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290자) · 선우 · 9월 24일
마지막 서점
우리는 여름을 늦게 배웠다 · 윤재하
목요일 아침 첫차는 여섯 시 사십 분이었고, 나는 정류장까지 재현을 배웅했다.
추석 전날이라 정류장 의자에는 보따리를 든 할머니 둘이 먼저 앉아 있었다. 재현은 배낭 하나에 장부 넉 권을 넣었다. 서울에서 뭘 적을 일이 있느냐고 묻자, 아버지가 서울 구경을 한 번도 못 하셨다고 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나타났다. 새벽 공기가 아직 식지 않아서, 버스 배기가스와 할머니들 보따리에서 새어 나온 참기름 냄새가 한데 섞여 정류장 지붕 밑에 고였다.
재현이 버스 계단에 한 발을 올리고 돌아봤다.
“다녀올게.”
“응.”
“인사했다.”
“들었어.”
할머니 둘이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서로 팔꿈치를 찔렀다. 버스 문이 닫혔다. 나는 버스가 사거리를 꺾어 안 보일 때까지 서 있었다. 열두 해 전 그 구월에는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다.
*
추석 날 아침, 나는 혼자 늦여름을 열었다. 명절에 서점에 올 사람은 없었지만 닫으면 닫는 데가 되니까.
열 시쯤 종이 울렸고, 들어온 사람은 도 사장이었다. 그는 양복 대신 개량 한복을 입고, 손에 배 한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는 상자를 계산대에 올리고 「읽다 만 책」 매대를 한 바퀴 둘러봤다.
“책방 동생, 명절인데 혼자가.”
“장사하는 날이에요.”
“장사.”
그가 웃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동생, 니 따로 사 주께. 책 재고, 이 층 방 값까지 쳐서 삼천. 철물점 아들 설득만 해라. 니 말이면 듣는다 카더라.”
“누가 그래요?”
“읍내가. 동생도 서울 가 봐야지. 열아홉에 못 갔다며. 삼천이면 서울 원룸 보증금은 된다. 니 인생도 한 번은 니가 정해야 안 되겠나.”
그 말이 명치 아래를 찔렀다. 열두 해 동안 내가 한 번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은 것을, 이 사람은 배 한 상자와 함께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서울에 가 보고 싶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사장님.”
“오냐.”
“제 인생 제가 정하는 거 맞아요. 그래서 안 팔아요.”
“니 거도 아니잖아. 건물은 철물점 아들 거다.”
“가게는 제 거예요. 불은 제가 켜요.”
도 사장은 배 상자를 도로 들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서 추석 잘 쇠라고 했고, 나는 배 상자를 국수집에 갖다줬다. 이모는 그 배로 저녁에 온 사람들한테 후식을 냈다.
*
추석 날 저녁, 국수집이 문을 열었다.
채옥순 이모가 명절에 문을 연 건 오 년 만이라고 했다. 대구와 부산과 서울에서 내려온 자식들이 부모 손을 잡고 들어왔고, 테이블이 모자라 평상 두 개를 가게 앞 인도에 내놓았다. 향우회 추석 모임이라는 현수막이 국수집 차양 밑에 걸려 있었다. 현수막 아래 명함을 돌리는 사람은 도상철 사장이었다. 오늘은 향우회 명함이었다.
나는 떡집에서 송편 한 상자를 받아 오다가 국수집 앞에서 멈췄다. 도 사장이 맥주잔을 들고 평상 위에 올라서 있었다.
“고향 오신 분들, 반갑습니다. 좋은 소식 하나 드리겠습니다. 군에서 중앙로에 생활센터를 짓습니다. 소아과, 도서관, 주차장. 여러분 부모님 가게, 인자 쉬실 때 됐습니다. 군이 감정가로 삽니다. 보상금 나옵니다. 부모님 대구 부산 모시고 갈 돈 나옵니다.”
자식들 쪽에서 박수가 나왔다. 그 박수 사이로 약국 허정자 약사님이 부산에서 온 아들 손에 이끌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들은 흰 셔츠 소매를 걷고 있었고, 어머니 가게 유리문에 붙은 폐업 종이를 방금 보고 온 얼굴이었다.
“그런데.”
도 사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이 좋은 일을 막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새 중앙로에 불 켜자고 집집이 돌아다니는 사람들. 철물점 아들하고 책방 동생. 여러분 부모님한테 가서 보상금 받지 말고 불 켜라 캅니다. 왜 그카겠습니까?”
그의 눈이 인도 끝에 선 나를 찾았다. 찾고 나서 웃었다.
“저 둘이 무슨 사이인지 읍내가 다 압니다. 자기 둘이 살림 차릴라꼬, 어르신들 보상금 막는 기라요.”
평상 위가 조용해졌다. 누가 웃었다가 입을 막았다. 누가 휴대폰을 꺼냈다. 송편 상자를 든 내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웠다. 열두 해 동안 나는 이 순간이 오지 않게 하려고 어깨를 안으로 말고 살았다. 소문이 돌기 전에 먼저 문을 닫고, 누가 묻기 전에 먼저 웃고, 서점 주인이 조용한 건 원래 그런 거라고 여기게 했다. 그 열두 해가 지금 평상 위에서 맥주잔을 든 남자 입에서 한 줄로 나왔다.
나는 송편 상자를 인도에 내려놓았다. 무릎이 먼저 굽었다가 폈다.
“맞아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멀리 갔다. 국수 삶는 솥 앞에서 이모가 국자를 멈췄다.
“저 사람하고 저는 그런 사이예요. 열두 해 걸렸어요. 한 번은 편지가 안 가서, 한 번은 제가 못 물어봐서.”
나는 평상 쪽으로 걸었다. 다리가 떨렸는데 멈추지는 않았다.
“근데 불 켜 달라고 한 건 그거랑 상관없어요. 사장님이 철물점 아저씨 돌아가시고 스무엿새 뒤에 낸 폐업 신고랑 상관있어요. 위임장 날짜가 유월 이일인데, 형님은 그날 대구 중환자실에 계셨어요. 사장님이 이천십구 년에 받아 둔 인감증명서로 만든 위임장이에요. 화요일에 파출소에 고소장 들어갔어요.”
평상 위 자식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도 사장이 맥주잔을 다시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선우야, 니 지금 추석에 사람 모아 놓고.”
“사장님이 모으셨잖아요. 저는 송편 사러 왔어요.”
그때 평상 뒤쪽에서 누가 일어섰다. 일어선 사람은 누나였다. 누나는 도윤이를 무릎에서 내려놓고, 향우회 현수막 밑으로 나왔다.
“제 동생입니다.”
누나 목소리는 민원 창구에서처럼 빨랐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방금 도 회장님 말씀 가운데 맞는 거 하나, 틀린 거 둘입니다. 맞는 거는 제 동생이 저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고, 틀린 거는 보상금을 막는다는 거하고, 그기 여러분 부모님 일하고 상관있다는 겁니다. 이유는 제가 이해충돌이라 말을 못 합니다. 파출소 가서 물어보이소.”
누나는 그 말만 하고 도로 앉았다. 도윤이가 엄마 무릎으로 기어올라 가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
“엄마, 책 삼촌이 철물 삼촌 좋아해?”
“어.”
“나도.”
평상 한쪽에서 권말순 할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할매는 고추 물 든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철물점 아부지가 가게 반을 세탁소에 내줄 때도 너거 그 소리 했다. 저 둘이 무슨 사이길래 반을 주노. 그라고 이십 년을 반씩 잘 살았다.”
이모가 국자를 다시 솥에 넣었다.
“여기는 벽 뜯으면 결혼이오. 안 뜯어도 반은 결혼이고. 선우야, 송편 식는다. 들어와서 앉아라. 보통이다.”
도 사장은 평상에서 내려와 현수막 끈을 한쪽만 풀고 갔다. 현수막이 대각선으로 늘어져 향우회라는 글자가 반쯤 땅에 끌렸다. 아무도 그걸 다시 매지 않았다.
*
그날 밤 여덟 시가 넘어서, 추석이라 닫혀 있던 약국 불이 다시 켜졌다.
허정자 약사님 부산 아들이 흰 셔츠를 입은 채 약국 계산대에 서 있었다. 아들도 부산에서 약국을 하는 약사였다. 연휴 동안만이라도 어머니 가게를 열어 두겠다고 했다. 폐업 종이는 떼지 않고, 그 밑에 한 장을 더 붙였다. 「추석 연휴 야간 영업 — 아들이 합니다」.
새로 켜지는 칸도 있었다. 옛 시계방 주인의 대구 아들이 내려와 녹슨 셔터를 발로 차 올렸고, 문 닫은 지 사 년 된 옛 사진관 칸에서는 서울 사는 손녀가 할아버지 필름 카메라를 진열장에 놓고 불을 켰다. 그 밖에도 한복집과 자전거포, 담뱃가게와 기름집, 옛 복덕방 칸에 불이 들어왔다. 기름집에서는 부산 며느리가 참기름 병을 닦았고, 자전거포에서는 중학생 손자가 바퀴에 바람을 넣었다. 도 사장이 모아 놓은 자식들이, 도 사장이 말한 부모 가게에 불을 켰다. 중앙로에 불 켜진 칸이 스물여섯이 됐다.
나는 그 불을 사진으로 찍어 재현한테 보내지 않았다. 직접 보라고 남겨 뒀다.
토요일 오후에 누나가 송편 한 접시를 들고 늦여름에 왔다. 떡집에서 산 게 아니라 누나가 빚은 거라 모양이 다 달랐다. 누나는 계산대에 접시를 놓고, 편지 얘기는 하지 않았다.
“고맙다고는 안 한다.”
“나도 미안하다고는 안 들을 거야.”
“그래.”
누나가 송편 하나를 집어 먹었다. 나도 하나 먹었다. 깨가 한쪽으로 몰려 있어서 첫 입은 싱겁고 둘째 입은 달았다. 우리는 그걸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했고, 그게 열두 해 만에 누나와 한 제일 긴 대화였다.
*
일요일 저녁 일곱 시에 나는 늦여름 문에 종이를 붙였다. 「오늘 일찍 닫습니다」.
여섯 시 이십 분 동대구발 버스는 여덟 시 십 분에 오목에 선다. 나는 일곱 시 오십 분부터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떠나는 사람은 많고 오는 사람은 없었다. 해가 지고 나서도 정류장 양철 지붕은 낮의 열기를 뱉어 내고 있었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면 셔츠 너머로 뜨끈한 게 올라왔다. 늦매미가 가로등 기둥에 붙어 한 번 울고 그쳤다.
여덟 시 십이 분에 버스가 왔다.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하나와 학생 둘이 내렸고, 내린 사람은 그게 다였다.
그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 위에 미리 보기가 떴다.
차 놓쳤어. 줄이 길었어. 택시 탔어. 여덟 시 반쯤.
나는 문자를 열지 않았다. 열면 읽음 표시가 뜨고, 읽음 표시가 뜨면 답장을 해야 한다.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열두 해 전에도 그랬다.
여덟 시 삼십사 분에 택시 한 대가 중앙로로 들어왔다. 택시는 천천히 왔다. 불 켜진 칸마다 속도를 줄이는 것 같았다. 쌀집, 다방, 양품점, 이용원, 약국, 전파사, 떡집, 사진관. 택시 뒷유리창에 스물여섯 개 불빛이 차례로 지나갔다.
택시가 늦여름 앞에 섰고 재현이 내렸다.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뭐라고 했고, 재현이 웃었다.
“얼마 나왔어?”
“십일만 사천 원.”
“미쳤네.”
“기사님이 물었어. 급한 일이냐고. 약속이 있다고 했어. 몇 시 약속이냐길래 열두 해 됐다고 했더니, 그럼 오늘 좀 늦어도 되겠네, 그러시더라.”
“뭐라고 했어?”
“오늘은 안 된다고.”
재현이 배낭을 멘 채로 중앙로를 돌아봤다. 불 켜진 칸들을 하나씩 세는 게 입술 모양으로 보였다. 스물여섯에서 입술이 멈췄다.
“문자 봤어?”
“봤어.”
“읽음 표시 안 떴는데.”
“안 열고 봤어.”
“왜?”
“열면 답장해야 되니까.”
재현이 웃으면서 휴대폰을 꺼내 내 앞에 흔들었다.
“지금 해. 답장.”
나는 휴대폰을 열고 문자를 눌렀고, 읽음 표시가 떴다. 재현이 바로 옆에 서 있는데도 나는 자판을 눌렀다. 손가락이 두 번 틀렸다. 세 번째에 보냈다.
왔어?
재현 손에서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재현은 화면을 보고, 나를 보고, 입으로 대답했다.
“왔어.”
문에 붙인 종이는 떼지 않았다. 오늘 일찍 닫는다고 써 붙여 놓고, 우리는 그날 늦여름 불을 열한 시가 넘도록 끄지 않았다. 재현이 가져온 배낭 속 장부 넉 권도 계산대 위에서 그 불을 같이 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