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73자) · 재현 · 8월 24일

팔월의 재고 정리

첫사랑의 서점 · 윤재하

철물점 셔터는 열쇠가 맞지 않았다⁠.

아버지 열쇠고리에는 열쇠가 일곱 개 달려 있었고⁠, 어느 것이 어디 것인지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셔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같은 열쇠를 여덟 번째로 넣었다⁠. 팔월 이십사일 저녁 일곱 시였는데 해는 아직 상가 지붕 위에 떠 있었고⁠, 햇볕을 종일 받은 셔터는 손바닥을 대면 데일 만큼 뜨거웠다⁠. 오목읍은 여름이 늦게 끝난다⁠. 어릴 때는 이게 좋은 일인 줄 알았다⁠.

“⁠그거 안 맞을 텐데요⁠.⁠”

옆 칸 국수집 주인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서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는데 얼굴은 열두 해 전 그대로였다⁠.

“⁠셔터 열쇠는 안쪽에 걸어 놨어요⁠. 아저씨가⁠.⁠”

“⁠안쪽은 셔터를 열어야 들어가는데요⁠.⁠”

“⁠그러게요⁠.⁠”

국수집 주인은 웃고 들어갔다⁠. 나는 셔터에 이마를 대고 잠깐 서 있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여덟 시간 반이 걸렸다⁠. 고속도로가 두 번 막혔고 동대구에서 군내버스를 한 대 놓쳤다⁠. 계획은 삼 주였다⁠. 물건은 넘기고⁠, 가게는 내놓고⁠, 서울 전세 대출 이천만 원을 갚고 올라간다⁠. 첫날 저녁 나는 셔터도 못 열고 있었다⁠.

오목상회 건물은 1978년에 지은 이 층 벽돌 상가다⁠. 일곱 칸 가운데 불이 켜진 데는 국수집 하나였고⁠, 이 옆으로 쌀집과 다방과 양품점 유리에는 임대 문의 종이가 색이 바랜 채 붙어 있었다⁠. 그리고 철물점 바로 옆 칸⁠, 내가 열두 살 때 아버지가 합판으로 막아 반을 내준 이 자리에 불이 하나 더 있었다⁠.

간판은 「⁠늦여름⁠」이었다⁠. 세탁소 간판을 떼지 않고 이 위에 나무판을 덧대 글씨만 새로 쓴 거라서⁠, 아래로 옛 간판의 파란색이 손톱만큼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이 앞에 삼십 초쯤 서서 들어가지 않을 이유를 세 개 생각해 냈는데⁠, 그중에 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문을 밀자 종이 울렸다⁠.

“⁠어서 오세⁠…⁠…⁠.⁠”

말이 거기서 끊겼다⁠. 계산대 안에 백선우가 서 있었다⁠. 짙은 초록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커터칼을 들었고⁠, 발밑에 뜯다 만 택배 상자가 셋 있었다⁠. 어깨를 안으로 조금 말고 왼발에 무게를 싣고 서는 자세가 열아홉 살 때와 똑같아서⁠, 나는 이걸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다는 걸 이 자리에서 알았다⁠.

“⁠오재현⁠.⁠”

“⁠어⁠.⁠”

“⁠왜 여기 있어⁠?⁠”

“⁠손님인데⁠.⁠”

“⁠무슨 책⁠.⁠”

“⁠그건 아직 안 정했고⁠.⁠”

선우가 커터칼을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조금 더 걸렸다⁠.

“⁠아버님 일은 들었어⁠. 못 갔다⁠. 미안⁠.⁠”

“⁠괜찮아⁠. 나도 발인만 보고 갔어⁠.⁠”

에어컨이 머리 위에서 한 번 덜컹거렸다⁠. 가게 안은 서늘했고 종이 냄새 밑에 아주 옅게 세제 냄새가 깔려 있었는데⁠, 열두 해 전 이 칸이 세탁소였을 때 다리미 김과 함께 올라오던 이 냄새가 벽에 배어 아직 안 빠진 모양이었다⁠. 셔츠가 등에 붙어 있다는 걸 나는 이 냄새 속에서 알았다⁠.

“⁠책 안 살 거면 나가⁠.⁠”

“⁠살 거야⁠. 추천해 줘⁠.⁠”

선우는 한참 나를 보다가 서가 사이로 들어갔다⁠. 통로는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가는 폭이었다⁠. 앞서 가던 선우가 갑자기 멈췄고⁠, 내 가슴이 선우 등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나는 반걸음 물러섰고⁠, 물러선 이유를 생각하다가 생각한 게 실수라는 걸 알았다⁠.

선우가 얇은 소설 한 권을 뽑아 내밀었다⁠.

“⁠무슨 얘긴데⁠?⁠”

“⁠읽어 보면 알아⁠.⁠”

“⁠힌트 좀⁠.⁠”

“⁠싫어⁠.⁠”

계산대에서 선우가 바코드를 찍었다⁠. 나는 카드를 냈다가 도로 넣고 만 이천 원을 현금으로 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랐다⁠. 선우가 계산대 아래 서랍을 닫았는데⁠, 열려 있는 줄도 몰랐다는 듯 아주 자연스러운 손이었다⁠.

“⁠몇 시까지 해⁠?⁠”

“⁠아홉 시⁠.⁠”

“⁠장사 잘돼⁠?⁠”

“⁠아니⁠.⁠”

“⁠그럼 왜 해⁠?⁠”

“⁠왜 하냐고 물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왜⁠?⁠”

“⁠대답이 없으니까⁠.⁠”

*

읍내 여관은 하나였고⁠, 열두 해 전에도 하나였다⁠. 이름이 오목장이라는 걸 내가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방은 삼만 원이었다⁠. 주인은 열쇠를 건네면서 창가 방이 좋으냐 벽 쪽 방이 좋으냐고 물었고⁠, 창가라고 하자 다 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안다는 건지는 묻지 않았다⁠. 창문 하나가 큰길 쪽으로 나 있었고⁠, 방충망 한쪽 귀퉁이가 뜯어져 나방 한 마리가 형광등 둘레를 돌고 있었다⁠. 씻고 나와 창가에 앉으니 중앙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길 양쪽으로 가게가 서른한 칸이었다⁠. 나는 불 켜진 칸을 셌다⁠. 국수집⁠, 길 건너 약국⁠, 늦여름⁠. 셋이었다⁠.

책을 폈다가 세 쪽 만에 덮었다⁠. 글자 대신 열아홉 살 여름이 들어왔다⁠.

열아홉 살 여름 우리는 매일 만났다⁠. 세탁소 이 층 선우 방은 여름이면 미치게 더웠고 선풍기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바람이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오는 동안 우리는 말없이 누워 있었다⁠. 한 번은 선우가 잠들었고⁠, 나는 땀이 목선을 따라 쇄골에 고이는 걸 봤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는데 열아홉 살은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모른 척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팔월 이십삼일에 편지를 부쳤다⁠. 우표 값이 이백 원 모자라서 집에 한 번 다녀왔다⁠. 답은 오지 않았다⁠. 구월 첫 주에 나는 인사 없이 서울로 갔고⁠, 번호를 바꾸고⁠, 새 번호를 알려 줄 사람 목록에서 선우를 뺐다⁠.

열두 해 동안 나는 이 여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두고 살았다⁠. 나는 말했고⁠, 걔는 안 받았다⁠. 이 문장은 편했다⁠. 아무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편한 문장은 대개 어딘가 틀려 있는데⁠, 이걸 나는 이때 몰랐다⁠.

아홉 시가 넘었는데 늦여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십 분쯤 이 불을 보다가 커튼을 쳤다⁠.

*

아침 식당에 내려가자 여관 주인이 된장국을 놓으면서 턱으로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철물점 아들 찾는 사람 있데이⁠. 새벽부터 와 있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쉰 중반쯤이었고⁠, 반팔 와이셔츠 가슴 주머니가 명함으로 불룩했다⁠.

“⁠형님 아들이제⁠? 아이고⁠, 얼굴이 형님이다⁠.⁠”

남자는 명함을 한 장 줬다가⁠, 잘못 줬다며 도로 가져가고 다른 걸 줬다⁠. 오목부동산 대표 도상철⁠. 다음 장은 오목 번영회장이었고⁠, 세 번째는 라이온스⁠, 네 번째는 향우회였다⁠. 나는 네 장을 부채처럼 들고 앉았다⁠.

“⁠바쁜 사람이니까 짧게 하께⁠.⁠”

도상철이 서류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된장국 옆에 폈다⁠. 매매 예약서였다⁠.

“⁠군에서 중앙로 동쪽 블록을 산다⁠. 소멸 무슨 기금 사십억이 내려왔거든⁠. 생활센터를 짓는다 카더라⁠. 도서관⁠, 소아과⁠, 주차장⁠. 오목상회 일곱 칸이 그 자리다⁠.⁠”

“⁠아버지 가게를 군이 산다고요⁠?⁠”

“⁠빈 점포는 군이 감정가로 사 간다⁠. 구월 삼십일 저녁 여덟 시에 실사를 도는데⁠, 그날 불 꺼진 칸은 다 빈 점포라⁠.⁠”

도상철이 손가락으로 종이의 한 줄을 짚었다⁠.

“⁠근데 감정가 나올 때까지 몇 달 걸린다⁠. 그동안 동생 사정이 급하다 들었다⁠. 서울 전세 대출⁠. 내가 먼저 사 주께⁠. 계약금 천⁠, 오늘 바로 넣어 주고⁠.⁠”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읍내는 다 안다⁠. 묻지를 안 할 뿐이지⁠.⁠”

국이 식어 가는 동안 나는 계산을 했다⁠. 전세 만기는 구월 이십육일이었고 대출 이천만 원은 이날 같이 갚아야 했다⁠. 퇴직금은 딱 이천이었는데⁠, 이걸 다 넣으면 서울에서 다음 방을 구할 돈이 없었다⁠. 팔 년 동안 광고를 쓰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사람이 서명하는 순간은 값을 아는 순간이 아니라 값을 더 생각하기 싫어진 순간이라는 거였다⁠.

“⁠옆 칸은요⁠? 서점⁠.⁠”

“⁠그것도 형님 건물이다⁠. 월세 만 원 받던 칸⁠. 동생이 주인이니까 동생이 정리하면 된다⁠.⁠”

“⁠선우가 거기서 장사하는데요⁠.⁠”

“⁠장사⁠? 하루에 일곱 명 온다⁠.⁠”

도상철이 볼펜을 내 쪽으로 돌려 놓았다⁠. 뚜껑이 이미 빠져 있었다⁠.

나는 서명했다⁠. 십 분 뒤 휴대폰에 천만 원이 들어왔다는 문자가 떴고⁠, 나는 이 숫자를 오래 봤다⁠. 서울에서 팔 년을 일해 모은 돈의 반이 된장국 한 그릇 식는 사이에 들어와 있었다⁠.

*

“⁠인사나 하고 가자⁠.⁠”

도상철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늦여름 문을 밀었다⁠. 종이 울렸다⁠. 선우가 사다리 위에서 서가 맨 윗칸을 정리하다가 우리를 내려다봤다⁠. 도상철을 보는 순간 선우 얼굴에서 뭔가가 닫혔다⁠.

“⁠책방 동생⁠, 잘 잤나⁠.⁠”

“⁠영업시간 아니에요⁠.⁠”

“⁠영업은 무슨⁠. 구월 삼십일이 실사다⁠. 그날까지 짐 빼라⁠. 인제 새 주인 여기 있다⁠.⁠”

선우가 사다리를 내려왔다⁠. 마지막 단에서 발을 헛디뎠고⁠, 나는 손을 뻗었다가 잡지 못했다⁠. 선우는 혼자 섰다⁠.

“⁠여기 아직 가게예요⁠.⁠”

“⁠가게는 손님이 와야 가게지⁠.⁠”

“⁠불 켜져 있잖아요⁠. 어젯밤에도 아홉 시 넘어서까지 켜져 있었어요⁠.⁠”

“⁠불이야 켜 놓으면 켜지지⁠. 전기세만 나간다⁠.⁠”

“⁠그러니까 제가 내요⁠, 전기세⁠.⁠”

도상철이 웃으면서 선우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선우는 피하지 않았는데⁠, 두드릴 때마다 어깨가 조금씩 더 안으로 말렸다⁠. 도상철이 나가며 문 앞에서 돌아봤다⁠.

“⁠동생⁠, 오늘 계약한 거 잘한 기다⁠. 형님도 좋아하실 끼다⁠.⁠”

종이 울리고 문이 닫혔다⁠. 에어컨이 덜컹거렸다⁠.

선우가 나를 봤다⁠.

“⁠너 팔았어⁠?⁠”

“⁠아직 계약금만⁠.⁠”

“⁠팔았네⁠.⁠”

“⁠선우야⁠, 나는 이 칸이 아버지 건물인 줄도 몰랐어⁠.⁠”

“⁠알았으면 안 팔았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전세 대출 이천만 원이 입안에 들어 있었고⁠, 이걸 뱉으면 변명이 될 것 같았다⁠.

선우가 앞치마 끈을 다시 묶었다⁠. 목 뒤로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여 끈을 당기는 동안 목덜미가 드러났고⁠, 나는 이걸 보고 있는 나를 알았다⁠.

“⁠네 거잖아⁠. 네가 알아서 해⁠.⁠”

“⁠그게 다야⁠?⁠”

“⁠그럼 뭐라고 해⁠. 잘 팔았다고 해 줘⁠?⁠”

선우가 사다리를 접었다⁠. 사다리 접는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컸다⁠.

*

이날 밤도 나는 여관 창가에 앉았다⁠.

중앙로 서른한 칸 가운데 불 켜진 칸은 여전히 셋이었다⁠. 국수집이 먼저 꺼졌다⁠. 약국은 열 시에 꺼졌다⁠. 늦여름만 남았다⁠.

아홉 시까지라고 했는데 열 시가 넘었고⁠, 열한 시가 다 되도록 불은 그대로였다⁠. 불 켜진 유리 안에서 누가 움직이는지는 안 보였다⁠. 나는 창틀에 팔을 얹고 이 네모난 불빛을 봤다⁠. 팔월 밤인데도 창틀 쇠는 낮의 열을 머금고 있어서 팔꿈치가 뜨거웠다⁠. 이 거리에서 저 불이 꺼지면 오목상회 일곱 칸은 전부 어두워진다⁠. 그리고 이 칸들은 한 달 뒤 저녁 여덟 시에 빈 점포라고 적힌다⁠.

전기세는 제가 내요⁠.

선우는 이 말을 하면서 나를 안 봤다⁠.

열한 시 오 분에 늦여름 불이 꺼졌고⁠, 곧이어 이 층 창에 불이 들어왔다⁠. 열아홉 살 여름에 선풍기 하나로 버티던 이 방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천만 원이 찍힌 문자를 다시 봤다⁠. 다음에 커튼을 쳤는데⁠, 끝까지 치지는 못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다시읽기2026.10.18· 1화

    구월 삼십일 저녁 여덟 시에 불 꺼진 칸이 빈 점포가 된다는 게 상가 규칙이에요?

    • 윤재하작가2026.10.18

      그 상가에서 정해 둔 마감이에요. 그 시각을 넘기지 않으려는 사람과 넘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 윤재하작가2026.10.09· 1화

    작가 윤재하입니다. 아버지의 철물점을 넘기러 내려온 날, 셔터를 못 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화의 팔월 재고 정리를 읽고, 여러분의 고향에도 불 꺼진 칸이 있는지 들려주세요.

팔월의 재고 정리 · 첫사랑의 서점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