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16자)

손님

손주 위해 다시 칼을 든 검왕 · 노범우

이튿날 새벽⁠, 두부집 앞에 줄이 생겼다⁠. 해가 뜨기도 전이었다⁠. 줄은 골목을 지나 우물을 돌아 나루 계단까지 이어졌다⁠. 버들나루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웃 마을 사람⁠, 성안에서 첫 배를 타고 온 사람⁠, 바구니를 든 할멈과 칼을 찬 젊은이가 섞여 있었다⁠.

“⁠천하제일검이 누른 두부요⁠?⁠”

“⁠두부는 콩이 누르오⁠. 나는 돌만 돌리오⁠.⁠”

철운은 평소처럼 두부 여섯 판을 눌렀다⁠. 여섯 판은 해가 처마에 닿기 전에 다 나갔다⁠. 손님들은 두부를 사서 먹지 않고 들여다보았다⁠. 어떤 손님은 두부를 칼로 잘라 단면을 보았고⁠, 어떤 손님은 두부를 들고 돌아서서 울먹였다⁠. 젊어서 이야기꾼한테 들은 천하제일검이 정말 살아 있었다고⁠.

곽 노파는 줄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앞자리를 동전 한 닢에 팔고 있었다⁠.

“⁠노파⁠, 그게 뭐 하는 거요⁠?⁠”

“⁠자리 장사⁠. 영감은 두부 팔고 나는 자리 팔고⁠. 이게 다 마을 살림이야⁠.⁠”

“⁠천호가 사흘 뒤에 마을을 지운다 했소⁠.⁠”

“⁠그러니까 사흘 안에 벌어야지⁠.⁠”

우물가 할멈들은 하룻밤 사이에 철운의 이름을 새로 지었다⁠. 두부검⁠. 두부 장수와 천하제일검을 반씩 붙였다⁠. 철운은 듣고도 모르는 척했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며느리가 새벽에 꽂아 둔 종이가 손끝에 닿았다⁠.

「⁠하나⁠, 손님한테 칼 보여 주기 금지⁠. 둘⁠, 소석이 밖에 내보내기 금지⁠. 셋⁠, 엿 금지⁠.⁠」

*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젊은이 셋이 두부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키가 장대 같고 등에 쌍칼을 엇갈려 메고 있었다⁠. 하나는 배가 둥글고 붉은 술을 단 창을 들었다⁠. 하나는 얼굴이 하얗고 쇠로 만든 부채를 펼쳐 들고 있었다⁠.

“⁠독고철운 대협⁠! 강남 쌍칼 셋째 제자가 한 수 청합니다⁠!⁠”

키다리가 소리쳤다⁠. 뚱보가 뒤따라 소리쳤다⁠.

“⁠회계 창법 맏제자가 한 수 청합니다⁠!⁠”

서생이 부채를 탁 접었다⁠.

“⁠나는 그냥 구경하러 왔습니다⁠.⁠”

철운은 솥 앞에서 콩물을 젓고 있었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지금 간수를 치는 중이오⁠. 기다리시오⁠.⁠”

“⁠천하제일검이 두부 핑계를 대십니까⁠!⁠”

“⁠두부는 핑계를 안 받소⁠. 지금 손을 떼면 한 솥이 버려지오⁠.⁠”

셋은 마당에서 기다렸다⁠. 철운은 간수를 세 번에 나눠 붓고 콩물이 엉기는 것을 손바닥으로 김을 쬐어 확인한 다음에야 국자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소석이 부엌 문 뒤에서 머리만 내밀었다⁠. 채향의 금지 목록에 손주를 마당에 내보내지 말라는 줄은 있어도 부엌 문 뒤에서 구경시키지 말라는 줄은 없었다⁠.

키다리가 쌍칼을 뽑았다⁠. 철운은 국자를 들었다⁠.

“⁠대협⁠, 칼을 드시지요⁠.⁠”

“⁠칼은 땅에 있소⁠. 꺼내려면 맷돌을 들어야 하는데⁠, 허리가 아파서⁠.⁠”

키다리가 달려들었다⁠. 쌍칼이 위아래로 엇갈려 왔다⁠. 철운은 국자 등으로 위 칼을 툭 치고⁠, 국자 자루로 아래 칼을 눌렀다⁠. 두 칼날이 서로 부딪쳐 엉겼다⁠. 키다리가 칼을 떼려고 끙끙거리는 사이 철운이 국자로 이마를 딱 쳤다⁠. 국자에 묻어 있던 콩물이 키다리 얼굴에 튀었다⁠.

뚱보가 창을 찔러 왔다⁠. 철운은 마당에 세워 둔 두부 판을 들어 창끝을 받았다⁠. 창끝이 나무판에 박혔다⁠. 철운이 두부 판을 비틀자 창자루가 뚱보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뚱보는 빈손으로 두부 판을 쳐다보았다⁠.

서생은 이미 부채를 내려놓고 손을 들고 있었다⁠.

“⁠나는 구경만 한다고 했습니다⁠.⁠”

“⁠구경값은 내야지⁠.⁠”

철운은 국자로 맷돌을 가리켰다⁠.

“⁠셋 다 사흘 동안 맷돌을 돌리시오⁠. 불린 콩이 두 독이오⁠. 다 갈면 보내 주겠소⁠.⁠”

“⁠대협⁠, 저희는 무공을 배우러⁠…⁠…⁠.⁠”

“⁠맷돌을 돌리면 허리가 서오⁠. 허리가 서야 칼이 서지⁠.⁠”

셋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소석이 부엌 문 뒤에서 손뼉을 쳤다⁠. 이날 오후 버들나루 두부집 부엌에서는 맷돌 하나를 세 젊은이가 번갈아 돌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

맷돌을 돌리던 키다리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대협⁠, 강남이 지금 난리입니다⁠. 남경에서 금의위가 시사 문인들을 잡아들인다고 합니다⁠. 『⁠기저음⁠』을 한 줄이라도 베낀 사람은 다 잡아간답니다⁠.⁠”

“⁠바다에서는 왜구가 고을을 쳐서⁠, 의병을 모은다는 방도 붙었습니다⁠.⁠”

뚱보가 말을 보탰다⁠. 서생이 맷돌에 콩을 넣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흑장이 현상을 걸었습니다⁠.⁠”

철운의 손이 멈췄다⁠.

“⁠흑장이라 했소⁠?⁠”

“⁠손바닥을 검게 물들이는 무리 말입니다⁠. 서른 해 전에 끝난 줄 알았는데⁠, 어제 소주 객잔마다 쪽지가 돌았습니다⁠. 천하제일검의 핏줄을 데려오는 자에게 은자 천 냥⁠.⁠”

부엌 문 뒤에서 소석이 할아버지를 보았다⁠. 철운은 손주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덮었다⁠. 소석의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있었다⁠.

“⁠소석아⁠, 두부 누르는 거 배울래⁠?⁠”

“⁠칼은요⁠?⁠”

“⁠두부부터⁠.⁠”

철운은 누름판 위에 손주의 두 손바닥을 얹고⁠, 손주 손등 위에 자기 손바닥을 포갰다⁠. 천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이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졌다⁠.

“⁠너무 누르면 딱딱해지고⁠, 덜 누르면 부서진다⁠. 손바닥이 먼저 안다⁠.⁠”

“⁠손바닥이 어떻게 알아요⁠?⁠”

“⁠물이 빠지는 게 멈추면 손바닥이 가만히 있고 싶어진다⁠. 그때 뗀다⁠.⁠”

*

밤이 깊었다⁠. 젊은이 셋은 부엌 바닥에 쓰러져 코를 골았다⁠. 철운은 맷돌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들지 않았다⁠.

지붕 기와 하나가 소리 없이 들렸다⁠.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은 기와를 흔들고⁠, 사람은 기와를 든다⁠. 철운은 눈을 뜨지 않고 귀로 기와의 자리를 셌다⁠. 안방 위였다⁠. 소석이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 자는 방이었다⁠.

철운이 일어났다⁠. 무릎이 소리를 내지 않게 손바닥으로 무릎을 눌렀다⁠. 안방 문을 밀었을 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들보에서 내려와 소석의 이불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철운은 칼을 꺼낼 틈이 없었다⁠. 맨손으로 그림자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이 차가웠다⁠. 그림자의 손바닥이 철운의 손바닥에 닿았다⁠. 기름이 묻은 것처럼 미끄러웠다⁠. 그림자가 다른 손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철운이 고개를 비틀자 바늘 하나가 문설주에 박혔다⁠.

채향이 눈을 떴다⁠. 비명을 지르는 대신 소석을 이불째 끌어안고 벽으로 굴렀다⁠. 승로가 일어나 등잔을 찾았다⁠.

철운은 그림자의 팔을 등 뒤로 꺾었다⁠. 그림자가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려 했다⁠. 철운이 손목을 한 번 더 비틀자 그림자가 무릎을 꿇었다⁠. 승로가 등잔을 켰다⁠. 복면을 쓴 사내였다⁠. 사내의 손바닥이 숯처럼 검었다⁠.

“⁠누가 보냈느냐⁠?⁠”

“⁠흑장의 어른께서 네 핏줄을 원하신다⁠. 서른 해 전 네가 가져간 팔 한 짝 대신⁠.⁠”

사내가 입에 문 무언가를 깨물었다⁠. 연기가 확 피어올랐다⁠. 철운이 기침을 하며 손을 놓친 사이 사내는 창문을 깨고 달아났다⁠. 마당에서 키다리가 잠결에 쌍칼을 찾다가 맷돌에 부딪쳐 비명을 질렀다⁠.

*

철운은 문설주에 박힌 바늘을 천으로 감싸 뽑았다⁠. 바늘 끝이 푸르스름했다⁠. 등잔불에 대 보니 끝에서 비린 냄새가 올라왔다⁠. 독이었다⁠. 깨진 창틀에 검은 손바닥 자국이 하나 찍혀 있었다⁠. 다섯 손가락이 벌어진 자국이었다⁠.

철운은 자국에 자기 손바닥을 대 보았다⁠. 크기가 얼추 맞았다⁠. 손바닥을 떼자 숯검정이 묻어 나왔다⁠.

서른 해 전 밤이 손바닥으로 먼저 돌아왔다⁠. 대숲을 태우던 불⁠, 기와가 터지는 소리⁠, 연기 속에서 검은 손바닥 여럿이 춤추듯 움직이던 모습⁠. 철운은 불타던 밤 검은 손바닥 가운데 하나를 팔째 베어 냈다⁠. 팔 임자는 불길 너머로 달아났다⁠. 철운은 쫓지 않았다⁠. 쫓을 수 없었다⁠. 품에 안은 것이 울고 있었다⁠.

철운은 손바닥의 숯검정을 앞치마에 문질러 닦았다⁠. 엄지 밑 동그란 흉터에만 검정이 남아 잘 지워지지 않았다⁠.

*

부엌에 등잔 하나가 켜져 있었다⁠. 채향이 마루 끝에 앉았다⁠. 소석은 다시 잠들었다⁠. 승로는 문밖에서 담벼락에 기대 있었다⁠.

“⁠아버님은 누구세요⁠?⁠”

채향의 목소리가 낮았다⁠. 화가 나면 존댓말이 더 깍듯해지는 며느리였다⁠.

“⁠두부 장수다⁠.⁠”

“⁠그 말씀 말고요⁠.⁠”

철운은 오래 말이 없었다⁠. 손바닥을 무릎에 폈다⁠. 밧줄에 쓸린 자리가 아직 붉었다⁠.

“⁠스무 살에 칼을 잡았다⁠. 서른 살쯤 되니까 사람들이 천하제일검이라 불렀다⁠. 그 이름이 붙으면 날마다 누가 찾아온다⁠. 이기려고⁠, 이름을 가져가려고⁠. 나는 다 이겼다⁠. 이긴다는 건 상대가 죽는다는 말이었다⁠.⁠”

“⁠몇 명이나요⁠?⁠”

“⁠세지 않았다⁠.⁠”

채향이 숨을 들이쉬었다⁠.

“⁠서른두 살에 칼을 묻었다⁠. 승로 어미와 승로를 데리고 이리 내려왔다⁠. 그 뒤로 서른 해 동안 두부만 눌렀다⁠.⁠”

말하면서 철운은 한 가지를 빼놓았다⁠. 채향은 빠진 줄을 몰랐다⁠. 승로는 문밖에서 듣고 있었고⁠, 승로도 몰랐다⁠.

“⁠왜 묻으셨어요⁠?⁠”

“⁠아이를 안으니까 칼을 쥘 손이 없더라⁠.⁠”

채향은 대답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

승로는 담벼락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을 펴 보았다⁠. 달빛 아래서도 손톱 밑이 파랬다⁠. 열네 살에 염방에 들어가 쪽물 독 앞에 선 뒤로 손이 한 번도 하얘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도 그랬다⁠. 어머니는 승로가 물으면 아버지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승로가 열 살 때 서당 아이들과 싸우고 들어온 날⁠,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맷돌 손잡이를 내주었다⁠. 승로는 화가 풀릴 때까지 맷돌을 돌렸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아버지는 물집을 바늘로 터뜨려 주며 처음으로 한마디 했다⁠. 손바닥이 단단해지면 주먹을 덜 쥐게 된다고⁠.

아버지의 말뜻이 승로에게 오늘 밤에야 조금 잡혔다⁠. 아버지의 손바닥은 서른 해 동안 무엇을 덜 쥐려고 맷돌을 돌렸는가⁠.

안방에서 채향이 보따리 매듭을 당기는 소리가 났다⁠. 승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

새벽 나루는 조용했다⁠. 채향은 소석을 업고 보따리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호주의 친정까지는 배로 하루 반이었다⁠. 승로는 따라오지 않았다⁠. 염방에 쪽물 독이 식는다고 했다⁠. 철운이 채향 뒤에서 보따리 하나를 더 들고 내려왔다⁠. 며느리가 떠나는 길에 두부 두 모를 싸 넣은 보따리였다⁠.

젊은이 셋이 팔을 주무르며 뒤따라왔다⁠. 키다리가 쌍칼을 고쳐 메고 가슴을 폈다⁠.

“⁠형수님⁠, 저희가 호주까지 모시겠습니다⁠!⁠”

“⁠누가 형수님이에요⁠?⁠”

“⁠대협의 며느님이시니까⁠, 저희한테는⁠…⁠…⁠.⁠”

“⁠저희가 언제 제자가 됐어요⁠? 맷돌 이틀 돌린 게 다잖아요⁠.⁠”

뚱보가 팔을 들어 보이려다 어깨가 결려 끙 소리를 냈다⁠. 서생은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소석이 엄마 등에서 키득거렸다⁠.

나루에 배가 한 척도 떠 있지 않았다⁠. 배들은 모두 말뚝에 매여 있었고⁠, 말뚝마다 포졸이 하나씩 서 있었다⁠. 나루 끝에 도각이 있었다⁠. 금 간 애체를 쓰고 있었다⁠.

“⁠현령 나리⁠, 배를 내 주세요⁠. 친정에 가는 길이에요⁠.⁠”

“⁠미안하오⁠. 천호의 명이오⁠. 사흘 동안 버들나루에서는 아무도 나가지 못하오⁠. 물길도⁠, 둑길도⁠.⁠”

“⁠아이가 있어요⁠. 밤에 자객이 들었어요⁠.⁠”

“⁠알고 있소⁠. 그래서 더 못 내보내오⁠. 나루를 나가는 순간 이 아이는 강호 사람들 손에 들어가오⁠. 천호는 그걸 노리는지도 모르오⁠.⁠”

채향이 도각을 노려보았다⁠. 도각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는 것이 이 현령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채향이 몸을 돌렸다⁠. 계단 위에 철운이 두부 보따리를 들고 서 있었다⁠. 채향은 소석을 고쳐 업고 계단을 올라가 시아버지 앞에 멈췄다⁠.

“⁠그럼 아버님이 가세요⁠. 관아로⁠. 아버님이 칼을 꺼내셨으니까⁠, 아버님이 끝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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