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40자) · 재현 · 9월 29일
실사
우리는 여름을 늦게 배웠다 · 윤재하
화요일 아침 여덟 시, 군청 가는 버스에 오목상회 사람들이 다 탔다.
채옥순 이모는 국수집 앞치마를 벗고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었고, 권말순 할매는 고추 물이 빠지지 않은 손을 무릎에 얹고 창밖만 봤다. 맨 뒷자리에 우종구 영감이 흰 가운을 입은 채 앉아 있었다. 선우가 오늘 화요일인데 이용원은 어떡하시냐고 묻자 영감은 허공에 가위질을 한 번 했다.
“오늘은 군청 머리 깎으러 간다.”
버스는 사십 분을 달렸다. 에어컨이 약해서 창을 반쯤 열었더니 논에서 올라오는 풀 비린내와 익어 가는 벼 냄새가 버스 안을 채웠다. 구월 마지막 주였는데 한낮 기온이 삼십 도를 넘는다고 기사가 라디오 소리를 키웠다. 선우가 내 옆에서 공청회 자료를 무릎에 펴 놓고 한 장도 넘기지 못했다. 나는 그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버스 안의 누구도 그걸 못 본 척하지 않았고,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
군청 대회의실은 에어컨이 너무 셌다. 버스에서 흘린 땀이 등에서 식으면서 셔츠가 차갑게 달라붙었다.
앞쪽 긴 탁자에 군의회 산업건설위원장과 김태만 팀장과 사업팀 직원 둘이 앉았다. 뒤쪽 객석에는 화령군 각 읍면에서 온 사람들이 사십 명쯤 있었다. 오목에서 온 우리는 열둘이었다. 선주 누나는 도윤이를 데리고 맨 끝 자리에 앉았다. 이해충돌 신고를 했으니 오늘은 공무원이 아니라 주민이라고 했다.
도상철은 맨 앞줄 가운데에 있었다. 오늘은 번영회 명함을 가슴 주머니에 꽂고 있었다.
김 팀장이 화면을 띄웠다. 중앙로 동쪽 블록 열한 칸이 파랗게 칠해져 있었다. 생활센터 조감도, 소아과 진료실 두 칸, 작은 도서관, 주차장 육십 면. 설명은 정확했고 짧았다. 기금 집행 기한, 빈 점포 협의 매수, 올해 안에 부지를 확보하면 이 년 뒤 개원.
설명이 끝나자 맨 뒷줄에서 우종구 영감이 손을 들었다. 위원장이 발언하시라고 하자 영감은 일어나서 허공에 가위질을 한 번 했다.
“위원장님, 옆머리가 너무 길다. 공청회 끝나고 오목이용원 오소. 화요일은 원래 여는 날인데 오늘은 여기 와서 못 열었다.”
회의실에 웃음이 번졌다. 위원장이 제 귀밑머리를 한 번 만지고 헛기침을 했다. 영감은 할 말을 다 했다는 얼굴로 앉았다. 김 팀장만 웃지 않았는데, 그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이는 걸 나는 봤다.
도상철이 손을 들었다.
“오목 번영회장입니다. 부지 안 상인 대다수가 동의했습니다. 서약서도 있습니다. 주민들은 이 사업을 원합니다.”
그가 서약서를 흔들었다. 도장 둘과 가위표 하나가 멀리서도 보였다.
나는 손을 들었다. 위원장이 이름을 물었다.
“오재현입니다. 부지 안 철물점 소유자입니다.”
김 팀장이 나를 봤다. 그 눈에 반가움은 없었다. 기다리던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지난주에 팀장님이 틀린 걸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두 개 찾았습니다.”
나는 서류 두 묶음을 앞으로 가져갔다.
“하나. 부지 열한 칸 가운데 일곱 칸에 매매 예약이 걸려 있습니다. 예약자는 전부 한 사람, 도상철 번영회장입니다. 군이 감정가로 사면, 도 회장님이 주인들한테 예약가를 주고 군한테 감정가를 받습니다. 칸마다 사천만 원 넘게 차이가 납니다. 소멸대응기금 사십억 가운데 이억 팔천이 한 사람 통장으로 갑니다.”
회의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었고, 도상철이 의자를 밀며 일어섰다.
“그건 정당한 거래다. 계약서가 다 있다.”
“둘. 그 열한 칸 가운데 철물점은 칠월 칠일에 대리 폐업 신고가 됐습니다. 위임장 날짜가 유월 이일인데, 제 아버지는 그날 대구 병원 중환자실에 계셨습니다. 입원 확인서 여기 있습니다. 고소장은 지난주 화요일에 접수됐습니다.”
도상철 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보고, 받지 않고, 다시 봤다. 세 번째 울렸을 때 받았다. 짧게 대답하고 끊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서류 가방을 들고 통로를 걸어 나갔다. 걸어가는 동안 가슴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이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줍지 않았다.
뒤에서 채옥순 이모가 중얼거렸다.
“경찰서다. 저 양반 받을 때 얼굴이 딱 그렇다.”
*
김 팀장이 마이크를 당겼다.
“말씀하신 두 가지는 확인하겠습니다. 그런데 오재현 씨, 그걸로 사업이 틀린 건 아닙니다. 예약은 무효로 돌리면 되고, 위조는 수사기관이 합니다. 소아과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압니다.”
“그럼 뭘 원하십니까?”
“생활센터를 폐교로 옮겨 주십시오.”
김 팀장이 한숨을 쉬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무거웠다.
“폐교는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설계 착수로 집행을 인정받으려면 제가 도에 가서 사정을 해야 하고, 잘 돼도 개원이 한 해 늦습니다. 그 한 해 동안 이 군에는 소아과가 없습니다. 오재현 씨가 그 한 해를 책임지시겠습니까?”
회의실이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에어컨 바람이 서류 모서리를 들썩였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맨 끝 자리에서 누나가 도윤이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도윤이는 줄자를 쥐고 있었다.
팔 년 동안 나는 남의 한 줄을 썼다. 박수를 받은 한 줄은 내가 안 믿는 문장이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말은 박수를 받을 문장이 아니었다.
“책임 못 집니다.”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회의실 벽에 부딪혔다.
“한 해 늦는 거 압니다. 그 한 해 동안 밤에 대구까지 한 시간 반을 달리는 사람이 누군지도 압니다. 제가 그 한 해를 가져갑니다. 그러니까 제 입으로 말하겠습니다.”
나는 맨 끝 자리를 봤다.
“도윤아. 삼촌이 소아과를 한 해 늦게 만들었어. 미안해.”
도윤이가 엄마를 올려다봤다. 누나는 도윤이를 보지 않고 나를 봤다. 입술을 꽉 물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한 번, 아주 작게.
“대신 오목상회는 헐지 않습니다. 폐교는 군 땅이라 매입비가 영 원이고, 그 사십억이 전부 건물하고 장비로 갑니다. 운동장은 주차장 육십 면이 아니라 백 면이 됩니다. 도서관은 교실 두 칸이면 됩니다. 그리고 중앙로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일요일 저녁 여덟 시에 스물여섯 칸이 켜져 있었습니다.”
위원장이 김 팀장을 봤다. 김 팀장은 한참 화면 속 파란 열한 칸을 보다가 마이크를 켰다.
“내일 저녁 여덟 시 실사는 예정대로 합니다. 그 결과를 보고 도에 올라가겠습니다. 빈 점포가 하나라도 나오면 원안대로 갑니다.”
*
돌아오는 버스에서 채옥순 이모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렸다. 읍내 소문은 군청에서 오목까지 버스보다 빨랐다. 도 회장이 화령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사문서위조로 입건됐다, 매매 예약한 집들이 계약서 들고 변호사 찾는다. 이모는 전화 한 통 끊을 때마다 우리한테 한 줄씩 전했고, 맨 뒷자리 영감님은 그때마다 가위질을 한 번씩 했다.
“이모, 그거 다 맞아요?”
“읍내 소문은 반은 맞다. 어느 반인지가 문제지.”
*
수요일 오후에는 여관 주인이 철물점에 왔다. 일 층 간판이 몇 해째 안 켜진다고, 한 번 봐 달라고 했다. 나는 사다리를 들고 가서 안정기를 갈고 접점을 닦았다. 스위치를 올리자 「오목장」 세 글자가 지잉 소리와 함께 붉게 섰다. 주인은 그걸 올려다보더니 도로 스위치를 내렸다.
“켤지는 모르겠다. 전기세가 무섭다.”
“그럼 왜 고쳐 달라고 하셨어요?”
“고장 난 거랑 안 켜는 거는 다르다. 니 아부지가 그카더라.”
나는 공구통을 챙기면서 더 묻지 않았다. 선우는 그날 오후 내내 늦여름 계산대에서 서가 끝 칸만 정리했다. 정리할 게 없는 칸이었다.
*
수요일 저녁 일곱 시 오십 분, 중앙로는 해가 막 넘어간 참이었다.
낮 동안 달궈진 아스팔트가 아직 열을 뿜어서, 가로등 아래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조금씩 흔들렸다. 김 팀장과 사업팀 직원 하나가 서쪽 끝 농협 앞에서 출발했다. 직원이 태블릿을 들고 칸마다 번호를 눌렀다. 나와 선우는 늦여름 앞에 서 있었다.
직원은 칸마다 멈춰 태블릿의 켜짐을 눌렀다. 전파사와 떡집이 켜져 있었고, 옛 문구점에는 도윤이와 누나가 앉아 있었다. 사진관은 서울 손녀가 연휴가 끝났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불을 켜 두었다. 양복점과 신발 수선 칸도 켜져 있었다.
직원이 오목상회 앞에 왔다. 국수집, 이용원, 쌀집, 다방, 양품점, 철물점, 늦여름. 일곱 칸이 전부 켜져 있었다. 김 팀장이 쌀집 앞에서 잠깐 멈췄다. 권말순 할매가 플라스틱 의자에서 고추 한 줌을 들어 보였다.
“공무원 양반, 고추 사소.”
김 팀장이 지갑을 꺼냈다. 직원이 태블릿에서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 스물아홉입니다. 두 칸이 꺼져 있습니다.”
직원이 손가락으로 두 곳을 가리켰다. 길 건너 약국. 그리고 중앙로 끝, 여관 오목장 일 층.
선우가 내 팔을 잡았는데, 손끝이 차가웠다.
약국 유리문에는 「구월 삼십일부로 폐업합니다」 종이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부산 아들은 연휴가 끝나 내려갔다. 여덟 시 이 분 전이었다.
그때 약국 안쪽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이다가 섰다. 허정자 약사님이 흰 가운을 입고 계산대 뒤에 나와 섰다. 손이 떨려서 가운 단추를 하나 어긋나게 채운 채였다.
김 팀장이 길을 건너갔다. 나와 선우도 따라갔다.
“약사님, 폐업하신다고.”
“폐업은 내일부터다.”
약사님이 유리문 종이의 「삼십일부로」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오늘은 삼십일이다. 오늘까지는 약국이다.”
약사님이 계산대 밑에서 사탕 두 알을 꺼내 김 팀장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선우를 봤다.
“선우야, 니 열두 해 동안 여기서 파스 사 갔제. 욕창 연고도. 그 값 다 받았다. 이거는 안 받는다.”
선우가 고개를 숙였다. 목 뒤가 떨렸다.
마지막 한 칸은 여관이었다. 우리가 돌아보는 순간, 오목장 일 층 유리문 위에서 몇 해째 꺼져 있던 간판이 지잉 소리를 내며 켜졌다. 여관 주인이 문 앞에 나와 섰다. 나를 보더니 늘 하던 대로 물었다.
“오늘도 창가요?”
“오늘은 방 안 잡아요.”
“그라믄 됐고.”
주인은 간판 스위치를 켜 놓은 채로 들어갔다.
직원이 태블릿을 눌렀다. 여덟 시 정각이었다.
“서른하나입니다. 빈 점포 없습니다.”
김 팀장이 약사님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한참 녹이다가 나를 봤다.
“틀렸네요, 제가.”
“한 해 늦게요.”
“예. 한 해 늦게. 폐교로 갑니다. 내일 아침에 도에 가서 머리 숙이겠습니다.”
그가 사탕 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걸어갔다. 중앙로 서른한 칸이 한 줄로 켜진 길을, 그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걸었다.
선우가 내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손끝도 차갑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