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08자) · 재현 · 9월 13일

같이 가자

우리는 여름을 늦게 배웠다 · 윤재하

일요일 여섯 시, 늦여름이 문을 닫는 시각에 선주 누나가 봉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나는 계산대 옆 의자에 앉아 선우가 영수증 종이를 가는 걸 보고 있었다. 도윤이가 누나 뒤에서 뛰어나와 곧장 합판 벽 옆문으로 달려갔다. 철물점에 가면 줄자를 하나 더 얻을 수 있다는 걸 이제 아는 아이였다. 누나는 도윤이를 붙잡지 않았다. 봉투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봉투는 누렇게 바래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 테이프를 붙였다 뗀 자국이 있었고, 받는 사람 칸에 백선우, 보내는 사람 칸에 오재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열아홉 살 내 글씨였다. 오목 문구점에 봉투가 두 종류밖에 없어서 덜 촌스러운 쪽을 고르느라 십 분을 서 있었던 그 봉투였다.

“결론부터 말할게.”

누나 목소리가 평소보다 느렸다.

“이 편지, 내가 갖고 있었다. 열두 해.”

선우가 영수증 종이를 떨어뜨렸다. 종이 롤이 계산대 밑으로 굴러가 합판 벽에 부딪혀 멈췄다. 아무도 그걸 줍지 않았다.

“이유는 세 개다.”

누나는 그렇게 시작했는데, 첫 번째 이유를 말하는 데 한참 걸렸다.

“그해 팔월에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있었다. 나는 대구에서 사 학년 이 학기 등록금을 못 내고 있었고, 엄마는 없었고, 세탁소에 맡겨 놓은 남의 옷이 이백 벌이었다. 이십오일에 옷 가지러 왔다가 우편함에서 이걸 꺼냈다. 니 이름이 적혀 있었고, 보낸 사람이 재현이였다.”

“누나가 뜯었어?”

“뜯었다. 내가 뜯었다.”

누나가 봉투를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손을 떼는 데 한 번 더 힘이 드는 것 같았다.

“한 줄이더라. 나 서울 가면 너는 여기 있을 거야. 그 밑에 지운 게 있었다. 불빛에 비추니까 보이더라. 같이 가자. 안 가면 나도 안 갈게.”

선우가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못했다. 열아홉 살이 지우개로 지운 두 줄을 열두 해 동안 다른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거 읽으면 니가 간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재현이가 안 간다고 생각했다. 둘 중 뭐가 됐든, 그러면 세탁소 볼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 병원비 댈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내 가방에 넣었다. 대구 가는 버스에서 열 번은 돌려주려고 꺼냈다가 열 번 다시 넣었다. 그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선우 목소리가 낮았다. 나는 그 목소리를 열두 해 만에 처음 들었다. 화가 아니었다. 화 밑에 오래 깔려 있던 목소리였다.

“두 번째는, 그다음 해에는 돌려주기가 더 어려웠다. 그다음 해에는 더. 세 번째는 없다. 세 개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랬다.”

도윤이가 벽 너머에서 줄자를 쭉 빼는 소리를 냈다. 철컥, 하고 다시 감기는 소리가 났다.

*

“누나가 내 열두 해를 정했어.”

선우가 계산대에서 나왔다. 좁은 통로에서 누나와 한 걸음 거리에 섰다. 누나보다 선우가 머리 하나가 컸다. 누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 내가 정했다.”

“물어보지도 않고.”

“물어봤으면 니가 갔을 끼다.”

“그건 내가 정할 일이었어.”

“니가 여기 있어서 아버지가 일곱 해를 더 사셨다. 그것도 니 열두 해다, 선우야. 나는 그걸 안 바꾼다. 미안한 거랑 후회하는 거는 다른 기다.”

선우 어깨가 안으로 말렸다. 오른손이 왼 손목을 쥐었는데, 손등에 핏줄이 섰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열두 해 동안 쌓인 말이 한꺼번에 나오려다 문턱에 걸린 것 같았다.

“나가.”

“선우야.”

“오늘은 나가, 누나.”

도윤이가 줄자를 들고 벽 옆문에 서 있었다. 누나 얼굴을 보더니 줄자를 떨어뜨렸다.

“엄마 왜 울어?”

누나는 울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본 얼굴에는 눈물이 없었다. 누나는 도윤이 손을 잡았다. 나가다가 문 앞에서 나를 돌아봤다.

“재현아. 니한테도 미안하다. 니한테는 후회도 한다.”

종이 울렸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종은 한참 떨렸다.

*

선우는 봉투를 바로 열지 않았다.

계산대 스탠드를 켜고, 봉투를 불빛 쪽으로 기울이고, 안에 든 종이를 꺼냈다. 공책에서 뜯은 종이 한 장이었고 뜯은 자리가 울퉁불퉁했다. 스탠드의 노란 빛이 종이를 뒤에서 비추자, 볼펜으로 쓴 한 줄 아래로 연필 자국 두 줄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지우개로 문지른 자리는 종이 결이 일어나 있어서 빛이 거기서만 조금 더 뿌옇게 번졌다.

나 서울 가면 너는 여기 있을 거야?

선우가 그 한 줄을 오래 봤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는데 소리는 없었다. 그러다 종이를 조금 더 기울였다. 지운 두 줄이 빛에 걸렸다.

“이거 쓰는 데 얼마나 걸렸어?”

“한 달. 썼다 지웠다 했어.”

“생각보다 짧네.”

“그때는 그게 긴 줄 알았어.”

선우가 웃었다. 웃음 끝에 숨이 한 번 걸렸다.

“재현아. 그때 이걸 읽었으면 나 갔을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모른다는 말은 하기 싫었고, 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안 갔을 거야.”

선우가 대신 대답했다.

“아버지 두고 못 갔을 거야. 근데 대답은 했을 거야. 그게 달라. 안 가도 대답은 할 수 있었어.”

선우가 종이를 계산대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소리가 났고, 서랍장 여는 소리가 났다. 내려온 선우 손에 봉투가 하나 더 들려 있었다. 주소 칸이 비어 있는 봉투였다.

“이건 내 거야. 그해 가을에 썼어. 너 서울 갔다는 거 듣고 사흘 걸려서. 네 편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뭐에 대한 답장인지도 모르고 썼어. 보낼 데가 없어서 겨울 이불 밑에 넣어 뒀어.”

나는 봉투를 받았다. 안에 든 종이도 한 장이었다.

나 여기 있어. 어디 있는지만 알려 줘.

열두 해 전 이 두 장이 같은 읍 안에 있었다. 한 장은 누나 가방에, 한 장은 겨울 이불 밑에. 둘 사이 거리는 버스로 한 시간 오십 분이었고, 서랍 하나였다.

나는 두 장을 계산대 위에 나란히 놓았다. 스탠드 불빛이 두 장을 같이 비췄다. 물음표 하나와 마침표 하나였다.

“나 여기 있어.”

내가 말했다. 선우 글씨를 소리 내어 읽은 건지, 내 말을 한 건지 나도 구분이 안 됐다. 선우가 손바닥으로 눈을 눌렀다.

그날 밤 우리는 셔터를 반쯤 내린 늦여름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에어컨을 끄자 가게 안에 낮의 열기가 천천히 돌아왔고, 서가 사이로 종이 냄새가 짙어졌다. 선우가 천장을 보면서 물었다.

“누나 미워해도 돼?”

“응.”

“얼마나?”

“내일까지는 실컷. 모레쯤부터 조금씩 덜.”

“왜 모레야?”

“모레가 화요일이잖아. 이용원 여는 날. 영감님한테 머리 자르면서 미워하면 옆머리가 짧아져.”

선우가 웃다가 옆으로 돌아누웠다. 내 셔츠 소매를 손가락으로 한 번 잡았다가 놓았다. 그 손가락이 떨리고 있어서 나는 모른 척했다. 열두 해 전 나는 모른 척을 잘못된 데서 했고, 이번에는 맞는 데서 하고 싶었다.

*

화요일 아침에 나는 읍사무소 민원 창구에 앉았다. 번호표를 뽑자마자 불렸다.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누나는 눈이 부어 있었다. 화장으로 가리려고 한 흔적이 있었는데 잘 안 가려졌다.

“누나가 정할 일 아니었어요.”

“안다.”

“이번에도 누나가 정하실 거예요? 도윤이 숨하고 도 사장 돈 중에?”

누나가 볼펜을 내려놨다.

“니가 뭘 아노. 도윤이가 새벽 세 시에 쌕쌕거리는 소리를 니가 들어 봤나. 흡입기를 입에 물리고 대구까지 한 시간 반을 운전하는 동안, 백미러로 애 입술 색을 보는 게 어떤 건지 아나.”

“몰라요.”

“그럼 말하지 마라.”

“그래서 위임장 사본 달라고 온 거예요. 도 사장 돈이 도윤이 숨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도 사장 돈이 그냥 도 사장 돈이라는 걸 보여 드리려고요.”

누나가 한참 나를 봤다.

“사본은 못 준다. 아직은.”

“아직은이요?”

누나는 대답 대신 서류철 하나를 창구 위로 밀었다. 화령군 공유재산 목록이었다. 한 줄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구 오목초등학교, 대지 오천이백 제곱미터, 군 소유, 용도 미정.

“폐교는 군 땅이다. 살 필요가 없다. 김 팀장한테 내가 봄에 말했다. 거기는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돼서 올해 안에 안 된다 카더라. 기금 기한 때문에.”

“그럼 된다는 말이에요, 안 된다는 말이에요?”

“결론. 나는 모른다. 이유는 하나다. 나 인제 이 사업에서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누나가 서류철을 도로 가져갔다. 형광펜 줄이 내 눈에 남았다. 열두 해 전 폐교 운동장 철봉에서 선우 이마에 이마를 댔던 그 땅이었다.

*

그 주에 나는 세 칸을 더 고쳤다. 장부에 라디오 수리 부품 값이 적혀 있던 전파사 박 영감 칸, 추석을 앞두고 방아를 돌리겠다는 떡집 아주머니 칸. 둘 다 중앙로 서쪽이었다. 전파사는 차단기만 올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올리자마자 선반 위 라디오 열두 대가 한꺼번에 켜지면서 트로트가 제각각 다른 주파수로 쏟아졌다. 박 영감은 귀를 막기는커녕 눈을 감고 박자를 맞췄다. 열두 대 중 아홉 대가 살아 있다며, 삼 년 만에 듣는 제일 좋은 합창이라고 했다. 떡집 방앗간 모터는 베어링이 나가 있어서 대구에서 부품을 받아 오는 데 이틀이 걸렸다.

수요일에 방앗간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구두 한 켤레가 내 눈앞에 섰다. 도상철이었다. 그는 떡집 아주머니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네고, 나를 내려다봤다.

“동생, 요새 바쁘네. 불 켜 주는 봉사하나?”

“고치는 거예요. 철물점이 원래 하는 일이요.”

“고친 거는 또 부서진다. 촌 가게는 원래 그렇다. 형님도 평생 그거 고치다 끝났다.”

그는 떡집 아주머니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나갔다. 아주머니가 명함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가, 한참 뒤에 꺼내서 떡 찌는 솥 아궁이 옆에 올려놓았다. 불쏘시개 자리였다.

금요일 저녁 여덟 시에 나는 불을 세러 중앙로를 걸었다.

서쪽 끝, 이 년 전에 닫은 옛 문구점 유리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내가 켠 불이 아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도윤이가 사과 상자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철물점 반값 줄자 다섯 개를 줄 세워 놓고 있었다. 상자 옆에 도윤이 글씨로 「줄자 천 원」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원」 자가 거꾸로였다.

그 뒤 플라스틱 의자에 선주 누나가 앉아 있었다. 무릎에 서류 가방을 올리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누나가 유리 너머의 나를 봤다.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턱으로 천장을 한 번 가리켰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들어가서 안정기를 봤다. 소켓이 헐거웠다. 드라이버로 두 번 조이자 불이 제대로 섰다.

“얼마고?”

“반값이요.”

누나가 웃지 않고 천 원을 줬다. 도윤이가 그걸 보고 제 줄자 값이라고 우겼다.

돌아오는 길에 셌다. 국수집, 약국, 이용원, 쌀집, 다방, 양품점, 철물점, 늦여름, 전파사, 떡집, 그리고 옛 문구점. 중앙로에서 불 켜진 칸이 열하나였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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