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40자)

파혼은 비무대에서

제자 셋 남은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 한도윤

「철석」

장마가 그친 날 아침, 산이 김을 냈다.

해가 봉우리 위로 올라오자 젖은 소나무 숲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막 쪄 낸 떡 시루 뚜껑을 열었을 때처럼 숲 전체가 김을 뿜었다. 연무장 돌 틈의 이끼가 처음으로 마르기 시작했고, 이끼가 마르는 냄새는 볶은 깨 냄새와 조금 비슷했다. 나는 연무장에 서서 그 냄새를 오래 맡았다.

열흘 동안 나는 장작을 다 팼다. 도끼를 안 쓰고 손바닥으로 밀어서 쪼갰다. 처음 사흘은 장작이 안 쪼개지고 내 손바닥만 까졌다. 나흘째부터는 장작이 쪼개졌다. 이레째에는 장작 두 개를 겹쳐 놓고 밀었는데 아래 것만 쪼개졌다. 장문인이 그걸 보고 한참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그날 저녁 밥을 한 그릇 더 퍼 줬다.

밥을 한 그릇 더 받은 건 산에 와서 처음이었다. 나는 그 그릇을 천천히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성도로 내려갔다. 이번엔 길이 말라 있어서 하루 반 만에 닿았다.

*

「진하율」

비무장 대기석에 앉자마자 그림자 하나가 내 앞에 섰다. 해가 뜨거운 날이었는데도 그는 검은 우산을 펴 들고 있었다. 우산 그늘이 내 무릎까지 왔다.

“당가는 오늘 경기가 없잖아요.”

“구경도 셈이오. 결승에서 누구를 만날지 봐 둬야 하니.”

“우리가 이길 줄 아시네요.”

“금정검문 소문주는 칼을 곱게 쓰오. 고운 칼은 피하기 좋지. 그쪽 사제가 피하기만 하면 지지는 않소.”

당무결이 소은을 봤다. 소은은 대기석 끝에서 손목을 주무르며 비무대 계단 수를 세고 있었다. 입술이 하나, 둘, 하고 움직였다.

“오늘은 안 피할 거예요.”

“그럼 질 거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앉으라고 한 적이 없었다. 우산을 접어 무릎 사이에 세웠는데, 손잡이의 옻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오래 쓴 우산이었다. 당가 소가주라면 우산 같은 건 해마다 새로 살 텐데.

“운무초는 왜 필요해요?”

나는 세 번째로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비무대에서 첫 판 북이 울리는 동안, 그가 비무대를 보면서 말했다.

“당가 사람이 마흔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은 들어 보셨소?”

“들었어요. 독을 너무 오래 만져서라고.”

“틀린 말은 아니오.”

그게 다였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고 나도 더 묻지 않았다. 첫 판에 철석이 올라가고 있었다. 철석의 큰 등이 비무대 계단을 오를 때 당무결이 그 등을 오래 봤다. 물건값을 매기는 눈이 아니었다. 숫자를 세다 만 사람처럼, 어디까지 셌는지 잊어버린 눈이었다.

*

「육손」

2차 비무장에는 사람이 두 배로 몰렸소. 지난번 이백이었으니 이번엔 사백이오. 부풀린 게 아니오. 해바라기씨 장수가 둘로 늘었소.

다들 도망 문파를 보러 왔소. 내가 청향루에서 사흘 내리 그 이야기를 팔았거든. 철우방 마철이 진흙 구덩이에 얼굴을 박는 대목에서 손님들이 탁자를 두드렸소. 덕분에 이 빠진 자리에 금니를 해 넣을 돈이 생겼는데, 장문인이 그 돈을 쌀값으로 걷어 갔소. 그래서 나는 아직 하 자로 말하오.

첫 판은 철석 사형이었소. 상대는 금정검문 제자 하나. 그 사람은 검을 아주 곱게 휘둘렀는데, 사형은 검이 오는 것을 보고도 안 피하고 손바닥을 내밀었소. 검이 손바닥 앞에서 멈췄소. 멈춘 게 아니라 밀려났소. 그다음 순간 그 제자가 밧줄 밖에 앉아 있었소. 엉덩이부터 떨어져서 다친 데는 없었소. 사형이 일부러 엉덩이 쪽으로 밀었다고 했소. 엉덩이는 살이 많으니까.

둘째 판은 나였소.

나는 이번엔 입을 다물기로 했소. 열흘 동안 장문인 앞에서 입을 꾹 닫고 버티는 자세를 익혔고, 아홉째 날에야 향 반 대를 넘겼소. 그러니 이번에는 조용히 싸우겠다 마음먹었소.

인사를 했소. 청송문 셋째 제자 육손이오. 그런데 이 빠진 자리로 바람이 새서 청홍문 헷째 제자 육혼이오, 하고 나왔소. 상대가 웃음을 터뜨렸소. 관중석도 터졌소. 엄대호 심판장은 안 웃었소. 그 영감은 사람이 아니오.

상대가 웃는 틈에 나는 달려들었소. 반칙은 아니오. 인사는 끝났으니까. 그런데 입을 다물고 달려드니 숨이 막혔소. 숨이 막히니 다리가 풀렸소. 다리가 풀리니 목검이 헛나갔소. 상대 검끝이 내 목젖에 닿았을 때 나는 항복이라고 외쳤소. 앙복으로 나왔소.

관중석에서 누가 앙복, 앙복 하고 따라 외쳤소. 그날 성도에 새 말이 하나 생겼소. 나 때문이오. 이야기꾼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날릴 줄은 몰랐소.

한 판씩. 셋째 판이 남았소.

대기석으로 돌아오니 소은 사매가 무릎 위에 목검을 가로로 놓고 앉아 있었소. 손가락이 목검 위에서 계단 수를 세듯 하나씩 움직였소. 얼굴이 하얬소. 나는 사매 옆에 앉아 말을 했소.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거니까.

곽태평이 스무 살 때 남의 집 감나무 담을 넘다 바지가 걸려 밤새 매달려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소. 이건 청향루에서 들은 거라 반은 거짓말일 거요. 금정검문 문주가 갓을 쓰고 잔다는 이야기도 다시 했소. 사매는 안 웃었소.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했소. 낙산 비단 가게에서 손가락 여섯 개로 비단을 재다 한 뼘을 더 쳐 줘서 큰형한테 쫓겨난 이야기. 손가락 하나가 덤이라 뼘도 덤으로 나갔다고.

사매가 그제야 피식 웃었소.

“사형, 그것도 거짓말이죠?”

“그건 참말이오.”

참말이었소. 나는 그 일로 산에 왔소. 사매는 내 왼손을 잠깐 내려다보고, 일어나서 비무대 계단으로 갔소. 계단 앞에서 수를 세지 않고 그냥 올라갔소.

*

「소은」

곽태평은 진짜 검을 들고 올라왔어요. 날을 세우지 않은 비무용 검이었지만, 목검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어요. 칼집의 금박 산봉우리가 해를 받아 눈이 부셨어요.

“약속은 기억하시오?”

“네.”

“도망치면 내가 이긴 걸로 하겠소.”

“네.”

저는 인사를 했어요. 청송문 둘째 제자 소은입니다. 이번에는 다음 말이 생각났어요. 혼담을 깨러 왔습니다. 관중석이 술렁거렸어요. 엄대호 심판장이 붓을 들어 무언가를 적었어요. 뭘 적었는지는 몰라요.

시작됐어요.

곽태평은 마철하고 달랐어요. 어깨가 거의 안 움직였어요. 검끝이 먼저 떨리고 나서야 몸이 따라왔어요. 첫 칼이 제 왼쪽 어깨로 왔어요. 저는 발이 뒤로 가려는 걸 참았어요. 등 뒤에 문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부엌 문이요. 등지고 서면 안 보이는 문.

저는 목검을 들어서 검을 받았어요.

딱, 하고 소리가 났어요. 손바닥이 찡하게 울려서 팔꿈치까지 저렸어요. 목검이 부러질 것 같았는데 안 부러졌어요. 검이 오는 길을 미리 봤으니까요. 저는 검이 닿을 자리에 목검을 먼저 가져다 놓았어요. 피할 때 보던 걸 막을 때도 똑같이 볼 수 있었어요.

곽태평 눈이 커졌어요. 두 번째 칼이 왔어요. 받았어요. 세 번째. 받았어요. 손목이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어요. 그래도 발은 그대로 있었어요. 장문인 국자랑 제 주걱처럼 맞대고만 있었어요.

관중석이 조용해졌어요. 사백 명이 숨 쉬는 소리가 들렸어요.

곽태평이 숨을 고르고 검을 높이 들었어요. 이번엔 위에서 크게 올 거예요. 오른쪽 어깨가 처음으로 내려갔어요. 그 사람도 지치고 있었어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앞으로 갔어요.

한 걸음이요. 뒤가 아니라 앞이요. 옆이 아니라 앞이요. 그 사람 검이 떨어지는 길 안쪽으로, 팔과 가슴 사이 빈자리로 들어갔어요. 너무 가까워서 그 사람 도포에서 나는 향 냄새가 났어요. 저는 목검으로 그 사람 손목을 쳤어요. 세게 치지 않았어요. 아프지 않게 치고 싶었는데, 그건 잘 안 됐어요.

검이 떨어졌어요. 비무대 흙바닥에 날이 박혔다가 옆으로 쓰러졌어요.

“무기 놓침. 청송문.”

엄대호 심판장이 말하고, 저를 한 번 보고, 한 마디를 더 했어요.

“이류.”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장문인을 봤어요. 장문인이 대기석에서 입을 손으로 막고 있었어요. 장문인이 그렇게 놀란 얼굴을 하는 건 처음 봤어요.

곽태평은 떨어진 검을 줍지 않고 손목을 주물렀어요. 그러다 관중석을 향해 돌아서서 크게 말했어요.

“금정검문 곽태평은 장풍표국 소은 낭자와의 혼담을 오늘 깨오. 내가 졌소.”

관중석이 와 하고 터졌어요. 곽태평은 저한테 고개를 숙이고 내려갔어요. 내려가면서 저한테만 들리게 말했어요.

“두 해 전에 그 말을 했으면 나도 덜 찾아다녔을 거요.”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을 삼켰어요.

*

「진하율」

청송문이 결승에 올랐다. 이긴 문파가 둘이 됐다.

엄대호는 대진표 맨 아래 칸에 붓을 대고 결승을 적었다. 청송문, 그리고 당가. 날짜는 사흘 뒤, 장소는 아미산 기슭 운하진 장터. 당가가 결승 장소를 자기 산 가까이로 청했다는 말이 관중석에 돌았다. 우리 산에서도 가까웠다. 운하진에서 청송문 북쪽 비탈까지는 빨리 오르면 한 시간이 안 걸린다.

“이류라고 했어.”

내가 말하자 소은이 고개를 저었다.

“잘못 들으셨어요.”

“엄대호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 봤어?”

소은이 대답을 못 했다. 육손이 옆에서 손뼉을 치며 하매가 이류다, 하고 소리쳤다. 철석이 소은의 아픈 손목에 찬물 적신 수건을 감아 줬다. 소은은 감긴 수건을 보다가, 관중석 쪽을 한 번 보았다. 사백 명 사이 어딘가에 장풍표국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소은은 그쪽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국수집 뒷방에서 잤다. 철석의 아버지가 결승에 오른 축하로 만두를 서른 개 빚었다. 철석이 스물을 먹었다. 나머지 열을 셋이 나눠 먹었다. 나는 만두를 먹으면서 셈을 했다. 예선에서 지면 산의 반. 이제 한 판 남았다. 한 판이 제일 무거웠다.

밤늦게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철석이 나갔다. 나는 뒷방 문틈으로 봤다. 비단 옷에 붉은 매듭을 찬 깡마른 남자, 당가 집사였다. 그가 철석에게 접힌 종이를 내밀었다.

“이 골목 끝 국수집 땅문서입니다. 소가주님이 아니라 가주님 뜻입니다.”

철석이 종이를 받지 않았다. 집사는 종이를 평상 위에 놓았다.

“결승 첫 판에 아드님이 나오지 않으시면, 이 땅은 아버님 것이 됩니다. 땅세도 없습니다. 영영.”

집사가 돌아갔다. 철석은 평상 앞에 한참 서 있었다. 평상 위의 종이가 밤바람에 한 귀퉁이를 들썩였다. 철석이 그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누르기만 하고 집지는 않았다.

가게 안쪽에서 철석의 아버지가 반죽을 치는 소리가 났다. 내일 장사에 쓸 반죽이었다. 그 소리가 아주 세게, 오래 났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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