오. 장문인이 안 오면 끝내고 당무결과 싸워야 하오. 싸우면 지오. 이건 부풀린 게 아니오.
나는 목검을 땅에 짚고 허리를 폈소.
“청송문 셋째 제자 육손이오. 지금부터 인사를 하겠소.”
관중석이 조용해졌소. 다들 내가 칼을 뽑기 전에 하는 몇 마디를 기다렸소. 나는 백 년 전부터 시작했소.
“청송문은 백 년 전, 아미산 북쪽 봉우리에 한 사람이 소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시작됐소. 그분 이름은 송운 진인. 키가 아홉 자였고, 한 끼에 쌀 한 말을 먹었으며…”
거짓말이오. 송운 진인 키는 모르오. 다만 청송문 사당에 그분 초상이 있는데, 초상 속 그분 옆의 소나무가 그분보다 작게 그려져 있소. 그러니 아홉 자쯤은 됐을 거요.
나는 송운 진인이 소나무 아래서 바람 소리를 듣고 심법을 깨친 이야기를 했소. 그 심법으로 첫 제자 일곱을 길러 낸 이야기를 하고, 일곱이 마흔이 되고 마흔이 이백이 된 이야기를 했소. 그 시절 부엌에 쇠솥을 걸었는데 그 솥이 너무 커서 솥을 씻으려면 사람이 솥 안에 들어가야 했다는 이야기도 했소. 이건 참말이오. 철석 사형이 지금도 들어가서 씻소.
향이 사 분의 일쯤 탔소.
관중석에서 해바라기씨 까는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소. 누가 소리쳤소. 언제 싸우냐? 다른 누가 받았소. 앙복 육손이다, 저놈은 원래 말이 많다. 나는 그 사람한테 손을 흔들었소. 청향루 단골이었소.
당무결은 움직이지 않았소. 목검 대신 가늘고 짧은 칼 하나를 손에 쥐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얼굴로 서 있었소. 그 얼굴이 제일 견디기 어려웠소. 야유는 견딜 만하오. 끝까지 들어 주는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하기가 더 어렵소.
*
「진하율」
운하진 뒷길은 대숲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른다. 나는 대숲에서 한 번, 계곡 징검돌에서 한 번 넘어졌다. 징검돌에서 넘어질 때 무릎이 돌 모서리에 찍혔는데 아픈 줄도 몰랐다. 사부의 목검을 등에 비끄러매고 뛰었다. 목검 끝에 감은 세 겹의 끈이 뛸 때마다 내 등을 두드렸다.
청송 봉우리 북쪽 비탈 아래 닿았을 때 숨이 목구멍에서 쇠 맛이 났다. 안개가 무릎까지 깔려 있었다. 말뚝 열한 개가 안개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고, 말뚝 사이에 사람이 둘 서 있었다. 당가의 붉은 매듭. 한 사람은 측량 때 줄자를 잡던 사내였다.
“들어오지 마시오. 가주님 명이오.”
“여긴 우리 산이에요.”
“추석까지는.”
나는 대답 대신 목검을 등에서 풀었다. 사내가 허리에서 짧은 칼을 뽑았다. 다른 하나는 뒤로 물러나 소매에 손을 넣었다. 암기다. 나는 소은이 보던 것을 봤다. 어깨, 손목. 칼을 든 사내의 오른쪽 어깨가 내려갔다.
위에서 왔다. 나는 옆으로 비켰다. 소은처럼 깨끗하게 비키지는 못해서, 칼끝이 내 왼쪽 팔뚝을 스쳤다. 소매가 갈라지고 그 아래 살이 뜨거워졌다. 피 냄새가 안개 속 송진 냄새와 섞였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소은이 곽태평에게 했던 것처럼 앞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칼을 든 팔과 가슴 사이 빈자리로. 거기서 사부의 목검으로 사내의 손목을 쳤다. 칼이 안개 속으로 떨어졌다. 사내가 주먹을 들었을 때 나는 목검을 버리고 두 손바닥을 그 가슴에 댔다. 철석처럼. 밀었다.
철석만큼 멀리 가지는 않았다. 사내가 두 걸음 뒤로 비틀거리다 말뚝에 걸려 넘어졌을 뿐이다. 그래도 넘어졌다.
뒤에 선 사내가 소매에서 손을 뺐다. 나는 그 손을 보면서 말을 했다. 육손처럼 쉬지 않고.
“지금 그거 던지면 가주님이 비탈에서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말이 사천에 돌아요. 오늘 운하진에 오백 명이 모였어요. 그중에 이야기 파는 놈이 하나 있는데, 걔가 성도 찻집에 가서 이걸 사흘 동안 팔 거예요. 그 사흘 동안 당가 사람이 차를 따르면 다들 마시는 척만 할 거예요. 원래도 그러지만.”
사내의 손이 소매 앞에서 멈췄다. 나는 그 틈에 안개 속에서 사부의 목검을 더듬어 주워 들고, 운무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잎 뒤가 은빛으로 젖어 있었다. 세 포기를 뿌리째 뽑았다. 흙이 차가웠다. 당무결이 지키겠다고 한 약속은 당가가 운무초에 손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손대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
「육손」
향이 반쯤 탔소.
나는 청송문이 구파일방 말석에 이름을 올렸던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었소. 천하의 큰 문파 아홉과 거지들의 무리 개방을 묶어 구파일방이라 부르는데, 그 말석이면 열 번째요. 열 번째도 열 안에 든 거요. 관중석에서 누가 웃었소. 나는 그 웃음을 받아 이야기를 이어 갔소. 그리고 이십 년 전 그 밤에 이르렀소.
“이십 년 전 어느 밤에 청송문 제자 이백이 흩어졌소. 누가 그랬는지는 사부님이 끝내 말씀하지 않으셨소. 그 뒤로 청송문에는 사부님 한 분과 쇠솥 하나가 남았소. 그리고 우리가 하나씩 들어왔소. 먹보, 겁쟁이, 그리고 나.”
나는 거기서 멈췄소. 이야기를 지어낼 것이 더는 없었소. 남은 건 참말뿐이었소. 그래서 참말을 했소.
“올봄에 나는 아미산 아래 장터에서 회색 두건 쓴 사람한테 은자 두 냥을 받았소. 사부님 기침이 얼마나 심하냐고 묻기에 다 말해 줬소. 밤마다 피를 뱉으신다고, 여름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그 두 냥 중 하나로 술을 사 먹었고, 하나는 장문인한테 냈소. 보증금에 들어갔소.”
관중석이 조용해졌소. 해바라기씨 까는 소리가 멎었소.
“당신이 장례 날 맞춰 온 건 내 입 때문이오.”
당무결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소.
“알고 있었소.”
“알았소?”
“그 회색 두건은 아버님 사람이오. 소식은 아버님께 갔고,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산에 갔소.”
그가 칼을 쥔 손을 조금 내렸소.
“나는 그날 조문하러 간 거요. 현송 진인께는 내가 열 살 때 독에 쓰러져 업혀 갔을 때 진인께서 손수 침을 놓아 주신 빚이 있소. 산 얘기는 그다음이었소. 그다음이었지만, 했소.”
나는 그 말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었소. 이야기꾼은 남의 거짓말을 잘 알아보는데, 그 사람 말은 참말과 거짓말 사이 어딘가에 한 발씩 걸쳐 있었소. 향이 사 분의 삼을 넘었소.
*
「철석」
평상 위에서 나는 손가락을 셌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한 하얀 것이 둘째 마디를 넘어 첫째 마디까지 왔다. 손바닥이 내 손바닥 같지 않았다. 남의 손을 빌려 붙여 놓은 것 같았다. 감각이 없는데 무거웠다.
비무대에서 육손 목소리가 들렸다. 쇠솥 얘기였다. 솥을 씻으려면 사람이 솥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 맞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솥 안에 들어간다. 솥 안에 쪼그려 앉으면 머리가 솥 테두리 아래로 쏙 들어가서, 밖에서 보면 솥만 보인다. 사부님은 내가 솥 안에 있을 때 솥뚜껑을 덮는 장난을 두 번 쳤다. 두 번 다 내가 뚜껑을 머리로 밀어 올렸다. 사부님은 그게 재미있어서 웃다가 기침을 했다.
육손이 은자 두 냥 얘기를 할 때 나는 눈을 떴다. 소은 사매가 내 옆에서 숨을 멈추고 있었다. 사매는 놀라면 숨을 멈춘다. 아버지는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비무대를 보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종이 조각이 바스락거렸다.
“사형, 화나요?”
사매가 물었다.
“배고파.”
“그거 말고요.”
나는 생각해 봤다. 육손이 사부님 기침을 팔았다. 그 은자 하나가 보증금에 들어갔다. 보증금 덕에 우리가 여기 있다. 셈이 머릿속에서 엉켰다. 장문인처럼 셈을 잘하면 좋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육손은 말을 많이 하잖아.”
“네.”
“많이 하니까 그런 것도 하는 거야. 반죽을 많이 치면 면이 잘 나오는데, 가끔 바닥에도 떨어져.”
사매가 내 얼굴을 한참 봤다. 그러고는 제 소매로 내 이마의 땀을 닦아 줬다. 사매 소매에서 쇠 냄새가 났다. 아까 그 쇠붙이 비 냄새였다. 하얀 것이 손목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
「진하율」
내려가는 길이 문제였다. 소은 말이 맞았다. 오르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훨씬 미끄러웠다.
나는 산문 쪽 이끼 계단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계곡으로 돌아가는 길보다 짧았다. 이백 칸 계단 위에 장마가 남긴 이끼가 아직 미끈하게 살아 있었다. 첫 열 칸을 내려가다 발이 미끄러졌고, 그다음부터 나는 내려간 것이 아니라 미끄러졌다. 등으로, 엉덩이로, 운무초 세 포기를 가슴에 꼭 안은 채로. 칸마다 엉덩이뼈가 돌 모서리에 부딪혔다. 사부가 철석에게만 이 계단을 짐을 지고 내려가게 한 까닭을 그날 몸으로 알았다.
산문 아래에서 멈췄을 때 나는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다. 하늘이 파랬다. 가슴 위의 운무초는 멀쩡했다. 왼팔에서 흐른 피가 소매를 다 적셨다. 나는 일어나 운하진 쪽으로 다시 뛰었다.
*
「육손」
향이 손톱만큼 남았소.
나는 더 할 말이 없었소. 지어낼 이야기도, 털어놓을 참말도 다 써 버렸소. 내 평생 처음으로 할 말이 바닥났소. 엄대호가 향을 보고 나를 봤소. 인사를 끝내라는 눈이었소. 끝내면 나는 당무결과 싸워야 했소.
그때 관중석 뒤쪽에서 사람들이 갈라졌소.
장문인이 걸어오고 있었소. 뛰어오는 게 아니었소. 이미 뛸 수 있는 몸이 아니었소. 왼팔은 피투성이였고, 옷 뒤쪽은 이끼 물이 들어 푸르게 젖었고, 한 손에 은빛 잎 세 포기를 들고 있었소. 장문인은 대기석 앞에서 그 풀을 소은 사매한테 던졌소. 사매가 받아서 의원한테 뛰었소. 장문인은 비무대 계단 앞에 섰소. 관중석에서 누가 저게 장문인이냐고 물었고, 옆 사람이 저렇게 생긴 장문인은 처음 본다고 대답했소. 나도 처음 봤소. 머리에 솔잎이 꽂혀 있었고, 한쪽 신발이 없었소. 엉덩이 쪽 옷이 해져서 철석 사형 아버님이 앞치마를 벗어 장문인 허리에 둘러 줬소. 장문인은 그 앞치마를 묶으면서도 비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소.
“교체.”
내가 말했소. 인사를 마치지 않고 내려가는 첫 출전자는 사천 대회 백 년에 내가 처음일 거요. 그것도 이야깃거리요.
엄대호가 향을 가리켰소. 손톱만 한 불씨가 남아 있었소.
“향 그대로.”
장문인은 다섯 칸 계단을 올라갔소.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당무결 앞에 서서, 내가 향 한 대 동안 하던 인사를 한 줄로 했소.
“청송문 장문인 진하율.”
향이 꺼졌소. 연기가 가늘게 한 번 꺾이고 사라졌소.
당무결이 칼을 들었소. 장문인이 사부님 목검을 들었소. 둘 사이에 소매 하나만큼의 거리가 남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