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7,968자)

팔월의 재고 정리

우리는 여름을 늦게 배웠다 · 윤재하

철물점 셔터는 열쇠가 맞지 않았다.

세 개를 다 넣어 봤다. 아버지가 쓰던 열쇠고리에는 열쇠가 일곱 개 달려 있었고, 그중 어느 것이 어디 것인지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기가 아는 것을 남이 모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

오재현은 셔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여덟 번째로 같은 열쇠를 넣었다. 팔월 말이었고, 저녁 일곱 시였고, 아직도 밝았다. 오목읍은 여름이 늦게 끝난다. 어릴 때는 그게 좋은 건 줄 알았다.

땀이 눈으로 들어갔다.

“그거 안 맞을 텐데요.”

돌아보니 여자가 서 있었다. 옆 가게 국수집 주인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얼굴은 십이 년 전 그대로였다.

“셔터 열쇠는 안쪽에 걸어 놨어요. 아저씨가.”

“안쪽에요.”

“네.”

“안쪽은 셔터를 열어야 들어가는데요.”

“그러게요.”

여자가 웃었다. 웃고 들어갔다. 재현은 셔터에 이마를 대고 잠시 서 있었다. 쇠가 뜨거웠다.

서울에서 여덟 시간 반 걸렸다. 원래 네 시간이면 되는데 고속도로에서 두 번 막혔고, 읍내 들어오는 버스를 한 대 놓쳤다. 삼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게 정리하고, 물건 팔 거 팔고, 남는 건 버리고, 임대 내놓고, 올라간다. 삼 주.

첫날 저녁 일곱 시에 그는 셔터도 못 열었다.

읍내 상가는 절반이 비어 있었다. 유리에 임대 문의 종이가 붙어 있고, 그 종이도 색이 바래 있었다. 붙인 지 오래됐다는 뜻이다. 재현은 길을 따라 걸었다. 불이 켜진 가게가 세 개 있었다. 국수집, 약국, 그리고 하나 더.

마지막 하나는 예전에 세탁소였다.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늦여름」. 세탁소 간판을 떼지 않고 그 위에 나무판을 덧대서 글씨만 새로 썼다. 아래쪽에 옛 간판의 파란색이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재현은 그 앞에 삼십 초쯤 서 있었다.

들어가지 않을 이유를 세 개쯤 생각해 냈다. 그중에 쓸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문에 종이 달려 있었다. 옛날 방식이었다. 문을 밀면 종이 울리고, 그 소리에 사람이 고개를 든다.

고개를 든 사람은 백선우였다.

“어서 오세…….”

말이 거기서 끊겼다.

재현은 문을 잡은 채로 서 있었다. 문이 등 뒤에서 천천히 닫히면서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그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길게 남았다.

선우는 계산대 안쪽에 서 있었다. 짙은 초록색 앞치마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커터칼이 있었다. 발밑에 뜯다 만 택배 상자가 세 개 있었다.

십이 년이 지났다. 그런데 선우는 열아홉 때와 자세가 똑같았다. 어깨를 살짝 안으로 말고, 무게를 왼발에 싣고 서는 습관. 재현은 그 자세를 하도 오래 봐서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오재현.”

“어.”

“왜?”

“왜라니.”

“왜 여기 있냐고.”

재현은 웃었다. 웃음이 목에서 좀 걸렸다.

“손님인데.”

“손님.”

“책 사러 왔는데.”

“무슨 책.”

“그건 아직 안 정했고.”

선우는 커터칼을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조금 더 걸렸다.

“아버님 일은 들었어.”

“어.”

“못 갔다. 미안.”

“괜찮아. 나도 안 갔어.”

선우가 재현을 봤다.

“……뭐?”

“농담이야.”

“하나도 안 웃긴데.”

“응. 나도 알아.”

가게 안은 서늘했다. 낡은 에어컨이 위에서 돌고 있었고, 그 소리 사이로 종이 냄새가 났다. 재현은 그 냄새를 맡으면서 자기가 지금 얼마나 땀에 절어 있는지 알았다. 셔츠가 등에 붙어 있었다.

“여기 원래 세탁소였잖아.”

“어.”

“아버님은.”

“작년에.”

“…….”

“괜찮아.” 선우가 말했다. “너도 방금 그랬잖아.”

두 사람 다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어컨이 한 번 덜컹거렸다.

“책 안 살 거면 나가.”

“살 거야.”

“뭐.”

“추천해 줘.”

“추천을 왜 나한테 받아.”

“여기 주인이잖아.”

선우가 잠깐 재현을 봤다. 그러고는 서가 쪽으로 갔다. 재현은 따라갔다.

서가 사이 통로가 좁았다. 사람 하나가 지나가면 딱 맞는 폭이었다. 선우가 앞서 걷고 재현이 뒤에서 걸었는데, 선우가 갑자기 멈춰 서는 바람에 재현의 가슴이 선우의 등에 닿았다.

한순간이었다.

선우의 목덜미에서 세제 냄새가 났다. 여름 저녁이라 둘 다 더웠고, 옷이 얇았고, 닿은 자리가 뜨거웠다. 재현은 반사적으로 반걸음 물러섰다. 물러서면서 자기가 왜 물러섰는지 생각했고, 생각한 게 실수라는 걸 곧 알았다.

“……미안.”

“아니야.”

선우가 뒤도 안 보고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았다.

선우는 서가 중간에서 책을 한 권 뽑아 재현에게 내밀었다. 얇은 소설이었다. 재현은 받으면서 손끝이 스쳤고,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이거.”

“무슨 얘긴데.”

“읽어 보면 알아.”

“힌트 좀.”

“싫어.”

재현은 웃었다. 이번에는 걸리지 않았다.

계산대로 갔다. 선우가 바코드를 찍는데 재현이 물었다.

“몇 시까지 해.”

선우의 손이 멈췄다.

멈춘 김에 선우는 계산대 아래 서랍을 닫았다. 열려 있는 줄도 몰랐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서랍이 닫히는 소리는 작았는데 재현의 귀에는 크게 들렸다.

“……아홉 시.”

“매일?”

“응.”

“일요일도.”

“일요일은 여섯 시.”

“장사 잘돼?”

“아니.”

“그럼 왜 해.”

선우가 영수증을 뽑아서 책 사이에 끼웠다.

“왜 하냐고 물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왜?”

“대답이 없으니까.”

재현은 책을 받았다. 만이천 원짜리였다. 카드를 냈다가, 현금으로 바꿔 냈다. 이유는 자기도 몰랐다.

문을 나서기 전에 뒤를 돌아봤다.

“나 삼 주 있어.”

“어디.”

“철물점 정리하러.”

선우는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서 있었다.

“그래.”

“그래?”

“그럼 뭐라고 해.”

“…….”

“잘 가.”

종이 울렸다.

밖은 아직 밝았다. 팔월 말인데도 여덟 시 가까이 돼서야 어두워진다. 재현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걸었다. 아까 셔터를 못 연 철물점 앞을 지나면서, 오늘 밤 어디서 자야 하나 생각했다.

읍내에 여관이 하나 있었다. 십이 년 전에도 있었다.

그 여관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방은 삼만 원이었다. 창문이 하나였고 그 창문으로 읍내 큰길이 보였다. 재현은 씻고 나와 창가에 앉았다.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늦여름」의 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아홉 시까지라고 했는데.

재현은 그걸 십 분쯤 보다가 커튼을 쳤다.

책을 폈다. 세 쪽 읽고 덮었다. 글자가 안 들어왔다.

대신 열아홉 살 여름이 들어왔다.

그해 여름에 두 사람은 매일 만났다. 만날 이유가 딱히 없었는데 매일 만났다. 세탁소 이 층에 선우 방이 있었고, 그 방은 여름에 미치도록 더웠다. 선풍기 하나로 버텼다. 선풍기는 고개를 저었고, 바람이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오는 사이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누워 있었다.

한 번은 선우가 잠들었다.

재현은 그때 선우의 목을 봤다. 땀이 목선을 따라 흘러서 쇄골에 고이는 걸 봤다. 그걸 보면서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고, 그게 무슨 뜻인지 열아홉 살은 몰랐다.

몰랐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았다.

그해 팔월 말에 재현은 편지를 썼다.

써서, 부쳤다.

답은 오지 않았다.

구월에 서울로 갔다. 아버지가 등록금을 반만 대 줄 수 있다고 했고, 재현은 나머지를 벌어야 했다. 전화기를 바꿨고 번호가 바뀌었다. 바꾼 번호를 알려 줄 사람 목록을 만들었는데 거기 선우 이름을 안 넣었다.

넣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답이 없었으니까.

답이 없다는 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재현은 창밖을 봤다. 커튼 사이로 불빛이 한 줄 들어왔다.

십이 년 동안 그 여름을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해 놓고 살았다. **나는 말했고, 걔는 안 받았다.** 그 문장은 편했다. 아무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더 물어볼 것도 없고, 그래서 다시 꺼낼 일도 없었다.

편한 문장은 대개 어딘가 틀려 있다.

그걸 재현은 그때 몰랐다.

다음 날 아침에 재현은 열쇠 수리공을 불렀다. 사만 원을 주고 셔터를 땄다. 셔터가 올라가면서 먼지가 쏟아졌고, 안쪽 벽에 열쇠 열두 개가 못에 걸려 있었다. 하나하나에 매직으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뒷문, 창고, 이층, 금고, 옆집 아저씨 것.**

아버지는 적어 두는 사람이었다. 열쇠고리에만 안 적었을 뿐이다.

재현은 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가게 안은 물건이 가득했다. 나사, 경첩, 문고리, 전선, 파이프. 삼십 년 치였다. 이걸 삼 주 안에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재현은 생각했다.

정오쯤에 그는 상자를 사러 나갔다.

문구점이 없어졌다는 걸 알고 세 블록을 더 걸었다. 걷다 보니 「늦여름」 앞이었다.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인정하는 데 삼 초쯤 걸렸다.

문을 밀었다. 종이 울렸다.

선우는 사다리 위에 있었다. 서가 맨 윗칸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상자 좀.”

“응?”

“택배 상자. 어제 뜯던 거. 버릴 거면 나 줘.”

선우가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마지막 단을 헛디뎠다.

재현이 잡았다.

팔이었다. 팔꿈치 위쪽. 셔츠 소매가 걷혀 있어서 맨살이었다. 선우의 팔은 생각보다 뜨거웠고, 재현은 잡은 손을 놓는 타이밍을 놓쳤다.

일 초. 이 초.

선우가 먼저 팔을 뺐다.

“……고마워.”

“어.”

“상자는 뒤에 있어.”

“어.”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재현은 뒷문 쪽으로 갔고 선우는 사다리를 접었다. 사다리 접는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컸다.

상자는 여섯 개였다. 재현이 그걸 들고 나가려는데 선우가 말했다.

“그거 혼자 못 들어.”

“들 수 있어.”

“여섯 개를.”

“두 번 오면 되지.”

“두 번 올 거야?”

재현은 상자를 든 채로 돌아봤다.

선우는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앞치마 끈을 다시 묶는 중이었다. 목 뒤로 손을 올려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끈을 잡아당기는 동작이었다. 그 동작에서 목덜미가 드러났다.

재현은 그걸 봤다.

보고 있는 자기를 알았다.

“……올게.”

“어.”

“내일도 올 거야.”

“상자 다 가져가면 올 이유 없잖아.”

“그럼 세 개만 가져갈게.”

선우가 앞치마 끈을 묶던 손을 멈췄다.

에어컨이 덜컹거렸다. 그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렸다.

“……마음대로 해.”

“어.”

재현은 상자 세 개를 들고 나왔다. 문에서 종이 울렸고, 밖은 뜨거웠고, 그는 길 한복판에서 상자를 든 채로 삼십 초쯤 서 있었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서른 살이었다. 이 나이에 이런 게 뭔지 모를 리가 없었다.

문제는, 안다고 해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열아홉에는 이름을 몰라서 못 말했고, 서른에는 이름을 알아서 못 말한다.

그날 밤 「늦여름」의 불은 아홉 시 사십 분에 꺼졌다.

재현은 여관 창가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비가 왔다.

팔월 말 비는 시원하지 않다. 뜨거운 걸 한 겹 더 덮는 느낌이다. 재현은 철물점 안에서 나사 상자를 종류별로 나누다가, 세 시쯤에 그 일을 그만뒀다. 손에 기름때가 묻었고 등이 젖었고, 무엇보다 이 일에 끝이 없다는 걸 알아 버렸다.

밖으로 나갔다. 처마 밑을 따라 걸었다. 처마가 끊기는 데서 젖었다.

「늦여름」 문을 밀었을 때 재현은 이미 어깨까지 젖어 있었다.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수건을 들고 나왔다.

“써.”

“고마워.”

“그거 손님용 아니야. 내 거야.”

“……그럼 안 쓸까.”

“쓰라고 줬잖아.”

재현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 선우가 쓰던 수건이었다. 그 사실이 목뒤를 좀 뜨겁게 했다. 서른 살이 이런 걸로 뜨거워지는 건 좀 웃긴 일이라고 재현은 생각했고,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뜨거웠다.

비가 오면 손님이 없다고 선우가 말했다. 원래도 없는데 비가 오면 더 없다고.

“그럼 문 닫으면 되잖아.”

“닫으면 진짜 없어.”

“무슨 소리야.”

“한 번 닫으면, 사람들이 여기 닫는 데구나 하고 생각해. 그다음엔 열어 놔도 안 와.”

선우가 계산대에 팔을 얹고 말했다.

“그래서 안 닫아.”

재현은 그 말이 책 장사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알았지만 안 물었다.

두 시간쯤 있었다. 손님은 한 명 왔다. 초등학생이었고, 문제집 있냐고 물었고, 없다니까 그냥 갔다.

“문제집을 왜 서점에서 찾지.”

“서점이니까.”

“여긴 그런 서점 아니잖아.”

“걔는 그걸 모르지.”

“그럼 하나 갖다 놔.”

“싫어.”

“왜?”

“내가 안 좋아해서.”

재현은 웃었다. 선우도 웃었다. 웃는 얼굴을 정면으로 본 건 십이 년 만이었고, 재현은 그 얼굴이 예전보다 좀 마른 걸 알았다.

여섯 시쯤 비가 굵어졌다. 재현이 일어섰다.

“가야지.”

“이 비에.”

“여관 코앞이야.”

“코앞 아니야. 사거리 지나서 두 블록이야.”

재현이 선우를 봤다.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선우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읍내에 여관이 하나잖아.”

“아.”

“다 알아, 여긴.”

“그렇지.”

재현은 문 쪽으로 갔다. 손잡이를 잡았다.

“우산 있어?”

“없어.”

“…….”

선우가 계산대 아래에서 우산을 꺼냈다. 접는 우산이었고 색이 다 바래 있었다.

“이거 써.”

“너는.”

“나는 위에서 자.”

재현은 우산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선우는 손잡이 쪽을 잡고 있었고, 재현이 그 아래를 잡으면서 손가락이 겹쳤다.

이번에는 아무도 손을 빼지 않았다.

이 초쯤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더 짧았을지도 모른다. 비 소리가 창문에 붙어 있었고 에어컨은 꺼져 있었고, 가게 안은 습하고 조용했다. 재현은 선우의 손끝이 차가운 걸 알았다. 손끝만 차갑고 손등은 뜨거웠다.

“……재현아.”

“어.”

“너 삼 주 있는다고 했지.”

“어.”

“삼 주 지나면 가?”

“가야지.”

선우가 우산을 놓았다.

“그럼 됐어.”

“뭐가?”

“그냥.”

선우는 뒤돌아서 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할 게 없는 상자였다.

재현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선우야.”

“응.”

“……아니다.”

“말해.”

“아니야.”

문을 밀었다. 종이 울렸다. 비가 정면으로 들이쳤다.

“오재현.”

돌아봤다.

선우는 계산대 뒤에 서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거기 서 있었던 것처럼.

“내일도 와.”

“어.”

“상자 아직 세 개 남았으니까.”

재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혔다.

빗속을 걸으면서 재현은 우산을 폈다가, 두 블록 내내 자기가 그 우산을 어깨에 얹고만 있었다는 걸 여관 앞에서 알았다.

옷이 다 젖어 있었다.

방에 들어와서 그는 젖은 셔츠를 벗었다. 창가에 앉았다. 커튼을 열었다.

「늦여름」의 불은 켜져 있었다.

아홉 시가 넘었다.

열 시가 넘었다.

열한 시가 다 돼서, 재현은 자기가 그 불을 두 시간째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순간 불이 꺼졌다.

이 층에 불이 켜졌다. 세탁소 이 층. 열아홉 살 여름에 선풍기 하나로 버티던 그 방.

재현은 커튼을 닫지 않았다.

닫아야 하는데 손이 안 갔다. 그는 창틀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까 아까 손가락이 겹쳤던 감각이 그대로 돌아왔다. 손끝은 차갑고 손등은 뜨거웠다. 그 온도 차이가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알 수 없었다.

**삼 주 지나면 가?**

**가야지.**

**그럼 됐어.**

뭐가 됐다는 건지 물었어야 했다.

물으면 뭐라도 시작될 것 같아서 안 물었다는 걸, 재현은 인정하기 싫었다.

십이 년 전에도 그랬다. 편지를 쓰고, 부치고, 답이 없고, 그래서 물어보지 않았다. 딱 한 번만 물어봤으면 됐다. **너 내 편지 받았어?** 여덟 글자였다.

그 여덟 글자를 안 물어서 십이 년이 갔다.

재현은 창가에서 일어났다.

내일은 상자를 세 개 다 가져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개만 가져오면 하루가 더 생긴다. 하루에 한 개씩 가져오면 사흘이 생긴다.

서른 살이 이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같은 시각 세탁소 이 층에서, 백선우는 불을 켜 놓은 채 서랍장 맨 아래 칸을 열고 있었다. 그 안에 겨울 이불이 들어 있었고, 이불 밑에 봉투가 하나 있었다.

봉투에는 주소가 없었다.

받는 사람 이름만 적혀 있었다. 열아홉 살 글씨로.

선우는 그걸 오 분쯤 보다가, 다시 이불을 덮고 서랍을 닫았다.

닫는 소리가 작았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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