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22자) · 선우 · 9월 7일
외상장부
우리는 여름을 늦게 배웠다 · 윤재하
재현이 계산대 안쪽 합판을 뜯다가 공책 넉 권을 찾아낸 건 월요일 밤이었다.
나는 늦여름 셔터를 내리고 합판 벽 옆문으로 건너가는 중이었다. 재현은 시멘트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공책을 무릎에 펴 놓고 있었다. 철물점 바닥은 여름에도 차가워서 앉아 있으면 엉덩이부터 서늘해진다. 표지에 매직으로 연도가 적혀 있었다. 2015부터 2026까지, 열한 해치였다.
“외상장부네.”
“이런 걸 아직 써?”
“읍내는 아직 써.”
재현이 한 장을 넘겨 보여 줬다. 날짜, 이름, 물건, 금액, 그리고 갚은 날을 적는 칸이 있었다. 갚은 칸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호미 둘 만 이천 원, 수도꼭지 하나 팔천 원, 목나사 한 봉지 삼천오백 원, 문고리, 경첩, 실리콘. 제일 비싼 게 전동 드릴 삼만 이천 원이었다. 재현이 이름을 세 봤다고 했다. 마흔셋이었고, 다 더하면 육십만 원이 조금 넘었다.
“열한 해에 육십만 원이야.”
“못 받은 돈이네.”
“받을 생각이 없던 돈이지.”
재현이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췄다. 나는 그 줄을 옆에서 봤다.
「2021. 5. 3. 늦여름 — 사다리 빌려줌. 간판 올림. 영 원」
아저씨가 사다리를 잡아 주시던 날이었다. 좋다, 한 마디 하시던 날. 금액 칸에 동그라미 하나가 또박또박 그려져 있었다. 받을 돈이 없는 줄을 왜 장부에 적었는지 나는 그 동그라미를 보고 알았다. 그날을 적어 두고 싶었던 거다.
나는 쪼그려 앉았다. 무릎이 떨려서 그렇게 했다.
“왜 적으셨을까?”
재현이 장부를 덮지 않고 물었다. 나한테 묻는 게 아니라 공책한테 묻는 것 같았다.
“문고리는 또 부러지고 수도꼭지는 또 새잖아. 그 사람들이 다시 오면 이 줄을 보고 아는 척하려고 적으신 거 아닐까. 지난번 그 수도꼭지는 어떻습니까, 그 한마디 하려고.”
“열한 해를?”
“응. 열한 해를.”
재현이 공책 모서리를 엄지로 쓸었다. 연필 글씨가 손때에 번져 회색으로 뭉개진 자리가 있었다. 재현은 서울에서 팔 년 동안 쓴 카피가 몇 줄인지 세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어 보면 이것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그런데 그중에 사람 이름이 들어간 줄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
화요일 오전에 군청 사람이 왔다.
누나가 앞장섰고, 그 뒤로 반소매 와이셔츠에 명찰을 단 남자가 들어왔다. 화령군청 인구정책과 중심지재생팀장 김태만. 그는 명함을 한 장만 줬다. 도 사장과 달랐다.
“사전 조사입니다. 오래 안 걸립니다.”
그는 철물점 천장 높이를 재고, 차단기 함을 열어 보고, 벽에 금 간 자리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러고는 계산대 앞에 서서 재현을 봤다.
“이 칸은 칠월 칠일자로 폐업 신고가 돼 있습니다. 영업하시려면 신고부터 하셔야 됩니다.”
“그 폐업이 위조예요.”
“그건 수사기관 일이고, 저는 기금 일입니다.”
김태만 팀장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게 더 단단하게 들렸다.
“말씀드릴게요. 영업 중인 칸이 있어도 사업은 됩니다. 사업 인정 받고 수용 재결 가면 됩니다. 이 년 걸립니다. 그 이 년 동안 소아과는 없습니다. 올해 기금을 못 쓰면 내년 기금이 깎이고요. 저는 틀린 말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문제예요.”
재현이 말했다. 김 팀장이 처음으로 재현을 제대로 봤다.
“그럼 틀린 걸 찾아오십시오. 구월 삼십일 저녁 여덟 시까지.”
그들이 나간 뒤 재현은 곧장 읍사무소에 가서 영업 신고서를 새로 냈다. 누나가 창구에서 그 서류를 받았다. 둘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나는 도장을 찍었고, 찍고 나서 인주 뚜껑을 한참 닫지 않았다고 했다.
*
그날 저녁 재현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늦여름에 왔다.
「읍내 마지막 서점, 늦여름. 구월 삼십일 저녁 여덟 시, 불을 켜 주세요.」
글씨는 반듯했고 문장은 잘 썼다. 팔 년 동안 한 줄로 사람을 움직인 사람의 문장이었다. 그래서 싫었다.
“이거 붙이면 기자가 와. 대구 신문, 방송국. 마지막 서점은 이야기가 돼. 사람들이 와서 사진 찍고 책 한 권씩 사 가면, 실사 날 이 블록에 사람이 있어.”
“싫어.”
“선우야.”
“마지막 남은 서점이라고 사람들이 오면, 걔네는 책을 사러 오는 게 아니라 마지막을 보러 오는 거야. 그러면 나는 진짜 마지막이 돼.”
재현이 종이를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그럼 어떡할 건데? 이십삼 일 남았어.”
“몰라.”
“모른다는 게 제일 나쁜 말이라며.”
그건 열두 해 전 내가 한 말이었다. 폐교 운동장에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 고3 여름 방학 첫날 재현이 대학을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이었다. 재현은 그걸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 나한테 도로 던졌다.
“너는 한 줄로 사람 움직이는 게 일이었지. 나는 그 한 줄이 되기 싫어. 불쌍한 서점 주인 한 줄.”
“불쌍하게 안 써.”
“네가 안 써도 읽는 사람이 그렇게 읽어.”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안 봤다. 에어컨이 덜컹거렸다. 재현이 종이를 접어 뒷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셔터 소리가 합판 벽을 타고 들려왔다.
*
수요일 아침에 고추밭 할매가 철물점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 나는 마침 재현한테 커피를 갖다주러 벽 옆문으로 건너가 있었다.
“내 이름이 거기 있다매!”
권말순 할매였다. 농협 앞 평상에서 고추를 말리는 분이었다. 누가 할매 이름이 철물점 장부에 있다고 떠든 모양이었다. 소문이 읍내를 한 바퀴 도는 데 사흘이 걸리는데, 이번에는 이틀 만이었다.
재현이 장부를 폈다. 2021년 구월, 호미 둘, 만 이천 원. 갚은 칸이 비어 있었다.
“그거는 니 아부지가 그냥 가 가라 캤다.”
“그럼 적으면 안 되죠.”
“근데 적었네.”
할매가 장부를 손끝으로 밀었다. 손가락 마디가 고추 물에 붉게 들어 있었다.
“니 아부지가 그런 사람이다. 준 것도 적어 놓고, 안 받으러 오고.”
할매가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두 장을 계산대에 놓았다. 재현이 도로 밀었다. 할매가 또 밀었다. 그 실랑이가 세 번 오가는 동안 나는 커피잔을 든 채 서 있었는데, 네 번째에 내 입에서 말이 먼저 나왔다.
“할머니, 돈 말고요.”
두 사람이 나를 봤다.
“저녁에 저 옆 빈 쌀집에서 고추 파실래요? 농협 평상 말고. 여덟 시까지만.”
할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평상은 내 자리다. 삼십 년 앉은 자리다.”
“알아요.”
“근데 쌀집은 도상철이 동그라미 친 칸 아이가. 거기 앉으면 번영회 평상에 다시는 못 앉는다. 문 총무가 그 평상 지 거라고 벼르고 있다.”
“알아요.”
할매는 한참 나를 보더니, 장부 위에 놓인 만 이천 원을 도로 집어 몸빼 주머니에 넣었다.
“호미 값은 고추로 치자. 니 아부지도 그카면 좋다 칼 끼다.”
그날 오후 나는 할매를 따라 농협 앞 평상에 갔다. 할매가 삼십 년 깔고 앉은 방석과 고추 말리는 멍석을 가지러 간 길이었다. 평상 위에 번영회 총무 문씨가 부채를 부치며 앉아 있었다. 도 사장 밑에서 이십 년 총무를 한 사람이었다.
“할매, 쌀집 들어간다매요.”
“들어간다.”
“거기 도 회장님이 동그라미 친 칸인 거 알지요? 거 가시믄 이 평상은 인자 끝입니다. 번영회 평상이라서.”
할매가 방석을 집어 들었다. 방석 가운데가 할매 엉덩이 모양으로 꺼져 있었고, 햇볕에 삼십 년 바랜 꽃무늬가 겨우 알아볼 만큼 남아 있었다. 할매는 그 방석을 한 번 털더니, 가져가지 않고 문씨 옆에 도로 내려놨다.
“니 앉아라. 니 이 자리 오래 탐냈제.”
문씨가 부채질을 멈췄다. 할매는 멍석만 둘둘 말아 옆구리에 끼고 돌아섰다. 돌아서는 할매 등이 한 번도 안 흔들렸는데, 멍석을 쥔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서 있었다.
*
쌀집 칸은 차단기가 내려가 있었고, 형광등 안정기가 타 있었다. 재현이 목요일 하루 종일 그 칸에 매달렸다. 나는 늦여름 계산대에서 벽 너머로 드라이버 소리, 전선 벗기는 소리, 재현이 혼잣말로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오후 네 시쯤 벽 너머가 조용해지더니 재현이 땀에 젖은 얼굴로 들어와 물을 한 컵 마시고 나갔다. 한 마디도 안 했다. 어제 싸운 게 아직 우리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도 재현은 내가 꺼낸 말 때문에 그 칸을 고치고 있었다.
금요일에 정육점 김씨가 왔다. 장부에 목나사 한 봉지 삼천오백 원이 적힌 사람이었다. 오천 원을 내밀며 이자 쳐서 받으라고 하다가, 할매가 쌀집에 앉는다는 얘기를 듣더니 오천 원을 도로 넣었다.
“그라믄 나는 다방 자리서 저녁 고기 좀 풀까. 냉장고만 돌아가믄.”
토요일에는 문방구를 하다 접은 양씨가 왔다. 재현은 양품점 칸 콘센트를 갈았고 다방 칸 냉장 쇼케이스 콤프레서를 두드려 살렸다. 고치는 동안 재현은 한 번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부르지 않아도 공구통을 들고 서 있었다.
양품점 천장 배선을 볼 때 재현이 사다리 꼭대기에서 손을 뻗었는데 한 뼘이 모자랐다. 나는 말없이 사다리 한 단을 올라가 손전등을 비췄다.
“너 나보다 이 센티 크잖아. 네가 해.”
“그러니까 이 센티만큼 도와주고 있잖아.”
재현이 웃음을 참는 게 사다리를 타고 전해졌다. 참다가 실패했고, 사다리가 한 번 흔들렸고, 내가 재현의 바짓단을 잡았다. 그걸로 어제 싸움이 반쯤 풀렸다. 나머지 반은 토요일 저녁까지 남아 있었다.
토요일 저녁 여덟 시, 나는 늦여름 문 앞에 나가 섰다.
쌀집 칸 천장에 재현이 새로 단 백열전구가 하나 켜져 있었다. 오래된 쌀 포대 냄새와 새로 들여놓은 마른 고추 냄새가 문밖까지 매웠고, 그 노란 불빛 아래 플라스틱 의자에 권말순 할매가 앉아 있었다. 할매는 손님이 없는데도 고추 포대를 손바닥으로 한 번씩 쓸었다. 삼십 년 동안 평상에서 하던 손짓이었다. 할매가 문밖의 나를 보더니 턱을 들었다.
“선우야, 여기서 밭이 안 보인다.”
“죄송해요.”
“대신 니 가게 불이 보인다.”
할매는 그 말만 하고 다시 고추를 쓸었다.
그 옆 다방 칸에서 김씨가 쇼케이스 불을 켰고, 양품점 칸에서 양씨가 연필을 한 줄로 늘어놓았다. 이용원 회전등이 돌았고 국수집 간판이 켜져 있었다. 철물점과 늦여름과 약국까지, 중앙로에 불 켜진 칸이 여덟이 됐다.
재현이 철물점 문간에 서 있었다. 손에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미안해.”
내가 먼저 말했다. 열두 해 만에 처음으로 내가 먼저였다.
“포스터 말고. 이게 네 광고야.”
재현이 불 켜진 칸들을 봤다. 그러고는 뒷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반으로 한 번 더 접었다.
“버리게?”
“아니. 네가 싫다고 한 문장이라서 갖고 있을래. 내가 쓴 것 중에 누가 싫다고 해 준 건 이게 처음이거든.”
할매가 쌀집 안에서 우리를 향해 고추 한 줌을 흔들었다. 사 가라는 뜻인지 들어가라는 뜻인지는 끝내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