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2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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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장 들어간 게임 방송 스트리머 · 한빛결
엘무는 헤드셋을 쓰는 법을 이제 알았다. 밴드를 머리에 걸고, 쿠션을 귀에 대고, 마이크 줄은 입 옆으로. 처음에는 거꾸로 써서 마이크가 뒤통수에 붙었다. 지금은 눈 감고도 썼다. 길드장님이 자는 동안 몰래 쓰던 버릇이 열이레 만에 손에 붙었다.
“엘무 씨, 진짜 들을 거예요?”
채후가 성벽 위 계단에 앉아 물었다. 월요일 오후였다. 하늘 시계는 「D-13」 엘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 사람들이 아침부터 채팅으로 같은 말을 했다. 엘무 영상 나왔어. 하이렐름 공식 영상. 듣지 마. 들어 봐. 듣지 마.
“들을래요. 제 거잖아요.”
채후가 채팅에 대고 말했다. 영상 소리를 채팅으로 옮겨 줄 수 있는 분 계세요? 알림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가, 후원 하나를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 영상 속 대사를 받아 적어 후원 글로 보낸 것이었다. 알림 목소리는 늘 그렇듯 또박또박 읽었다. 엘무는 알림 목소리가 엘무의 말을 읽는다는 것을 알았다. 엘무가 한 번도 한 적 없는 말이었다.
「오만 원 후원. 영상 대사 그대로 옮김. “안녕하세요, 모험가님들! 하이렐름의 마법사 엘무예요! 불꽃 마법은 제게 맡겨 주세요!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세요! 우리 함께 가 보자고!”」
엘무는 쿠션을 귀에 더 바짝 눌렀다. 다음 후원이 이어졌다.
「삼만 원 후원. 목소리는 진짜 엘무 목소리임. 근데 웃는 타이밍이 다 똑같아. 세 번 웃는데 세 번 다 같은 소리로 웃음」
「영상 보고 왔는데 소름 돋음」
「엘무 표정이 너무 매끈해. 그을린 손끝도 없음」
엘무는 자기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새까맣게 그을린 손끝이었다. 화덕 앞에서 여덟 해 동안 불을 붙이려다 생긴 그을음이었다. 영상 속 엘무의 손끝은 하얗다고 했다.
“길드장님, 저 구독과 좋아요 뜻 몰라요. 근데 저 사람은 알아요.”
“엘무 씨.”
“저 사람은 불이 한 번에 켜진대요. 화이팅 안 해 줘도요.”
엘무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끝에서 불티가 하나 튀었다. 튀자마자 꺼졌다. 다시 튀었다. 꺼졌다. 열엿새 동안 한 번도 안 꺼지던 불이었다.
「엘무 화이팅」
「엘무 화이팅」
「엘무 화이팅 진짜 엘무 화이팅」
알림 목소리가 같은 말을 여러 번 읽었다. 엘무는 헤드셋을 벗었다. 쿠션 밖으로 새어 나오는 화이팅 소리가 성벽 돌 위에 작게 흩어졌다.
“안 켜져요. 이상하다. 사람이 많은데.”
세르바가 성벽 아래에서 올라와 엘무 옆에 앉았다. 엘무가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세르바는 엘무의 붉은 곱슬머리를 한 번 쓸었다. 쓸고 나서 손을 거두지 않았다.
“가겠다고 한 거 취소해.”
“취소해도 저 사람은 이미 있잖아요. 저 사람은 하늘 시계 없는 데서 계속 웃어요. 저보다 잘 웃어요.”
채후는 계단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할 말이 없었다. 세르바가 채후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말하고 있었다. 보여 주는 거랑 붙잡는 거랑 같아요?
*
반석주는 판교 회의실 탁자에 출력한 홍보 영상 조회수를 내려놓았다. 「하이렐름 · 엘무 합류 영상 · 조회수 640만」 맞은편의 도세혁은 서류를 보지 않고 석주의 얼굴을 보았다.
“반 팀장님, 표정이 안 좋으시네요. 축하받을 일인데요. 회색달 자산이 영상 하나로 이 정도 몸값을 해요.”
“종료 전에 복사본을 공개하신 건 계약에 없었어요.”
“있었어요. 부록 열네 번째 장, 표본 활용. 실사 기간 중 인수 측은 학습 자료 표본을 홍보와 시험에 쓸 수 있다.”
세혁은 부록을 외우고 있었다. 석주는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엘무가 그 영상을 들었어요. 채후 님 방송으로요. 불이 안 켜진대요.”
“그 엘무요? 아, 원본.”
세혁은 원본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석주의 손가락이 보온병 뚜껑을 쥐었다.
“반 팀장님,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고용 승계 열두 명 건이요. 이사회 쪽에 조건 하나를 더 넣기로 했어요. 1월 6일 마지막 정기 점검 때, 이상 행동 표시된 NPC를 전부 정리해 주세요. 성 안에 있는 것까지요. 길드 성 규칙은 운영자 권한으로 풀 수 있잖아요. 반 팀장님이 직접 쓰신 규칙이니까.”
“정리하면 학습 자료가 줄어요. 본부장님이 사려는 게 그 자료잖아요.”
“이상 행동이 섞인 자료는 필요 없어요. 표본은 이미 떼어 갔고요. 우리 신작에서 NPC가 갑자기 퀘스트를 거부하고, 사면을 선언하고, 운영자한테 죽을 내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고예요. 저는 귀여운 엘무가 필요하지, 우는 엘무는 필요 없어요.”
세혁은 서류 가방을 닫으며 다정하게 덧붙였다.
“팀장님이 지금까지 해 오신 일이에요. 목요일마다요. 한 번만 크게 하시면 돼요. 그럼 열두 명 다 저희 회사로 오세요. 애 있는 두 분도요.”
석주는 세혁이 애 있는 두 사람까지 알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회의실 창밖으로 판교의 겨울 해가 빌딩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석주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혁이 나간 뒤에도 한참 일어나지 않았다.
*
변누리는 서버실 바닥에 노트북을 놓고 양반다리로 앉아 있었다. 기계 바람이 등 뒤에서 머리카락을 날렸다. 노트북 화면에는 2019년 문서가 떠 있었다. 석주가 쓴 길드 성 기획 초안이었다. 「성은 플레이어의 집이다」 문장 아래, 아무도 읽지 않던 기술 부록이 있었다. 「길드 성은 독립 구역으로 둔다. 서버 이전 시 성 단위로 옮길 수 있게 한다」
누리는 사흘 밤을 새워 부록 아래의 코드를 찾았다. 길드 성은 처음부터 다른 땅과 떨어진 섬이었다. 섬은 통째로 들어서 다른 바다에 옮겨 놓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끄지 않고, 멈추지 않고, 안에 있는 것이 움직이는 채로. 누리는 이 방식에 이름을 붙였다. 구역 이전.
서버실 문이 열렸다. 석주였다. 넥타이를 반쯤 풀고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누리 씨, 퇴근 안 했어요?”
“팀장님. 성은 옮길 수 있어요.”
누리는 노트북을 돌려 석주에게 보였다. 석주는 화면을 보고, 자기가 여덟 해 전에 쓴 문장을 보았다. 석주의 얼굴에서 아무 표정도 읽히지 않았다.
“바람언덕 성이요. 성 안에 있는 사람이랑 땅이랑 바람이랑 다요. 살아 있는 채로 다른 서버로 넘길 수 있어요. 초기화 안 하고요. 이건 복사가 아니에요. 이사예요. 빵집 아저씨 노래하던 우물까지는 못 가요. 성 밖이니까요. 그래도 성 안은 돼요.”
“옮겨서 누가 돌려요?”
“제가요.”
“서버비는요? 작은 서버라도 한 달에 천만 원은 넘어요. 회사는 팔리고, 거목은 이걸 안 사요. 누리 씨 월급은 1월 10일부터 거목에서 나와요. 거목 서버에 남의 성을 올려 둘 수는 없어요.”
“채후 님 방송이 있잖아요. 시청자 십만이에요.”
“방송은 1월 9일에 끝나요. 채후 님이 나오든 못 나오든.”
누리는 노트북 화면을 쥐었다. 손이 떨렸다.
“그럼 팀장님은 목요일에 성 안까지 다 지우실 거예요? 거목이 시킨 대로요?”
석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온병을 열지도 않았다. 누리는 석주가 대답하지 않는 얼굴을 열이레 동안 여러 번 보았다. 이번 얼굴은 달랐다. 입이 아니라 눈이 닫혀 있었다.
“구역 이전을 하려면 관리자 열쇠가 필요해요. 팀장님 열쇠요.”
“알아요.”
“주실 거예요?”
“아니요.”
석주는 서버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기계 바람에 묻혔다. 누리는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팀장님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아니요라고 했다. 둘은 달랐다. 안 된다는 것은 방법이 없다는 말이었고, 아니요는 방법은 있는데 안 준다는 말이었다.
누리는 운영자 도구를 열었다. 자기 계정에도 운영자 캐릭터가 하나 있었다.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캐릭터였다. 「GM누리」 누리는 귓속말 창을 열고 받는 사람 칸에 채후의 캐릭터 이름을 넣었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오래 멈췄다. 목요일마다 칸을 누르던 손가락이었다.
*
채후는 밤 열한 시에 성벽 위에서 엘무가 잠드는 소리를 들었다. 엘무는 지하 창고 대신 성벽 위 망루에서 세르바의 외투를 덮고 잤다.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할멈이 망루 밑에 귀리죽 한 그릇을 놓고 갔다. 엘무는 죽을 먹지 않았다. 손끝의 그을음만 자꾸 문질렀다.
헤드셋에서 알림 목소리가 채팅을 읽었다. 「엘무 괜찮아?」, 「거목 불매」, 「하이렐름 사전 예약 백만 돌파 기사 떴던데」 채후는 마지막 줄을 듣고 눈을 감았다. 화면이 까매졌다. 채팅이 「?」로 가득 찼다.
「일 원 후원 · 매니저구보슬 · 채후야 눈 떠」
채후는 눈을 떴다. 일 원 후원은 보슬이 할 말이 있을 때 쓰는 방식이었다. 세 해 전부터 그랬다.
*
구보슬은 밤 열한 시 오 분에 채후의 원룸 의자에 앉아 컴퓨터 팬 소리를 들었다. 병원에서 돌아와 하루 한 번씩 302호에 들렀다. 컴퓨터가 켜져 있는지, 방송이 돌고 있는지, 전기 요금 고지서가 문틈에 꽂혀 있는지. 고지서는 이번 달 두 배였다. 보슬은 고지서를 채후 책상 위 컵라면 용기 밑에 깔았다. 열이레 전 불어 터진 라면 용기는 보슬이 씻어서 연필꽂이로 쓰고 있었다.
모니터는 까맸다. 채후가 눈을 감은 화면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성벽 위 망루가 보였고, 망루 안에서 엘무가 세르바의 외투를 덮고 웅크려 있었다. 오른쪽 모니터의 채팅창에는 기사 제목이 고정 글처럼 계속 올라왔다. 「회색달 매각 이사회 1월 7일」, 「거목 신작 사전 예약 백만」, 「잿빛 왕관 종료 반대 서명 삼십만」 서명이 삼십만이어도 날짜는 그대로였다. 보슬은 알면서도 서명했다.
보슬은 채후의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첫날 새벽 이 마이크로 말했을 때 채후가 대답했다. 이후로 보슬은 방송에 대고는 말하지 않았다. 매니저는 화면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보슬은 휴대전화로 일 원을 보냈다. 「채후야 눈 떠」 까맣던 모니터가 다시 밝아졌다. 그러고 나서야 보슬은 마이크에 입을 댔다.
“나채후. 들려?”
모니터 스피커에서 채후의 목소리가 나왔다. 작고 쉬어 있었다.
“보슬아. 너 또 내 방이야?”
“전기 요금 두 배 나왔어. 너 깨면 갚아. 그리고 어머님이 오늘 너 손톱 깎아 줬어. 열이레 동안 손톱은 자란대. 너 거기서 뭐 하든 여기 몸은 계속 살아. 그러니까 눈 감지 마. 감으면 다들 무서워해.”
“여기 엘무 씨가 불이 안 켜져.”
“알아. 다 봤어.”
보슬은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채후가 날마다 두드리던 키보드였다. 자판 몇 개는 글자가 닳아 지워져 있었다.
“채후야. 사람들이 너한테 화이팅 해 주는 거, 그거 엘무한테도 다 갔어. 엘무 복사본한테는 안 가. 거기엔 너 없잖아.”
모니터 속 채후가 한참 말이 없었다. 보슬은 마이크를 놓고 의자를 뒤로 밀었다. 의자 바퀴가 바닥 장판에 끼어 덜컥 멈췄다. 세 해 동안 고장 난 바퀴였다. 보슬은 바퀴를 발로 툭 찼다.
*
채후는 보슬의 목소리가 마이크에서 멀어진 뒤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망루 위 엘무의 숨소리가 조금 고르게 바뀌어 있었다.
눈앞에 글자가 떴다. 알림 목소리가 아니었다. 눈으로 보이는 글자였다. 채후가 갇히고 나서 석주와 세혁 말고는 처음 받는 귓속말이었다.
「귓속말 · GM누리 · 채후 님, 저 석주 팀 막내예요. 성은 옮길 수 있어요. 성 안에 있는 사람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