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45자)

성문

길드장 들어간 게임 방송 스트리머 · 한빛결

짤랑 소리 뒤에 큰 북소리가 났다⁠. 채후는 북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들었다⁠. 금빛 「⁠D-29⁠」 옆에 붉은 글자가 새로 떴다⁠.

「⁠길드 칼바람이 길드 새벽라면에 길드전을 선포했습니다 · 시작까지 59⁠:59⁠」

철창 너머에서 칼바람이 대검을 땅에 꽂고 손뼉을 쳤다⁠. 모험가들이 환호했다⁠. 환호하는 사람들 머리 위로 작은 방송 표시등이 여럿 깜박였다⁠. 칼바람 말고도 방송을 켜고 온 사람이 열은 넘었다⁠.

“⁠한 시간 드릴게요⁠, 채후 님⁠. 길드전은 규칙대로 하는 거니까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저도 먹고살아야죠⁠.⁠”

칼바람은 웃으며 언덕 아래로 내려가 진을 쳤다⁠. 채후는 성벽 위에서 손가락을 접어 보았다⁠. 칼바람 길드는 서른⁠. 바람언덕은 용병 일곱과 길드장 하나⁠. 일곱 가운데 칼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세르바와 대장장이뿐이었다⁠. 요리사 할멈은 국자를 들었고⁠, 엘무는 불꽃 하나를 켰다 껐다 했다⁠.

“⁠지금 채후 선수⁠, 머리를 굴립니다⁠. 굴러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안 들려요⁠.⁠”

세르바가 칼날을 숫돌에 대고 말했다⁠. 머리 위의 붉은 해골 무늬가 숫돌질에 맞춰 흔들렸다⁠.

채후는 헤드셋을 눌렀다⁠. 채팅은 「⁠칼바람 선 넘네⁠」와 「⁠규칙대로인데 뭐⁠」로 갈려 싸우고 있었다⁠. 시청자 수는 만 오천을 지나고 있었다⁠. 채후는 숨을 들이켰다⁠. 시청자 가운데 「⁠잿빛 왕관⁠」 계정이 있는 사람이 몇일까⁠.

“⁠여러분⁠. 길드 정원이 쉰이에요⁠. 지금 여덟이니까 마흔둘 자리가 남아요⁠. 가입 신청 열겠습니다⁠. 성 지켜 주실 분⁠, 들어와 주세요⁠. 대신 진짜로 싸우셔야 돼요⁠. 들어와서 감자 던지면 바로 내보냅니다⁠.⁠”

알림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가입 신청 · 엄마몰래접속⁠」

「⁠가입 신청 · 퇴사하고싶다⁠」

「⁠가입 신청 · 국자는무기다⁠」

「⁠가입 신청 · 채후월급은내가준다⁠」

「⁠가입 신청 · 칼바람구독취소함⁠」

채후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손을 들어 허락했다⁠. 허락할 때마다 성 마당에 빛기둥이 하나씩 떨어지고 빛이 걷힌 자리에 모험가가 하나씩 나타났다⁠. 초보 옷을 입은 사람⁠, 여섯 해 전 한정판 갑옷을 입은 사람⁠, 낚싯대를 든 사람⁠. 다들 들어오자마자 엘무를 찾았다⁠. 엘무는 열 번째 사람과 악수를 하다가 손끝의 불티로 상대 장갑을 태웠다⁠.

“⁠죄송해요⁠! 반가워서요⁠!⁠”

「⁠마법사 팬미팅 하지 말고 수비해 ㅋㅋㅋ⁠」

요리사 할멈이 새로 온 사람들 앞에서 국자를 치켜들었다⁠. 할멈이 성 안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을 채후는 처음 보았다⁠.

“⁠들어왔으면 우리 식구다⁠. 밥 먹고 싸워라⁠. 귀리죽밖에 없다⁠. 태운 거다⁠.⁠”

마흔두 번째 빛기둥이 떨어졌을 때 시계는 「⁠12⁠:08⁠」을 가리키고 있었다⁠. 채후는 성벽 위에서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쉰 명이 어깨를 부딪치며 서 있었다⁠. 여덟 해 동안 이렇게 북적이는 마당을 본 적이 없었다⁠. 마당이 이만큼 좁은 줄도 몰랐다⁠.

*

북소리가 두 번 울리고 「⁠길드전 시작⁠」 글자가 하늘을 덮었다⁠. 성문 방어 판정이 풀리는 소리는 유리 깨지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칼바람의 모험가들이 언덕을 뛰어 올라왔다⁠.

첫 충돌은 철창 앞에서 났다⁠. 칼바람의 방패병 다섯이 어깨를 맞대고 철창을 밀었고⁠, 마당의 새 길드원들이 반대편에서 밀었다⁠. 철창이 앞뒤로 휘청이며 쇳소리를 냈다⁠. 세르바는 철창 틈으로 칼을 찔러 넣었다가 빼고⁠, 다시 찔렀다⁠. 칼이 들어갈 때마다 방패병의 머리 위로 숫자가 튀었다⁠.

채후는 성벽 위에서 장검을 뽑았다⁠. 칼을 뽑는 무게가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키보드로는 단추 하나였던 동작이었다⁠.

“⁠궁수 있는 분 성벽으로⁠! 마법 쓰는 분 엘무 씨 옆으로⁠! 「⁠국자는무기다⁠」 님⁠, 진짜 국자 들고 오시면 어떡해요⁠!⁠”

「⁠국자 든 사람 진짜 있음 ㅋㅋㅋㅋ⁠」

「⁠삼만 원 후원⁠. 이게 무슨 길드전이냐 동네 잔치지⁠」

칼바람의 마법사들이 불덩이를 날렸다⁠. 불덩이 하나가 부엌 지붕에 떨어졌다⁠. 짚이 타는 냄새가 마당을 덮었다⁠. 할멈이 비명 대신 욕을 하며 귀리죽 솥을 들고 나왔다⁠. 할멈은 솥을 성벽 위까지 끌고 올라와 철창 앞에 몰린 방패병들 위로 쏟았다⁠. 김이 확 올랐다⁠. 방패병들이 방패를 머리 위로 들고 흩어졌다⁠.

“⁠태운 죽이 이렇게 쓰이네⁠.⁠”

엘무는 성벽 모서리에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끝에서 불티가 튀었다가 꺼졌다⁠. 또 튀었다가 꺼졌다⁠. 엘무가 울상이 되어 채후를 돌아보았다⁠.

“⁠길드장님⁠, 사람들한테 저 좀 응원해 달라고 해 주세요⁠! 사람이 많으면 켜진단 말이에요⁠!⁠”

채후는 그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헤드셋에 대고 말했다⁠.

“⁠여러분⁠, 엘무 씨 응원 한 번만 해 주세요⁠.⁠”

알림 목소리가 갑자기 같은 말만 읽기 시작했다⁠. 「⁠엘무 화이팅⁠」⁠, 「⁠엘무 화이팅⁠」⁠, 「⁠엘무 화이팅⁠」 채후가 엘무에게 채팅을 그대로 전하자 엘무의 귀가 빨개졌다⁠. 손끝의 불티가 꺼지지 않았다⁠. 불티가 손바닥만 해지고⁠, 머리통만 해지고⁠, 엘무의 몸통만 해졌다⁠. 엘무가 비명을 지르며 불덩이를 던졌다⁠. 불덩이는 칼바람의 진 한가운데 떨어져 천막 셋을 태웠다⁠.

“⁠켜졌다아⁠!⁠”

「⁠방송이 마나 맞네 ㅋㅋㅋㅋㅋ⁠」

「⁠엘무 채널 언제 팜⁠」

*

반석주는 성벽 위 허공에 나타나자마자 귀를 막고 싶었다⁠. 운영자 캐릭터로 와도 소리는 고스란히 들렸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 불타는 지붕이 무너지는 소리⁠, 쉰 명이 동시에 지르는 고함⁠. 2019년 이 성의 도면을 그릴 때는 이런 소리가 날 줄 몰랐다⁠.

성문 철창은 반쯤 휘어 있었다⁠. 경첩 하나가 빠졌고⁠, 남은 경첩도 비명을 질렀다⁠. 채후는 철창 바로 위 성벽에서 장검을 들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갑옷 어깨에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나채후 님⁠.⁠”

채후가 돌아보았고⁠, 반 박자 늦게 석주를 알아보았다⁠.

“⁠지금 오셨어요⁠? 운영자가 길드전 말리러 오신 거예요⁠?⁠”

“⁠길드전은 규칙대로 하는 거라 제가 못 막습니다⁠. 다른 제안을 하러 왔어요⁠.⁠”

석주는 손에 든 반투명한 판을 채후 앞에 띄웠다⁠. 「⁠히든 퀘스트 · 탈영 기사 · 삭제 요청⁠」

“⁠이 퀘스트를 지워 드릴 수 있어요⁠. 지우면 표적 표시가 사라지고⁠, 칼바람이든 누구든 세르바 씨를 쫓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채후의 눈이 판에서 석주에게로⁠, 석주에게서 판 아래 작은 글씨로 내려갔다⁠. 「⁠대상 NPC 데이터 초기화 동반⁠」

“⁠세르바 씨를 지운다는 거네요⁠.⁠”

“⁠퀘스트가 세르바 씨 데이터에 묶여 있어요⁠. 떼어 낼 수가 없습니다⁠. 처음 상태로 돌아가요⁠. 길드장님 성에 처음 들어왔던 날로요⁠. 다치지 않고⁠, 쫓기지 않고⁠, 서른 날 동안 평화롭게 지내요⁠.⁠”

“⁠처음 상태면 저를 몰라요⁠. 빵집 아저씨처럼요⁠.⁠”

“⁠대신 살아요⁠. 서른 날은요⁠.⁠”

“⁠팀장님 말로는 원래 안 살아 있다면서요⁠.⁠”

석주가 입을 다물었다⁠. 철창 경첩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고 떨어져 나갔다⁠. 성문이 바깥으로 쓰러지며 흙먼지가 확 일었다⁠. 칼바람의 모험가들이 먼지를 뚫고 마당으로 밀려들었다⁠.

“⁠지금 제안 받으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

“⁠안 받아요⁠.⁠”

“⁠방송이 이걸 만들었다는 건 아시죠⁠? 칼바람이 여기 온 건 나채후 님이 세르바 씨 얼굴을 만오천 명한테 보여 줬기 때문이에요⁠.⁠”

채후는 대답하지 않고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갑옷 무게로 무릎이 꺾였다가 펴졌다⁠. 채후는 쓰러진 성문 위에 서서 장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바로 앞에 칼바람이 있었다⁠. 칼바람의 대검이 채후의 장검을 내리찍었다⁠. 손목이 저렸다⁠. 칼바람이 웃었다⁠.

“⁠채후 님⁠, 키보드보다 손이 느리시네요⁠.⁠”

“⁠지금 손으로 해서 그래요⁠.⁠”

채후는 이를 악물고 대검을 옆으로 흘렸다⁠. 흘린 대검 끝이 쓰러진 성문 나무판에 박혔다⁠. 칼바람이 대검을 뽑는 사이 세르바의 칼이 칼바람의 투구 옆을 스쳤다⁠. 투구가 날아가고 칼바람의 머리 위 숫자가 바닥까지 내려갔다⁠. 칼바람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부활 신전으로 가는 빛이었다⁠.

하늘의 북소리가 세 번 울렸다⁠. 「⁠길드전 종료 · 시간 만료 · 승리 길드 없음⁠」 마당에 남은 칼바람의 모험가들이 무기를 거두며 투덜거렸다⁠. 채후는 장검을 땅에 짚고 숨을 골랐다⁠. 마당 여기저기 새 길드원들이 주저앉아 있었다⁠. 대장장이는 팔뚝에 베인 상처를 할멈의 앞치마로 감고 있었다⁠. 피가 앞치마에 번졌다⁠. 대장장이는 아프다는 말 대신 쓰러진 성문을 보며 혀를 찼다⁠.

“⁠저거 다시 다는 데 사흘은 걸리겠네⁠.⁠”

허공의 석주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세르바는 자정이 지나서 부엌 뒤 쪽문을 열었다⁠. 쪽문 경첩에는 할멈이 바르는 돼지기름이 발려 있어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당에서는 새 길드원 마흔둘이 성벽에 기대 자고 있었다⁠. 게임 속에서 자는 사람들은 몸이 반쯤 투명해졌다⁠. 바깥에서 컴퓨터를 켜 둔 채 진짜 잠을 자러 간 사람들이었다⁠.

세르바는 쪽문 밖 풀밭에 서서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붉은 해골이 지금도 거기 있었다⁠. 칼바람의 모험가들은 언덕 아래 진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내일 아침 다시 올라올 것이었다⁠. 칼바람의 부하들이 지도를 펴 놓고 세르바의 표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여덟 해 전에도 세르바는 이렇게 밤에 떠났다⁠. 왕관 기사단의 막사에서⁠, 마을 하나를 태우라는 명령서를 화로에 넣고 나서였다⁠. 명령서는 모험가들이 받아 가는 퀘스트의 첫 장이었다⁠. 기사단장은 명령서를 다시 쓰면 그만이었고⁠, 세르바는 다시 쓸 수 없는 것을 들고 나왔다⁠. 자기 이름과 얼굴이었다⁠. 바람언덕에서 용병을 구한다는 방이 붙은 것은 떠나고 석 달 뒤였다⁠. 성 안에는 기사단이 못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세르바는 처음으로 남에게 칼을 팔았다⁠.

“⁠어디 가요⁠?⁠”

엘무였다⁠. 쪽문 안에서 담요를 두르고 서 있었다⁠. 손끝에서 불티가 작게 깜박였다⁠.

“⁠왕도요⁠. 퀘스트 표적은 지도에 떠요⁠. 내가 성에 있으면 성으로 오고⁠, 내가 왕도에 있으면 왕도로 가요⁠. 길드장님한테는 말하지 마요⁠.⁠”

“⁠길드장님 귀에 사는 사람들이 다 볼 텐데요⁠.⁠”

“⁠길드장님이 자고 있으면 못 봐요⁠. 눈 감으면 까맣다면서요⁠.⁠”

세르바는 엘무의 담요를 여며 주고 몸을 돌렸다⁠. 엘무가 담요 자락을 꽉 쥐었다⁠.

“⁠세르바 누나⁠, 그거 방송에서 배운 말인데요⁠. 「⁠가 보자고⁠」 좋은 말이래요⁠.⁠”

“⁠나쁜 말 같은데⁠.⁠”

세르바는 풀밭을 내려갔다⁠. 칼바람의 모닥불을 크게 돌아 왕도로 가는 길에 올랐다⁠. 등 뒤에서 언덕 아래 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지도에서 붉은 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채후는 새벽 네 시에 알림 목소리 때문에 깼다⁠. 눈을 뜨기도 전에 같은 말이 여러 번 들어왔다⁠.

「⁠채후야 일어나 부길드장 나감⁠」

「⁠지도 봐 표적 왕도 쪽으로 이동 중⁠」

「⁠칼바람 애들 다 따라감⁠」

채후는 벌떡 일어나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언덕 아래 진이 비어 있었다⁠. 모닥불만 남아 연기를 올렸다⁠. 왕도로 가는 길 위에 횃불 서른 개가 한 줄로 이어져 멀어지고 있었다⁠. 횃불 줄 맨 앞⁠, 아주 멀리⁠, 붉은 해골 하나가 있었다⁠.

부엌 쪽문 앞에서 엘무가 담요를 두른 채 채후를 올려다보았다⁠.

“⁠말하지 말랬는데요⁠. 그래서 말 안 했어요⁠. 대신 안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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