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79자)
네???
제자 셋 남은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 한도윤
「육손」
장례 다음 날 아침에 편지가 셋 왔소. 산 아래 약초꾼 아저씨가 장마철엔 우편 일을 겸하는데, 편지 셋을 기름종이에 싸서 품에 넣고 왔는데도 하나는 젖어 있었소. 그건 소은 사매 것이었소. 사매는 젖은 편지를 받자마자 뜯지도 않고 소매에 넣었소.
철석 사형 편지는 성도에서 국수집을 하는 아버님이 보낸 것이었는데, 사형은 글을 천천히 읽어서 내가 대신 읽어 줬소. 면 뽑을 놈이 없다, 장례 끝나면 내려와라, 네 엄마가 만두를 빚어 놓고 기다린다. 만두라는 대목에서 사형의 목울대가 한 번 움직였소.
내 편지는 낙산에서 비단 가게를 하는 큰형이 보낸 것이었소. 나는 그걸 마당 한가운데서 소리 내어 읽었소. 셋째야, 돌아오면 가게 하나를 떼어 주마. 그 대목에서 일부러 목소리를 떨었더니 장문인이 부엌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말했소.
“형님이 셋째라고 부르셔?”
“우리 집에선 그렇게 부르오.”
“너 서자라며. 넷째잖아.”
이래서 장문인 앞에서는 이야기를 못 하오. 숫자를 다 기억하오.
*
「진하율」
당무결은 점심 전에 왔다. 이번에는 하인이 하나였고 상자는 없었다. 대신 종이 한 장이 있었다.
비가 사당 지붕에 새서 나는 그를 부엌으로 들였다. 청송문에서 비가 안 새는 방은 부엌 하나다. 부엌 한가운데 밥상을 펴고 마주 앉자 쇠솥에서 김이 올라와 둘 사이에 엷은 막을 쳤다. 사제 셋은 부엌 문밖에 서 있었다. 문틀 왼쪽에 철석의 어깨, 오른쪽에 육손의 귀, 문짝 틈에 소은의 눈 하나가 보였다.
“산을 사겠소. 천 냥.”
그가 종이를 상 위에 펴 놓았다. 매입 문서였다. 빚 삼백 냥은 없던 것으로 하고, 나머지 칠백 냥을 문파에 준다. 제자들이 산을 내려갈 노잣돈도 따로 얹는다. 사당과 위패는 당가가 아래 마을로 옮겨 모신다. 글씨가 반듯했고 틀린 데가 없었다.
나는 셈을 했다. 칠백 냥을 넷으로 나누면 백칠십오 냥이다. 철석은 아버지 국수집 빚을 갚고도 남는다. 육손은 형한테 가게를 떼어 받지 않아도 제 가게를 차린다. 소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어디서든 살 수 있다. 나는 쌀 반 가마를 세지 않아도 된다.
문밖에서 누가 꿀꺽 침을 삼켰다. 철석이었다.
“산 전체가 왜 필요해요?”
“전체는 필요 없소. 북쪽 비탈이면 되오. 그 비탈만 팔 수는 없으니 전체를 사는 거요.”
“비탈에 뭐가 있는데요?”
“약초밭을 만들 거요. 약초밭에 약초를 심는 데 까닭이 필요하오?”
그가 말을 끊는 방식이 그랬다. 문을 닫듯이 짧게. 나는 어젯밤 사부의 상자에서 본 마른 풀 다발을 떠올렸다. 줄기는 가늘고 잎 뒤가 은빛인 풀이다. 북쪽 비탈은 일 년 내내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그 풀은 거기서만 자란다. 사부는 그걸 운무초라고 불렀고, 겨울마다 한 다발씩 꺾어 산을 내려갔다가 빈손으로 올라왔다.
*
「철석」
나는 문틀을 잡고 서서 상 위의 종이를 봤다. 글자는 멀어서 안 보였는데 천이라는 글자 하나는 보였다. 천 냥이면 만두가 몇 개일까 셈을 해 보다가 그만뒀다. 셈이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 국수집은 성도 남문 시장 골목 끝에 있다. 가마솥 둘에 탁자 넷. 비가 오면 탁자 둘을 안으로 들인다. 가게를 차릴 때 진 빚이 아직 남았다는 걸 나는 안다. 아버지는 편지에 그 얘기를 한 번도 안 썼다. 만두 얘기만 썼다.
장문인이 종이를 한참 내려다봤다. 그러다 종이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밀었다. 찢지도 접지도 않고, 상 끝까지 밀어서 당무결 쪽으로 돌려놨다. 그리고 말했다.
“대회 나갑니다.”
우리 셋이 동시에 말했다.
“네???”
나는 놀라서 손에 쥐고 있던 국자를 솥에 빠뜨렸다. 국자가 쇠솥 바닥에 부딪혀 둔한 소리를 냈고, 솥이 커서 그 소리가 한참 울렸다. 소은 사매가 문짝 뒤에서 딸꾹질을 시작했다. 육손이 혼자 한 번 더 말했다.
“무슨 대회요? 설마 그 대회요?”
당무결은 놀라지 않았다. 처음으로 웃는 것 같았는데 입이 아니라 눈만 웃었다.
*
「육손」
그 대회요. 이 대목은 내가 안 할 수가 없소.
사천에는 오랜 약조가 하나 있소. 천 년 전에 아미산 꼭대기에서 용 두 마리가 땅을 놓고 싸우다가… 아니오, 백 년 전이오. 용도 아니고 사람이오. 사천의 문파들이 서로 산을 사고 빼앗다가 피를 봤소. 사천 들판을 가로지르는 큰 강 민강 물이 붉어질 만큼이었다고 하오. 그래서 살아남은 문파들이 모여 이렇게 정했소. 해마다 추석에 사천 무림 대회를 열고, 그 본선에 오른 문파의 산은 그해부터 아무도 사들이지 못한다. 돈으로도, 빚으로도.
강호 문파들이 서로 다툼을 말리려고 모여 만든 무림맹이 지금은 그 대회를 맡소. 심판장 엄대호는 사천에서 웃는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는 영감이오. 이건 부풀린 거요. 본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은 그날 밤 이를 다 뽑혔다는 소문이 있소. 그건 진짜로 소문이오.
“빚으로도요?”
장문인이 당무결을 보며 물었소. 당무결이 고개를 끄덕였소.
“빚 대신 산을 넘겨받는 것도 사들이는 것으로 치오. 그래서 내가 추석 전에 오늘 온 거요.”
“본선에 오르면 산은 못 가져가시네요.”
“빚은 그대로요. 삼백 냥은 갚아야 하오. 산을 못 받을 뿐이지.”
“그럼 빚은 따로 갚을게요.”
“무엇으로?”
장문인이 나를 봤소. 왜 나를 보오? 나는 문틀에서 한 발 물러났소. 철석 사형은 국자를 건지려고 솥 안에 팔을 넣고 있었소. 소은 사매는 아직 딸꾹질을 했소.
당무결이 매입 문서를 접지 않고 상 위에 그대로 두고 일어났소.
“예선 등록은 보름 뒤 성도 무림맹 분타에서 받소. 문파 대 문파로 세 판을 겨뤄 두 판을 먼저 이기는 쪽이 올라가고, 명단에는 넷까지 올릴 수 있소. 맹에 보증금 쉰 냥을 맡겨야 이름을 올려 주오.”
쉰 냥. 장문인 입술이 쉰 하고 소리 없이 움직였소. 나는 장문인 머릿속에서 쌀 스물다섯 가마가 쌓이는 소리를 들었소.
“문서는 두고 가겠소. 추석 전까지 언제든 이름을 쓰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빚을 쥔 사람의 셈을 하겠소. 내일 담보를 살피러 비탈에 사람을 보내리다.”
그는 우산을 펴고 나가다가 부엌 문에서 나와 마주쳤소.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잠깐 머물렀소. 나는 그 눈이 무엇을 아는지 알았소. 그래서 먼저 시선을 피했소. 떠버리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건 내 평생 그날이 처음이었소.
*
「진하율」
당무결이 가고 나서 나는 사제들을 상 앞에 앉혔다. 매입 문서는 아직 상 끝에 있었다. 아무도 그걸 치우지 않았다.
“가고 싶은 사람은 가. 노잣돈은 내가 어떻게든 만들어 볼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철석은 건져 낸 국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고, 육손은 웬일로 입을 다물었고, 소은은 딸꾹질을 참느라 숨을 멈춰서 얼굴이 빨갰다. 처마에서 떨어진 물이 부엌 앞 돌확에 고였다가 넘쳤다. 세 번쯤 넘쳤을 때 철석이 말했다.
“그럼 점심은요?”
나는 쌀독에서 두 되를 퍼서 솥에 앉혔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
「철석」
밥이 되는 동안 육손이 간장 종지에 젓가락을 찍어 밥상 위에 사천을 그렸다.
맨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크게 그리고 성도라고 했다. 사천에서 제일 큰 고을이고, 우리 아버지 국수집이 거기 있다. 아래쪽에 세모를 그리고 아미산이라고 했다. 세모 옆에 작은 세모를 하나 더 그리고 당가라고 했는데, 간장이 모자라서 당가 세모가 반쯤 흐렸다. 육손은 흐린 세모를 보고 이게 맞다고, 당가 산은 늘 안개가 낀다고 우겼다.
“예선에 나오는 문파가 스물셋이오. 작년엔 스물하나였는데 올해는 당가가 나간다니 다들 구경이라도 하려고 이름을 올렸다 하오.”
“그중에 우리보다 약한 데는?”
장문인이 물었다. 육손이 젓가락을 든 채 한참 생각했다.
“없소.”
밥이 끓어 넘치려고 해서 나는 솥뚜껑을 살짝 밀었다. 김이 확 올라왔다. 쌀 두 되 끓는 냄새는 쌀 두 되만큼만 난다. 쇠솥이 커서 그 냄새가 솥 안에서 맴돌다 겨우 나왔다.
“우리 경지가 어디쯤이에요?”
소은 사매가 딸꾹질 사이로 물었다. 육손이 신이 나서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렸다.
“강호에서는 세 칸으로 나누오. 칼 쥐는 법을 알고 동네 건달 셋쯤 이기면 삼류, 한 고을에서 이름이 나면 이류, 사천 전체에서 이름이 나면 일류. 그 위는 셀 필요가 없소. 우리 산에는 안 오니까. 나는 이류요.”
“너 삼류야.”
장문인이 말했다.
“동네 건달 셋을 이긴 적이 있소.”
“둘은 도망갔잖아.”
“도망가게 한 것도 이긴 거요.”
나는 밥을 펐다. 장문인 그릇, 소은 그릇, 육손 그릇, 내 그릇. 내 그릇은 다른 그릇보다 크다. 사부님이 사 주신 그릇이다. 밥을 다 푸고 나니 솥 바닥이 금방 드러났다. 솥이 너무 커서 밥을 아무리 퍼도 솥이 줄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쌀이 처음부터 별로 없었다.
“보름 안에 이류를 하나는 만들 거야.”
장문인이 밥을 한 숟가락 먹고 말했다. 소은 사매가 숟가락을 든 채 물었다.
“누구를요?”
우리 셋이 서로를 봤다. 아무도 대답을 안 했다. 나는 그 틈에 밥을 한 숟가락 더 먹었다.
*
「소은」
밤에 저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어요. 소매에 넣어 둔 편지를 태우려고요.
엄마 편지는 뜯어 보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아요. 혼담 얘기예요. 그 혼담이 싫어서 산에 올라온 지 두 해가 됐어요. 그런데 편지를 아궁이에 넣으려니까 손이 안 움직였어요. 엄마 글씨가 겉봉에 있었거든요. 엄마는 제 이름 마지막 획을 늘 길게 빼요.
결국 못 태우고 일어났어요. 부엌 뒷문으로 나가 사당 옆을 지나는데, 사당 안에 불빛이 있었어요. 장문인이 위패 앞에 앉아 있었어요. 저는 나갈 길부터 봤어요. 오던 길, 마당으로 빠지는 길, 담 너머. 셋이요.
“대회는 나가지 말라고 하셨죠.”
장문인이 위패한테 말하고 있었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는데, 빗소리가 잠깐 멎은 사이라 다 들렸어요.
“죄송해요, 사부님. 나갈게요. 산을 넘기는 것보다 사부님 말씀을 어기는 게 나아요.”
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나갈 길을 셋이나 세어 놓고 한 걸음도 못 뗐어요. 사부님이 장문인한테 하신 마지막 말씀은 장문인을 맡으라는 것 하나라고 들었어요. 장문인이 우리한테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빗소리가 다시 커졌을 때 저는 겨우 발을 뗐어요. 방에 돌아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는데, 손에는 아직 못 태운 편지가 있었어요. 엄마 글씨 위로 제 손바닥 땀이 번져 있었어요.
사부님은 왜 나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