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87자)
독
제자 셋 남은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 한도윤
「진하율」
운하진 장터는 아미산 기슭 물가에 붙은 작은 마을의 장마당이었다. 장날이면 소금과 차와 약초가 오가는 곳이라, 바닥에 깔린 돌마다 마른 찻잎 부스러기가 끼어 있었다. 그날은 장이 서지 않았다. 대신 장마당 한가운데 비무대가 섰고, 둘레에 사람이 오백은 모였다. 사천 사람들은 당가가 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다들 그걸 한 번 보고 싶었거나, 당가가 이기는 걸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당가 쪽 대기석에는 차양이 쳐져 있었다. 차양 아래 등받이 의자에 쉰을 갓 넘긴 남자가 앉아 있었다. 당가 가주 당천호였다. 얼굴이 이상하게 희었고, 손등에 푸른 핏줄이 지렁이처럼 불거져 있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기침을 했는데, 기침 소리가 바짝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같았다. 당무결은 그 의자 옆에 서 있었다. 아버지에게 차를 따를 때 그는 장갑을 벗었다. 벗은 손은 손톱 밑까지 희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검푸른 얼룩이 옅게 배어 있었다. 스물다섯 살의 손이 아니었다.
청송문 쪽 대기석에는 차양이 없었다. 철석의 아버지가 국수집 평상 하나를 수레에 실어 와 깔아 주었고, 그 위에 우리 넷이 나란히 앉으니 평상 다리가 삐걱거렸다. 해가 정수리에 오자 육손이 평상 위에 쪼그려 앉아 내 그림자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림자가 하나라 넷이 나눠 쓰기엔 좁았다.
엄대호가 비무대에 올라 두 문파의 명단을 읽었다. 당가는 당구, 당연화, 당무결. 청송문은 철석, 소은, 육손, 진하율. 그리고 늘 하던 것보다 한 마디를 더 했다.
“독은 마비까지.”
죽이는 독은 안 되고 몸을 굳게 하는 독까지는 된다. 관중석이 그 말에 술렁였고, 철석이 내 옆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철석은 아침을 많이 먹었다. 아버지가 새벽에 만두를 찌러 일어났다. 땅문서 얘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철석의 품이 조금 불룩했다.
*
「철석」
나는 비무대 계단 밑에 땅문서를 내려놓았다.
접힌 종이를 돌멩이로 눌러 두었다. 당구가 비무대 위에서 그걸 내려다봤다. 당구는 나보다 작고 말랐는데, 두 손이 손목까지 검푸른 색이었다. 손을 독물에 오래 담그면 그렇게 된다고 육손이 말했다. 그 손으로 남을 치면 맞은 자리부터 굳는다고.
“그거 안 가져가나? 아버지 가게.”
“이따 가져갈게요.”
나는 올라가서 인사를 했다. 청송문 첫째 제자 철석. 그다음에 할 말이 생각나서 붙였다. 성도 남문 국수집 아들. 관중석 어디선가 반죽 치는 소리 같은 박수가 한 번 났다. 아버지였다.
당구가 먼저 왔다. 손바닥이 내 가슴을 쳤다. 아프지는 않았다. 차가웠다. 맞은 자리에 얼음을 댄 것처럼 차가운 것이 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두 번째는 어깨, 세 번째는 배. 맞을 때마다 차가운 데가 하나씩 늘었다.
나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밀려면 대야 한다. 대면 독이 묻는다. 그래도 댔다. 당구 손바닥과 내 손바닥이 마주쳤다. 손바닥이 맞붙은 자리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났다. 반죽 두 덩이가 부딪는 소리 같았다.
나는 밀었다. 당구가 한 걸음, 두 걸음 밀려났다. 당구 발뒤꿈치가 밧줄 앞 흙을 긁었다. 한 걸음만 더 밀면 됐다.
그런데 차가운 것이 내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들어왔다. 나는 그걸 막으려고 배 아래의 따뜻한 것을 끌어올렸다. 늘 하던 대로였다. 먹은 걸 내리듯이, 들어온 걸 배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러자 차가운 것이 내 배 아래로 같이 내려갔다.
먹어 버렸다. 독을.
배 아래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따뜻한 것이 모이던 자리가 얼음 덩어리가 됐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당구를 밧줄 앞까지 밀어 놓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당구가 내 손바닥에서 손을 빼고 뒤로 물러났다. 당구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사람도 내가 그걸 먹을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쓰러짐. 당가.”
엄대호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나는 계단 밑을 봤다. 돌멩이 밑에 땅문서가 그대로 있었다. 가져가야 하는데. 그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엎어졌다. 흙에서 찻잎 냄새가 났다.
*
「진하율」
철석은 대기석 평상에 눕혔다. 의원 조수가 펴 든 기름종이 우산 하나가 그늘의 전부였다. 입술이 파랬고, 손가락 끝이 하얗게 식어 있었다. 운하진 의원이 달려와 맥을 짚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마비독인데, 몸 안 깊이 들어갔소. 보통은 맞은 자리에서 멈추는데 이 사람은 이걸 배꼽 아래 기운이 모이는 자리, 단전까지 끌어내렸소. 왜 그랬소?”
“배가 고파서요.”
철석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의원이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참말이었다.
“한 시간 안에 독을 풀어야 하오. 넘으면 다리를 못 쓰게 될 수도 있소. 해독할 재료가… 당가 해독약이 아니면 안개 비탈에서 나는 풀이 있는데, 그게 귀해서.”
“잎 뒤가 은빛인 풀이요?”
의원이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그때 우산 그늘 위로 그림자 하나가 더 겹쳤다. 당천호였다. 당무결이 그 뒤에 섰다. 가주는 의자에서 일어나 여기까지 걸어온 것만으로 숨이 찼다. 그가 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우리 해독약이 있소. 기권하시오. 그럼 지금 바로 주리다.”
나는 당무결을 봤다. 당무결은 아버지 등 뒤에서 나를 보지 않았다. 바닥의 찻잎 부스러기를 보고 있었다.
“기권하면 산의 반이 넘어가요.”
“다리 둘하고 산 반쪽이오. 장문인이니 셈은 잘하시겠지.”
셈은 길지 않았다. 나는 그 셈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산 반쪽은 다시 찾을 수 있다. 철석의 다리는 다시 찾을 수 없다. 기권하는 게 맞았다. 셈으로는 그랬다.
“기권 안 해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거였다. 사부가 셈을 하지 않던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운하진에서 비탈까지 빨리 가면 한 시간이 안 걸려요. 꺾어 와서 내려오면 돼요.”
“한 시간 안에 오르고 내려온다고?”
“우리 산이에요.”
당천호가 웃었다. 웃다가 다시 기침을 했다. 나는 육손을 끌어당겼다. 육손 귀에 대고 말했다.
“둘째 판 끝나면 셋째 판이야. 내가 안 오면 네가 올라가. 향 한 대. 인사로 버텨.”
“인사로 어떻게 버티오?”
“너 한 시간 동안 떠들었잖아.”
나는 운하진 뒷길로 뛰었다. 장터 소리가 등 뒤에서 멀어졌다.
*
「소은」
장문인이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서 저는 비무대에 올라갔어요. 장문인이 어디로 가는지 알았어요. 저는 그 비탈로 가는 길을 다 알아요. 도망칠 길로 두 해 동안 셌으니까요. 빨리 가면 한 시간이 안 걸리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건 오르는 길이에요. 내려오는 길은 미끄러워요.
당연화는 서른쯤 된 여자였어요. 소매가 넓었어요. 소매 안에서 쇠붙이가 서로 부딪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어요. 바늘, 쇠 별, 끝이 갈라진 표창. 그 사람이 인사를 하는 동안 저는 그 사람 손목을 봤어요. 손목이 안 움직이는 사람은 없어요.
첫 바늘이 왔어요. 당무결 바늘처럼 빠르진 않았어요. 저는 왼쪽으로 갔어요. 바늘이 제 귀 옆을 지나 뒤쪽 말뚝에 박혔어요. 둘째, 셋째가 한꺼번에 왔어요. 하나는 위, 하나는 아래. 저는 뛰지 않고 몸을 비틀었어요. 둘 다 저를 지나갔어요.
그다음부터는 비가 왔어요. 쇠붙이 비요. 당연화가 두 손을 번갈아 휘둘렀고, 소매에서 끝없이 무언가가 나왔어요. 관중석 맨 앞줄 사람들이 머리를 감싸고 엎드렸어요. 저는 피했어요. 철우방 때처럼 단 위를 돌지 않았어요. 제자리에서, 한 걸음 안에서 피했어요. 오른 어깨, 왼 무릎, 목, 발등. 그 사람 손목이 꺾이는 쪽 반대로 제 몸을 기울였어요. 무서웠어요. 계속 무서웠어요. 무서워서 하나도 놓치지 않았어요.
비무대 바닥에 쇠붙이가 깔렸어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했어요. 당연화의 손이 소매 안에서 멈췄어요. 소매 안쪽을 더듬는 손가락이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저는 그때 앞으로 갔어요. 쇠붙이를 밟지 않으려고 반짝이는 것들 사이 흙만 골라 디뎠어요. 셋째 걸음에 당연화 앞에 섰어요. 그 사람이 마지막 남은 바늘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었어요. 저는 목검 끝으로 그 사람 어깨를 가볍게 짚었어요.
당연화가 바늘을 떨어뜨렸어요. 그리고 웃었어요.
“하나도 못 맞혔네. 십 년 만이야.”
“죄송해요.”
이번에는 죄송하다는 말이 그냥 나왔어요. 그 사람이 진짜로 서운해 보였거든요.
“승. 청송문.”
한 판씩이 됐어요.
*
「육손」
자, 여기서부터 내 이야기요.
소은 사매가 내려오고, 당무결이 비무대에 올라갔소. 당가는 마지막 판에 소가주를 세웠소. 관중석 오백이 한꺼번에 일어섰소. 당가가 이기는 걸 보러 온 사람들도, 지는 걸 보러 온 사람들도 이 판을 보러 왔소.
나는 대기석에서 운하진 뒷길 쪽을 봤소. 장문인은 안 보였소. 장문인이 뛰어간 지 반 시간이 조금 넘었소. 철석 사형은 평상에서 숨을 얕게 쉬었는데, 의원 말로는 손가락 끝의 흰 기운이 손목까지 올라오면 늦은 거라 했소. 지금은 손가락 둘째 마디쯤이었소.
철석 사형 아버님이 관중석에서 내려와 평상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소. 앞치마에 밀가루가 아직 묻어 있었소. 아버님은 아들 얼굴을 한 번 보고, 일어나서 비무대 계단 밑으로 갔소. 돌멩이를 치우고 땅문서를 집었소. 그리고 거기 선 채로 종이를 반으로 찢었소. 다시 반으로, 또 반으로. 찢은 조각을 앞치마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돌아왔소. 당가 차양 쪽에서 그걸 다 봤을 거요. 아버님은 그쪽을 한 번도 안 봤소.
돌아온 아버님이 의원한테 물었소.
“만두 먹여도 됩니까?”
“지금은 안 되오.”
“그럼 언제 됩니까?”
“해독하고 나서.”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쪼그려 앉았소. 그 뒤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소. 앞치마 주머니가 종이 조각으로 불룩했소. 나는 그 집 부자가 말하는 방식을 그날 다 알았소. 둘 다 할 말이 생기면 먹을 걸 묻소.
“육손.”
철석 사형이 눈을 감은 채 나를 불렀소.
“만두 먹고 싶다.”
“사형 지금 독 먹었소. 만두는 나중에 먹으오.”
“그러니까 먹고 싶지.”
나는 웃었소. 웃는데 이 빠진 자리로 바람이 새서 휘파람 소리가 났소. 엄대호가 셋째 판 출전자를 불렀소. 청송문.
나는 일어났소. 장문인 목검을 들려다 말고 내 목검을 들었소. 내 목검은 하나도 안 부러졌소. 별로 쓸 일이 없었으니까. 비무대 계단은 다섯 칸이었소. 소은 사매가 그걸 세던 게 생각나서 나도 셌소. 하나, 둘, 셋, 넷, 다섯.
당무결이 나를 봤소. 장례 날 부엌 문에서처럼. 내가 판 은자 두 냥을 처음부터 다 알고 있는 눈이었소.
엄대호 옆에서 시동이 향에 불을 붙였소. 가는 연기 한 줄이 곧게 올라갔소.
이제 나는 인사를 해야 했소. 향이 다 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