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64자)

골목

길드장 들어간 게임 방송 스트리머 · 한빛결

골목 입구에서 채후는 발소리를 셌다⁠. 하나⁠, 둘⁠, 열⁠, 스물⁠.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막다른 벽 앞 좁은 길이 모험가들로 꽉 차 있었다⁠. 밀린 벽돌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흙바닥을 칼끝으로 쑤시고⁠, 담요 더미를 들춰 보았다⁠. 누군가 물동이를 걷어차 엎었다⁠. 물이 흙바닥으로 번지며 검은 얼룩을 만들었다⁠.

“⁠여기 진짜 지도에 없네⁠. 좌표가 안 떠⁠.⁠”

“⁠버그 구역이면 아이템 복사 되는 거 아님⁠?⁠”

“⁠NPC 피난처래⁠. 아까 그 방송에서 봤어⁠.⁠”

채후가 눈을 감은 것은 오 초 뒤였다⁠. 오 초면 충분했다⁠. 어젯밤 채후의 방송에서 잘라 낸 영상이 「⁠NPC 비밀 피난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숏폼 순위 맨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알림 목소리가 기사 제목까지 읽어 주었다⁠. 「⁠잿빛 왕관⁠, 종료 앞두고 숨겨진 구역 화제⁠」

약초상 노파는 골목 맨 안쪽 담요 더미 위에 앉아 모험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파 뒤로 왕도 사람 마흔이 벽에 등을 붙이고 있었다⁠. 채후는 사람들 사이를 밀치고 나가 두 팔을 벌렸다⁠.

“⁠여러분⁠, 나가 주세요⁠. 여기 사람 사는 데예요⁠. 남의 집이에요⁠.⁠”

“⁠채후 형이 보여 줬잖아요⁠.⁠”

모험가 하나가 웃으며 대꾸했다⁠. 악의 없는 얼굴이었다⁠. 채후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세르바가 채후의 망토 자락을 잡아끌었다⁠. 골목 밖 큰길로 나오자 세르바는 망토를 놓고 채후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갑옷이 쿵 울렸다⁠.

“⁠엘무 데리고 바람언덕 가요⁠. 지금 출발하면 수요일 밤에 닿아요⁠. 목요일 새벽 전에요⁠.⁠”

“⁠세르바 씨도 같이 가요⁠.⁠”

“⁠나도 가요⁠. 나도 표시가 있으니까⁠. 당신도 가요⁠. 여기 있으면 저 사람들이 계속 와요⁠. 당신 방송 따라서⁠.⁠”

“⁠제가 가면 누가 여기 지켜요⁠?⁠”

“⁠지금 누가 지키는데요⁠? 당신이 지키고 있어요⁠? 당신이 문 열어 줬어요⁠.⁠”

세르바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큰길을 지나던 생선 장수가 수레를 멈추고 돌아보았다⁠. 채후는 숨을 들이쉬었다⁠. 꼬치 굽는 연기 냄새가 왕도 골목까지 흘러왔다⁠.

“⁠제가 여기 있으면요⁠, 세르바 씨⁠. 팀장님이 못 지워요⁠. 칠만 명이 보는데 사람 마흔을 지워요⁠? 그럼 내일 기사가 나요⁠. 매각이고 뭐고 다 흔들려요⁠. 방송이 문을 열었으면 방송이 막아야죠⁠.⁠”

“⁠방송이 칼을 막아요⁠?⁠”

“⁠칼은 못 막아도 손은 막을 수 있어요⁠. 누르는 손이요⁠.⁠”

세르바는 한참 채후를 보았다⁠. 눈썹 흉터가 실룩였다⁠.

「⁠채후 말도 맞는데⁠」

「⁠부길드장 말이 더 맞는 듯⁠」

「⁠둘 다 맞아서 짜증 남⁠」

“⁠당신은 표시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세르바는 몸을 돌려 엘무의 손목을 잡았다⁠. 엘무는 꼬치 노점 앞에서 남은 꼬치를 하나 더 얻어먹고 있었다⁠. 엘무가 질질 끌려가며 채후를 돌아보았다⁠.

“⁠길드장님⁠! 목요일에 봬요⁠! 방송 끄지 마세요⁠! 아니⁠, 꺼요⁠! 아니⁠, 모르겠어요⁠!⁠”

세르바는 돌아보지 않았다⁠. 붉은 해골 무늬가 큰길 끝에서 사람들 머리 위로 작아졌다⁠.

*

반석주는 수요일 밤 열한 시에 매출표 맨 아래 칸을 오래 보았다⁠. 「⁠12월 누적 매출 4억 1천⁠」 판교 사무실 운영팀 칸에는 석주와 누리 둘뿐이었다⁠. 창밖으로 판교 빌딩들의 불빛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팀장님⁠, 넘었어요⁠. 보름 만에 한 달 운영비를 넘었어요⁠.⁠”

“⁠봤어요⁠.⁠”

“⁠대표님한테 보고하셨어요⁠?⁠”

“⁠했어요⁠. 날짜는 그대로래요⁠. 계약서에 들어간 날짜라서요⁠.⁠”

누리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석주는 매출표를 닫고 다른 창을 열었다⁠. 왕도 지도였다⁠. 광장 뒤 골목 세 번 꺾인 자리에 지도가 끊겨 있었다⁠. 끊긴 자리에 붉은 점이 빽빽했다⁠. 모험가들이었다⁠.

“⁠누리 씨⁠, 저기 지금 몇 명이에요⁠?⁠”

“⁠유저가 삼백 명쯤이요⁠. NPC는 마흔한 명이고요⁠. 유저들이 아이템 복사 버그 찾는다고 벽에 몸을 비비고 있어요⁠. 두 명은 실제로 찾았어요⁠. 금화가 두 배로 늘어요⁠.⁠”

“⁠충돌 판정 오류예요⁠. 2020년 지도 수정할 때 생긴 거예요⁠. 내가 그때 놓쳤어요⁠.⁠”

석주는 보온병을 열었다⁠. 보리차가 식어 있었다⁠. 식은 것을 그대로 마셨다⁠.

“⁠목요일 점검에 막아요⁠. 지도 다시 덮고⁠, 안에 있는 NPC는 원래 자리로⁠.⁠”

“⁠원래 자리로요⁠?⁠”

“⁠이상 행동 표시된 NPC는 초기화하고요⁠.⁠”

누리가 의자를 돌려 석주를 보았다⁠. 누리의 무릎이 책상 다리에 부딪혔다⁠. 아프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팀장님⁠, 지금 거기 채후 님이 있어요⁠. 방송 켜 놓고요⁠. 칠만 명이 봐요⁠.⁠”

“⁠버그를 고치는 거예요⁠. 버그를 두면 저 삼백 명이 다른 버그를 찾아요⁠. 금화가 불어나면 경제가 무너지고⁠, 무너진 걸 거목 실사팀이 봐요⁠. 그럼 열두 명 고용 승계가 흔들려요⁠. 누리 씨 이름도 열두 명 안에 있어요⁠.⁠”

석주는 누리의 이름을 한 글자씩 또박또박 불렀다⁠. 누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점검 작업 목록을 열고⁠, 커서를 맨 아래 칸에 올려 두었다⁠.

“⁠이번엔 제가 안 누를게요⁠.⁠”

“⁠알았어요⁠. 내가 누를게요⁠.⁠”

*

목요일 새벽 세 시 오십 분⁠, 채후는 골목 맨 안쪽 담요 더미 옆에 앉아 있었다⁠. 모험가들은 점검 공지가 뜨자 다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왕도 사람 마흔하나와 채후 하나였다⁠. 약초상 노파는 채후의 무릎에 마른 쑥 한 다발을 올려 주었다⁠.

“⁠냄새 맡으면 잠이 와⁠. 무서울 때 좋아⁠.⁠”

“⁠저 안 무서워요⁠.⁠”

“⁠그럼 왜 다리를 떨어⁠?⁠”

채후는 다리를 멈췄다⁠. 헤드셋에서 알림 목소리가 읽는 숫자가 들렸다⁠. 「⁠현재 시청자 칠만 천 명⁠」 채팅이 같은 말을 여러 번 했다⁠. 「⁠채후 거기서 나와⁠」⁠, 「⁠같이 있어 줘⁠」⁠, 「⁠운영자 보고 있냐⁠」

“⁠여러분⁠. 지금부터 눈 안 감을게요⁠.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보세요⁠. 다 보시고⁠, 기억하세요⁠. 회사가 뭘 하는지요⁠.⁠”

네 시⁠, 하늘이 쇠줄을 긁었다⁠. 채후는 골목 위 얇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흰 선 하나가 그어졌다⁠. 지난번처럼 지평선에서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골목 바로 위에서⁠, 골목만을 겨누고 내려왔다⁠.

흰 격자가 골목 입구에 닿았다⁠. 밀려 있던 벽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벽돌이 벽돌을 무는 소리였다⁠. 이어서 흙바닥이 돌바닥으로 덮였다⁠. 덮이는 소리는 비 오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골목이 바깥에서부터 지도가 되며 좁아졌다⁠.

“⁠뒤로⁠! 다들 뒤로요⁠!⁠”

뒤가 없었다⁠. 막다른 벽이었다⁠. 채후는 장검을 뽑아 흰 격자 앞으로 나갔다⁠. 칼날이 격자를 통과했다⁠. 채후의 몸도 격자를 통과했다⁠. 격자는 채후를 건드리지 않았다⁠. 채후는 표시가 없었다⁠.

격자가 약초상 노파에게 닿았다⁠. 노파의 몸이 잠깐 선으로만 남았다⁠. 마른 쑥 다발을 쥔 손⁠, 굽은 등⁠, 채후를 보던 눈⁠. 선이 다시 사람이 되었을 때 노파는 담요 더미 위에 있지 않았다⁠. 골목 밖⁠, 광장 귀퉁이 약초 노점 자리에 서 있었다⁠. 노파의 입이 열렸다⁠.

“⁠좋은 약초 있어요⁠, 모험가님⁠. 체력 회복에 좋아요⁠.⁠”

채후는 쑥 다발을 들고 골목 밖으로 뛰어나갔다⁠. 광장 곳곳에서 같은 소리가 났다⁠. 「⁠어서 오세요⁠, 모험가님⁠」 「⁠좋은 하루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빨래꾼이 강가 자리에서⁠, 종지기가 종탑 아래에서⁠, 꼬치 노점 주인이 숯불 앞에서 웃고 있었다⁠. 꼬치 노점 주인은 채후가 다가가자 처음 보는 얼굴로 웃었다⁠.

“⁠꼬치 하나 드시겠어요⁠? 체력이 조금 회복됩니다⁠.⁠”

“⁠냄새 좋다는 말 해 달라고 했잖아요⁠. 아저씨가⁠.⁠”

노점 주인은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갸웃했다⁠. 숯불 위에 꼬치가 없었다⁠. 기름 떨어지는 소리도 없었다⁠. 기본값의 노점에는 불만 있었다⁠.

「⁠미친 진짜 했네⁠」

「⁠칠만 명 앞에서 그냥 함⁠」

「⁠회색달 불매함⁠」

「⁠근데 버그 고친 거라는데⁠? 아이템 복사 됐었잖아⁠」

「⁠채후가 방송에 안 띄웠으면 안 들켰지⁠」

알림 목소리가 마지막 줄을 읽을 때 채후의 손에서 쑥 다발이 떨어졌다⁠. 광장 돌바닥 위로 마른 잎 몇 장이 흩어졌다⁠.

*

세르바는 같은 시각 바람언덕 성벽 위에서 서쪽 하늘을 보고 있었다⁠. 수요일 밤 열한 시에 쓰러진 성문을 넘어 들어왔고⁠, 엘무를 지하 창고에 밀어 넣은 뒤로 한 번도 앉지 않았다⁠. 마당에서는 새 길드원 마흔둘이 반쯤 투명한 몸으로 자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바깥 사람들이 밤새 접속을 켜 두었다⁠. 성을 지키려고⁠, 채후가 그렇게 해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서쪽 하늘에 흰 선이 내려왔다⁠. 지난번처럼 하늘 전체를 덮지 않았다⁠. 아주 멀리⁠, 왕도가 있는 자리에만 가는 실처럼 몇 가닥이 늘어졌다⁠. 실은 오래 내려오지 않았다⁠. 숨 열 번쯤 쉴 동안이었다⁠. 세르바는 숨을 세지 않으려고 했고⁠, 열까지 다 세었다⁠.

지하 창고 문이 삐걱 열렸다⁠. 엘무가 계단 맨 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누나⁠, 끝났어요⁠?⁠”

“⁠들어가⁠.⁠”

“⁠길드장님 괜찮아요⁠?⁠”

“⁠길드장님은 표시가 없어⁠.⁠”

세르바는 그렇게만 말하고 성벽 돌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돌이 차가웠다⁠. 채후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세르바는 알았다⁠. 칠만 명이 같이 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같이 본다고 덜 무거워지는지는 몰랐다⁠. 할멈이 부엌에서 나와 세르바의 어깨에 털옷을 걸쳐 주었다⁠. 할멈은 서쪽 하늘을 보지 않았다⁠.

“⁠먹고 기다려⁠. 기다리는 것도 힘 써⁠.⁠”

*

구보슬은 목요일 아침 일곱 시에 병원 휴게실 자판기 앞에서 채팅창의 욕을 지우고 있었다⁠. 지워도 지워도 올라왔다⁠. 절반은 회색달을⁠, 절반은 채후를 욕했다⁠. 채후 어머니는 다인실 보호자 의자에서 귤 상자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밤새 화면 속 아들을 보다가 네 시 십 분에 잠들었다⁠. 보슬이 휴대전화를 가져와 덮어 주고 나왔다⁠.

보슬은 막대 하나를 보았다⁠. 서버비 모금 목표 사억 원⁠. 막대는 반 넘게 차 있었다⁠. 숫자가 올라가는 동안 사람이 지워졌다⁠. 보슬은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 율무차를 뽑았다⁠.

“⁠아⁠, 진짜⁠.⁠”

율무차를 손에 쥐고 보슬은 매니저 화면에 고정 글을 새로 올렸다⁠. 「⁠스트리머를 욕하는 글은 지우지 않겠습니다⁠. 스트리머가 읽어야 하니까요⁠」 올리고 나서 손가락이 떨렸다⁠. 세 해 동안 처음으로 채후 편을 들지 않은 글이었다⁠.

*

채후는 정오가 지나서 막힌 골목 앞으로 돌아왔다⁠. 세 번 꺾인 자리 끝의 벽은 그냥 벽이었다⁠. 손바닥으로 벽돌을 아무리 눌러도 밀리지 않았다⁠. 채후는 벽에 이마를 대고 한참 숨만 쉬었다⁠. 쑥 냄새가 장갑에 배어 있었다⁠.

골목을 나오는 길에 광장 귀퉁이 약초 노점을 지났다⁠. 새로 찍힌 노파가 지나가는 모험가마다 같은 말로 약초를 권했다⁠. 채후는 약초를 샀다⁠. 금화 한 닢에 세 묶음이었다⁠. 노파는 거스름돈을 세면서 웃었고⁠, 손이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시청자 수는 줄지 않았다⁠. 늘었다⁠. 「⁠현재 시청자 칠만 팔천 명⁠」 채후는 늘어난 숫자를 듣고 웃음 비슷한 것을 냈다⁠.

“⁠여러분⁠. 회사가 숫자로 오라고 했어요⁠. 숫자 가져갈게요⁠. 매출 사억 넘었고⁠, 동시 접속 열 배 넘었고⁠, 시청자 칠만 팔천이에요⁠.⁠”

채후는 허공에 손을 들어 운영자 신고 단추를 찾았다⁠. 메뉴는 여전히 뜨지 않았다⁠. 채후는 헤드셋 마이크를 입에 바짝 댔다⁠.

“⁠반석주 팀장님⁠, 보고 계시죠⁠? 이 골목 앞으로 오세요⁠. 숫자 드릴게요⁠. 대신 저도 하나 물어볼 거예요⁠.⁠”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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