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84자)

왕도

길드장 들어간 게임 방송 스트리머 · 한빛결

채후는 왕도의 소리를 성문을 지나기 전부터 들었다⁠. 종탑의 종⁠, 수레바퀴가 돌길을 긁는 소리⁠, 생선 장수의 호객⁠, 대장간의 망치⁠. 여덟 해 동안 배경 음악으로만 듣던 소리가 하나하나 따로 떨어져 귀에 들어왔다⁠. 바람언덕에서 이틀을 걸어온 다리가 저렸다⁠. 게임에서는 말을 불러 타면 반나절이었지만⁠, 채후의 말은 단축키를 눌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길드장님⁠, 저 냄새 뭐예요⁠? 저거⁠, 저 빨간 거⁠.⁠”

엘무가 생선 장수 옆 노점을 가리켰다⁠. 쇠꼬챙이에 꿴 고기가 숯불 위에서 기름을 떨구고 있었다⁠. 엘무는 바람언덕 밖으로 나와 본 것이 처음이었다⁠. 이틀 내내 처음 보는 것마다 이름을 물었다⁠. 다리⁠, 풍차⁠, 양 떼⁠, 똥 무더기⁠.

“⁠꼬치요⁠. 사 줄게요⁠.⁠”

“⁠사 준다는 게 뭐예요⁠?⁠”

“⁠금화 주고 받는 거요⁠.⁠”

“⁠금화로 사람도 사요⁠? 길드장님이 저희 산 것처럼⁠?⁠”

채후는 대답 대신 금화 두 닢을 꺼내 노점 주인에게 내밀었다⁠. 노점 주인이 꼬치 두 개를 건네며 채후의 헤드셋을 힐끔 보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바깥에 들리는 그 물건이죠⁠? 방송이라는 거⁠.⁠”

“⁠아세요⁠?⁠”

“⁠왕도 사람은 다 알아요⁠. 바람언덕 길드장 귀에 바깥 사람 수만 명이 산다고⁠. 저도 한마디 해도 돼요⁠? 바깥에⁠.⁠”

채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점 주인은 헤드셋 마이크에 입을 바짝 댔다⁠.

“⁠여덟 해 동안 꼬치 구웠습니다⁠. 모험가님들이 하나도 안 사 가요⁠. 체력 회복 물약이 더 싸서요⁠. 그래도 냄새는 좋죠⁠? 냄새 좋다는 말 한 번만 해 주세요⁠.⁠”

알림 목소리가 쉬지 않고 읽었다⁠.

「⁠냄새 좋아요⁠」

「⁠냄새 좋아요 아저씨⁠」

「⁠오천 원 후원⁠. 꼬치 아저씨 냄새 좋아요 진짜로⁠」

채후가 하나하나 전해 주자 노점 주인은 집게를 쥔 채 웃다가 고개를 숙였다⁠. 숯불 위로 떨어진 기름이 치익 소리를 냈다⁠.

「⁠귓속말 · GM석주 · 엘무 씨가 성 밖에 있습니다⁠. 목요일 새벽 네 시 전에 성으로 돌아가세요⁠」

글자가 눈앞에 떴다가 사라졌다⁠. 채후는 엘무를 보았다⁠. 엘무는 꼬치를 입에 물고 종탑을 올려다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오늘은 월요일 저녁이었다⁠. 하늘 시계는 「⁠D-25⁠」였다⁠.

“⁠엘무 씨⁠. 우리 수요일까지는 돌아가야 돼요⁠.⁠”

“⁠세르바 누나 데리고요⁠?⁠”

“⁠데리고요⁠.⁠”

알림 목소리가 낯익은 이름을 읽었다⁠.

「⁠만 원 후원 · 매니저구보슬 · 채후 어머님 오심⁠. 귤 한 상자 들고 오심⁠. 너 깨면 까 먹으래⁠. 안 깨면 내가 다 먹는대⁠」

채후는 꼬치를 든 채 걸음을 멈췄다⁠. 제주의 귤밭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귤철이면 새벽 다섯 시에 밭에 나갔고⁠, 채후가 방송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한마디만 했다⁠. 밥은 먹고 해라⁠. 보슬의 후원 글이 한 줄 더 들어왔다⁠.

「⁠어머님이 네 손 잡고 방송 봄⁠. 화면 속 너보고 머리 좀 감으래⁠」

“⁠감았어요⁠. 여기 와서 한 번도 안 감았지만⁠.⁠”

「⁠어머님 팩폭 ㅋㅋㅋ⁠」

엘무가 채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길드장님⁠, 눈에서 물 나와요⁠. 바깥 사람들이 또 뭐라 그랬어요⁠?⁠”

“⁠엄마가 머리 감으래요⁠.⁠”

엘무는 한참 생각하다가 자기 붉은 곱슬머리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그러고는 생선 장수의 물통 앞으로 달려가 머리를 처박았다⁠. 생선 장수가 소리를 지르는 동안 채후는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갑옷 소매라 눈가가 쓸렸다⁠.

*

세르바는 기사단 광장의 돌바닥이 여덟 해 전보다 닳았다고 생각했다⁠. 광장 한가운데 회색 왕관 문장을 새긴 분수대가 있었고⁠, 분수대 앞 단 위에 기사단장이 서 있었다⁠. 은빛 수염에 검은 망토⁠, 오른손에 두루마리⁠. 퀘스트를 내주는 자리였다⁠.

광장 가장자리에는 모험가들이 빙 둘러 있었다⁠. 칼바람의 길드원 서른에⁠, 다른 데서 온 사냥꾼들까지 쉰은 넘었다⁠. 다들 무기를 쥐고 있었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퀘스트에는 순서가 있었다⁠. 표적을 기사단장 앞으로 끌고 와야 보상이 나왔다⁠. 세르바는 순서를 알았고⁠, 그래서 스스로 걸어왔다⁠.

“⁠단장님⁠.⁠”

기사단장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여덟 해 동안 모험가들에게 읽어 주던 대사가 기사단장의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왔다⁠.

“⁠탈영 기사 세르바는 왕명을 거역하고 동료를 버렸다⁠. 용맹한 모험가여⁠, 그녀를 잡아 오라⁠.⁠”

“⁠제가 왔어요⁠. 잡혀 왔어요⁠. 이제 퀘스트 끝내 주세요⁠. 그럼 저 사람들 바람언덕에 안 가요⁠.⁠”

세르바는 분수대 앞에 한쪽 무릎을 내렸다⁠. 무릎이 돌에 닿기 전에 광장 동문에서 쇳소리가 났다⁠. 은색 갑옷과 붉은 망토가 사람들 사이를 밀치고 들어왔다⁠. 채후였다⁠. 뒤에서 엘무가 꼬치를 든 채 따라왔다⁠.

“⁠세르바 씨⁠, 일어서요⁠.⁠”

“⁠여기까지 왜 왔어요⁠?⁠”

“⁠그 말 제가 할 말이에요⁠.⁠”

채후는 세르바 앞까지 걸어왔다⁠. 세르바는 무릎을 꿇은 채 채후를 올려다보았다⁠. 채후의 목에 걸린 헤드셋에서 알림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세르바는 이제 알림 소리를 알아들었다⁠. 바깥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였다⁠.

“⁠지금 몇이에요⁠?⁠”

“⁠사만 칠천이요⁠.⁠”

“⁠사만 칠천 명이 내가 잡히는 걸 보네요⁠.⁠”

“⁠잡히지 마세요⁠.⁠”

“⁠당신 방송이 날 팔았어요⁠.⁠”

세르바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광장의 모험가들이 숨을 죽였다⁠. 칼바람이 카메라 표시등을 깜박이며 한 걸음 나왔다가 멈췄다⁠.

“⁠얼굴을 보여 줬고⁠, 이름을 불렀고⁠, 어디서 자는지 보여 줬어요⁠. 그래서 저 사람들이 왔어요⁠. 퀘스트 끝내면 저 사람들은 돌아가요⁠. 바람언덕은 조용해지고요⁠. 그게 제일 빨라요⁠.⁠”

“⁠퀘스트 끝나면 세르바 씨는 처형 장면으로 가요⁠. 저 그 퀘스트 해 봤어요⁠. 열여섯 살 때요⁠. 마지막에 단장님이 칼을 들어요⁠.⁠”

세르바가 처음으로 눈을 크게 떴다⁠.

“⁠해 봤어요⁠?⁠”

“⁠제 손으로 세르바 씨를 끌고 왔었어요⁠. 화면 속에서요⁠. 보상 받고 좋아했어요⁠. 그다음 날 바람언덕 용병 모집에 세르바 씨가 지원하길래⁠, 같은 얼굴이 또 나오는 게 웃겨서 뽑았어요⁠.⁠”

「⁠헐⁠」

「⁠채후 과거 고백 실화냐⁠」

「⁠이거 감동인데 동시에 개웃김⁠」

세르바는 무릎을 꿇은 채 웃음인지 기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채후는 손을 내밀었다⁠. 세르바는 손을 잡지 않았다⁠.

“⁠그때는 화면이었다면서요⁠. 지금은 화면 아니에요⁠?⁠”

“⁠지금은 화면이 사만 칠천 개예요⁠. 그래서 다르게 해 볼 거예요⁠.⁠”

채후는 몸을 돌려 단 위의 기사단장을 올려다보았다⁠. 헤드셋을 벗어 두 손으로 들었다⁠.

“⁠단장님⁠. 이거 써 보실래요⁠?⁠”

*

반석주는 판교 사무실 회의실에서 거목게임즈의 실사 담당자들과 마주 앉아 있다가 휴대전화가 떠는 것을 느꼈다⁠. 누리가 보낸 화면 하나였다⁠. 채후의 방송이었다⁠. 석주는 탁자 아래에서 화면을 열었다⁠.

왕도 기사단 광장⁠, 분수대 앞 단 위에서 은빛 수염의 기사단장이 검은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기사단 NPC는 석주가 2019년에 직접 대사를 쓴 인물이었다⁠. 두루마리 대사는 모두 네 줄이었다⁠. 「⁠잡아 오라⁠」⁠, 「⁠잘했다⁠」⁠, 「⁠보상을 받아라⁠」⁠, 「⁠다음 임무를 기다려라⁠」

기사단장의 입에서 다섯 번째 줄이 나왔다⁠.

“⁠바깥에 계신 분들⁠. 나는 여덟 해 동안 같은 말을 했소⁠. 탈영 기사를 잡아 오라⁠. 하루에도 수백 번⁠. 내 부하였던 아이를 잡아 오라고⁠. 잡혀 온 아이에게 칼을 드는 것도 내 일이었소⁠. 칼을 들 때마다 손이 떨렸는데⁠, 손은 떨려도 입은 멈추지 않았소⁠. 입이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회의실 맞은편에서 거목의 담당자가 서류를 넘겼다⁠.

“⁠반 팀장님⁠, 길드 콘텐츠 매출 자료는 따로 주실 수 있죠⁠?⁠”

“⁠네⁠.⁠”

석주는 휴대전화 화면을 끄지 못했다⁠. 기사단장이 두루마리를 반으로 접었다⁠. 여덟 해 동안 펼쳐만 있던 두루마리였다⁠.

“⁠나는 세르바를 사면하오⁠. 모험가여⁠, 돌아가시오⁠. 이 일에 상은 없소⁠.⁠”

광장의 모험가들이 웅성거렸다⁠. 칼바람의 퀘스트 창에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었다⁠. 사면은 대사에 없는 말이었고⁠, 퀘스트 판정은 대사를 따르지 않았다⁠. 석주는 판정의 규칙을 알았다⁠. 그리고 화면 속 칼바람이 대검을 칼집에 꽂는 것을 보았다⁠. 칼바람의 머리 위 방송 표시등 옆에 채팅이 겹쳐 떠 있었다⁠. 칼바람의 시청자들이었다⁠. 「⁠형 이건 아니다⁠」⁠, 「⁠사면됐잖아⁠」⁠, 「⁠구독 취소함⁠」

칼바람이 돌아서자 서른 명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

“⁠반 팀장님⁠?⁠”

“⁠죄송합니다⁠. 매출 자료 말씀이셨죠⁠.⁠”

석주는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누리에게서 문자 한 통이 더 와 있었다⁠. 「⁠팀장님⁠, 시청자 오만이에요⁠. 기사단장 NPC 이상 행동 표시 떴어요⁠. 목요일 목록에 올릴까요⁠?⁠」 석주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

채후는 광장이 텅 빈 뒤에야 왕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알았다⁠. 분수대에서 동문까지⁠,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생선 장수⁠, 빨래꾼⁠, 종지기⁠, 술집 주인⁠, 꼬치 노점 주인⁠. 다들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있었다⁠. 맨 앞의 빨래꾼 여자가 헤드셋을 가리켰다⁠.

“⁠바깥에 한마디씩만 해도 돼요⁠?⁠”

엘무가 눈을 반짝이며 꼬치를 휘둘렀다⁠.

“⁠줄 서세요⁠! 한 사람에 한 마디⁠! 좋아요랑 구독도 해 주세요⁠!⁠”

“⁠엘무 씨⁠, 그 말 뜻 알아요⁠?⁠”

“⁠몰라요⁠! 그래도 좋은 말이래요⁠!⁠”

「⁠엘무가 줄 세움 ㅋㅋㅋㅋㅋ⁠」

「⁠NPC 사연 듣기 콘텐츠 미쳤다⁠」

「⁠이만 원 후원⁠. 서버비⁠. 이분들 얘기 다 들을게⁠」

빨래꾼은 강물이 겨울에 너무 차다고 했다⁠. 종지기는 종탑 계단이 이백 칸이라고 했다⁠. 술집 주인은 모험가들이 외상을 갚지 않고 접속을 끊는다고 했다⁠. 채후는 말이 끝날 때마다 채팅의 대답을 전해 주었다⁠. 채팅은 「⁠춥겠다⁠」⁠, 「⁠이백 칸 미쳤네⁠」⁠, 「⁠외상 갚아 이 사람들아⁠」로 대답했다⁠. 줄은 줄어들지 않고 길어졌다⁠.

세르바는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아 늘어선 줄을 보고 있었다⁠. 칼은 칼집에 넣어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다들 왜 저래요⁠?⁠”

“⁠알려지고 싶어서요⁠. 하늘 닫히기 전에⁠.⁠”

“⁠알려지면 좋아요⁠?⁠”

“⁠모르겠어요⁠. 저는 여덟 해 동안 알려지고 싶어서 방송했는데⁠, 백 명 넘은 날이 손에 꼽아요⁠. 저분들은 하루 만에 오만 명이 들어 줘요⁠. 좀 부럽네요⁠.⁠”

“⁠부러울 게 따로 있지⁠.⁠”

세르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얼굴로 줄 끝까지 눈을 옮겼다⁠.

줄 맨 끝에 허리가 굽은 약초상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차례가 오자 헤드셋을 쓰지 않고 채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말은 됐고⁠, 보여 줄 게 있어⁠. 바깥 사람들이 우리 편이면 알아야 할 게 있어⁠.⁠”

노파는 채후를 광장 뒤 골목으로 데려갔다⁠. 세르바와 엘무가 따라왔다⁠. 골목은 세 번 꺾였고⁠, 네 번째 꺾이는 자리에서 막다른 벽이 나왔다⁠. 노파는 벽돌 하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벽이 소리 없이 옆으로 밀렸다⁠. 벽 너머로 좁은 길이 이어졌다⁠. 바닥은 돌이 아니라 흙이었고⁠, 하늘이 너무 얇았다⁠.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땅이 내는 빛이었다⁠.

“⁠점검 날마다 여기 숨어⁠. 흰 그물이 여기는 안 지나가⁠. 왕도 사람 반이 여기서 살아남았어⁠. 지난주엔 마흔이 숨었지⁠.⁠”

골목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담요를 쌓아 두고⁠, 물동이를 줄 세워 두고⁠, 아이 같은 키의 노인 하나가 채후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채후의 눈이 골목 사람들을 보았고⁠, 오만 명의 화면도 똑같이 보았다⁠.

세르바가 채후의 팔을 잡았다⁠. 손톱이 갑옷 틈으로 파고들었다⁠.

“⁠눈 감아요⁠. 지금⁠.⁠”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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