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66자)
부엌
제자 셋 남은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 한도윤
「육손」
진 사람이 빨래를 한다. 장문인이 정한 규칙이오. 이긴 사람은 둘이고 나 하나만 졌으니 넷 몫 빨래가 다 내 차지였소.
산으로 돌아온 날부터 다시 비가 왔소. 2차는 열흘 뒤 성도에서 열리니, 그동안 산에서 먹고 수련하기로 했소. 첫 사흘 동안 철석 사형은 비탈에서 뽑아 온 당가 말뚝을 시작으로 장작 한 더미를 손바닥으로 밀어 쪼개며 미는 법을 익혔고, 소은 사매는 장문인의 목검을 백 번씩 피했소. 나는 장문인한테서 입 다물고 마보 서기를 배웠는데, 사흘 동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소. 입을 다물면 숨이 막히고, 숨이 막히면 다리가 풀리오. 나는 부엌 뒤 돌확 앞에 쪼그려 앉아 빨랫방망이를 두드렸소. 빗물이 처마에서 떨어져 빨래 위로 튀었소. 빨래를 하는 건지 빨래에 비를 맞히는 건지 모르겠더이다.
말을 하면 이 빠진 자리로 바람이 새었소. 사 자가 하 자로 나왔소. 사형은 하형, 사매는 하매, 사부님은 하부님. 소은 사매가 내가 하매라고 부를 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소. 그래서 나는 일부러 더 불렀소. 하매, 하매.
장문인 겉옷 차례가 왔소. 장문인은 겉옷이 한 벌뿐이라 소매가 닳아 반들반들하오. 소매를 뒤집어 털다가 손끝에 무언가 걸렸소. 소매 안쪽 깊이 기워 넣은 주머니에 종이가 한 장 접혀 있었소.
나는 남의 종이를 읽지 않소. 거짓말이오. 읽소. 이야기꾼은 종이를 보면 읽소.
빌린 돈 은자 스물여덟 냥. 예선에서 지면 북쪽 비탈을 낀 청송 봉우리의 반을 당가에 넘긴다. 증인 엄대호. 청송문 장문인 진하율.
나는 빗속에서 그 종이를 두 번 읽었소. 분타가 외상을 해 줬다던 날 장문인 얼굴이 생각났소. 그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소. 지금 생각하면 그날 물었어야 했소. 나는 종이를 들고 부엌으로 갔소. 빨랫방망이도 들고 있었다는 건 부엌에 들어가서야 알았소.
*
「진하율」
부엌에서는 철석이 쇠솥 앞에서 밥을 짓고 있었고, 소은이 무를 썰고 있었다.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젖은 장작을 말리고 있었다. 육손이 문간에 서서 종이를 펴 보였다. 한 손에는 빨랫방망이를 든 채였다.
“하문인, 이거 뭐요?”
그가 사 자를 못 해서 장문인이 하문인이 됐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서 종이를 받으려 했다. 육손이 손을 뒤로 뺐다. 철석이 국자를 내려놓고 그 종이를 받아 읽었다. 철석은 글을 천천히 읽는다. 그가 다 읽는 동안 쇠솥에서 밥물이 끓어 넘쳤다. 아무도 뚜껑을 밀지 않았다. 밥물이 부뚜막을 타고 흘러 아궁이로 떨어지면서 쉭쉭 소리를 냈다.
“산 반을 걸었어요?”
“걸었어.”
“우리한테는 외상이라고 했잖아요.”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철석이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우리도 청송문 사람이에요!”
부엌이 울렸다. 쇠솥이 철석의 목소리를 받아 한 번 더 울렸다. 소은이 칼을 내려놓고 뒷걸음질 쳤다. 늘 그렇듯 문 쪽으로였다. 그런데 소은은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 문틀에 등을 대고 멈췄다.
“장문인이 혼자 정하고, 혼자 걸고, 혼자 지면 산을 넘기고. 그럼 우리는 뭐예요? 해바라기씨예요?”
철석이 비유를 하는 걸 나는 처음 들었다. 철석의 비유는 늘 먹을 것이라, 해바라기씨가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해야 했다. 아무도 사지 않고 흘린 다음 누가 쓸어 담는 것. 나는 그걸 알아들었고, 알아들어서 대꾸를 못 했다.
“너도 안 했잖아.”
결국 내가 한 말은 그거였다.
“아버지 가게가 당가 땅이라는 거. 땅세가 두 배가 된다는 거. 너도 우리한테 말 안 했잖아.”
철석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그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국수집 평상에서 아버지가 철석 손에 쥐여 주던 기름 전 주머니가 떠올랐다. 그 주머니를 쥐고 고개를 숙이던 등도.
그때 소은이 문틀에 등을 댄 채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는데, 부엌이 너무 조용해서 다 들렸다.
“사부님이 대회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철석과 육손이 소은을 봤다. 그다음 나를 봤다.
“장례 다음 날 밤에, 사당에서 장문인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죄송해요. 엿들으려던 건 아니에요. 나갈 길을 세다가…”
“사부님이 그러셨어?”
육손이 물었다. 사 자가 제대로 나왔다. 놀라면 이 빠진 것도 잊는 모양이었다.
“그러셨어.”
나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왜 그러셨는지는 나도 몰랐다. 나는 셈을 했고, 셈으로는 나가는 게 맞았다. 사부는 셈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철석」
나는 밥을 안 먹었다.
부엌에서 나와 연무장 가운데 섰다. 비가 굵어졌다. 이끼가 발밑에서 미끄러졌고,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빗물이 입으로 들어갔다. 빗물은 아무 맛도 안 났다.
부엌에서 장문인이 쇠솥 밥을 퍼서 밥상에 차렸다. 그릇 넷. 내 큰 그릇도. 소은 사매가 내 그릇을 들고 연무장까지 나왔다가 내 얼굴을 보고 도로 들어갔다. 밥 냄새가 빗속에서도 났다. 쌀 두 되에 성도에서 얻어 온 쌀을 섞어 지은 밥이었다.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픈데 먹고 싶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버지 가게 일을 말 안 한 것은 맞다. 말하면 장문인이 대회를 그만둘 것 같았다. 장문인은 셈을 하니까. 아버지 가게 땅세가 산 하나보다 싸다는 셈을 하고, 산을 내주고, 그럼 우리는 다 집으로 간다. 나는 그게 싫었다. 그래서 말 안 했다.
장문인도 그래서 말 안 했을 거다. 그걸 알아서 더 화가 났다.
해가 질 무렵 산문 쪽 계단에서 불빛이 올라왔다. 등롱 여러 개가 빗속에서 흔들리며 올라왔다. 등롱 하나에 금빛 산봉우리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연무장에서 부엌 문 앞으로 가서 섰다. 부엌 문은 내가 서면 다 막힌다.
*
「소은」
곽태평은 사형이 막고 선 문 앞에서 우산을 접었어요. 제자 여섯이 등롱을 들고 뒤에 섰고요. 사형이 비켜 주지 않아서 곽태평은 사형 겨드랑이 밑으로 부엌 안을 들여다봤어요. 그리고 저를 찾아냈어요.
“소은 낭자.”
장문인이 사형한테 비키라고 했어요. 사형이 한 걸음 옆으로 갔는데, 그래도 문의 반은 사형이었어요. 곽태평이 몸을 옆으로 틀어 들어왔어요. 부엌이 갑자기 좁아졌어요. 금실 도포 자락이 젖은 흙바닥에 끌렸어요.
곽태평은 밥상 앞에 서서 식은 밥그릇 넷을 내려다봤어요. 무를 썰다 만 도마, 끓어 넘친 자국이 말라붙은 부뚜막, 너무 큰 쇠솥. 그리고 웃었어요. 비웃는 웃음은 아니었어요. 그게 더 무서웠어요. 이 사람은 이게 진짜로 우스운 거예요.
“단도직입으로 하겠소. 낭자가 나와 성도로 내려가 혼례를 올리면, 금정검문은 2차에서 기권하겠소. 청송문은 싸우지 않고 결승에 오르오. 장풍표국과 금정검문이 사돈이 되면 낭자 아버님 표국 길도 사천 전체로 넓어지고.”
부엌에 있는 사람이 다 저를 봤어요. 장문인, 육손 사형, 문간의 철석 사형. 저는 나갈 길을 셌어요. 뒷문 하나, 창 하나, 아궁이 옆 장작 넣는 구멍. 셋이요. 셋 다 열려 있었어요.
장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장문인이 셈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금정검문이 기권하면 산의 반을 걸 일이 하나 줄어요. 셈으로는 제가 가는 게 맞아요. 저도 셈은 할 줄 알아요.
그런데 장문인이 저를 보지 않고 쇠솥을 보고 있었어요. 장문인은 제가 셈을 하는 동안 아무것도 셈하지 않고 있었어요.
“안 돌아가요.”
제 입에서 그 말이 나왔어요. 나가는 문을 셋이나 세어 놓고, 저는 한 발도 안 움직였어요.
“두 해 전에도 안 간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때는 무서워서 그냥 도망쳤어요. 죄송해요. 아니, 이건 안 죄송해요. 안 돌아가요.”
곽태평이 웃음을 거뒀어요. 그 사람 얼굴이 처음으로 진지해졌어요.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커졌어요.
“낭자, 철우방 마철을 이긴 걸로 무엇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오? 그건 이긴 게 아니오. 마철이 미끄러진 거요.”
“알아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곽태평이 허리의 검집을 두드렸어요. 금박 산봉우리가 등롱 불빛을 받아 반짝였어요.
“2차 셋째 판에 내가 나가겠소. 낭자도 나오시오. 내가 이기면 낭자는 그날로 나와 성도에 내려가오. 낭자가 이기면 혼담은 내가 깨 주지. 장풍표국에 내 입으로 말하겠소. 대신 이번에는 도망치지 마시오. 미끄러지는 것도 안 되오. 한 번은 칼을 맞대시오.”
저는 대답하지 못했어요. 철석 사형이 문간에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어요. 곽태평은 우산을 펴고 나가다가, 문간에서 사형한테 막혀 한참 서 있었어요. 사형은 비켜 주지 않았어요. 결국 장문인이 사형 이름을 불렀어요. 사형이 한 걸음 옆으로 갔어요. 이번에도 문의 반은 사형이었어요.
등롱 불빛이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나서, 철석 사형이 부엌으로 들어와 밥상 앞에 앉았어요. 식은 밥을 아무 말 없이 먹기 시작했어요. 자기 그릇을 다 먹고, 제 그릇에 남은 것도 먹었어요.
장문인은 사형이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서 있다가 쇠솥 바닥에 눌은 누룽지를 긁어서 사형 그릇에 얹어 줬어요. 둘 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진하율」
밤이 깊어서 나는 소은을 부엌으로 불렀다. 연무장은 물이 고여 발목까지 잠겼고, 비가 안 새는 데는 여전히 부엌 하나였다.
나는 국자를 들고 소은에게 주걱을 쥐여 줬다. 소은이 주걱을 칼처럼 쥐었다가 내 얼굴을 보고 다시 주걱처럼 쥐었다. 나는 국자 끝을 주걱 끝에 댔다.
“밀어 봐.”
소은이 밀었다. 힘이 하나도 없었다. 국자를 조금 세게 대자 소은이 반 걸음 물러났다. 발이 저절로 문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발 돌리지 마.”
“발이 혼자 돌아가요.”
“그럼 등을 문 쪽으로 해.”
소은이 몸을 돌려 부엌 문을 등지고 섰다. 나갈 문이 등 뒤에 있으면 문이 안 보인다. 소은의 숨이 빨라졌다. 나는 국자를 다시 댔다. 이번에는 소은이 물러나지 않았다. 주걱이 떨렸고 국자도 따라서 떨렸다. 쇠와 나무가 맞닿은 자리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장문인도 무서웠어요? 처음에?”
“사부님이 처음 목검을 대 주셨을 때 나는 오줌을 쌌어.”
“거짓말.”
“다섯 살이었어.”
소은이 웃었다. 웃는 동안에도 주걱은 국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궁이 불이 다 사위도록 서 있었다. 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고, 맞대고만.
새벽에 사제들 방을 들여다보니 소은이 문을 등지고 자고 있었다. 늘 문 쪽을 보고 웅크려 자던 사람이었다. 머리맡에 주걱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주걱을 부엌에 도로 가져다 놓을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아침밥은 국자로 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