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33자) · 재현 · 9월 19일

여덟 시

우리는 여름을 늦게 배웠다 · 윤재하

장부의 이름 마흔셋을 찾아다니는 데 토요일 하루가 다 들었다.

선우가 가게를 오후 내내 닫았다. 문에 「오늘은 외근」이라고 써 붙였는데, 서점 주인이 외근을 어디로 가느냐고 국수집 이모가 세 번 물었다. 나는 장부 넉 권을 옆구리에 끼었고 선우는 물병 두 개와 읍내 지도를 들었다. 마흔셋 가운데 여섯은 이미 돌아가셨고, 넷은 대구와 부산의 자식 집으로 갔고, 셋은 주소가 비어 있었다. 남은 서른을 우리는 걸어서 찾아갔다.

돈 얘기는 하지 않았다. 문 앞에서 나는 장부를 펴 그 집 줄을 보여 드렸고, 선우가 한 문장만 말했다. 수요일 저녁 여덟 시에 중앙로에 불 좀 켜 주세요. 제 가게든, 빈 칸이든, 한 시간만.

대부분은 거절했고, 이유는 가지가지였다. 무릎이 아파서, 밤눈이 어두워서, 도 회장하고 척질 일 없어서. 신발 수선 하던 강씨 할아버지는 수도꼭지 팔천 원을 갚겠다며 지갑을 열었다가, 돈이 아니라는 말에 오히려 화를 냈다.

“빚을 갚으라 캐야 갚지, 불을 켜라 카믄 우째 켜노. 나는 그런 거 안 배웠다.”

선우가 지도를 접었다 폈다. 그 집 마당은 해가 지는데도 달궈진 시멘트에서 열이 올라와 발목까지 후끈했고, 담 너머로 누가 고등어를 굽는 냄새가 넘어왔다. 강씨 할아버지 개가 우리를 향해 두 번 짖고 그쳤다.

“할아버지, 그럼 제가 배워 드릴게요.”

선우가 말했다.

“스위치 올리시면 돼요.”

할아버지가 선우를 한참 보더니, 웃지도 않고 대문을 닫았다. 닫힌 대문 너머에서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저 책방 아는 말을 참 밉게 한다.

양복점을 하다 접은 황 영감 댁에서는 할머니가 문을 열어 주더니 장부 줄을 보고 깔깔 웃었다. 2017년 칠월, 사다리 하나 대여, 영 원. 영감이 그 사다리로 지붕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반년을 누웠다고 했다.

“그 사다리 값을 아직 안 갚았다꼬? 그 사다리 때문에 내가 반년 병수발을 했는데, 철물점이 나한테 갚아야지.”

나는 할머니한테 머리를 숙였다. 할머니는 수요일 여덟 시에 양복점 칸 불을 켜 주되, 영감은 절대 사다리에 못 올라가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형광등은 내가 갈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선우가 물었다.

“몇 집이야?”

“여덟. 아마.”

“서른에 여덟.”

“광고였으면 대박이야. 반응률 이십칠 퍼센트.”

선우가 물병으로 내 팔을 한 대 쳤다. 차가운 물병이 닿은 자리만 잠깐 시원했다.

*

월요일 오전, 나는 상속인 자격으로 아버지 이름으로 낸 서류를 열람하겠다는 정보공개 청구서를 들고 읍사무소에 갔다. 누나가 사흘 전에 형광펜으로 알려 준 길이었다.

창구 앞에 도상철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창구 유리에 팔꿈치를 걸치고 누나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목소리가 민원실 전체에 들리게 컸다.

“백 주무관, 군에 민원 하나 넣었다. 이해충돌. 담당 공무원 동생이 부지 안 임차인이고, 그 동생하고 붙어 다니는 사람이 소유자다. 그 둘이 뭔 사이인지는 읍내가 다 안다. 그 누나가 실사를 본다? 이거는 공정하지가 않지.”

민원실에 있던 사람 넷이 동시에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다. 누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볼펜 뚜껑을 닫았다.

“도 회장님.”

“와.”

“실사는 제가 안 봅니다. 오늘부터.”

누나가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창구 위에 놓았다. 이해충돌 자진 신고서였다. 날짜는 오늘이었고 결재란에 이미 김태만이라는 이름과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아침에 군청에 먼저 다녀온 모양이었다.

“회장님 민원보다 제 신고가 두 시간 빠릅니다. 담당은 군청 사업팀이 직접 봅니다. 실사도요.”

도상철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그는 명함 지갑을 꺼냈다. 어느 명함을 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네 장을 손가락 사이에서 넘기다가, 결국 한 장도 내지 않고 도로 넣었다.

“누나 인사 고과는 우짤라꼬.”

“그것도 제가 정합니다.”

도상철이 나가면서 나를 봤다. 어깨를 두드리지 않았다. 그게 처음이었다.

누나가 번호표도 안 뽑은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내 청구서를 받아 접수 도장을 찍고, 화면을 몇 번 누르더니 프린터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위임장 사본과 인감증명서 사본이었다. 인감증명서 발급일은 2019년 삼월이었다. 누가 그 위에 날짜를 고쳐 쓴 흔적은 없었다. 칠 년 묵은 증명서를 그냥 쓴 거였다.

“이건 니가 받을 권리가 있는 서류다. 내가 주는 기 아니다. 알았제?”

“네.”

“그라고.”

누나가 창구 유리 너머로 나를 봤다. 부은 눈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선우한테 말하지 마라. 내가 이거 줬다고. 걔는 아직 나 미워하는 중이다. 방해하지 마라.”

*

그날 오후 김태만 팀장이 혼자 중앙로를 걸었다. 사전 조사 두 번째라고 했다. 그는 불 켜진 칸 앞에서마다 멈춰 사진을 찍었고, 철물점 앞에서 나와 마주쳤다.

“숫자가 늘었네요.”

“열하나예요.”

“열하나든 서른하나든, 저는 소아과를 올해 안에 세워야 합니다.”

“폐교는요? 군 땅이잖아요.”

김 팀장이 휴대폰을 내렸다. 그 얼굴에 짜증은 없었다. 그 질문을 이미 여러 번 스스로 해 본 사람의 얼굴이었다.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됩니다. 기금은 올해 안에 집행 계획이 서면 되는데, 부지 매입이 제일 빠르고 확실합니다. 설계 착수만으로 집행을 인정받은 사례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제가 도에 가서 머리를 숙여야 되는 일이고요.”

“그럼 머리 숙이시면 되잖아요.”

“그러면 개원이 한 해 늦습니다. 그 한 해 동안 밤에 숨 못 쉬는 애들 앞에서 누가 머리를 숙입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이십구일 화요일에 군청에서 주민 공청회가 있습니다. 틀린 걸 찾아오셨으면 거기서 말씀하십시오. 저도 틀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제가 맞습니다.”

*

화요일 아침 파출소 경위는 고소장을 두 번 읽고 나서 안경을 벗었다.

“도 회장을요? 그 양반 라이온스 회장도 하고 향우회도 하고…….”

“알아요.”

나는 명함 네 장을 책상 위에 나란히 놓았다.

“다 받았어요.”

경위가 명함을 보다가 푸흡 웃었고, 웃은 게 미안했는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나는 그 옆에 위임장 사본, 인감증명서 사본, 대구 병원에서 떼 온 중환자실 입원 확인서를 놓았다. 오월 이십구일부터 유월 십일일까지. 위임장의 유월 이일은 그 한가운데였다.

“이거 접수되면 도 회장이 가만히 안 있을 낀데요.”

“지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요.”

경위가 고소장 접수증에 도장을 찍었다. 인주가 덜 말라 번졌다. 파출소 선풍기가 그 종이를 한 번 들썩였다가 내려놓았다.

*

수요일 오후, 도상철이 국수집에 들어가는 걸 나는 철물점 유리 너머로 봤다.

손님 없는 시간이었다. 채옥순 이모가 면을 삶던 솥 앞에서 돌아섰고, 도상철은 늘 앉던 상석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말했다. 문이 열려 있어서 목소리가 합판 벽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누님, 인자 날 다 됐다. 서약서에 도장 찍었으니까 월말에 불 끄고 대구 가소. 오백 받은 거 잊지 마시고.”

나는 공구를 내려놓고 국수집 문간까지 갔다. 선우도 늦여름에서 나와 있었다.

이모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누런 봉투 두 개를 꺼냈다. 은행 봉투였다. 이모는 그걸 테이블에 놓고, 한 장씩 셌다. 오만 원짜리였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가며, 스무 장을 세고 한 봉투를 닫고, 다시 스무 장을 세고 다른 봉투를 닫았다. 그러고는 처음부터 한 번 더 셌다.

“천만 원이다. 오백의 두 배.”

도상철이 봉투를 내려다봤다.

“누님, 이거 대구 방 보증금 아이가.”

“맞다.”

“이거 주면 대구 못 간다.”

“안 간다.”

이모가 봉투를 도상철 쪽으로 밀었다.

“토요일 저녁 여덟 시에 내가 솥 불 끄고 나와서 봤다. 쌀집에 할매 앉아 있고, 다방에 김씨 고기 걸려 있고, 이용원 등 돌아가고, 저 끝에 떡집 방아 소리 나고. 오 년 만에 이 줄이 한 번에 켜진 거를 봤다. 내가 불 끄고 가믄 이 줄이 이빨 빠진다. 이빨 빠진 입으로 국수 먹는 거 봤나? 다 샌다.”

“누님, 무릎은.”

“무릎은 원래 아프다. 대구 가도 아프다.”

도상철이 봉투를 집었다. 한참 쥐고 있다가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나가면서 그는 곱빼기를 달라고 하지 않았고, 이모도 보통을 권하지 않았다.

이모가 우리를 돌아봤다. 문간에 서 있던 선우와 나를.

“뭘 보노. 들어와서 국수나 무라. 둘 다 보통이다.”

우리는 보통을 먹었다. 이모는 우리 앞에 그릇을 놓고, 부엌으로 들어가 한참 나오지 않았다. 육수 끓는 소리 사이로 이모가 코를 푸는 소리가 두 번 났다. 국수는 조금 짰다.

*

그날 저녁 여덟 시, 나는 여관 창가가 아니라 중앙로 한가운데 서서 불을 셌다.

열하나였던 불에 여덟이 더 켜져 있었다. 강씨 할아버지 신발 수선 칸에도 백열전구가 매달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우리 쪽을 한 번도 안 봤다. 스위치를 올리는 건 배우지 않아도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옛 양복점 칸에서는 황 영감 할머니가 재단 가위로 실밥을 뜯고 있었고, 영감은 그 옆에서 사다리 대신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형광등 네 개를 가는 동안 할머니는 내가 사다리에 올라갈 때마다 영감 쪽을 한 번씩 노려봤다. 불 켜진 칸을 끝까지 세니 열아홉이었다.

열하나에서 열아홉까지 가는 데 걸린 건 닷새였고, 서른 집 문을 두드린 발바닥이었고, 채옥순 이모의 대구 방 보증금이었다. 나는 그 값을 하나도 내지 않았다. 고친 것뿐이었다.

선우가 옆에 와서 섰다.

“내일 가지?”

“아침 첫차. 전세 만기가 토요일이야. 방 빼고, 짐 부치고, 대출은 보증금에서 까고.”

“그럼 남는 건?”

“짐.”

“어디로 부치는데?”

나는 대답 대신 선우를 봤다. 선우가 먼저 눈을 돌렸다. 가로등 아래서 선우 귀가 빨갰다.

“일요일 여섯 시 이십 분 차로 올게.”

“그거 자주 결행돼.”

“그럼 다음 차.”

“다음 차는 없어.”

“그럼 걸어올게.”

“대구에서?”

“응.”

“미쳤네.”

선우가 웃다가, 웃음을 거두고 나를 봤다. 중앙로 열아홉 칸 불빛이 선우 얼굴 한쪽에만 닿아 있었다.

“갔다 와. 이번엔 인사하고 가.”

열두 해 전 구월 첫 주, 나는 그 인사를 하지 않고 떠났다. 나는 선우 앞으로 한 걸음 가서 인사를 했다. 입으로 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떡집 방아 소리가 멈췄고, 전파사 라디오가 트로트를 한 소절 틀었고, 국수집 이모가 셔터를 내리다 말고 우리를 봤다. 이모는 셔터를 끝까지 내렸다.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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