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32자)

현묘관 마당

손주 위해 다시 칼을 든 검왕 · 노범우

보름 아침⁠, 철운은 왼손으로 젓가락을 쥐었다⁠. 객잔 주인이 내온 두부 한 모를 집으려 했다⁠. 젓가락 끝이 두부를 찔렀다⁠. 두부가 둘로 갈라졌다⁠. 반 토막을 다시 집으려 했다⁠. 반 토막이 또 갈라졌다⁠.

“⁠아버님⁠, 숟가락 쓰세요⁠.⁠”

“⁠숟가락으로 두부 먹는 건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아버님 지금 아이예요⁠. 손 하나 다친 아이요⁠.⁠”

채향이 숟가락으로 두부를 떠서 시아버지 입에 넣었다⁠. 철운은 받아먹었다⁠. 소석이 옆에서 키득거렸다⁠. 철운이 손주를 노려보았다⁠. 소석이 숟가락으로 두부를 떠서 할아버지 입에 또 넣었다⁠. 철운은 또 받아먹었다⁠. 젊은이 셋이 문간에서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떨었다⁠.

밥을 다 먹고 철운은 왼손으로 칼을 들어 보았다⁠. 칼이 무거웠다⁠. 서른 해 동안 왼손으로 쥔 것은 두부 판의 한쪽 귀퉁이와 손주 손뿐이었다⁠. 칼끝이 바닥으로 처졌다⁠. 철운은 칼을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칼끝이 허리 높이에서 멈췄다⁠.

“⁠대협⁠, 칼자루를 손에 묶어 드릴까요⁠?⁠”

서생이 무명 띠를 들고 왔다⁠. 채향이 직방에서 시아버지 무릎 덮개 만들고 남은 띠였다⁠. 피 한 방울이 묻은 띠였다⁠.

“⁠묶지 마시오⁠. 묶으면 놓을 때 못 놓소⁠.⁠”

“⁠놓으실 겁니까⁠?⁠”

철운은 대답하지 않고 앞치마를 둘렀다⁠. 채향이 끈을 매 주었다⁠. 두 번 감았다⁠.

“⁠아버님은 맨날 한 번만 감으시잖아요⁠.⁠”

*

같은 새벽⁠, 현곡은 역관 별채에서 칼을 닦고 있었다⁠. 밤새 잠들지 못했다⁠. 칼날의 피는 물로 한 번 닦였는데⁠, 닦은 자리를 기름 먹인 천으로 몇 번이고 다시 닦았다⁠. 닦아도 칼날에 늙은 손바닥의 결이 남아 있었다⁠. 현곡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서른 해 전 대숲 앞마당이 눈앞에 돌아왔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키 큰 사내가 칼을 거두고 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었다⁠. 사내가 아버지에게 무엇이라 말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살 현곡은 창호지 구멍으로 끄덕임만 보았다⁠. 무슨 말에 끄덕였는지 서른 해 동안 몰랐다⁠. 서른 해 동안 묻지 않았다⁠. 원수에게 물을 것은 없었다⁠.

현곡은 칼을 칼집에 넣었다⁠. 의자 위에 검은 도포가 접혀 있었다⁠. 밤사이 승로가 돌려놓고 간 것이었다⁠. 도포 위에 은자물쇠를 닮은 구름 무늬가 수놓여 있었다⁠. 현곡은 도포를 들지 않았다⁠. 문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돌아보았다⁠.

*

현묘관 앞 마당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단이 다 올라가 있었다⁠. 목수가 동쪽 다리를 반 치 고친 단이었다⁠. 단 위에 형틀이 있었다⁠. 육계담이 형틀에 묶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갓은 없었다⁠. 상투가 풀려 흰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

단 앞에는 장작과 판목이 쌓여 있었다⁠. 판목 옆에 『⁠기저음⁠』 책 수십 권이 끈에 묶여 있었다⁠. 성안 집집을 뒤져 거둔 책이었다⁠. 책 더미 옆에 쇠사슬을 찬 늙은 선비 다섯이 앉아 있었다⁠. 시사의 문인들이었다⁠. 가운데 선비가 가장 늙었다⁠. 도각의 스승이었다⁠.

마당 동쪽에는 관아 탁자가 놓였고⁠, 탁자 앞에 강남 무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름을 올리고 칼을 내면 서리가 칼을 받아 뒤의 수레에 실었다⁠. 수레에 칼이 반쯤 차 있었다⁠. 줄 선 사내들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의병이 된다더니 칼부터 내라는 데가 어디 있느냐는 소리가 줄 사이를 오갔다⁠.

마당 서쪽에는 버들나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맨 앞에 곽 노파가 장아찌 단지를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이장이 곁에 있었다⁠. 우물가 할멈들이 있었다⁠. 서당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 열한 명이 다 왔다⁠.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다 왔다⁠.

버들나루 사람들 뒤로 성안 직방의 직녀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은 베틀이 돌지 않았다⁠. 직방 감독이 보름 구경을 막으려 했지만⁠, 봉황 꼬리 깃을 짜던 손들이 한꺼번에 북을 내려놓자 감독도 어쩌지 못했다⁠. 직녀 하나가 채향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채향은 손을 흔들어 주지 못했다⁠. 소석의 손을 쥐고 있었다⁠.

현묘관 처마 아래에 금의위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운데에 현곡이 있었다⁠. 붉은 비어복에 수춘도를 찼다⁠. 칼집에 어제 밤의 칼이 들어 있었다⁠. 피는 닦여 있었다⁠. 현곡의 곁에 검은 도포 한 벌이 접힌 채 의자에 놓여 있었다⁠. 입을 사람이 오지 않았다⁠.

*

도각은 단 아래에 서 있었다⁠. 금의위 하나가 칼을 받쳐 들고 왔다⁠. 넓고 무거운 칼이었다⁠. 사람의 목을 베는 칼이었다⁠. 도각은 칼을 받았다⁠. 손이 떨려서 칼끝이 단 모서리를 긁었다⁠.

서리가 단 위에 올라가 죄목을 읽었다⁠.

「⁠훈장 육계담은 요서 『⁠기저음⁠』을 학동들에게 가르쳐 강남의 인심을 흐렸다⁠. 대명률에 따라 강남 사람들 앞에서 베어 본보기로 삼는다⁠.⁠」

서리가 내려왔다⁠. 마당이 조용했다⁠. 도각이 칼을 들고 단으로 올라갔다⁠. 계단 하나에 숨을 한 번씩 쉬었다⁠. 단 위에 올라서자 마당이 다 보였다⁠. 버들나루 사람들⁠, 직녀들⁠, 강호 사내들⁠, 쇠사슬 찬 스승⁠.

도각은 애체를 눈으로 내렸다⁠. 금 간 알 너머로 스승의 얼굴이 두 개로 갈라져 보였다⁠. 스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라는 끄덕임인지 베지 말라는 끄덕임인지 도각은 알 수 없었다⁠. 스승은 늘 그렇게 끄덕였다⁠. 스스로 정하라는 끄덕임이었다⁠.

도각이 입을 열었다⁠.

“⁠밤새 베틀 소리 그치지 않는데⁠.⁠”

마당이 술렁였다⁠. 처마 밑에서 현곡이 고개를 들었다⁠.

“⁠짠 비단은 하늘 제단으로 올라가고⁠. 어미 손바닥엔 실 자국만 남아⁠. 아이는 맨발로 봄 진흙을 밟네⁠.⁠”

도각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마당 끝까지 가지도 않았다⁠. 대신 마당 앞줄의 직녀들이 따라 외웠다⁠. 앞줄에서 뒷줄로⁠, 뒷줄에서 담벼락 밑으로⁠.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손바닥을 펴 들었다⁠. 실 자국이 있는 손바닥이었다⁠. 쪽물이 든 손바닥이었다⁠. 노 자국과 괭이 자국이 있는 손바닥이었다⁠.

도각이 칼을 단 위에 내려놓았다⁠. 칼이 나무에 닿는 소리가 마당 끝까지 갔다⁠.

“⁠소주 현령 사마도각은 이 칼을 들지 않는다⁠. 훈장은 아이들에게 시 한 수를 불러 주었다⁠. 아이들은 제 어미 손을 썼다⁠. 그것으로 홀린 사람이 있다면 나다⁠. 열여섯 살 때부터 홀렸다⁠.⁠”

도각이 훈장 곁에 무릎을 꿇었다⁠. 관모를 벗어 단 위에 놓았다⁠.

“⁠나도 같이 묶으시오⁠.⁠”

형틀에 묶인 육계담이 고개를 돌려 도각을 보았다⁠. 풀린 머리카락 사이로 눈이 젖어 있었다⁠.

“⁠나리⁠, 한 자도 안 틀리셨습니다⁠.⁠”

“⁠훈장⁠, 지금 그걸 따질 때요⁠?⁠”

“⁠글자는 언제나 따져야 합니다⁠. 틀린 글자로 죽으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도각이 웃었다⁠. 단 위에서⁠, 형틀 곁에 무릎을 꿇은 채로⁠, 위가 쓰린 줄도 모르고 웃었다⁠.

*

현곡이 처마 밑에서 걸어 나왔다⁠. 금의위들이 뒤따랐다⁠. 현곡은 단 아래에서 도각을 올려다보았다⁠.

“⁠현령⁠, 거래를 깼다⁠.⁠”

“⁠천호⁠, 저는 칼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잡았습니다⁠. 내려놓은 것뿐입니다⁠.⁠”

“⁠말장난이다⁠.⁠”

“⁠율도 말로 되어 있습니다⁠. 천호께서 율은 금의위가 정한다고 하셨지요⁠. 그럼 말은 현령이 정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마당 서쪽에서 곽 노파가 소리쳤다⁠.

“⁠잘한다⁠, 현령⁠! 두부 값 깎던 거 용서해 줄게⁠!⁠”

웃음이 터졌다⁠. 웃음은 금방 걷혔다⁠. 현곡이 손을 들었다⁠.

“⁠현령을 묶어라⁠. 현령의 스승과 함께⁠. 북경으로 보낸다⁠.⁠”

금의위들이 단 위로 올라갔다⁠. 도각은 손을 등 뒤로 모아 내밀었다⁠. 금의위 하나가 포승을 꺼내다 멈췄다⁠. 마당 동쪽에서 함성이 났다⁠.

칼을 내러 줄 섰던 강남 무인들이 줄을 흩뜨리고 있었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칼을 도로 집어 들었다⁠. 수레에 실린 칼을 도로 꺼내는 사내도 있었다⁠. 서리가 말리다가 탁자 밑으로 숨었다⁠.

“⁠현령도 칼을 내려놓는데 우리는 칼을 내라고⁠? 의병은 무슨 의병⁠!⁠”

금의위들이 처마 밑에서 칼을 뽑았다⁠. 무인들도 칼을 뽑았다⁠. 두 줄이 마당 한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직녀들과 버들나루 사람들이 두 줄 사이에 끼었다⁠. 할멈 하나가 손주를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젊은이 셋이 판목 더미 위로 뛰어올랐다⁠. 키다리가 쌍칼을 엇갈려 들고⁠, 뚱보가 창을 세우고⁠, 서생이 부채를 펼쳤다⁠. 판목 더미는 두 줄 사이 한가운데였다⁠.

“⁠칼 거두시오⁠! 여기 아이들 있소⁠!⁠”

키다리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뚱보가 창을 세운 채로 덧붙였다⁠.

“⁠두부 열다섯 판 빚진 사람들이오⁠! 빚 갚기 전엔 아무도 못 죽소⁠!⁠”

마당 한구석에서 외팔 노인이 빈 소매를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검은 왼손바닥을 소매 속에 넣고 있었다⁠. 노인은 판목 더미 위의 젊은이들을 보고 웃었다⁠.

*

마당 서쪽 버들나루 사람들 사이에서 승로는 형을 보고 있었다⁠. 현곡은 처마 밑에서 마당 전체를 보고 있었다⁠. 형의 눈이 아우를 찾아 버들나루 사람들 사이로 왔다⁠. 아우의 옷에서 멈췄다⁠. 쪽물 든 무명옷이었다⁠. 소매가 걷혀 있었다⁠.

현곡이 처마 밑에서 몇 걸음 나와 승로가 들을 만한 데까지 왔다⁠.

“⁠그 옷이냐⁠?⁠”

“⁠제 옷이에요⁠. 열네 살 때부터 입은 거요⁠.⁠”

“⁠위지의 옷이 의자에 있다⁠.⁠”

“⁠형⁠, 저는 위지은추로 태어났어요⁠. 그건 형한테 들어서 알아요⁠. 근데 독고승로로 컸어요⁠. 그건 제가 알아요⁠. 형한테 안 들어도 알아요⁠.⁠”

현곡이 아우를 오래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처마 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걸음이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채향이 승로의 소매를 잡아 내렸다⁠. 걷힌 소매를 펴 주었다⁠. 다시 걷혔다⁠. 채향은 그만두었다⁠.

*

마당 대문에서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철운이 들어왔다⁠.

흰 앞치마를 두 번 감아 매고 있었다⁠. 오른손은 흰 무명으로 감겨 가슴께에 매달려 있었다⁠. 왼손에 쪽빛 천을 감은 장검을 들고 있었다⁠. 칼집째였다⁠. 소석이 할아버지 앞치마 자락을 잡고 따라 들어왔다⁠. 채향이 뒤에서 아들을 붙잡으려다 놓았다⁠. 승로가 채향 곁에 있었다⁠. 검은 도포가 아니라 쪽물 든 무명옷이었다⁠. 염방에서 입던 옷이었다⁠.

철운은 대문에서 단까지 걸었다⁠. 걸음을 셌다⁠. 마흔두 걸음이었다⁠. 나흘 전 셌을 때와 같았다⁠. 늙은 걸음이 마흔둘을 그대로 지켰다⁠. 무인들과 금의위 사이를 지날 때 양쪽 칼끝이 조금씩 내려갔다⁠. 천하제일검이 두부 장수 앞치마를 두르고 걸어가는 것을 양쪽이 다 보고 싶었다⁠.

단 아래에서 철운이 멈췄다⁠. 현곡과 마주 보았다⁠. 둘 사이가 세 걸음이었다⁠.

“⁠천호⁠, 거래를 하나 더 합시다⁠. 이 칼을 바치겠소⁠. 무릎도 꿇겠소⁠. 대신 현령과 훈장과 선비들과 이 마당의 칼잡이들을 다 놓아주시오⁠.⁠”

“⁠거래는 끝났다⁠.⁠”

현곡이 철운의 오른손을 보았다⁠. 무명에 붉은 자국이 배어 있었다⁠. 현곡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굳었다⁠.

“⁠사람 이야기를 하자고 했지⁠. 사람 이야기로 끝내자⁠. 겨루자⁠. 네가 이기면 이 마당의 사람들을 놓아준다⁠. 현령도⁠, 훈장도⁠, 선비도⁠, 칼잡이도⁠. 지면 네 목과 훈장의 목과 현령의 목을 받는다⁠.⁠”

“⁠천호⁠, 나는 오른손이 없소⁠.⁠”

“⁠나는 아버지가 없다⁠.⁠”

마당이 조용했다⁠. 소석이 할아버지 앞치마를 더 세게 쥐었다⁠. 철운은 손주의 손을 왼손으로 풀어 채향에게 넘겼다⁠. 그리고 왼손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엄지로 칼집을 밀었다⁠. 칼날이 한 치 나왔다⁠.

“⁠받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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