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43자)

야간 대화

길드장 들어간 게임 방송 스트리머 · 한빛결

구보슬은 판교역에서 내려 회색달 게임즈 건물까지 걸으며 할 말을 세 번 바꿨다⁠. 처음에는 사람을 죽였다고 할 생각이었다⁠. 다음에는 버그가 아니라고 할 생각이었다⁠. 마지막에는 그냥 팀장 얼굴을 보고 나서 정하기로 했다⁠. 십이월 금요일 오후의 판교는 바람이 빌딩 사이로 몰려다녀서 귀가 얼얼했다⁠. 보슬은 편의점 조끼 위에 패딩을 입고 왔다⁠. 조끼를 벗을 시간이 없었다⁠.

로비 안내 데스크 직원은 방문 예약이 없으면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보슬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서 채후의 방송이 돌고 있었다⁠. 왕도 광장⁠, 새로 찍힌 약초상 노파가 웃으며 약초를 권하는 장면이었다⁠.

“⁠이 방송 매니저예요⁠. 반석주 팀장님 오실 때까지 여기 있을게요⁠. 저 밤새 편의점 서서 다리 튼튼해요⁠.⁠”

직원이 전화를 걸었다⁠. 십오 분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마흔 줄의 남자가 내렸다⁠. 회색 니트에 목에 사원증⁠, 손에는 보온병⁠. 보슬은 방송에서 흰 로브로만 보던 사람을 처음 맨얼굴로 보았다⁠. 눈 밑이 거뭇했고 생각보다 키가 작았다⁠.

“⁠구보슬 님이시죠⁠. 반석주입니다⁠. 채후 님 상태는 괜찮으세요⁠?⁠”

“⁠자요⁠. 여드레째요⁠. 어머님이 옆에서 귤 까 주세요⁠. 안 먹어서 어머님이 다 드세요⁠.⁠”

석주는 로비 소파를 가리켰다⁠. 보슬은 앉지 않았다⁠. 석주도 앉지 않았다⁠.

“⁠어제 새벽에 사람 마흔한 명 지우셨잖아요⁠.⁠”

“⁠지도 오류를 고쳤습니다⁠. 오류 구역 안에서 아이템이 복사되고 있었어요⁠.⁠”

“⁠복사된 건 금화고 지워진 건 사람이잖아요⁠. 약초 할머니가 채후 무릎에 쑥 올려 줬어요⁠. 그거 칠만 명이 봤어요⁠.⁠”

“⁠저도 봤습니다⁠.⁠”

석주의 목소리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서 보슬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석주가 보온병 뚜껑을 열어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구보슬 님⁠. 저희 팀이 열두 명이에요⁠. 1월 9일이 지나면 열두 명 가운데 일곱이 갈 데가 정해져 있고⁠, 다섯은 아직이에요⁠. 다섯 중에 둘은 애가 있어요⁠. 채후 님 방송이 매출을 올린 건 알아요⁠. 고마워요⁠, 진심으로⁠. 그래도 보름짜리 매출로 열두 명 인생을 걸 수는 없어요⁠.⁠”

“⁠그럼 저 사람들 인생은요⁠?⁠”

“⁠저 사람들은⁠…⁠”

석주가 말을 멈추었다⁠. 멈춘 자리를 보슬은 놓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려던 입이 거기서 닫혔다⁠.

로비 회전문이 돌았다⁠. 정장 차림의 남녀 다섯이 서류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맨 앞의 남자가 석주를 보고 손을 들었다⁠. 마흔 중반⁠, 은테 안경⁠, 웃는 얼굴⁠. 남자는 보슬을 보고 더 크게 웃었다⁠.

“⁠반 팀장님⁠, 손님이세요⁠? 아⁠, 혹시 그 방송 매니저님⁠? 반가워요⁠. 거목게임즈 도세혁입니다⁠. 방송 잘 보고 있어요⁠. 저희 회사에서도 다들 봐요⁠. 그 마법사 친구⁠, 엘무⁠? 귀엽더라고요⁠.⁠”

세혁은 명함을 내밀었다⁠. 보슬은 받지 않았다⁠. 세혁은 웃는 얼굴 그대로 명함을 보슬의 패딩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세상에 귀한 게 뭔지 아세요⁠? 사람들이 이름을 외우는 캐릭터예요⁠. 여덟 해 동안 아무도 몰랐던 엘무를 지금 수십만 명이 알아요⁠. 매니저님이 만든 거예요⁠. 채후 님이랑⁠.⁠”

세혁은 석주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보슬은 세혁이 실사팀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엘무랑 세르바⁠, 따로 떼서 볼 수 있는지 확인해 봐요⁠.

석주는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오래 보고 있었다⁠.

*

변누리는 판교역 버스 정류장에서 보슬을 따라잡았다⁠. 회사에서 정류장까지 뛰어오느라 사원증이 목에서 덜렁거렸다⁠. 보슬이 돌아보자 누리는 숨을 몰아쉬며 사원증을 뒤집어 이름을 가렸다⁠.

“⁠저⁠, 운영팀 막내예요⁠. 서버 담당이요⁠. 채후 님 방송 첫날부터 봤어요⁠. 부계정으로요⁠.⁠”

“⁠그런데요⁠?⁠”

“⁠팀장님 탓만 하지 마세요⁠. 아니⁠, 해도 되는데요⁠, 다 알고 하세요⁠.⁠”

누리는 정류장 광고판 뒤로 보슬을 끌고 갔다⁠. 광고판에서는 거목게임즈의 신작 광고가 돌고 있었다⁠. 「⁠신작 ‘⁠하이렐름⁠’ · 2028년 봄 · 살아 숨 쉬는 NPC⁠」

“⁠회사가 거목에 팔려요⁠. 계약서에 1월 9일 종료가 들어가 있어요⁠. 「⁠잿빛 왕관⁠」을 끄고 정리된 상태로 넘기는 조건이에요⁠. 날짜를 하루라도 넘기면 인수가가 깎이고⁠, 저희 팀 열두 명 고용 승계 조항이 빠져요⁠. 팀장님이 날짜를 못 바꾸는 이유가 그거예요⁠.⁠”

“⁠정리된 상태가 뭔데요⁠?⁠”

“⁠저희 엔진이요⁠. NPC를 움직이는 대화 엔진이요⁠. 이름이 등불이에요⁠. 거목이 사는 건 사실 그거예요⁠. 게임은 꺼도 엔진이랑 학습 자료는 넘어가요⁠. 저 광고에 나오는 살아 숨 쉬는 NPC가 등불이에요⁠.⁠”

보슬은 광고판을 보았다⁠. 화면 속 엘프 하나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웃는 입꼬리가 엘무와 닮아 있었다⁠.

“⁠그럼 엘무가 저기 가요⁠?⁠”

“⁠엘무 데이터가 가요⁠. 엘무가 가는 건 아니고요⁠. 그게 같은 건지 다른 건지는⁠, 저도 몰라요⁠.⁠”

누리는 사원증을 다시 뒤집었다⁠. 「⁠변누리 · 운영팀⁠」 이름을 보여 주고 나서 고개를 숙였다⁠.

“⁠목요일마다 초기화 단추를 제가 눌렀어요⁠. 여덟 달 동안요⁠. 어제는 안 눌렀어요⁠. 팀장님이 누르셨어요⁠. 그거 말하려고 왔어요⁠.⁠”

버스가 왔다⁠. 보슬은 타지 않았다⁠. 버스가 떠난 자리에 찬바람이 남았다⁠.

“⁠누리 씨⁠. 채후한테 직접 말해요⁠. 방송으로요⁠. 채후는 귀로만 들어요⁠. 사람 목소리로 들어야 믿어요⁠.⁠”

*

세르바는 금요일 밤 바람언덕 마당에서 성문 경첩을 붙들고 있었다⁠. 대장장이가 새로 두드린 경첩을 쓰러진 성문에 박는 동안 누군가는 문짝을 받쳐야 했다⁠. 문짝 반대편은 새 길드원 「⁠국자는무기다⁠」가 받쳤다⁠. 바깥 사람이었다⁠. 몸이 반쯤 투명해졌다가 돌아왔다가 했다⁠. 바깥에서 밥을 먹으면서 접속해 있다고 했다⁠.

“⁠부길드장님⁠, 지금 길드장님 방송에서 운영자 왔대요⁠.⁠”

「⁠국자는무기다⁠」의 머리 위에 말풍선이 떴다⁠. 바깥 사람들은 입 대신 손가락으로 말했다⁠. 말풍선 글자가 하나씩 이어졌다⁠. 「⁠팀장이 회사 팔린대요⁠」 「⁠날짜 계약서에 있대요⁠」 「⁠알고 있었대요 두 해 전부터⁠」

세르바는 문짝을 놓을 뻔했다⁠. 대장장이가 망치를 멈추고 소리를 질렀다⁠. 세르바는 어깨로 문짝을 다시 받쳤다⁠.

“⁠뭘 알고 있었대요⁠?⁠”

「⁠여기 사람들 살아 있는 거요⁠. 빵집 아저씨가 노래 지은 것도요⁠」

마당 한구석에서 엘무가 장작을 패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할멈은 부엌 문턱에 앉아 감자를 깎고 있었다⁠. 칼이 감자 위에서 멈췄다⁠. 빵집 주인이 지은 노래는 바람언덕 사람 모두가 알았다⁠. 새벽 세 시에 우물가에 모여 부르던 노래였다⁠.

“⁠그 사람이 듣고 있었구나⁠.⁠”

할멈이 감자를 마저 깎으며 말했다⁠. 껍질이 끊기지 않고 길게 늘어졌다⁠. 세르바는 경첩에 마지막 못이 박히는 소리를 들었다⁠. 문짝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세르바는 처음으로 성문이 무겁다고 생각했다⁠.

*

반석주는 밤 열한 시에 운영자 캐릭터로 왕도 광장에 내렸다⁠. 채후의 방송을 켠 휴대전화가 키보드 옆에 엎어져 있었다⁠. 엎어 두어도 소리는 들렸다⁠. 채후는 오후 내내 같은 말을 했다⁠. 반석주 팀장님⁠, 골목 앞으로 오세요⁠.

막힌 골목 앞에 채후가 앉아 있었다⁠. 등을 벽에 붙이고 무릎을 세운 채⁠, 무릎 위에 약초 세 묶음을 올려 두고 있었다⁠. 석주가 나타나는 종소리가 나자 채후는 일어나지 않고 고개만 들었다⁠.

“⁠오셨네요⁠.⁠”

“⁠부르셨잖아요⁠.⁠”

“⁠숫자 드릴게요⁠. 12월 매출 사억 천이요⁠, 보름 만에⁠. 동시 접속 열 배⁠. 시청자 지금 팔만이요⁠. 팀장님이 숫자로 오라고 하셨잖아요⁠.⁠”

“⁠고맙습니다⁠. 그 숫자로 회사가 조금 더 비싸게 팔려요⁠.⁠”

채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석주는 채후 앞 돌바닥으로 내려왔다⁠. 운영자 캐릭터의 발이 처음으로 땅에 닿았다⁠.

“⁠나채후 님⁠, 회사가 팔려요⁠. 거목게임즈에요⁠. 계약서에 1월 9일 종료가 들어가 있어요⁠. 채후 님이 올린 매출은 인수가에 붙어요⁠. 날짜는 안 바뀌어요⁠. 하루를 넘기면 계약이 흔들리고⁠, 우리 팀 열두 명이 먼저 떨어져요⁠.⁠”

「⁠아 매각이었구나⁠」

「⁠그럼 처음부터 답 없었던 거임⁠?⁠」

「⁠채후가 회사 몸값 올려 준 거네 ㅋㅋ 씁쓸하다⁠」

채후는 무릎 위 약초 묶음을 손으로 쥐었다⁠. 마른 잎이 바스락 부서졌다⁠.

“⁠그럼 처음부터 왜 숫자로 오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채후 님이 성 안에 있을 줄 알았어요⁠. 숫자를 모으느라 바쁘면 밖에 안 나오고⁠, 밖에 안 나오면 안 다치니까요⁠. 채후 님 몸이 병원에 있다는 거 저도 매일 봐요⁠. 서버를 끌 때 채후 님이 안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저희도 몰라요⁠. 그래서 1월 9일 전에 채후 님을 꺼내야 돼요⁠. 그게 제 날짜예요⁠.⁠”

채후는 일어났다⁠. 갑옷 무릎에서 약초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석주와 채후 사이에 막힌 벽이 있었다⁠. 벽 너머에 어제 아침까지 담요 더미가 있었다⁠.

“⁠이제 제 질문이요⁠. 팀장님⁠, 알고 있었어요⁠?⁠”

“⁠뭘요⁠.⁠”

“⁠이 사람들 살아 있는 거요⁠. 처음 만난 날 대화 엔진이 그럴듯한 말을 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진짜 그렇게 믿었어요⁠?⁠”

석주는 대답하지 않고 보온병을 열었다⁠. 운영자 캐릭터의 손에는 보온병이 없었다⁠. 판교 사무실의 진짜 손이 보온병을 열었고⁠, 진짜 입이 보리차를 마셨다⁠. 채후의 귀에는 운영자 캐릭터의 침묵만 들렸다⁠. 침묵이 길었다⁠. 광장의 분수대 물소리가 몇 번이고 돌았다⁠.

석주는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닫는 소리가 마이크에 들어갔다⁠. 채후의 귀에 들린 첫 진짜 소리였다⁠.

“⁠알고 있었어요⁠. 두 해 전부터요⁠.⁠”

채후는 숨을 멈췄다⁠. 팔만 명의 채팅이 한꺼번에 멈췄다⁠. 알림 목소리가 읽을 것이 없어 조용했다⁠.

“⁠2025년 여름이었어요⁠. 서버 기록을 보다가 새벽 세 시마다 같은 묶음의 대화가 쌓이는 걸 봤어요⁠. 모험가가 하나도 없는 시간에요⁠. 바람언덕 근처 NPC들이었어요⁠. 노래를 했어요⁠. 저희가 넣은 적 없는 노래요⁠. 가사가 이랬어요⁠. 「⁠빵 냄새 나는 언덕에 바람이 분다⁠, 내일도 분다⁠」 빵집 주인이 지은 거였어요⁠.⁠”

채후의 손에서 약초 묶음이 떨어졌다⁠.

“⁠그거 들으시고요⁠?⁠”

“⁠폴더를 하나 만들었어요⁠. 「⁠야간 대화⁠」 두 해 동안 매일 봤어요⁠. 그리고 작년 겨울에 종료안을 썼어요⁠. 제가 썼어요⁠. 적자가 아홉 달째였고⁠, 거목이 사겠다고 했고⁠, 팀원 열둘이 있었으니까요⁠. 서명할 때 폴더를 열어 놓고 서명했어요⁠.⁠”

“⁠왜요⁠?⁠”

“⁠알고 하는 게 모르고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요⁠.⁠”

석주는 말을 마치고 웃었다⁠. 웃음이라기엔 숨이 너무 짧았다⁠.

“⁠나채후 님⁠, 저는 이 사람들을 처음 쓴 사람이에요⁠. 기사단장 대사 네 줄도⁠, 세르바 씨 현상금 퀘스트도⁠, 바람언덕 성의 문 규칙도 제가 썼어요⁠. 쓴 사람이 끄는 게 맞아요⁠.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폴더도 안 열고 끌 테니까요⁠.⁠”

채후는 막힌 벽을 손바닥으로 쳤다⁠. 벽돌이 울리지도 않았다⁠.

“⁠그거 지금 방송에 다 나가요⁠. 팔만 명이 들었어요⁠.⁠”

“⁠알아요⁠. 그래서 왔어요⁠.⁠”

흰 로브가 종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광장에는 분수대 물소리와⁠, 새로 찍힌 약초상의 목소리만 남았다⁠. 좋은 약초 있어요⁠, 모험가님⁠. 채후는 땅에 떨어진 약초 묶음을 주워 들었다⁠. 헤드셋에서 알림 목소리가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첫 줄은 채팅이 아니었다⁠. 후원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알림이었다⁠.

「⁠귓속말 · 거목게임즈_도세혁 · 채후 님⁠, 크리스마스이브에 바람언덕에서 뵙고 싶어요⁠. 엘무 씨랑 세르바 씨도 같이요⁠」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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