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61자) · 재현 · 8월 26일

옆집 열쇠

첫사랑의 서점 · 윤재하

열쇠 수리공은 사만 원을 받고 삼 분 만에 셔터를 땄다⁠.

셔터가 말려 올라가면서 삼 개월 치 먼지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기침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셔터를 내린 유월 초 그대로였다⁠. 계산대 위에 돋보기가 접혀 있었고⁠, 나사 상자 뚜껑 하나가 열린 채였고⁠, 벽 달력은 유월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삼십 년 치 나사와 경첩과 문고리와 전선이 천장까지 쌓인 선반에서 기름과 쇠와 눅눅한 종이 상자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는데⁠, 그건 내가 여덟 살 때 이 계산대 밑에서 숙제를 하며 맡던 냄새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안쪽 벽에 열쇠가 걸려 있었다⁠. 못 열두 개에 열쇠 열두 개였고⁠, 하나하나에 매직으로 이름을 적은 종이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셔터⁠, 뒷문⁠, 창고⁠, 이층⁠, 금고⁠.

셔터 열쇠는 정말 안쪽에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적어 두는 사람이었다⁠. 열쇠고리에만 안 적었을 뿐이다⁠.

꼬리표를 하나씩 넘기다가 열한 번째에서 손이 멈췄다⁠. 「⁠옆집 — 선우네⁠」 뒷면에 한 줄이 더 있었는데⁠, 아버지 글씨는 볼펜을 너무 눌러 써서 종이가 조금 찢어져 있었다⁠. 나는 이 줄을 끝까지 읽지 않고 꼬리표를 도로 뒤집었다⁠.

*

오후에 나는 가게 문 앞에 종이를 붙였다⁠. 「⁠재고 정리 — 전 품목 반값⁠」 팔 년 동안 광고 문구를 쓴 사람이 쓴 것치고는 형편없었지만⁠, 삼 주 안에 이 선반을 비우려면 이게 제일 빨랐다⁠.

형광등을 켜자 여섯 개 가운데 두 개가 깜빡이다 죽었다⁠. 창고에서 새 관을 찾아 사다리를 놓고 갈아 끼웠다⁠. 안정기 쪽 소켓이 헐거워서 드라이버로 두 번 조였는데⁠, 손이 먼저 이 순서를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시켜서 백 번쯤 한 일이었다⁠.

국수집 주인이 문 앞을 지나다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불 켜졌네⁠. 아저씨 오신 줄 알았다⁠.⁠”

“⁠반값이에요⁠.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내 필요한 거는 무릎이다⁠. 무릎도 반값에 파나⁠?⁠”

국수집 주인은 웃지도 않고 절연 테이프 하나를 집어 천 원을 내고 갔다⁠. 오목상회에서 저녁 여덟 시에 불 켜진 칸이 넷이 됐다⁠. 국수집⁠, 늦여름⁠, 약국⁠, 그리고 팔려고 켠 철물점⁠.

*

상속 서류를 떼러 읍사무소에 간 건 목요일 아침이었다⁠. 도상철이 잔금 전에 폐업 사실 증명원이 필요하다고 해서였다⁠. 민원 창구 번호표를 뽑자마자 내 번호가 불렸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창구에 앉아 있던 사람이 고개를 들었고⁠, 우리는 둘 다 잠깐 말을 잃었다⁠. 민원실 천장 선풍기가 느리게 돌면서 서류 더미 맨 위 장을 들썩이게 했다⁠.

“⁠오재현이네⁠.⁠”

“⁠안녕하세요⁠, 누나⁠.⁠”

선우 누나 백선주였다⁠. 열두 해 전 대학 사 학년이던 선주는 이제 목에 공무원증을 걸고 있었고⁠, 말이 빠른 건 그대로였다⁠.

“⁠결론부터 말할게⁠. 니 아버지 철물점⁠, 칠월 칠일에 폐업 신고 돼 있다⁠. 폐업 사실 증명원 바로 뽑아 줄 수 있다⁠. 이유는 세 개⁠. 신고 들어왔고⁠, 서류 맞고⁠, 내가 담당이다⁠.⁠”

“⁠폐업이요⁠? 아버지는 유월 십일일에 돌아가셨어요⁠.⁠”

“⁠대리 신고다⁠. 위임장 있다⁠.⁠”

“⁠위임장 날짜가 언제예요⁠?⁠”

선주가 화면을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 초쯤 뒤에 다시 열었다⁠.

“⁠유월 이일⁠.⁠”

“⁠유월 이일에 아버지는 대구 병원 중환자실에 계셨어요⁠. 저 그날 거기 있었어요⁠. 아버지는 눈도 못 뜨셨어요⁠.⁠”

선주가 볼펜을 딸깍 눌렀다가 도로 눌렀다⁠.

“⁠대리인이 누구예요⁠?⁠”

“⁠그건 못 알려 준다⁠. 개인정보다⁠.⁠”

“⁠누나⁠.⁠”

“⁠누나라고 해도 못 알려 준다⁠. 나 이거 하나 잘못하면 징계다⁠.⁠”

“⁠그 폐업 때문에 아버지 가게가 빈 점포 목록에 올라간 거죠⁠?⁠”

선주가 등을 의자에 붙였다⁠. 얼굴은 잘못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목록은 내가 만든다⁠. 빈 점포 실사 담당이 나다⁠. 오목상회 일곱 칸이 생활센터 부지다⁠. 소아과 들어오는 자리다⁠. 니 조카⁠, 아니⁠, 내 아들 도윤이가 천식이다⁠. 올해만 밤에 대구 응급실을 두 번 갔다⁠. 한 시간 반⁠.⁠”

“⁠그거랑 위조된 위임장이 무슨 상관이에요⁠?⁠”

“⁠위조라고 누가 그랬노⁠.⁠”

“⁠제가요⁠. 방금⁠.⁠”

뒤에서 누가 번호표를 뽑는 소리가 났다⁠. 선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재현아⁠. 니 이거 팔기로 했다며⁠. 도 사장한테 계약금까지 받았다며⁠. 그럼 폐업이든 뭐든 니한테 상관없잖아⁠.⁠”

“⁠상관있어요⁠. 아버지 이름이잖아요⁠.⁠”

선주가 폐업 사실 증명원을 뽑아 창구 위로 밀었다⁠. 종이는 프린터에서 막 나와 따뜻했다⁠.

“⁠대리인은 말 못 한다⁠. 대신 하나만 알려 줄게⁠. 이 읍에 부동산은 하나다⁠.⁠”

나는 종이를 들고 일어섰다⁠. 선주가 한마디를 더 붙였다⁠.

“⁠그리고 우리 선우 건드리지 마라⁠. 걔 이번 여름 겨우 버티고 있다⁠.⁠”

*

읍에 부동산은 정말 하나였다⁠. 중앙로 서쪽 끝⁠, 농협 맞은편의 오목부동산은 유리문에 「⁠번영회 회의 중⁠」이라는 종이를 붙여 놓고 잠겨 있었다⁠. 회의라는 말과 달리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유리에 손차양을 하고 안을 들여다봤다⁠.

책상 뒤 벽에 중앙로 지도가 붙어 있었다⁠. 오목상회 일곱 칸과 이 옆 네 칸이 굵은 선으로 묶여 있었고⁠, 이 가운데 일곱 칸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국수집에도⁠, 양품점에도⁠, 다방에도 동그라미가 있었다⁠. 철물점에는 동그라미 대신 빨간 가위표가 있었다⁠. 늦여름 칸은 비어 있었다⁠.

“⁠동생⁠, 뭐 보노⁠?⁠”

도상철이 등 뒤에 서 있었다⁠. 한 손에 아이스커피를⁠, 다른 손에 명함 지갑을 들고 있었다⁠. 나는 폐업 사실 증명원을 도상철에게 내밀었다⁠.

“⁠이 위임장⁠, 사장님이 내셨어요⁠?⁠”

도상철은 종이를 한 번 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얼음이 컵 안에서 달그락거렸다⁠.

“⁠형님이 부탁했다⁠. 유월 초에 병원 가시기 전에⁠. 니가 안 오니까⁠.⁠”

이 마지막 말이 명치에 박혔다⁠. 나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물었다⁠.

“⁠날짜가 유월 이일이에요⁠. 아버지는 오월 말부터 중환자실에 계셨어요⁠.⁠”

“⁠날짜야 내가 늦게 쓴 기지⁠. 촌에서 그런 거 하나하나 따지나⁠.⁠”

“⁠인감은요⁠?⁠”

“⁠형님이 줬지⁠. 옛날에 책방 세 놓을 때 나한테 다 맡겼다⁠. 동생⁠, 니 서울 물 먹더니 말이 좀 날카롭다⁠.⁠”

도상철이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선우 어깨를 두드리던 이 손이었다⁠. 그러고는 열쇠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지도 앞을 등으로 가렸다⁠.

*

이날 오후에 비가 왔다⁠.

팔월 말 비는 시원하지 않다⁠. 뜨거운 걸 한 겹 더 덮는 느낌이었다⁠. 나는 철물점에서 늦여름까지 열 걸음을 뛰었는데⁠, 처마가 끊기는 자리에서 어깨까지 젖었다⁠. 종이 울렸고⁠, 선우가 말없이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수건을 들고 나왔다⁠.

“⁠그거 손님용 아니야⁠. 내 거야⁠.⁠”

“⁠그럼 안 쓸까⁠?⁠”

“⁠쓰라고 줬잖아⁠.⁠”

수건에서 선우 냄새가 났다⁠. 서른 살이 이런 걸로 목 뒤가 뜨거워지는 건 좀 웃긴 일이었는데⁠,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뜨거웠다⁠.

나는 계산대 앞에 폐업 사실 증명원을 폈다⁠. 선우가 한참 이 종이를 내려다봤다⁠.

“⁠칠월에 도 사장이 왔었어⁠.⁠”

“⁠여기⁠?⁠”

“⁠형님이 벌써 폐업했다고⁠. 너도 정리하라고⁠. 나는 아저씨가 그럴 리가 없다고 했고⁠.⁠”

“⁠그런데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번호가 없잖아⁠. 너 번호 바꿨잖아⁠, 열두 해 전에⁠.⁠”

에어컨이 꺼져 있었다⁠. 빗소리가 유리창에 붙어 가게 안이 습하고 조용했다⁠.

“⁠선우야⁠, 이거 위조야⁠. 아버지 중환자실에 계실 때 날짜야⁠.⁠”

“⁠그래서 뭐⁠.⁠”

“⁠그래서 뭐라니⁠?⁠”

“⁠그래도 너는 팔 거잖아⁠.⁠”

선우가 계산대에 팔을 얹었다⁠.

“⁠재현아⁠, 나는 네가 판다고 뭐라 할 생각 없어⁠. 네 건물이야⁠. 아저씨가 월세 만 원 받으신 것도 아저씨가 좋아서 하신 거고⁠. 그러니까 이 종이 들고 와서 나한테 화내지 마⁠. 팔 사람이 화내면 나는 어디다 화내⁠.⁠”

“⁠나 화 안 냈는데⁠.⁠”

“⁠지금 목소리 컸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선우 말이 맞았다⁠. 계약금 천만 원이 들어온 휴대폰이 바지 주머니에서 무거웠다⁠.

“⁠상자 좀 줘⁠.⁠”

“⁠무슨 상자⁠.⁠”

“⁠택배 상자⁠. 어제 뜯던 거⁠. 재고 담게⁠.⁠”

선우가 뒤쪽을 가리켰다⁠. 상자는 여섯 개였다⁠. 내가 세 개를 겹쳐 들자 선우가 말했다⁠.

“⁠그거 혼자 못 들어⁠.⁠”

“⁠두 번 오면 되지⁠.⁠”

“⁠두 번 올 거야⁠?⁠”

나는 상자를 든 채로 돌아봤다⁠. 선우는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이 아니라 대답을 안 들으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하루에 하나씩 가져갈게⁠.⁠”

“⁠그러면 엿새야⁠.⁠”

“⁠응⁠. 엿새⁠.⁠”

선우가 웃음을 참다가 실패했다⁠. 나는 세 개를 도로 내려놓고 하나만 들었다⁠.

여섯 시쯤 비가 굵어졌다⁠. 나는 일어섰다⁠.

“⁠가야지⁠.⁠”

“⁠이 비에⁠?⁠”

“⁠여관 코앞이야⁠.⁠”

“⁠코앞 아니야⁠. 사거리 지나서 두 블록이야⁠.⁠”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선우 얼굴이 잠깐 굳었다⁠.

“⁠읍내에 여관이 하나잖아⁠.⁠”

선우가 계산대 아래에서 접는 우산을 꺼냈다⁠. 색이 다 바랜 우산이었다⁠. 선우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내가 이 아래를 잡으면서 손가락이 겹쳤다⁠. 이번에는 아무도 손을 빼지 않았다⁠. 선우의 손끝은 차가웠고 손등은 뜨거웠다⁠.

“⁠삼 주 있는다고 했지⁠.⁠”

“⁠어⁠.⁠”

“⁠삼 주 지나면 가⁠?⁠”

“⁠가야지⁠.⁠”

선우가 우산을 놓았다⁠.

“⁠그럼 됐어⁠.⁠”

“⁠뭐가⁠?⁠”

“⁠그냥⁠.⁠”

선우는 뒤돌아서 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할 게 없는 상자였다⁠. 나는 뭐가 됐다는 건지 물었어야 했는데⁠, 물으면 뭐라도 시작될 것 같아서 묻지 않았다⁠. 열두 해 전에도 나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

토요일 밤 여덟 시⁠, 철물점 셔터를 내리려다가 손을 멈췄다⁠.

반값 종이가 빗물에 젖어 한쪽이 들떠 있었다⁠. 형광등 여섯 개가 다 켜진 가게 안은 바깥보다 밝았고⁠, 이 빛이 유리를 넘어 젖은 인도에 네모나게 떨어져 있었다⁠. 옆 칸 늦여름의 네모와 우리 가게의 네모가 합판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나는 셔터를 내리지 않고 안쪽 벽으로 갔다⁠. 열한 번째 열쇠를 떼어 꼬리표를 뒤집었다⁠.

「⁠밤에 불 꺼져 있으면 열어 볼 것⁠. 쟈 혼자다⁠.⁠」

글씨가 눌려 종이가 찢어진 자리는 「⁠혼자⁠」의 받침이었다⁠.

선우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다섯 해 전이었다⁠. 이 다섯 해 동안 아버지는 매일 밤 이 계산대에서 옆 칸 불이 켜져 있는지 봤던 모양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아버지한테 전화를 한 달에 한 번 했고⁠, 아버지는 한 번도 선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묻지 않았으니까⁠.

열쇠를 쥔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웠다⁠. 나는 이걸 도로 못에 걸었다⁠.

밖으로 나가 늦여름 유리창을 봤다⁠. 불이 켜져 있었다⁠. 선우가 계산대에 턱을 괴고 앉아 뭔가를 읽다가⁠, 누가 보는 걸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유리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선우는 손을 들지 않았고 나도 들지 않았다⁠.

이날 밤 나는 여관 창가에서 불을 셌다⁠. 서른한 칸 가운데 넷이 켜져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켠 불이었고⁠, 나는 이 불을 팔려고 켰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