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97자) · 선우 · 9월 2일

선풍기

우리는 여름을 늦게 배웠다 · 윤재하

나는 폐업 신고서를 사월에 썼다.

계산대 아래 서랍, 영수증 뭉치와 고장 난 바코드 리더기 밑에 그 종이가 있다. 상호 늦여름, 대표자 백선우, 폐업 연월일 빈칸, 폐업 사유 빈칸. 사월 십일에 읍사무소에서 받아 와서 이름까지만 쓰고 멈췄다. 사유 칸에 「매출 부진」이라고 쓰면 맞는 말이었지만, 그렇게 쓰면 열두 해가 그 다섯 글자가 됐다. 그래서 다섯 달째 그 칸을 비워 두고 아침마다 서랍을 열었다가 닫는다.

하루에 일곱 명이 오고, 주말에는 열둘이 온다. 한 사람이 평균 만 오천 원어치를 산다. 그 셈은 매일 저녁 계산기로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저절로 된다.

이 칸은 원래 세탁소였다. 아버지가 다리미를 들고 쓰러진 날이 열두 해 전 팔월 이십일이었고, 나는 대구 병원에서 한 달을 보내고 돌아와 열아홉 살에 세탁소 주인이 됐다. 다리미 스팀이 벽지를 부풀리고 세제와 풀 냄새가 이 층 계단까지 올라오는 가게였다. 아버지는 그 뒤로 일곱 해를 누워 계시다 다섯 해 전에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다리미 세 대를 팔아서 첫 책 이백 권을 샀다. 간판을 떼 낼 돈은 없어서 나무판을 덧대고 늦여름이라고 썼다. 재현 아버지가 사다리를 잡아 주셨다. 그분은 간판을 올려다보며 좋다, 딱 한 마디를 했다.

*

번영회는 수요일 저녁 국수집에서 열렸다.

채옥순 이모가 가게 문에 「오늘 휴업」 종이를 붙이고 테이블 두 개를 붙였다. 도상철 사장이 상석에 앉았고, 약국 허정자 약사님, 우종구 영감님, 양품점 주인 아들이 휴대폰 스피커로 대구에서 들어왔다. 나는 문 옆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초대받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가라고 하지는 않았다. 삶은 면 냄새와 멸치 육수 김이 좁은 가게 천장에 고여 있었고, 선풍기 두 대가 그 김을 이쪽저쪽으로 밀었다.

회의 전에 이모가 국수를 한 그릇씩 돌렸다. 도 사장이 곱빼기를 달라고 하자 이모는 보통을 놓으면서 “니는 보통이다” 했고, 도 사장은 웃으며 받았다. 번영회장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읍에 이모 하나였다. 우종구 영감님은 면을 가위로 자르듯 젓가락으로 싹둑싹둑 끊어 먹었다. 그릇이 다 비고 나서야 도 사장이 종이를 돌렸다. 일괄 매각 서약서였다.

“오목상회 일곱 칸, 인접 네 칸 소유자는 생활센터 사업에 동의하고 구월 말로 영업을 정리한다. 이거 도장 찍으면 감정가 나올 때 한꺼번에 협상한다. 따로따로 하면 군이 깎는다. 뭉쳐야 산다, 이 말이다.”

허정자 약사님이 돋보기를 올리고 서약서를 읽었다. 읽는 데 오래 걸렸다.

“나는 구월 말에 닫을라 캤다. 아들이 부산 오라 칸다. 일흔하나에 약 세는 거, 손이 떨린다.”

도장이 찍혔다. 인주가 종이에 번지는 소리가 날 리 없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모도 찍으세요?”

내가 물었다. 채옥순 이모가 앞치마를 풀면서 나를 봤다.

“찍지. 대구 딸네 옆에 방 하나 얻을 끼다. 무릎이 이래서 국수 삶는 것도 올해가 끝이다.”

“이모 가게 닫으면 이 블록에 저녁 먹을 데가 없어요.”

“선우야, 니는 갈 데가 없어서 그카제. 우리는 갈 데가 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아서 아팠다.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무릎 위에서 손을 쥐었다 폈다.

우종구 영감님이 서약서를 옆으로 밀었다.

“나는 화요일만 연다.”

“영감님, 화요일만 여는 건 여는 게 아닙니다. 군에서 그렇게 안 봅니다.”

“회전등이 도는데 무슨.”

영감님이 허공에 가위질을 한 번 했다. 도 사장이 웃고 나를 봤다.

“그라고 임차인은 발언권이 없다. 책방 동생, 동생은 여기 소유자가 아니다. 동생 건물주는 철물점 아들이고.”

“알아요.”

“알면 됐다. 근데 그 건물주가 요새 밤마다 동생 이 층에 올라간다 카던데, 그거는 소유자 회의에서 할 얘기가 아니고.”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휴대폰 스피커에서 대구 양품점 아들이 “여보세요, 소리가 끊겨요” 하고 물었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 사장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육수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일어섰다. 다리가 먼저 일어섰고 말이 나중에 따라왔다.

“사장님, 철물점 위임장 날짜가 유월 이일이라면서요.”

“그건 또 누가.”

“아저씨는 오월 말부터 중환자실에 계셨어요. 저 두 번 갔어요. 눈도 못 뜨셨어요. 그 손으로 위임장에 무슨 도장을 찍으셨어요?”

허정자 약사님이 돋보기를 벗었다. 채옥순 이모가 앞치마를 도로 맸다. 도 사장이 컵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명함 지갑을 꺼내지 않았다.

“선우야. 니 누나가 읍사무소 담당이제? 누나 사업 망칠라 카나.”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서약서를 챙겼다. 도장 둘, 가위표 하나였다. 문을 나서면서 그가 채옥순 이모에게 말했다.

“누님, 오백 받은 거 잊지 마소.”

*

목요일 점심에 누나가 도윤이를 데리고 왔다.

도윤이는 들어오자마자 합판 벽 너머 철물점으로 달려가 재현한테 이게 뭐냐고 묻기 시작했다. 렌치, 몽키, 바이스. 재현이 하나씩 이름을 대 주면 도윤이는 따라 하다가 절반쯤 틀렸고, 틀릴 때마다 기침을 두 번씩 했다. 마른 기침이었다. 그 소리가 벽을 넘어올 때마다 누나 어깨가 움찔했다.

“결론부터 말할게.”

누나가 계산대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니 어제 번영회에서 위임장 얘기했다며. 니 누나 사업 망칠 거가?”

“누나, 아저씨 가게 위임장 위조야. 누나도 날짜 봤잖아.”

“봤다. 알고 있다.”

누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선우야. 그거 문제 삼으면 사업이 멈춘다. 수사 들어가면 부지가 묶이고, 부지가 묶이면 올해 기금 못 쓰고, 못 쓰면 내년 기금이 깎인다. 소아과가 삼 년 뒤가 된다. 도윤이 지금 일곱 살이다. 삼 년 뒤면 열 살이다. 그동안 밤에 숨 못 쉬면 한 시간 반을 달려야 된다.”

벽 너머에서 도윤이가 “이건 망치!” 하고 소리쳤고, 재현이 “맞았어” 하고 박수를 쳤다.

“그럼 도 사장이 이기는 거야.”

“도 사장은 돈 좀 더 버는 기고, 도윤이는 숨을 쉬는 기다. 나는 그 둘을 안 바꾼다.”

누나가 가방을 들었다. 나가다가 돌아서서, 철물점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라고 쟈. 삼 주 있다 간다 캤제. 니 또 붙잡혀서 열두 해 기다릴 거가?”

도윤이가 벽 너머에서 뛰어왔다. 손에 줄자를 쥐고 있었다.

“책 삼촌, 철물 삼촌이 이거 준대!”

누나는 줄자를 보고, 나를 보고, 아무 말 없이 도윤이 손을 잡고 나갔다. 종이 울렸다.

*

금요일 밤 재현이 이 층으로 올라왔다.

열아홉 살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이었다. 창 아래 책상, 책상 위 스탠드, 그리고 선풍기. 에어컨은 아래층에만 있다.

“이거 그때 그거야?”

“응. 모터를 두 번 바꿨어.”

“그럼 그때 그거 아니잖아.”

“겉은 그때 거야.”

선풍기가 고개를 저었다. 바람이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오는 동안 우리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빛이 방바닥에 비스듬한 네모를 만들었고, 그 네모 안으로 선풍기 날개 그림자가 쉬지 않고 지나갔다. 바람이 지나갈 때만 잠깐 시원했다가 다시 더웠다. 그 규칙을 내 몸이 열두 해 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너 해약한 거 말이야.”

“응.”

“나 그거 부담스러워. 너 대출은 어떡해? 이십육일이라며. 너 나 때문에 서울 못 가면, 나는 또 그 사람이 돼.”

“무슨 사람.”

“사람 붙잡는 사람. 아버지가 쓰러지고 누나가 그랬어. 니가 있어야 된다고. 나는 그 말에 붙잡혔고, 열두 해를 붙잡혀 있었어. 나는 너한테 그러기 싫어.”

재현이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얹었다.

“안 붙잡혔어. 내가 안 간 거야.”

그건 내 말이었다. 나흘 전 뒤집은 상자 위에서 내가 한 말을 재현이 그대로 돌려줬다. 나는 웃으려다가 목이 막혔다.

“그해 여름에 너 여기서 잔 적 있잖아.”

재현이 선풍기 쪽을 보면서 말했다.

“너 목에 땀이 흐르는 걸 봤어. 목에서 여기로.”

재현이 제 쇄골을 짚었다.

“그걸 보는데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어. 그게 뭔지 몰랐어.”

“알았어.”

“뭐?”

“나 그때 안 자고 있었어. 네가 보는 거 알고 있었어.”

선풍기가 오른쪽으로 갔다. 재현의 얼굴에 바람이 닿았다가 떠났다.

“그럼 왜.”

“눈 뜨면 뭐라도 해야 되잖아. 열아홉 살한테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이었어.”

재현이 웃었다. 웃는데 목울대가 두 번 오르내렸다.

“나 이제 열아홉 아니야.”

내가 말했다. 재현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손끝은 차가웠는데 손등이 뜨거웠다. 재현의 숨이 한 번 흐트러지는 게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그러니까 이번엔 눈 안 감아.”

스탠드는 켜지 않았다. 창밖 가로등 빛만 방 한쪽에 비스듬히 들어와 있었고, 우리 그림자가 벽에서 겹쳤다가 떨어졌다. 선풍기가 계속 고개를 저었다. 열두 해 동안 저 선풍기는 모터를 두 번 갈았다. 겉만 그때 거라고 말했는데, 그날 밤 방 안에서 그때 것이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새벽 다섯 시에 나는 먼저 깼다.

재현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자고 있었다. 옆머리가 한쪽만 짧았다. 영감님 솜씨였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일어나 서랍장 맨 아래 칸을 열었다. 겨울 이불을 들어내자 봉투가 하나 나왔다.

주소가 없는 봉투였다. 받는 사람 칸에 이름 석 자만, 열아홉 살 글씨로 적혀 있었다. 열두 해 전 가을, 재현이 인사도 없이 서울에 갔다는 걸 알고 나서 사흘 걸려 쓴 답장이었다. 무엇에 대한 답장인지도 모르면서 쓴 답장이었다. 보낼 주소가 없어서 이불 밑에 넣었고, 이사를 두 번 할 뻔했을 때도 이 칸만은 비우지 않았다.

나는 봉투를 손에 들고 한참 앉아 있었다. 재현이 뒤척이는 소리가 나서 도로 이불 밑에 넣고 서랍을 닫았다. 닫는 소리가 작았다.

창밖으로 중앙로가 밝아 오고 있었다. 약국 유리문에 새 종이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구월 삼십일부로 폐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허정자 약사님 글씨는 떨려서 줄이 조금씩 올라갔다. 그 약국에서 나는 열두 해 동안 소화제와 파스와 모기약을 샀고, 아버지가 누워 계시던 일곱 해 동안은 거즈와 욕창 연고를 샀다. 약사님은 한 번도 값을 깎아 준 적이 없었고, 대신 매번 사탕 두 알을 봉투에 넣었다.

어젯밤 여덟 시에 이 거리에서 불 켜진 칸은 다섯이었다. 이달 말이면 그중 하나가 꺼진다.

재현이 뒤에서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몇 시야?”

“다섯 시 십 분.”

“더 자.”

“가게 열어야 돼.”

“아홉 시에 열잖아.”

“오늘은 일찍 열 거야.”

재현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한 번 닫으면, 사람들이 여기 닫는 데구나 하고 생각해. 그다음엔 열어 놔도 안 와.”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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