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35자)

목검을 씹다

제자 셋 남은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 한도윤

「진하율」

사부의 검보는 젖어 있었다. 침상 밑 상자에 장마가 스며서, 책장이 서로 들러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손톱으로 첫 장을 떼어 보니 먹이 번져 사람 모양 그림이 전부 물속에 선 것처럼 흐렸다. 나는 책을 부뚜막 위에 펴서 말리기로 하고 연무장으로 나갔다. 가르칠 것은 내 몸에 남은 것뿐이었다.

연무장은 돌을 깐 마당이다. 돌 틈마다 이끼가 손가락 한 마디 높이로 자라서 맨발로 서면 발바닥이 차고 물컹했다. 가랑비가 내렸다. 사제 셋이 목검을 하나씩 들고 내 앞에 섰다. 철석, 소은, 육손. 나이 순서로 서라고 했더니 저절로 그렇게 됐다. 셋 다 나보다 키가 크다.

사부는 처음 들어온 제자에게 칼을 쥐여 주지 않았다. 물지게를 지고 산문 계단을 오르내리게 했다. 나는 다섯 살에 바가지 두 개로 시작했다. 그 얘기를 하자 육손이 손을 들었다.

“장문인, 보름이오. 물지게로 보름을 보내면 예선장에 물 길러 가는 거요.”

맞는 말이라 화가 났다.

“그럼 대련부터 해. 한 사람씩, 나하고.”

*

「철석」

내 목검에서 참기름 냄새가 났다.

어젯밤 부엌에서 장문인 몰래 감자전을 부쳤는데 주걱이 안 보였다. 그래서 목검으로 기름을 저었다. 박달나무는 단단하고 길어서 주걱으로 좋다. 기름이 손잡이까지 배어서 비를 맞으니 고소한 냄새가 더 올라왔다.

장문인이 나한테 먼저 칼을 겨눴다. 장문인 목검은 사부님 것이라 끝에 끈이 세 겹 감겨 있다. 나는 막는 법을 배운 대로 목검을 가로로 들었다. 장문인 칼이 위에서 떨어졌고, 내 목검이 그걸 받았고, 두 칼이 부딪쳐 내 목검이 내 얼굴 앞으로 밀려왔다.

참기름 냄새가 코앞에 왔다.

그다음은 몸이 먼저 했다. 나는 내 목검을 물었다. 입을 크게 벌려서, 감자전을 물듯이. 이빨이 나무에 박히는 느낌이 났고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우지끈 소리가 났다.

목검이 두 동강 나서 반은 내 손에 남고 반은 연무장 이끼 위로 떨어졌다. 떨어진 반쪽 끝에 내 이빨 자국이 동그랗게 나 있었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비만 왔다. 소은 사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사형, 이 괜찮으세요?”

괜찮았다. 입안에서 참기름 맛이 났다. 조금 맛있었다.

*

「진하율」

나는 떨어진 반쪽을 주워 들었다. 박달나무는 물에 넣으면 가라앉을 만큼 단단하다. 도끼로 패도 한 번에 안 쪼개진다. 이빨 자국은 깊이가 손톱 길이만 했고, 자국 둘레가 하얗게 짓눌려 있었다.

턱으로 나무를 부수려면 힘이 턱에만 있어선 안 된다. 배 아래에 모인 기운이 목을 타고 올라와야 한다. 그 기운을 강호에서는 내공이라 부르고, 사람들은 그걸 모으려고 열 해씩 가부좌를 튼다. 철석은 가부좌를 틀면 오 분 안에 잠든다.

“철석, 너 하루에 몇 끼 먹어?”

“세 끼요.”

“진짜로.”

“…일곱 끼요.”

사부가 철석에게 쌀을 너무 많이 먹인다고 투덜대면서도 한 번도 그릇을 줄이지 않은 까닭을 나는 그제야 짐작했다. 철석이 먹은 것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살로 가지 않은 몫이 배 아래에 쌓여 있었다.

“다음, 소은.”

*

「소은」

장문인이 칼을 드는 순간 저는 장문인 어깨를 봤어요. 칼이 오기 전에 어깨가 먼저 움직이거든요. 오른쪽 어깨가 내려가면 위에서 오고, 왼발이 끌리면 옆에서 와요. 무서운 것을 오래 보고 살면 무서운 것이 어디서 오는지 먼저 보여요.

첫 칼은 위에서 왔어요. 저는 옆으로 비켰어요. 죄송해요. 두 번째는 허리로 왔어요. 뒤로 물러났어요. 죄송해요. 세 번째는 다리였는데, 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어요. 제가 먼저 뛰고 나서 칼이 왔어요. 죄송해요.

장문인이 점점 빨라졌어요. 목검이 빗방울을 갈라서 칼끝에서 물이 튀었어요. 저는 이끼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가락에 힘을 줬어요. 연무장 돌 하나하나가 어디가 흔들리는지 저는 다 알아요. 두 해 동안 아침마다 거기서 도망칠 길을 셌으니까요.

서른 번째 칼이 지나가고 나서 장문인이 멈췄어요. 장문인 숨이 거칠었어요. 저는 숨이 하나도 안 찼어요. 너무 무서워서 숨 쉬는 걸 잊고 있었거든요.

“한 번도 안 맞았네.”

“죄송해요.”

“왜 한 번도 안 때렸어?”

“때리면 장문인이 아프잖아요.”

장문인이 저를 한참 봤어요. 화난 얼굴은 아니었어요. 무언가를 세는 얼굴이었어요. 장문인은 쌀을 셀 때도 그런 얼굴을 해요.

*

「육손」

내 차례에 장문인은 칼을 들지 않았소. 마보를 서라고 했소. 말 위에 앉은 것처럼 무릎을 굽혀 허리를 낮추고 버티는 자세인데, 처음 서면 칠 분 만에 허벅지가 불타오르오. 나는 대련을 하고 싶었는데, 장문인이 떡을 더 굽지 않겠다고 해서 섰소.

서서 기다리자니 심심해서 말을 했소. 사천당가에 시집간 며느리가 시어머니 찻잔에 독을 탔다가 시어머니가 이미 독에 익숙해서 오히려 혈색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했소. 그다음엔 금정검문 문주가 대머리를 감추려고 갓을 쓰고 잔다는 이야기를 했소. 그다음엔 성도 남문 기생집에… 이건 장문인이 막았소.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해가 구름 뒤에서 하얗게 비쳤소. 장문인이 향을 하나 피워 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향이 다 타고 둘째 향을 피웠소.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말을 멈추지 않았소. 허벅지는 불탔지만 숨이 안 찼소. 말을 하면 숨이 저절로 고르게 들어오고 나가니까.

“육손, 숨 들이쉴 때 말해 봐.”

“들이쉴 때 어떻게 말을 하오?”

“지금 하고 있잖아.”

나는 몰랐소. 장문인 말로는 청송문 심법이 소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본뜬 것이라 하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끊김이 없어야 한다는데, 사부님 밑에서 열일곱 해를 배운 장문인도 아직 그게 안 된다 하오. 나는 그걸 떠들면서 했소. 부풀린 게 아니오. 장문인이 그렇게 말했소. 다만 이렇게도 말했소. 입만 다물면 완벽할 거라고.

*

「진하율」

먹보, 겁쟁이, 떠버리. 사부가 생전에 셋을 그렇게 불렀다. 고치라는 말과 함께였다. 나는 셋 앞에 서서, 사부가 그 말을 할 때마다 왜 웃고 있었는지 생각했다.

그때 북쪽에서 망치 소리가 났다.

비탈은 연무장 뒤 소나무 숲을 지나 내려가야 한다. 안개가 무릎께에 깔려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젖은 솔잎이 밟히며 송진 냄새가 올라왔다. 안개 속에 사람 그림자가 다섯이었다. 둘은 줄자를 잡고 있었고 둘은 나무 말뚝을 박고 있었다. 말뚝 머리에 당가의 붉은 표시가 칠해져 있었다.

다섯째가 당무결이었다. 그는 운무초 무더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갑 낀 손가락으로 잎 하나를 뒤집어 보고 있었다. 잎 뒤의 은빛이 안개 속에서 반짝했다. 그가 잎을 다루는 손은 돈을 세는 손이 아니었다. 다친 데를 들여다보는 의원의 손 같았다.

“빚을 쥔 사람은 담보를 볼 수 있소.”

그가 일어서며 먼저 말했다.

“보는 건 괜찮아요. 박는 건 아니죠.”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철석이 내 옆을 지나갔다. 철석은 말뚝 하나를 두 손으로 잡고 무를 뽑듯이 뽑았다. 흙이 딸려 나왔다. 두 번째 말뚝으로 가는데, 당무결의 손목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딱 하는 소리가 났다. 철석의 왼쪽 소매가 옆에 선 소나무에 붙어 있었다. 손가락 길이의 바늘 하나가 소매를 뚫고 소나무 껍질에 박혀 있었다. 철석의 팔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소매만 꿰매어졌다.

몰래 던지는 작은 쇠붙이를 강호에서는 암기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처음 봤다. 손목이 움직인 것은 봤는데 바늘이 날아가는 것은 못 봤다.

“독은 안 발랐소. 오늘은.”

철석이 소매를 당겼다. 바늘이 안 빠졌다. 철석이 더 세게 당기자 소매가 찢어졌다. 철석은 찢어진 소매를 내려다보다 나를 봤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라 배가 고픈 얼굴이었다. 철석은 겁이 나면 배가 고파진다.

“말뚝은 그대로 두시오. 대신 추석 전까지 운무초에는 손대지 않겠소. 한 포기도.”

“한 잎도요.”

“한 잎도.”

당무결이 장갑을 벗지 않은 채 소나무에서 바늘을 뽑아 소매에 넣었다. 그러고는 소은을 봤다. 소은은 우리 뒤에서 안개 쪽으로 반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가 소은에게 말했다.

“바늘이 날아갈 때 피하려고 했소?”

소은이 대답하지 못하자 그가 내게 말했다.

“저 사제는 내 손목이 움직이기 전에 발을 뗐소.”

그는 측량꾼들을 데리고 안개 속으로 내려갔다. 말뚝 열두 개가 비탈을 반으로 가르고 서 있었다. 철석이 뽑은 하나만 흙 위에 누워 있었다.

*

「철석」

올라오는 길에 나는 뽑은 말뚝을 어깨에 메고 왔다. 장문인이 그걸 왜 가져오냐고 물어서 장작이라고 했다. 박달나무보다 무르니까 잘 탈 것이다.

부엌 앞 돌확 옆에 앉아서 찢어진 소매를 꿰맸다. 바늘구멍에 실이 안 들어가서 소은 사매가 대신 꿰어 줬다. 사매는 실 끝을 침으로 적시면서 계속 비탈 쪽을 봤다. 안개가 다시 올라와서 소나무 숲 아래가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사형, 저 진짜 피하려던 거 아니에요.”

“알아.”

“그냥 손목이 무서워서 발이 먼저 갔어요.”

“그게 피한 거야.”

사매가 실을 꿰다 말고 나를 봤다. 나는 소매를 들어 보였다. 바늘이 뚫고 간 구멍은 쌀알만 했다. 그 구멍 둘레가 조금도 안 찢어져 있었다. 그 바늘이 내 팔을 노렸으면 나는 지금 이 소매를 꿰매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떡 볼 때 그래. 손이 먼저 가.”

“그거랑 같아요?”

“같아. 무서운 거랑 먹고 싶은 거는 몸이 먼저 알아.”

사매가 웃었다. 웃다가 바늘에 손끝을 찔려서 또 사과를 했다. 누구한테 사과한 건지 모르겠다. 바늘한테 한 것 같았다.

부엌 창 안에서 장문인이 사부님 검보를 부뚜막 위에 한 장씩 펴 말리고 있었다. 들러붙었던 책장이 김을 쐬고 하나씩 떨어졌다. 떨어진 책장 하나에 사람 셋이 그려져 있었다. 하나는 칼을 물고, 하나는 뒤로 뛰고, 하나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장문인은 그 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나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

「육손」

그날 저녁 우리는 부엌 상 위에 돈을 다 꺼내 놓았소.

장문인 쌈짓돈 두 냥. 사부님 침상 밑에서 나온 동전 꾸러미를 은자로 쳐서 한 냥 반. 철석 사형이 아버님 편지에 끼워져 온 돈 한 냥. 소은 사매가 귀걸이를 빼서 한 냥 반. 사매는 귀걸이를 상에 내려놓으며 원래 별로 안 좋아하던 거라고 말했는데, 귀걸이 한쪽이 떨어질 때 손이 그걸 따라가는 것을 나는 봤소.

내 차례가 됐소. 나는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냈소. 원래는 둘이었소. 하나는 쓰고 없었소. 어디서 난 은자냐고 장문인이 묻지 않아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장문인이 셈을 덜 하는 사람이었으면 했소.

다 합치니 일곱 냥이었소.

장문인이 상 위의 은자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밀어 줄을 세웠소. 일곱 개가 한 줄로 섰소. 쉰 냥이 되려면 마흔세 개가 더 서야 했소. 상이 그만큼 길지 않았소.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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