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99자)
쌀 반 가마
제자 셋 남은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 · 한도윤
「진하율」
쌀독 바닥에 손끝이 닿았다. 바가지로 세 번을 퍼내자 독 안쪽 벽에 눌어붙은 쌀겨가 드러났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어 모은 것까지 자루에 부으니 반 가마가 조금 못 됐다. 나는 그걸 반 가마라고 치기로 했다. 장례 날 아침에 쌀을 모자라게 세는 장문인은 없다.
아직 장문인은 아니었다. 사부는 그저께 새벽에 숨을 거뒀고, 장례가 끝나야 위패 앞에서 자리를 받는다. 문파의 주인을 장문인이라 부르는데, 청송문에서 그 자리는 백 년 동안 한 번도 비지 않았다.
비는 사흘째였다. 중원 서남쪽 사천 땅에 솟은 큰 산 아미산, 그 북쪽 봉우리는 장마가 들면 구름 속에 들어가 앉는다. 처마 끝에서 떨어진 물이 연무장 돌 틈의 이끼를 부풀렸고, 부엌 아궁이는 젖은 장작 탓에 연기만 토했다. 나는 부뚜막에 걸린 쇠솥 뚜껑을 열었다. 옛날 제자 이백 명의 밥을 짓던 솥이라 바닥에 쌀 두 되를 앉혀 놓으니 솥 안이 휑했다. 쌀이 솥에 비해 너무 적어서, 물을 부으면 쌀알이 바닥에서 저 혼자 헤엄을 쳤다.
사부는 마지막 날 내 손목을 잡고 두 마디를 했다. 장문인은 네가 해라. 그리고 조금 쉬었다가, 대회에는 나가지 마라.
사제들에게는 앞의 말만 전했다.
“장문인, 떡 다 쪘어요.”
부엌 문에서 철석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덩치가 문틀을 꽉 채워서 그가 서면 부엌이 어두워졌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데 나를 장문인이라고 불렀다. 어제까지는 사저였다.
“아직 장문인 아니야. 떡은 몇 개야?”
“서른.”
“어제 셀 때 서른셋이었는데.”
철석은 대답 대신 문틀 뒤로 천천히 사라졌다.
*
「철석」
세 개는 맛만 본 것이다.
떡은 장례에 쓰는 흰 절편이었다. 쌀이 귀하니 하율 사저가, 아니 장문인이 쌀 대신 감자 가루를 반쯤 섞었는데 그래서 찰기가 덜했다. 맛을 봐야 그걸 안다. 첫 개는 찰기를 보느라 먹었고 둘째 개는 첫 개가 맞았는지 보느라 먹었다. 셋째 개는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체했다. 명치에 떡 한 덩어리가 걸려 내려가지 않았고, 숨을 쉴 때마다 거기서 감자 냄새가 올라왔다. 소은 사매가 내 엄지를 실로 칭칭 감고 바늘로 따 줬다. 소은은 바늘을 쥐고 다섯 번이나 사과를 했다. 찌르기 전에 세 번, 찌르고 나서 두 번.
조문객은 일곱이었다. 산 아래 마을의 약초꾼 넷, 나무꾼 하나, 사부님한테 침을 맞던 할머니 둘. 그 사람들이 젖은 짚신을 벗으면 사당 마루에 발자국이 일곱 줄 생겼다가 금방 말랐다. 떡은 한 사람에 세 개씩 돌아갔고 아홉 개가 남았다. 나는 남은 떡을 보지 않으려고 계단 쪽을 봤다.
그때 우산이 올라왔다.
산문에서 사당까지는 돌계단이 이백 칸이다. 우리는 장마 때 그 계단을 기어서 오른다. 이끼가 미끄러워서 발을 붙일 데가 없다. 그런데 기름 먹인 검은 우산이 계단을 거의 미끄러지듯 올라왔다. 우산 아래 흰 옷자락이 젖지 않았다. 뒤에 하인 둘이 나무 상자를 하나씩 들고 따라왔고, 그 둘은 홀딱 젖었다.
나는 남은 떡 아홉 개를 쟁반째 들어 등 뒤로 감췄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먹을 것을 가진 사람 앞에 저런 사람이 오면 손이 먼저 그렇게 움직인다.
*
「소은」
사당에는 문이 두 개, 창이 세 개 있어요. 창 하나는 작년 겨울에 문살이 내려앉아 판자로 막았으니까 실제로 나갈 수 있는 구멍은 넷이에요. 저는 장례 내내 동쪽 문 옆에 서 있었어요. 거기 서면 마당으로도 부엌으로도 다섯 걸음이면 닿거든요.
우산을 접는 사람을 보자마자 저는 한 걸음 더 문 쪽으로 갔어요.
그분 손에 장갑이 끼워져 있었어요. 여름에, 상갓집에서, 얇은 사슴 가죽 장갑을요. 우리 아버지는 남의 짐과 사람을 지켜 먼 길을 실어 나르는 표국을 하세요. 집에 있을 때 그 표국을 드나들던 표사 아저씨들이 그런 장갑 낀 사람을 보면 길을 비키라고 했어요. 맨손으로 만지면 안 되는 것을 늘 만지는 사람들이라서요. 저는 혹시 몰라서 숨을 얕게 쉬었어요. 죄송해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 냄새도 안 났는데요.
그분은 위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정확하게 두 번 절했어요. 마을 할머니들보다 훨씬 반듯했어요. 향을 꽂을 때 재가 한 톨도 안 떨어졌어요. 그리고 일어나서, 사당 안을 한 바퀴 둘러봤어요. 천장의 빗물 자국, 막아 둔 창, 기둥에 난 칼자국, 그리고 저를요.
저하고 눈이 마주쳤을 때 그분이 아주 조금 고개를 숙였어요. 저도 모르게 따라서 숙였어요. 숙이고 나서야 제가 나갈 문을 하나도 안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
「육손」
자, 이 대목은 내가 말해야 하오. 나머지 셋은 말을 재미없게 하니까.
원래 나는 곡을 맡았소. 상주 대신 소리 내어 우는 일인데, 이것도 재주라 아무나 못 하오. 나는 사부님이 열여섯에 산적 서른을 맨손으로 쓰러뜨린 이야기부터 울기 시작했소. 거짓말이오. 열여덟이었고 산적은 넷이었소. 아무튼 울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져서 사부님이 혈혈단신으로 황하를 건너는 대목에서 장문인한테 쫓겨났소. 장문인 말로는 내가 우는 동안 할머니 한 분이 졸았다고 하오.
그러니 나는 사당 처마 밑에서 그 남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소.
사천당가라고 들어 보셨소? 옆 산에 사는 집안인데, 독과 몰래 던지는 작은 쇠붙이로 사천에서 제일 무서운 이름을 얻었소. 사천 사람들은 당가 사람이 웃으며 차를 따라 주면 찻잔을 받고 마시는 척만 한다오. 저 남자는 당가의 소가주, 가주의 맏아들 당무결이오. 스물다섯에 독을 쓰는 고수를 셋이나 꺾었다는데, 이건 부풀린 게 아니오. 넷이라는 말도 있소.
내가 궁금한 건 하나였소. 당가가 어떻게 오늘이 장례인 줄 알았소? 사부님 돌아가신 걸 산 아래에 알린 건 어제 저녁이었소. 당가 산까지는 걸어서 한나절이오.
나는 그 까닭을 조금 아오. 조금이오. 은자 두 냥만큼.
그건 나중에 말하리다. 지금은 장문인이 처마 밑으로 나오고 있었소.
*
「진하율」
당무결은 처마 끝에 서서 하인이 내민 상자를 받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지 않았는데도 무게가 마루를 눌렀다.
“조의금이오. 백 냥.”
나는 상자를 보고 셈부터 했다. 은자 백 냥이면 쌀이 쉰 가마다. 쉰 가마면 넷이 다섯 해를 먹는다. 철석이 있으니 세 해.
“받을 수 없어요.”
“상갓집에서 조의금을 물리는 법은 없소.”
“빚진 집에서 조의금을 받는 법도 없죠.”
당무결이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눈이 가늘고 속눈썹이 길었다. 비 냄새 사이로 그의 소매에서 쌉쌀한 약초 냄새가 났는데, 우리 비탈 안개 속에서 자라는 풀 냄새와 비슷했다.
“빚을 아시오?”
“사부님이 당가에 뭘 빌렸는지는 몰라요. 빌렸다는 건 알아요. 사부님이 봄마다 당가 쪽 산을 보며 한숨을 쉬셨거든요.”
“그럼 장례가 끝나고 셈합시다.”
“장례가 끝나고 오세요. 상자는 들고 가시고요.”
그가 상자를 그대로 둔 채 우산을 폈다. 하인 둘이 젖은 어깨를 움찔했다. 당무결은 계단을 내려가다 한 번 돌아봤다.
“장문인이 되시는 것도 축하드리오. 사천에서 제일 어린 장문인이겠소.”
“제일 가난한 장문인이기도 하죠.”
그가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우산이 얼굴을 가렸다.
나는 철석을 불렀다. 철석은 등 뒤에 쟁반을 숨긴 채 걸어왔다. 쟁반을 숨긴 사람이 그렇게 옆걸음으로 걷는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이 상자, 저 사람 따라가서 산문 밖에 놓고 와.”
“떡 아홉 개는요?”
“그건 왜 묻는데?”
철석은 상자를 한 팔에 끼고 계단을 내려갔다. 백 냥이 든 상자를 들고 이끼 낀 계단 이백 칸을 미끄러지지 않고 내려가는 사람은 청송문에 철석 하나다. 사부가 그 사실을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사부는 철석이 쌀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만 했다.
철석이 돌아왔을 때 손에는 상자가 없었고, 입가에 흰 떡가루가 묻어 있었다. 쟁반 위 떡은 여섯 개였다.
*
「철석」
산문은 기둥 둘에 지붕 하나다. 지붕 기와가 반쯤 빠져서 비가 기둥 사이로 그대로 들이친다. 당무결은 그 아래에서 우산을 쓴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따라올 줄 알았던 것 같았다.
나는 상자를 그의 발 앞 젖은 돌 위에 내려놨다. 상자 모서리에서 물이 스며들었다. 은자는 젖어도 썩지 않으니까 괜찮다.
“장문인이 돌려보낸 거요?”
“네. 저는 받고 싶었는데요.”
뒤에 선 하인 하나가 웃음을 참느라 코로 숨을 뿜었다. 당무결은 웃지 않고 내 입가를 봤다. 떡가루가 묻어 있었을 것이다. 쟁반은 계단 위에 두고 왔지만, 내려오기 전에 손이 세 번 쟁반에 갔다.
“청송문에 제자가 몇이오?”
“넷이요. 장문인까지.”
“산이 넓소.”
“솥도 넓어요.”
그가 그제야 나를 다시 봤다. 위에서 아래로, 내 어깨와 팔뚝과, 이끼 계단을 젖지 않은 버선으로 내려온 내 발을 차례로. 짐을 들어 보고 값을 매기는 쌀가게 주인 같은 눈이었다.
“그 상자를 들고 이 계단을 내려왔소?”
“네.”
“한 번도 안 미끄러지고?”
“떡을 들고 있으면 안 미끄러져요.”
당무결이 하인에게 상자를 들게 했다. 하인 둘이 마주 들고도 비틀거렸다. 그는 우산을 고쳐 쥐고 산길로 내려가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먹여 살릴 입이 넷이라.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계단 백 칸쯤 올라와서야 알아들었고, 기분이 나빠서 계단 위에 둔 쟁반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떡은 더 먹지 않았다. 여섯 개는 장문인 몫이다.
*
「진하율」
밤이 되자 비가 조금 가늘어졌다.
조문객이 다 내려가고, 육손이 사당 마루를 걸레질하며 오늘 곡이 왜 명곡이었는지 혼자 떠들었고, 소은은 사당 문 두 개를 다 닫고 빗장까지 질렀다. 철석은 체한 데가 내려갔는지 부엌에서 남은 떡을 굽고 있었다. 감자 가루 탄 냄새가 마당까지 왔다.
나는 위패 앞에 꿇어앉아 사부가 남긴 목검을 받았다. 받는다고 해도 내가 내 손으로 들어 올린 것뿐이다. 자리를 넘겨줄 사람이 이미 위패 안에 있으니까. 목검은 손잡이 쪽이 검게 반들거렸다. 사부가 마흔 해를 쥐고 있던 자리였고, 칼날 쪽 끝은 세 번 부러져 세 번 덧대어 묶은 자국이 있었다. 묶은 끈이 하나는 삼베, 하나는 가죽, 하나는 머리끈이었다. 머리끈은 내가 열 살 때 쓰던 것이었다.
나는 그 머리끈을 오래 만졌다. 울지는 않았다. 쌀이 반 가마인데 울 시간이 어디 있는가?
그러고 나서 사부의 방에 들어갔다. 사부의 상자는 침상 밑에 있었다. 녹슨 자물쇠는 열쇠가 필요 없을 만큼 헐거웠다. 안에는 칼 쓰는 법을 그림으로 엮은 낡은 검보 한 권, 마른 풀 다발, 그리고 당가의 붉은 인장이 찍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빌린 돈 은자 삼백 냥. 갚는 날은 올해 추석. 갚지 못하면 청송 봉우리 전체를 당가에 넘긴다.
맨 아래 사부의 이름이 있었다. 사부는 글씨를 크게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름만은 쌀알처럼 작았다.
나는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고 부엌으로 갔다. 철석이 구운 떡을 반으로 갈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걸 받아 먹으면서 셈을 했다. 삼백 냥은 쌀 백오십 가마다. 추석까지는 두 달이 조금 넘게 남았다.
“장문인, 떡 맛있어요?”
“응.”
“감자가 반이에요.”
“알아.”
쇠솥은 여전히 너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