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49자) · 재현 · 8월 30일
일곱 글자
첫사랑의 서점 · 윤재하
반값 종이를 보고 처음 들어온 손님은 오목이용원 우종구 영감이었다.
일흔여덟이라고 했다. 흰 가운 대신 러닝셔츠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왔는데, 들어오자마자 가위를 쥔 것처럼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허공에 한 번 싹둑 쳐 보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 이발사 버릇이라고 했다.
“모타 있나?”
“무슨 모터요?”
“회전등. 빨갛고 파랗고 하얀 거 빙빙 도는 거. 삼 년째 안 돈다.”
“이발소 닫으셨잖아요.”
“닫았지. 근데 안 도는 기 보기 싫다.”
우리는 이용원으로 갔다. 오목상회 네 번째 칸이었다. 셔터를 올리자 안에 의자 두 개가 흰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거울 앞 선반에 포마드 통과 면도 솔이 삼 년 전 그대로 줄 서 있었다. 먼지 앉은 가죽 의자에서는 오래된 향수와 머릿기름이 섞인 달큰한 냄새가 났고, 거울은 한쪽 귀퉁이 은박이 벗겨져 내 얼굴 절반이 흐리게 비쳤다. 영감은 흰 천 하나를 벗겨 내고 이 의자에 앉더니, 이발사가 손님 자리에 앉은 건 처음이라며 혼자 웃었다.
회전등은 모터가 아니라 벨트였다. 고무 벨트가 삭아서 끊어져 있었다. 가게로 돌아가 비슷한 굵기의 고무줄을 찾아 잘라 걸고, 탄 브러시를 사포로 문지른 다음 스위치를 올렸다. 빨강과 파랑과 하양이 원통 안에서 한 칸 움직이더니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돈다.”
영감이 가위 손을 내렸다.
“돈다. 돈다.”
같은 말을 세 번 하고 나서 영감은 한참 회전등만 봤다. 그러다 나를 봤다.
“얼마고?”
“반값이요. 고무줄 값 오백 원.”
“화요일만 열까. 화요일은 원래 내 머리 자르는 날이다. 내 머리 자르는 김에 남의 머리도 자르지 뭐.”
이 말을 하는 동안 영감의 손은 계속 허공에서 싹둑거리고 있었다.
*
월요일 저녁에 나는 늦여름에서 상자 하나를 가져가는 대신 밥을 얻어먹었다. 가게 뒤 좁은 부엌에서 선우가 계란을 부쳤고, 우리는 택배 상자를 뒤집어 놓고 이 위에서 김치와 밥을 먹었다.
“맛있다.”
“계란인데.”
“계란이 맛있어.”
“너 서울에서 뭐 먹고 살았냐?”
“편의점.”
“팔 년을?”
“팔 년을.”
선우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왜 그만뒀어?”
나는 김치를 씹었다. 설명하기 싫은 이야기를 설명하려니 입안이 텁텁했다.
“한 줄 쓰는 일이었거든. 아파트 광고면 한 줄, 보험이면 한 줄. 그 한 줄 때문에 스무 명이 두 달을 회의해. 어느 날 내가 낸 한 줄이 통과됐는데, 삼십 명이 박수를 쳤어. 근데 그게 내가 안 믿는 문장이었어.”
“무슨 문장인데?”
“「당신이 머무는 곳이 곧 고향입니다.」 재개발 아파트였어. 원래 살던 사람들은 거기 못 머물고.”
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좋았다. 서울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꼭 뭐라고 말했다.
“너는 왜 여기 남았어?”
“남은 게 아니라 안 간 거야.”
“그게 그거지.”
“달라. 남았다고 하면 여기가 남을 만한 데인 거고, 안 갔다고 하면 내가 못 간 거잖아.”
선우가 밥그릇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놨다.
“그해 팔월에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이십일에. 세탁소에서 다리미 들고 계시다가. 대구로 옮겼고 나도 따라가서 한 달을 있었어. 돌아오니까 너는 없더라.”
나는 밥을 씹었다. 아무 맛이 안 났다. 팔월 이십일은 내가 편지를 부치기 사흘 전이었다.
*
여덟 시 오 분에 도상철이 철물점에 들어왔다. 형광등이 다 켜져 있었고, 두 칸 건너 이용원 회전등이 유리 너머에서 돌고 있었다.
“불 와 켜노?”
도상철이 계산대에 손바닥을 짚었다. 웃는 얼굴이었는데 목소리는 웃지 않았다.
“동생, 이 칸은 폐업 신고가 돼 있다. 폐업한 칸이 불 켜고 장사하면 그건 무신고 영업이다. 니가 문제 된다. 그라고 실사 날 불 켜져 있으면 군이 헷갈린다. 헷갈리면 감정이 늦게 나오고.”
“사장님.”
“와.”
“해약할게요.”
도상철의 손이 계산대에서 떨어졌다. 도상철은 명함 지갑을 꺼냈다가, 줄 명함이 없다는 듯 도로 넣었다.
“배액이다. 알제? 받은 거 두 배. 이천.”
“알아요.”
“이천 들고 가이소, 하면 되는 줄 아나. 니 서울 대출은? 이십육일 만기라며.”
“그건 제 일이에요.”
“그라고 해약하면 니가 건물주다. 니 손으로 책방 동생한테 월세 만 원 받고 앉았을래? 니 아부지처럼? 그 양반 그래서 평생 이 모양으로 살았다.”
나는 계산대 밑에서 아버지 돋보기를 꺼내 폈다가 접었다. 손에 뭘 쥐고 있지 않으면 주먹을 쥘 것 같았다.
“아버지는 사장님한테 세 번 안 판다고 하셨죠?”
“누가 그라더노.”
“사장님 지도에요. 철물점만 동그라미가 아니라 가위표였어요. 안 판다는 칸에 치는 표시잖아요.”
도상철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빠졌다. 이 자리에 뭐가 남는지 나는 똑바로 봤다. 화가 아니라 계산이었다.
“위임장, 신고할 거예요.”
“해 봐라. 증거 있나? 형님 인감을 내가 갖고 있던 기 증거가? 그건 형님이 나를 믿었다는 증거다. 동생, 여기는 서울이 아니다. 여기서는 오래 산 사람 말이 증거다.”
도상철은 나가면서 문을 세게 닫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조심스럽게 닫았다. 이게 더 무서웠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은행 앱을 열었다. 퇴직금 이천만 원이 들어 있던 통장이었다. 받는 사람 칸에 도상철이라는 이름이 뜨고, 금액 칸에 이천만이 찍히고, 확인 버튼 위에서 엄지가 삼 초쯤 멈췄다. 서울 전세 만기까지 스무엿새가 남아 있었다. 누르고 나니 통장에 삼만 이천 원이 남았다.
아버지가 세 번 거절한 칸을 나는 이틀 만에 팔았고, 사흘 만에 이천만 원을 주고 도로 샀다.
다음에 서울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출 상환을 한 달만 미뤄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집주인은 은행 일은 은행에 물으라고 했고 은행은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했다. 나는 계산대에 이마를 대고 한참 있었다. 합판 벽 너머에서 선우가 셔터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쇠가 레일을 긁으며 내려오다가 바닥에 닿기 직전에 한 번 멈췄고, 이 멈춘 틈에 내 쪽 불빛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셔터는 끝까지 내려가지 않았다. 사람 하나 허리 숙여 드나들 만큼 열려 있었다.
*
화요일 오후에 이용원 첫 손님은 나였다.
영감은 흰 가운을 꺼내 입고 나를 의자에 앉혔다. 가위가 머리 위에서 싹둑거리는 사이, 삼 년 동안 못 한 말이 한꺼번에 나왔다. 거울 속 영감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말할 때만 떨렸다.
“니 아부지가 가게 반을 세탁소에 내줄 때 번영회가 난리가 났다. 월세 만 원 받는 건물주가 어딨노, 시세 버린다고. 도상철이 그때 총무였다.”
“아버지는 뭐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반으로도 된다 카더라. 그 말 하나로 끝냈다. 니 아부지는 말을 길게 안 했다.”
가위가 귀 옆에서 멈췄다.
“도상철이가 올봄에 니 아부지한테 세 번 왔다. 세 번째에는 니 아부지가 망치를 들었다. 휘두른 건 아니고, 계산대에 탁 내려놨다. 망치가 계산대에 누우니까 도상철이가 명함을 두 장이나 떨어뜨리고 나가더라.”
나는 웃다가 가위에 귀를 벨 뻔했다. 영감이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붙잡았다.
“가만있어라. 귀는 반값에 못 붙인다.”
다 자르고 나니 옆머리가 좀 짧았다. 영감은 거울을 한참 보더니 삼 년 쉬어서 그렇다며 값을 안 받았다. 나는 회전등 고무줄 값 오백 원을 도로 받지 않는 걸로 셈을 맞췄다.
*
화요일 밤 열한 시 이십 분에 나는 늦여름 옆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울리고 받았다.
“왜?”
“나와.”
“몇 신 줄 알아?”
“열한 시 이십 분.”
삼 분 뒤 이 층 불이 꺼지고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선우는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고 머리가 젖어 있었다.
“해약했다며. 국수집 이모가 벌써 알더라.”
“읍내는 다 알아. 묻지를 안 할 뿐이지.”
“왜 했어? 나 때문이면 하지 마.”
“너 때문 맞아.”
선우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낮의 열기가 아직 아스팔트에 남아 있어서 샌들 밑창으로 뜨거운 게 올라왔고, 어디선가 늦매미가 울다 그쳤다.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오목초등학교였다. 지금은 폐교였고, 운동장에 무릎까지 풀이 자라 있었다.
“여기 아직 있네.”
“못 팔았대. 아무도 안 사. 군 거야.”
철봉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거기 걸터앉았고 선우는 옆에 섰다. 가로등이 멀어서 얼굴이 잘 안 보였다. 잘 안 보이는 게 나았다.
열두 해 동안 나는 이 질문을 한 번도 소리 내어 해 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수천 번 했다. 너, 내, 편지, 받았어. 일곱 글자였다.
“선우야. 너 내 편지 받았어?”
선우가 철봉을 잡았다.
“무슨 편지?”
풀벌레 소리가 한순간 멎은 것 같았다. 실제로 멎었는지 내 귀가 닫혔는지는 모르겠다.
“열두 해 전 팔월 이십삼일. 내가 세탁소로 부쳤어.”
“나 그때 대구에 있었어. 한 달.”
“돌아와서 우편함은?”
“누나가 다 치웠어. 고지서랑 전단지랑.”
나는 철봉에서 손을 뗐다. 녹슨 쇠에 닿아 있던 손바닥이 쇳가루로 붉었다. 열두 해 동안 내가 기다린 답장이 처음부터 출발하지 않았다면, 나는 열두 해 동안 아무것도 기다린 게 아니었다. 이 생각이 명치에서 목까지 천천히 올라왔고, 나는 이걸 삼키느라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선우가 철봉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손등 뼈가 가로등 빛에 하얗게 드러났다.
“재현아. 나는 네가 인사도 없이 간 줄 알았어. 대구에서 돌아오니까 너는 서울 가 있고, 번호는 없는 번호고. 그래서 나는 네가 나를 버리고 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어.”
“나는 네가 안 받아 준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그 생각이 편했어?”
“응. 아무도 안 나쁘고, 물어볼 것도 없고.”
“나도 편했어.”
선우가 웃었다. 웃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둘 다 편한 쪽으로 살았네, 우리.”
나는 철봉에서 내려와 선우 앞에 섰다. 이마를 선우 이마에 댔다. 이것뿐이었다. 선우 이마는 땀으로 축축했고, 젖은 머리끝이 내 눈썹에 닿았고, 숨이 코끝에서 섞였다.
“뭐라고 썼는데? 그 편지.”
“다음에.”
“또 다음이야?”
“열아홉 살이 쓴 거라서. 서른이 입으로 하기엔 좀 창피해.”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입맞춤은 짧았다. 짧았는데 둘 다 그동안 숨을 안 쉬었다. 떨어지고 나서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매미가 다시 울었다.
돌아오는 길에 중앙로 불을 셌다. 늦여름 이 층, 철물점, 약국, 국수집 간판등이 켜져 있었고, 이용원 회전등은 불 꺼진 가게 안에서 혼자 돌고 있었다. 영감이 끄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불 켜진 칸은 다섯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