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575자)

이레

손주 위해 다시 칼을 든 검왕 · 노범우

첫날 소석이 누른 두부는 두부가 아니었다⁠. 누름판을 들자 하얀 덩어리가 무너져 베 사이로 흘러내렸다⁠. 소석이 울상이 되었다⁠.

“⁠할아버지⁠, 두부가 녹았어요⁠.⁠”

“⁠녹은 게 아니다⁠. 덜 누른 거다⁠. 순두부라고 부르면 된다⁠.⁠”

“⁠순두부는 일부러 만드는 거잖아요⁠.⁠”

“⁠일부러 만들었다고 하면 된다⁠.⁠”

철운은 숟가락을 들어 무너진 두부를 떠먹었다⁠. 간이 조금 셌다⁠. 간수를 너무 일찍 부은 탓이었다⁠. 철운은 말하지 않고 한 사발을 다 먹었다⁠. 맷돌 옆에서 젊은이 셋이 침을 삼켰다⁠. 사흘 맷돌을 돌리기로 한 셋은 사흘이 지나도 가지 않았다⁠. 키다리는 콩을 불리고⁠, 뚱보는 장작을 패고⁠, 서생은 소석의 습자 선생 노릇을 했다⁠. 서당이 닫혔으니 누가 아이에게 글을 가르쳐야 했다⁠.

이튿날 두부는 돌처럼 단단했다⁠. 소석이 너무 오래 눌렀다⁠. 철운은 칼로 썰어 기름에 지졌다⁠.

“⁠단단한 두부는 지져 먹으면 된다⁠.⁠”

“⁠할아버지는 다 먹는 방법이 있어요⁠?⁠”

“⁠늙으면 버리는 게 아까워서 먹는 방법부터 생긴다⁠.⁠”

사흘째 소석은 누름판 위에 두 손바닥을 얹고 눈을 감았다⁠. 베 사이로 물이 빠지는 것을 손바닥으로 들었다⁠. 물이 멈추었을 때 손바닥이 가만히 있고 싶어졌는지 소석이 손을 뗐다⁠. 철운이 누름판을 들었다⁠. 두부가 무너지지도 굳지도 않고 판 위에 앉아 있었다⁠. 모서리가 반듯했다⁠.

소석이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철운은 손주 머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칭찬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손바닥을 오래 얹고 있었다⁠.

나흘째부터 소석은 할아버지보다 먼저 일어났다⁠. 콩 불린 독 뚜껑을 열어 보고⁠, 콩알 하나를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 콩이 손톱 밑에서 두 쪽으로 갈라지면 다 불은 것이었다⁠. 소석은 갈라진 콩을 손바닥에 올려 할아버지에게 보였다⁠. 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키다리가 옆에서 콩을 눌러 보다가 콩이 튀어 서생 이마에 맞았다⁠. 서생이 부채로 이마를 가리고 말했다⁠.

“⁠사형⁠, 콩은 칼처럼 다루면 안 됩니다⁠.⁠”

“⁠누가 사형이야⁠? 너보다 내가 하루 늦게 맷돌을 돌렸잖아⁠.⁠”

“⁠그러니까 사형이지요⁠. 늦게 온 사람이 위로 가는 것이 이 집 법도 같습니다⁠.⁠”

소석이 깔깔 웃었다⁠. 철운은 맷돌 앞에서 등을 돌린 채 어깨를 떨었다⁠.

*

밤마다 채향은 시아버지 옷을 챙겼다⁠. 솜을 넣은 무릎 덮개 둘⁠, 털버선 세 켤레⁠, 허리에 감는 무명 띠⁠. 바느질을 하면서 잔소리를 했다⁠.

“⁠북쪽은 사월에도 서리가 온대요⁠. 무릎 덮개는 밤에 꼭 하세요⁠. 수레 바닥에 그냥 앉지 마시고요⁠. 허리띠는 이렇게 두 번 감으세요⁠. 아버님은 맨날 한 번만 감고 마시잖아요⁠.⁠”

“⁠얘야⁠, 가서 내가 묻힐지 살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살아 계신 동안은 무릎이라도 따뜻하셔야죠⁠.⁠”

채향이 바늘에 손가락을 찔렸다⁠. 피 한 방울이 무명 띠에 떨어졌다⁠. 채향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한동안 바느질을 멈췄다⁠. 철운은 며느리의 손바닥을 보았다⁠. 실 자국이 손금처럼 겹쳐 있었다⁠.

“⁠얘야⁠.⁠”

“⁠네⁠.⁠”

“⁠소석이가 쓴 시⁠, 네 손 이야기라더라⁠.⁠”

채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늘을 다시 들었다⁠. 무명 띠를 반쯤 꿰매다가 말했다⁠.

“⁠가시기 전에 승로 아범한테 다 말씀하세요⁠. 아버님이 누구였는지⁠. 저한테 하신 것보다 더 많이요⁠.⁠”

“⁠네가 들은 게 다다⁠.⁠”

“⁠아버님⁠, 서른 해 동안 거짓말 안 하셨죠⁠? 지금 처음 하시는 거예요⁠. 티가 다 보여요⁠.⁠”

철운은 등잔 심지를 돋우는 척했다⁠. 채향이 혀를 찼다⁠.

“⁠직방에서 사람이 왔었어요⁠. 봉쇄 풀리고도 사흘 안에 안 나오면 제 베틀에 다른 사람 앉힌대요⁠. 봉황 꼬리 깃을 짤 손이 모자란대요⁠.⁠”

“⁠가면 되지⁠.⁠”

“⁠아버님이 수레 타시고 나면요⁠? 소석이는 누가 서당에 데려다줘요⁠? 아범은 염방에서 새벽에 나가고⁠, 저는 직방에서 밤에 들어오고⁠.⁠”

채향이 바느질감을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님이 소석이 데려다주시는 거⁠, 저 당연한 줄 알았어요⁠. 엿 주지 말라고 잔소리만 했지⁠.⁠”

“⁠엿은 계속 주지 말라고 해라⁠. 그건 네가 맞다⁠.⁠”

채향이 웃다가 코를 훌쩍였다⁠. 무명 띠를 집어 들어 남은 반을 마저 꿰맸다⁠. 바늘이 빨라졌다⁠.

*

나흘째 되는 날⁠, 성안에서 사공 하나가 몰래 노를 저어 나루로 들어왔다⁠. 봉쇄된 마을이었지만 사공들은 물길을 포졸보다 잘 알았다⁠. 사공은 두부 두 모를 사며 성안 소식을 풀어 놓았다⁠.

“⁠어제 금의위가 성안 시사 어른들을 잡아갔소⁠. 시를 짓고 모여서 술 마시는 늙은 선비들 말이오⁠. 『⁠기저음⁠』을 한 번이라도 베낀 집은 다 뒤졌다오⁠. 거인 어른 하나는 끌려가다 길에서 쓰러졌소⁠. 그 어른이 현령 나리 스승이었다지⁠.⁠”

“⁠직방은 어떻소⁠?⁠”

“⁠징발 몫이 또 늘었소⁠. 궁에서 이번엔 학 대신 봉황을 짜라 했다나⁠. 봉황 꼬리 깃이 학 다리보다 열 배는 손이 간다오⁠.⁠”

곽 노파가 옆에서 듣다가 혀를 찼다⁠.

“⁠신선은 비단 이불 덮고 주무시나⁠? 무슨 비단을 그렇게 많이 잡수셔⁠?⁠”

“⁠노파⁠, 그런 말은 속으로 하시오⁠.⁠”

“⁠속으로 하면 속이 터져⁠.⁠”

할멈들이 웃었다⁠. 웃음 끝에 아무도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성안의 늙은 선비들도 버들나루의 할멈들처럼 모여서 말을 하다가 잡혀갔다⁠.

*

같은 날 저녁⁠, 이장이 마을 어른 넷을 데리고 두부집 마당에 왔다⁠. 이장은 마루 끝에 앉아 한참 헛기침만 했다⁠.

“⁠독고 영감⁠, 마을 사람들 뜻을 전하러 왔소⁠.⁠”

“⁠말씀하시오⁠.⁠”

“⁠봉쇄가 닷새째요⁠. 남자들은 염방에⁠, 여자들은 직방에 못 나가니 품삯이 끊겼소⁠. 성안 장에 채소를 못 내가니 밭에서 다 시드오⁠. 영감이 수레에 타면 이 모든 게 풀린다니⁠…⁠…⁠.⁠”

이장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마당 담 너머에서 곽 노파가 소리를 질렀다⁠.

“⁠이장⁠, 그 말 하러 왔으면 끝까지 해⁠! 영감더러 수레에 타 달라고⁠!⁠”

“⁠노파⁠, 나는 마을 사람들 뜻을⁠…⁠…⁠.⁠”

“⁠마을 사람 뜻은 무슨⁠! 우리 손주를 배에서 꺼내 준 사람이야⁠. 그 손으로 우리 애들 다 건졌어⁠. 이제 와서 수레에 타라고⁠?⁠”

담 너머 할멈들이 웅성거렸다⁠. 탄다는 사람과 안 된다는 사람으로 말이 갈렸다⁠. 우물가에서 이렇게 말이 갈린 것은 서른 해 만에 처음이었다⁠. 이장 뒤의 어른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영감⁠, 나도 손주가 그 배에 있었소⁠. 그래서 차마 말을 못 하겠소⁠. 그런데 내 아들은 염방에서 쫓겨나게 생겼소⁠.⁠”

철운은 마당에 서서 어른들을 둘러보았다⁠. 저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있었다⁠. 괭이 자국⁠, 노 자국⁠, 쪽물 자국⁠.

“⁠이레가 지나면 내가 정하겠소⁠. 정하는 대로 하겠소⁠. 그 전에는 두부나 드시오⁠.⁠”

철운이 두부 다섯 모를 어른들 손에 하나씩 쥐여 주었다⁠. 이장은 두부를 받아 들고 오래 내려다보았다⁠. 두부 위에 아이 손바닥 자국이 둘 찍혀 있었다⁠.

*

닷새째 날⁠, 승로는 소석을 데리고 염방에 갔다⁠. 서당은 닫혔고 아버지는 집에서 할 일이 있었다⁠. 소석은 쪽물 독 사이를 뛰어다니며 파랗게 물든 실타래를 구경했다⁠.

“⁠아빠 손은 왜 안 씻겨요⁠?⁠”

“⁠씻겨⁠. 안 지워질 뿐이지⁠.⁠”

해가 기울 무렵 염방 문간에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평복을 입었지만 걸음이 무거웠다⁠. 승로는 얼굴을 알아보았다⁠. 나루에서 아버지와 칼을 맞대던 천호였다⁠. 승로가 소석을 등 뒤로 끌어당겼다⁠.

“⁠해치러 온 게 아니다⁠.⁠”

현곡이 쪽물 독 앞에서 멈췄다⁠. 소석의 목에 걸린 은자물쇠를 보았다⁠.

“⁠그것을 잠깐 보아도 되겠나⁠?⁠”

승로가 망설였다⁠. 소석이 아빠 허락도 받기 전에 목에서 은자물쇠를 벗겨 내밀었다⁠. 현곡이 받아 들었다⁠. 앞면의 구름 무늬를 엄지로 쓸었다⁠. 그러다 자물쇠 옆의 작은 홈을 손톱으로 밀었다⁠. 자물쇠 앞판이 옆으로 밀려 열렸다⁠. 승로는 서른 해 동안 자물쇠가 열린다는 것을 몰랐다⁠.

안쪽에 글자 두 개가 새겨져 있었다⁠.

현곡은 오래 말이 없었다⁠.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앞판을 닫고 자물쇠를 소석의 목에 다시 걸어 주었다⁠. 그러고는 승로를 보았다⁠. 위아래로⁠, 오래⁠, 쪽물 든 손까지⁠.

“⁠네 어머니는 누구냐⁠?⁠”

“⁠돌아가셨습니다⁠. 열 해 전에⁠.⁠”

“⁠네 어머니가 너를 낳았느냐⁠?⁠”

승로가 대답하기 전에 현곡이 몸을 돌렸다⁠. 문간을 나가면서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쪽물 독에서 김이 올라와 문간이 흐렸다⁠.

*

닷새째 밤⁠, 도각이 혼자 두부집에 왔다⁠. 관복 대신 낡은 도포를 입고 삿갓을 썼다⁠. 삿갓을 벗자 금 간 애체가 이마에 올라앉아 있었다⁠. 철운이 맷돌을 돌리다 손을 멈췄다⁠.

“⁠나리⁠, 봉쇄된 마을에 현령이 몰래 들어오시면 누가 잡아가오⁠?⁠”

“⁠내가 나를 잡아가야지⁠. 두부 있소⁠? 위가 쓰려서⁠.⁠”

“⁠위에는 순두부가 좋소⁠. 손주가 첫날 만든 게 있소⁠. 일부러 만든 거요⁠.⁠”

“⁠일부러⁠?⁠”

“⁠그렇다고 해 두시오⁠.⁠”

“⁠그럼 그것도 주시오⁠. 위가 두 군데 쓰리오⁠.⁠”

철운은 순두부 한 사발과 아침에 소석이 누른 두부 한 모를 내왔다⁠. 도각은 순두부부터 비우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모서리가 반듯했다⁠. 도각은 두부를 손바닥에 받쳐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건 당신 솜씨가 아니군⁠. 손바닥이 작소⁠.⁠”

“⁠손주가 눌렀소⁠.⁠”

도각이 두부를 다 먹었다⁠. 그리고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등잔 아래 펼쳤다⁠.

“⁠천호가 조정에 올릴 보고의 초안이오⁠. 서리가 몰래 베껴 왔소⁠.⁠”

철운은 종이를 팔 길이만큼 떼어 놓았다⁠. 도각이 대신 읽었다⁠.

「⁠천하제일검 독고철운이 스스로 철창 수레에 올라 죄를 자복하였으니⁠, 그와 엮인 강남의 시사와 무인을 모두 잡아들일 근거가 섰다⁠.⁠」

“⁠수레에 타는 순간 당신은 자복한 사람이 되오⁠. 당신이 자복하면 성안 시사의 늙은 선비들⁠, 당신 이름을 듣고 몰려온 강호 사람들⁠, 당신 두부를 산 사람들까지 다 엮이오⁠. 천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소⁠. 마을 봉쇄는 풀고⁠, 아이들은 증인에서 빼고⁠, 훈장은 귀양을 보낼 거요⁠. 그 대신 강남 전체를 묶어 가지⁠.⁠”

철운은 맷돌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 밑에서 나무가 서늘했다⁠.

“⁠나리 스승이 잡혀가셨다 들었소⁠.⁠”

도각이 애체를 벗어 손에 쥐었다⁠.

“⁠스승님은 『⁠기저음⁠』을 나한테 처음 읽어 주신 분이오⁠. 열여섯 살 때였소⁠. 밤새 베틀 소리 그치지 않는데⁠.⁠”

도각이 첫 줄을 외웠다⁠. 그리고 두 번째 수의 첫 줄을 외웠다⁠. 세 번째 수도⁠. 서리도 모르는 시를 현령이 외우고 있었다⁠. 도각이 입을 다물었다⁠. 외운 시가 너무 많았다⁠.

“⁠수레에 타지 마시오⁠. 그렇다고 칼을 들지도 마시오⁠. 둘 다 천호가 바라는 거요⁠.⁠”

“⁠그럼 무얼 하오⁠?⁠”

“⁠모르겠소⁠. 나는 현령이오⁠. 현령은 답을 모르는 자리요⁠. 답을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러 왔소⁠.⁠”

철운은 맷돌을 한 바퀴 돌렸다⁠. 돌이 갈리는 소리가 부엌을 채웠다⁠.

“⁠수레에는 안 타겠소⁠. 천호를 만나야겠소⁠. 이번엔 관아가 아닌 데서⁠.⁠”

도각이 삿갓을 썼다⁠. 문을 나서다 돌아보았다⁠.

“⁠나는 오늘 밤 여기 오지 않았소⁠.⁠”

“⁠두부 값은 내고 가시오⁠.⁠”

도각이 동전 두 닢을 맷돌 위에 놓고 나갔다⁠.

*

자정이 다 되어 승로가 들어왔다⁠. 소석은 아빠 등에 업혀 자고 있었다⁠. 승로는 아들을 방에 눕히고 부엌으로 왔다⁠. 아버지는 맷돌 앞에 앉아 있었다⁠. 승로는 아버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서른한 해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눈높이가 같았다⁠.

“⁠오늘 금의위 하나가 염방에 왔어요⁠. 나루에서 아버지랑 싸운 천호요⁠.⁠”

철운의 손이 맷돌 손잡이에서 미끄러졌다⁠.

“⁠소석이 은자물쇠를 보더니 열었어요⁠. 열리는 거였어요⁠. 저는 서른 해 동안 몰랐어요⁠. 안에 글자가 있었어요⁠. 은추⁠. 천호가 그걸 보고 울었어요⁠.⁠”

승로가 아버지를 똑바로 보았다⁠.

“⁠아버지⁠, 은추가 누구예요⁠?⁠”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이레 · 손주 위해 다시 칼을 든 검왕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