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38자)
이백 인분
제자 셋 남은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 한도윤
「진하율」
당무결의 칼은 어깨에서 오지 않았다.
소은이 말한 대로였다. 어깨가 움직이기 전에 칼끝이 먼저 떨렸다. 첫 칼이 내 목 옆을 지나갈 때 나는 그게 지나간 다음에야 봤다. 바람이 차가웠다. 두 번째는 다친 왼팔 쪽으로 왔다. 나는 사부의 목검으로 받았다. 손바닥이 울렸고, 팔뚝의 베인 자리에서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숨이 찼다. 비탈을 오르내린 몸이 아직 뛰고 있었다. 숨이 차면 발이 늦고, 발이 늦으면 다음 칼을 못 받는다. 세 번째 칼이 내 옆구리에 닿았다가 옷만 가르고 지나갔다.
그때 육손 생각이 났다. 들이쉴 때 말해 봐. 지금 하고 있잖아.
나는 말을 했다.
“운무초요.”
당무결의 칼이 아주 조금 늦게 왔다. 나는 받았다. 말을 하는 동안 숨이 목구멍에서 끊기지 않고 흘러 들어오고 나갔다. 소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사부님 상자에 마른 운무초가 있었어요. 사부님은 겨울마다 그걸 한 다발씩 꺾어서 산을 내려가셨어요. 빈손으로 올라오셨고요. 어디로 가셨는지 저는 몰랐어요.”
칼이 왔다. 받았다. 목검의 덧댄 끈 하나가 풀렸다.
“오늘 의원이 그랬어요. 당가 해독약 아니면 안개 비탈 풀이라고. 당가 해독약에 뭐가 들어가는지 저는 몰라요. 그런데 가주님 손등을 봤어요. 당신 손가락 마디도 봤고요.”
당무결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가 칼을 크게 휘둘렀다. 처음으로 어깨가 먼저 움직였다. 나는 그 안쪽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소은이 하던 대로.
“당가 사람이 마흔을 못 넘기는 건 독을 만져서가 아니라, 몸에 쌓인 독을 풀 풀이 모자라서죠.”
그의 칼이 내 귀 옆에서 멈췄다. 멈춘 건지 늦은 건지 나는 모른다. 나는 목검을 버리고 그의 가슴에 두 손바닥을 댔다. 철석처럼. 반죽을 미는 것처럼.
밀었다.
당무결이 한 걸음, 두 걸음 물러났다. 발뒤꿈치가 밧줄 앞 흙을 긁었다. 그의 왼손이 소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봤다. 바늘이 있을 자리였다. 손이 소매 안에서 멈췄다. 그리고 빈손으로 나왔다.
그가 밧줄을 넘어 비무대 밖으로 떨어졌다. 등부터 떨어져서 장터 돌바닥에 찻잎 부스러기가 튀었다.
“장외.”
엄대호가 숨 한 번 쉴 만큼 쉬었다가 덧붙였다.
“청송문.”
엄대호 목소리가 났다. 관중석이 한꺼번에 일어섰고, 그 소리가 땅을 울렸다. 나는 비무대 위에 무릎을 꿇었다. 사부의 목검이 발 앞에 떨어져 있었다. 끝이 네 번째로 부러져 있었다.
*
「소은」
철석 사형의 손가락 끝에서 하얀 것이 물러갔어요. 손목 앞까지 왔던 것이 손바닥으로, 손가락 마디로, 손톱 밑으로 천천히 내려갔어요. 의원이 운무초를 짓찧어 사형 손바닥에 붙이고 남은 것을 달여 입에 흘려 넣었어요. 사형이 그걸 삼키고 눈을 떴어요. 첫마디가 이랬어요.
“써.”
두 번째 마디는 이거였어요.
“만두.”
사형 아버님이 앞치마 없는 허리춤에서 기름종이를 꺼냈어요. 만두가 들어 있었어요. 아침부터 그걸 품에 넣고 다니셨대요. 의원이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어요.
저는 비무대 쪽을 봤어요. 장문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육손 사형이 올라가 장문인 팔을 붙들고 있었어요. 비무대 아래에서 당무결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 사람이 등을 털고 일어나다가, 비무대 끝에 떨어진 은빛 잎 하나를 봤어요. 장문인 소매에서 흘러나온 운무초 잎이었어요.
그 사람은 그 잎을 주워 장갑 안에 넣었어요. 아주 조심스럽게요. 깨지는 걸 쥐듯이요. 그러고 나서 장문인을 한 번 올려다봤어요. 저는 그 얼굴이 무슨 얼굴인지 몰랐어요. 진 사람 얼굴은 아니었어요. 무언가를 갚아야 하는 사람 얼굴 같았어요.
*
「육손」
엄대호가 비무대에 올라 청송문의 본선 진출을 알렸소. 그리고 우리 넷을 차례로 보며 한 마디씩 했소. 이 영감이 그렇게 말을 많이 한 건 사천 대회 백 년에 처음일 거요.
철석 사형한테 이류. 소은 사매한테 이류. 장문인한테도 이류. 그리고 나한테 왔소. 나는 가슴을 폈소.
“삼류.”
관중석이 웃었소. 나도 웃었소. 웃는데 이 빠진 자리로 휘파람이 났소. 엄대호가 비무대를 내려가려다 멈춰서, 장문인 쪽을 보지 않고 말했소.
“현송이 제자를 잘 뒀다.”
네 마디였소. 우리 넷이 동시에 엄대호를 봤소. 엄대호는 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소. 사부님 이름을 저 영감이 어떻게 저렇게 부르는지, 나는 그날 처음 궁금했소. 이야기꾼의 코가 거기서 무언가 냄새를 맡았소.
그다음에 당무결이 왔소. 등에 흙을 묻힌 채, 우산도 없이. 그가 장문인 앞에 섰소.
“산은 못 사게 됐소. 축하하오.”
“빚은요?”
“빚은 추석이오. 삼백 냥에 스물여덟 냥.”
“삼백스물여덟 냥.”
“셈이 빠르시오.”
장문인이 그를 똑바로 봤소.
“운무초는 팔 수 있어요. 산은 못 팔아도.”
당무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그의 뒤에서 당천호가 기침을 했소. 아까보다 길게. 당무결은 아버지 쪽을 한 번 돌아보고, 장문인한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소. 장례 날 사당에서 위패에 절하던 것처럼 정확하게.
*
「진하율」
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나는 장터 평상에 앉아 부러진 목검을 맞대 보았다. 네 번째로 부러진 자리는 앞의 세 자리보다 손잡이 쪽에 가까웠다. 덧대어 묶을 끈이 필요했다.
“내 머리끈 쓰시오.”
육손이 머리끈을 풀어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어깨로 쏟아져서 육손은 갑자기 낯선 사람이 됐다. 철석이 평상에 누운 채 그 얼굴을 보고 기침을 하며 웃었다.
“네 거는 싫어.”
“왜 싫소?”
“거기 묶으면 목검이 떠들 것 같아.”
소은이 제 손목에 감겨 있던 수건을 풀었다. 곽태평의 칼을 받다 삔 손목에 철석이 감아 준 수건이었다. 찬물이 다 말라서 수건이 빳빳했다. 소은은 그걸 내밀면서 사과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요즘 소은은 사과를 하려다 멈추는 일이 잦았다.
나는 수건을 받아 부러진 자리에 감았다. 삼베, 가죽, 내 머리끈, 그리고 수건. 목검이 조금 더 짧아졌고 조금 더 무거워졌다. 철석이 누운 채 손을 뻗어 감은 자리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보았다. 손가락 끝에 이제 하얀 것이 없었다.
“안 빠지네요.”
“세게 묶었어.”
육손은 머리끈을 다시 묶으면서, 다음에 부러지면 꼭 자기 걸로 묶어 달라고 했다. 다섯 번째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하자, 육손이 그건 이야기꾼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라고 했다.
*
「철석」
그날 밤 쇠솥이 가득 찼다.
운하진 장사꾼들이 쌀을 지고 산을 올라왔다. 당가가 지는 데 돈을 건 사람이 운하진에 생각보다 많았다. 다들 딴 돈으로 쌀을 샀다. 아버지가 국수집 수레에 밀가루와 돼지고기를 싣고 왔고, 산 아래 마을 약초꾼들이 나물을 한 바구니씩 들고 왔다. 장례 날 조문 왔던 할머니 둘도 왔다. 이번에는 떡을 이고 왔다. 할머니들이 떡 광주리를 부뚜막에 내려놓으며 나를 봤다. 장례 날 떡이 서른셋에서 서른이 된 걸 할머니들도 알고 있었다. 나는 떡을 지키는 일은 안 맡겠다고 먼저 말했다. 소은 사매가 그 일을 맡았는데, 사매는 떡 광주리를 등지고 서서 문 쪽만 봤다. 떡은 하나도 안 줄었다.
나는 쇠솥에 쌀을 부었다. 한 말, 두 말, 세 말. 쌀이 솥 바닥을 덮고, 솥 허리를 넘고, 솥 테두리 한 뼘 아래까지 찼다. 물을 붓자 쌀이 헤엄을 치지 않았다. 쌀이 너무 많아서 헤엄칠 자리가 없었다.
아궁이에 장작을 넣었다. 당가 말뚝으로 만든 장작이 마지막 한 토막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넣었다. 잘 탔다.
솥이 끓기 시작하자 부엌이 김으로 가득 찼다. 장마 내내 밥 냄새는 솥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는데, 쌀 서 말 끓는 냄새는 솥뚜껑을 밀어 올리고 부엌 문을 지나 연무장까지, 사당까지, 산문 계단 아래까지 내려갔다. 장문인이 부엌 문간에 서서 그 김을 맞고 있었다. 왼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장문인은 쇠솥을 오래 봤다. 쌀을 세는 얼굴이 아니었다.
밥을 펐다. 그릇이 모자라서 마을 사람들은 자기 그릇을 가져왔고, 그래도 모자라서 바가지와 냄비 뚜껑에도 펐다. 백 명이 넘게 먹었다. 이백 명은 안 됐다. 그래도 솥 바닥이 드러나지 않았다. 솥이 처음으로 크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그릇을 장문인한테 줬다. 내 큰 그릇이었다. 장문인이 그걸 받아서 한참 들고만 있다가, 반을 덜어 내 그릇에 도로 부어 줬다.
“너 일곱 끼잖아.”
“오늘은 여덟 끼요.”
장문인이 웃었다. 장례 날 이후로 장문인이 소리 내어 웃은 건 처음이었다. 웃다가 팔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고, 찡그리면서도 계속 웃었다.
*
「진하율」
손님들이 산을 내려간 건 자정이 넘어서였다. 나는 등롱을 들고 산문까지 배웅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철석의 아버지가 빈 수레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수레바퀴가 이끼 계단을 한 칸씩 덜컹거리며 내려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돌아서다가 산문 기둥을 봤다.
왼쪽 기둥, 내 눈높이쯤에 쇠패 하나가 박혀 있었다. 손바닥만 한 쇳조각이었고, 위아래로 뾰족한 이빨이 줄지어 새겨져 있었다. 짐승이 입을 벌린 모양이었다. 쇠못 넷으로 기둥에 박혀 있었는데, 못 대가리가 아직 반짝였다. 손을 대 보니 못 둘레의 나무가 새로 갈라져 있었다. 누군가 오늘 밤에 박았다. 우리가 부엌에서 밥을 푸는 동안. 백 명이 넘는 사람이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이에.
등롱 불빛에 비춰 보니 이빨 아래 작은 글씨가 있었다. 이리 랑. 그 앞 글자는 피 혈이었다.
이십 년 전 하룻밤에 청송문 제자 이백이 흩어졌다. 그 무리는 이리 이빨 쇠패를 남긴다고 했다. 사부는 그 밤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에 한 마디를 남겼다. 대회에는 나가지 마라.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소은이었다. 내가 늦게 안 올라오니 따라 내려온 모양이었다. 소은은 내 옆에 서서 기둥의 쇠패를 봤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산문 둘레를 둘러봤다. 계단 아래, 숲 쪽, 담 너머. 나갈 길을 세는 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눈이 나갈 길이 아니라 들어올 길을 세고 있었다.
“사부님이 나가지 말라고 하신 게 이거였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쇠패의 이빨이 등롱 불빛을 받아 하나씩 번득였다. 위쪽 부엌에서 철석이 쇠솥을 씻는 소리가 났다. 솥 안에 들어가 앉아서 바닥을 긁는 소리가, 산문까지 둥글게 울려 내려왔다.
나는 등롱을 소은에게 건네고, 쇠패에 박힌 못 하나를 손가락으로 쥐어 보았다. 안 빠졌다. 깊이 박혀 있었다. 박은 사람은 이 산문을 오래 알던 사람이었다. 어느 기둥이 무른지, 어디에 박아야 안 빠지는지.
추석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본선도 추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