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38자) · 선우 · 2027년 8월 27일
제철
우리는 여름을 늦게 배웠다 · 윤재하
합판 벽은 작년 시월 셋째 주에 뜯었다.
재현이 장도리를 들고 첫 장을 뜯던 날 누나가 와서 허가 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소리를 질렀다. 재현이 내력벽 아니라고 하자 누나가 그걸 니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고, 재현은 철물점 아들이라고 대답했다. 합판 뒤에는 벽돌 대신 각목이 서 있었다. 열여덟 해 전 한 칸을 둘로 나눌 때 아저씨가 급하게 세운 각목이었다. 먼지가 사흘을 날렸다. 채옥순 이모는 국수를 들고 와서 구멍 난 벽을 들여다보더니, 인자 진짜 결혼이네, 하고 갔다.
그 뒤로 열 달이 지났다. 지금 가게는 길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앞쪽이 서가고, 가운데 「읽다 만 책」 매대를 지나면 뒤쪽에 나사와 경첩과 문고리 서랍이 천장까지 있다. 손님은 책을 사러 왔다가 나사를 사 가고, 나사를 사러 왔다가 책을 본다. 오목에서 그 둘을 같이 사는 사람은 한 달에 서넛이다. 서넛이면 충분하다고 재현이 말했고, 나는 그 말을 계산대 옆에 적어 붙였다.
간판은 이월에 새로 달았다. 세탁소 간판의 파란색은 이번에도 떼지 않았다. 그 위에 「늦여름」을 쓰고, 그 밑에 「책과 철물」 한 줄을 더 넣었다. 간판집 기사가 두 줄로 하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넣은 줄인데, 재현은 그게 자기가 쓴 카피 가운데 제일 짧고 제일 정직하다고 했다.
*
팔월 이십칠일 금요일 새벽 다섯 시, 나는 이 층에서 가방을 쌌다.
사흘 치 옷, 칫솔, 서점 명함 스무 장. 서울 동네서점 모임에서 지방 작은 서점 이야기를 해 달라는 연락이 칠월에 왔다. 누가 소개했느냐고 물었더니 작년 추석 중앙로 사진을 본 사진관 손녀라고 했다. 그 사진 한 장에 중앙로 스물여섯 칸이 한 줄로 찍혀 있었고, 맨 끝에 흐릿하게 늦여름 간판이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 서점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안 썼다고, 손녀가 굳이 덧붙였다. 나는 서른한 살에 처음으로 서울에 간다.
창 아래 선풍기가 고개를 저었다. 회전이 고장 난 지 오 년 된 선풍기였는데, 재현이 부품이 없어서 삼 년은 걸릴 거라고 해 놓고 지난겨울에 열 달 만에 고쳤다. 대구 중고상에서 같은 모델 폐품을 찾아내 기어 하나를 빼 왔다고 했다. 바람이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왔다. 새벽인데도 방은 더웠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잠깐 시원했다가 다시 더웠다. 그 규칙이 이 방에서 열세 번째 여름을 돌고 있었다.
선반 맨 위 칸, 발돋움해야 손이 닿는 자리에 외상장부 다섯 권이 꽂혀 있다. 넉 권은 아저씨 글씨고 한 권은 재현 글씨다. 거기 올려 둔 건 나였다. 꺼내려면 한 번 더 생각하라고.
가방을 들고 내려오다가 계산대 아래 서랍을 열었다. 영수증 뭉치 밑에 작년 사월의 폐업 신고서가 아직 있었다. 사유 칸에는 작년 시월, 벽을 뜯던 날 밤에 내가 적은 네 글자가 들어가 있다. 업종 변경. 폐업이 아니니 낼 필요가 없는 종이가 됐다. 버리지는 않았다. 다섯 달 동안 아침마다 열었다 닫은 종이라서, 버리면 그 다섯 달이 없던 일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서랍을 닫았다. 닫는 소리가 작았다.
*
전날 밤 나는 서울에 안 가겠다고 했다.
가게 셔터를 반쯤 내리고 가운데 매대에 앉아 있을 때였다. 재현이 내 가방에 칫솔을 넣다가 손을 멈췄다.
“왜?”
“사흘이나 비우면 안 돼. 금요일 저녁에 여기 불이 꺼지면, 사람들이 여기 닫는 데구나 하고 생각해.”
“내가 켜 놓을게.”
“너는 철물 쪽이잖아.”
“벽 뜯었잖아. 한 가게야.”
나는 매대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열세 해 동안 나는 이 읍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대구 병원이 제일 멀리 간 데였다. 서울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 밖에 낸 건 작년 추석 도상철 앞에서가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속으로만 했다.
“너 나 보내고 싶어?”
“응.”
재현이 너무 빨리 대답해서 나는 화가 났다.
“왜?”
“네가 안 간 사람으로만 살까 봐. 누나가 너 대신 정했고, 나는 너한테 같이 가자는 말을 지우개로 지웠고, 도상철은 너한테 삼천을 들이밀면서 네 인생 네가 정하라고 했어. 다들 너 대신 정했어. 이번엔 네가 정해. 가든지, 안 가든지. 근데 무서워서 안 가는 거면, 그건 내가 싫어.”
선풍기가 이 층에서 돌아가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나는 한참 대답을 안 했다. 재현도 재촉하지 않았다. 재현은 칫솔을 가방 옆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갔다가 도로 열었다. 내가 안 간다고 하면 다시 꺼낼 수 있게.
“첫차 몇 시지?”
“여섯 시 사십 분.”
“깨워 줘.”
재현이 지퍼를 끝까지 잠갔다.
*
일 년 동안 있었던 일은 대개 신문 두 줄로 끝났다.
도상철 전 번영회장은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로 일심에서 징역 열 달에 집행유예 이 년을 받았다. 매매 예약 일곱 건은 주인들이 소송을 걸어 다섯 건이 무효가 됐고, 두 건은 주인들이 그냥 도상철에게 팔았다. 채옥순 이모는 그 두 집 사람들이 틀린 것도 아니라고 했다. 대구에 딸이 있는 사람은 대구에 가야 한다고. 도상철은 번영회장을 내려놓았고, 지금 명함은 오목부동산 한 장뿐이다.
폐교 생활센터는 지난달 착공했다. 소아과는 내년 봄에 연다. 원래보다 한 해 늦다. 그 한 해 동안 도윤이는 지난겨울 새벽에 한 번 대구 응급실에 갔다. 그날 운전은 재현이 했다. 새벽 세 시였고 영하 십 도였다. 누나 차 앞유리에 성에가 두껍게 껴서, 재현이 철물점에서 들고 나온 헤라로 삼 분 동안 긁었다. 그 삼 분 동안 뒷자리에서 도윤이가 쌕쌕거리는 소리가 닫힌 차창 너머로도 들렸다고 재현이 나중에 말했다. 누나는 뒷자리에서 도윤이 입에 흡입기를 물리고 있었고, 재현은 한 시간 이십 분 만에 대구에 닿았다. 돌아오는 길에 누나가 재현한테 결론부터 말한다며 한 마디를 했는데, 재현은 끝내 나한테 그 말을 전해 주지 않았다.
허정자 약사님은 시월 일일에 약국을 닫고 부산에 갔다. 봄에 부산 아들 후배라는 젊은 약사가 그 칸을 얻어 다시 약국을 열었다. 밤 여덟 시에 불이 켜지는 동네라서 왔다고 했다. 사탕은 한 알씩만 넣는다.
*
여섯 시 사십 분 첫차 정류장에는 할머니 둘 대신 도상철이 앉아 있었다.
대구 법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민사 소송 한 건이 남았다고. 그는 나를 보고 일어섰다가 도로 앉았다. 재현이 내 가방을 들고 뒤따라왔다. 우리 셋이 양철 지붕 밑에 섰다. 여름 새벽인데 지붕은 벌써 햇볕을 받아 뜨거워지고 있었고, 도상철 와이셔츠 겨드랑이에 땀이 번져 있었다.
“서울 가나.”
“사흘이요.”
“잘됐네.”
그는 그 말만 하고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버스가 모퉁이에 보일 때쯤 재현을 봤다.
“동생, 철물점에 육 밀리 앵커 볼트 있나?”
“있어요.”
“돌아와서 한 봉지 사러 가께. 돈은.”
그가 말을 멈췄다. 재현이 대신 말했다.
“이름 적으시면 돼요.”
도상철은 웃지 않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작년 이맘때 이 사람은 명함 네 장을 부채처럼 펴 들고 재현 앞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손에 소송 서류 봉투 하나만 들고 있었다. 버스가 섰고 그가 먼저 탔다. 맨 뒷자리로 가서 창밖을 봤다.
나는 버스 계단에 한 발을 올리고 재현을 돌아봤다. 열세 해 전 이 정류장에서 재현은 나한테 인사를 하지 않았고, 작년 이맘때 재현은 인사를 하고 갔다. 이번에는 내가 가는 쪽이었다. 입안에서 한 문장이 돌았다. 공책에서 뜯은 종이 한 장, 울퉁불퉁한 가장자리, 볼펜 한 줄과 지운 두 줄.
“재현아.”
“응.”
“나 서울 가면 너는 여기 있을 거야?”
재현이 가방을 내 손에 쥐여 줬고, 그때 손끝이 닿았는데 둘 다 차갑지 않았다.
“응. 여기 있을게.”
열세 해 걸린 대답이었다. 재현은 그 말을 하는 데 일 초도 안 걸렸다. 버스 기사가 문 닫는다고 했고,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보니 재현이 정류장 지붕 밑에서 손을 들고 있었다. 나도 손을 들었다. 열아홉 살 때는 둘 다 못 들던 손이었다.
*
선우가 없는 첫 밤, 나는 혼자 가게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
금요일 밤 아홉 시였다. 서가 쪽 형광등과 철물 쪽 형광등이 긴 가게를 끝까지 비추고 있었고, 합판 벽이 서 있던 자리 바닥에는 각목 자국이 네 줄 남아 있었다. 거기를 밟을 때마다 나는 조금 천천히 걸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는데, 누나가 만든 단체방이었다. 누나는 여덟 시마다 사진을 올린다. 오늘 사진은 세 장이었다. 중앙로 서른한 칸, 이웃 새마을면 새마을길 열다섯 칸, 장터면 장터길 열두 칸. 두 면이 봄부터 금요일 저녁 여덟 시에 불을 켠다. 누나 글이 붙어 있었다.
「결론, 오늘 쉰여덟. 이유는 세 개인데 귀찮아서 안 씀.」
그 밑으로 선우 문자가 따로 와 있었다.
「서울은 여덟 시에 불이 너무 많아서 못 세겠어.」
나는 웃으면서 답장을 썼다. 읽음 표시가 바로 떴다.
「세지 마, 여기서 세고 있을게.」
아홉 시 십 분에 나는 일어서서 안쪽 벽의 열쇠 앞으로 갔다. 열두 개 가운데 열한 번째 꼬리표는 이제 뜻이 없었다. 옆집이 없어졌으니까. 「밤에 불 꺼져 있으면 열어 볼 것. 쟈 혼자다.」 볼펜에 눌려 찢어진 「혼자」의 받침을 엄지로 한 번 쓸었다. 나는 그 열쇠를 못에서 떼어 아버지 열쇠고리에 끼웠다. 일곱 개였던 열쇠가 여덟 개가 됐다. 이 열쇠로 열 문은 더 없는데, 그래도 들고 다니기로 했다.
그다음에 철물 쪽 불부터 끄고, 서가 쪽으로 걸어가면서 하나씩 껐다. 마지막 스위치는 계산대 옆에 있었다. 선우가 늘 끄던 자리였다.
스위치에 손가락을 얹고 창밖을 봤다. 길 건너 여관 오목장 이 층, 창가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커튼이 반쯤 열려 있었고, 누가 창틀에 팔을 얹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얼굴은 안 보였고 누구인지도 몰랐다. 여름에 이 읍에 들른 사람이거나, 누군가를 보러 내려왔다가 들어가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쉰여덟이라는 숫자를 나는 한참 봤다. 작년 이맘때 여관 창에서 센 불은 셋이었다. 셋에서 쉰여덟까지 가는 동안 나는 이천만 원을 잃었고, 선우는 숨어 사는 걸 잃었다. 누나는 담당 자리를, 채옥순 이모는 대구 방을, 도윤이는 소아과 한 해를 잃었다. 그 값을 치르고 켠 불들이었다. 공짜로 켜진 불은 하나도 없었다.
작년 팔월, 나는 저 창가에서 이 불이 꺼지는 걸 세 시간 동안 봤다. 불이 꺼지고 나서야 이 층에 불이 들어오는 것도 봤다. 그때 나는 이 가게의 바깥에 있었다.
나는 스위치를 내렸다. 가게가 어두워졌고, 유리창에 가로등 빛이 비쳤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잠깐 서 있다가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안에서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