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60자)

점검

길드장 들어간 게임 방송 스트리머 · 한빛결

네 시 정각⁠, 채후는 하늘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쇠줄을 길게 긁는 소리였다⁠. 성벽 위에서 고개를 들자 금빛 「⁠D-30⁠」 아래로 흰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가로선 하나⁠, 세로선 하나⁠, 다시 가로선⁠. 선들이 그물처럼 엮이며 지평선 끝에서부터 땅으로 내려왔다⁠.

지하 창고 문이 등 뒤에서 잠기는 소리가 났다⁠. 세르바가 길드원 여섯을 아래로 내려보내고 혼자 계단을 올라왔다⁠. 칼은 허리에 있었고 손에는 등잔이 들려 있었다⁠.

“⁠성 안은 괜찮다면서요⁠. 문도 운영자도 못 들어온다면서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확인해 본 사람은 없어요⁠. 확인하다 새로 찍히면 확인했다고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세르바는 등잔을 성벽 돌 위에 내려놓고 채후 옆에 붙어 앉았다⁠. 흰 격자가 언덕 아래 숲을 지나고 있었다⁠. 격자가 닿은 나무는 잠깐 선으로만 남았다가 다시 나무가 되었다⁠. 숲 너머 마을에는 불 켜진 창이 셋 있었다⁠. 그중 하나가 빵집이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빵집은 왜 불이 켜져 있어요⁠? 점검인데⁠.⁠”

“⁠빵 굽는 시간이라서요⁠. 빵집 주인은 새벽 세 시에 반죽을 해요⁠. 정해진 일이 아닌데 해요⁠. 지나가는 모험가들한테 하늘 시계 얘기도 하고⁠. 숫자가 줄어든다고⁠, 빵을 미리 사 두라고⁠.⁠”

“⁠그럼 표시가 됐겠네요⁠.⁠”

세르바가 고개를 돌려 채후를 보았다⁠. 등잔 불빛에 눈썹 흉터가 하얗게 떠올랐다⁠.

“⁠표시요⁠?⁠”

“⁠운영팀이 이상한 걸 고르는 방식요⁠. 정해진 대사 말고 딴말을 하면 이상 행동으로 잡혀요⁠. 저도 예전에 버그 신고하면서 봤어요⁠.⁠”

헤드셋에서 알림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점검 중인데 방송 어떻게 함⁠? 서버 닫혔잖아⁠」

「⁠채후 아직 안 잠⁠? 다섯 시 다 돼 가는데⁠」

「⁠근데 왼쪽 아래 캠 봐⁠. 채후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채후는 손을 들어 헤드셋을 눌렀다⁠. 방송 화면 구석에는 작은 얼굴 화면이 있었다⁠. 방의 웹캠이었다⁠. 거기 채후가 엎드려 있다면⁠, 여기 앉아 있는 이 몸은 무엇인가⁠.

“⁠지금 채후 선수⁠, 멘털이 흔들립니다⁠.⁠”

“⁠그게 무슨 주문이에요⁠?⁠”

“⁠주문 아니에요⁠. 버릇이에요⁠.⁠”

흰 격자가 마을에 닿았다⁠.

*

구보슬은 다섯 시 십이 분에 편의점 계산대에서 삼각김밥 유통기한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매니저 단체방에 알림이 열 개 넘게 쌓여 있었다⁠. 채후 방송 채팅창 관리 권한을 가진 사람은 보슬 하나였고⁠, 그래서 단체방에도 보슬 하나였다⁠. 혼자 있는 방에 알림을 보내는 것은 채팅 신고 기능이었다⁠.

「⁠신고⁠. 스트리머 쓰러진 것 같아요⁠」

「⁠신고⁠. 캠에 사람이 안 움직임⁠」

보슬은 방송을 열었다⁠. 게임 화면은 성벽 위에서 흰 그물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구석의 얼굴 화면에서는 채후가 키보드 위에 뺨을 대고 엎드려 있었다⁠. 게임 화면이 고개를 돌리는데 얼굴 화면의 채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사장님⁠, 저 십 분만요⁠. 옆방 사람이 죽었는지 보고 올게요⁠.⁠”

“⁠죽었어⁠?⁠”

“⁠그걸 보고 온다고요⁠!⁠”

사장은 컵라면 진열대를 채우다 말고 손을 흔들었다⁠. 보슬은 조끼를 벗지도 않고 문을 밀었다⁠. 편의점 문에 달린 종이 등 뒤에서 딸랑거렸고⁠, 십이월 새벽 공기가 콧속을 찔렀다⁠. 골목 끝 가로등 아래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보슬을 보고 쓰레기봉투 뒤로 숨었다⁠. 뛰면서 보슬은 채팅창 관리 화면을 열어 「⁠스트리머 상태 확인 중입니다⁠. 장난 글은 지웁니다⁠」를 고정 글로 올렸다⁠. 세 해 동안 채후가 방송하다 졸 때마다 올리던 글이었다⁠. 오늘은 손가락이 두 번 미끄러졌다⁠.

편의점에서 원룸까지는 골목 하나였다⁠. 보슬은 계단을 두 칸씩 올라 302호 앞에서 숨을 골랐다⁠. 바로 옆이 보슬의 303호였다⁠. 채후의 문 비밀번호는 세 해 전 채후가 택배를 대신 받아 달라며 알려 준 숫자 그대로였다⁠. 「⁠잿빛 왕관⁠」 출시일⁠.

문을 열자 라면 냄새가 먼저 나왔다⁠. 불은 면발이 컵 가장자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채후는 의자에 앉은 채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보슬은 채후의 어깨를 흔들었다⁠. 몸이 따뜻했다⁠. 숨소리가 고르고 길었다⁠.

“⁠야⁠, 나채후⁠. 일어나⁠. 방송 켜 놓고 자면 어떡해⁠.⁠”

채후는 일어나지 않았다⁠. 보슬이 볼을 꼬집어도⁠,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눈꺼풀만 가늘게 떨렸다⁠. 보슬은 채후의 머리를 보다가 멈췄다⁠. 헤드셋이 없었다⁠. 컴퓨터 뒤에서 뻗어 나온 헤드셋 선이 책상 모서리에서 끊긴 듯 대롱거렸다⁠. 선 끝에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았다⁠. 잘린 자국도 없었다⁠.

모니터 스피커에서 채후의 목소리가 나왔다⁠. 게임 속 길드장이 말하고 있었다⁠.

“⁠빵집에 불이 아직 켜져 있어요⁠. 세르바 씨⁠, 저기 사람 있죠⁠?⁠”

보슬은 엎드린 채후의 입을 보았다⁠. 입은 닫혀 있었다⁠. 목소리는 계속 나왔다⁠.

보슬은 백십구에 전화를 걸면서 다른 손으로 채후의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매니저 구보슬입니다⁠. 지금 채후 자요⁠. 근데 방송은 안 자요⁠. 구급차 부를 거니까 다들 방송 끄지 말고 기다려요⁠. 아⁠, 내가 하는 말이 거기 들려⁠? 나채후⁠, 들리면 대답해⁠.⁠”

모니터 속 길드장이 멈칫했다⁠.

“⁠보슬아⁠? 너 지금 내 방이야⁠?⁠”

보슬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상황실 직원이 주소를 물었다⁠. 보슬은 주소를 대고⁠, 환자 상태를 대고⁠, 한 문장을 더 보탰다⁠.

“⁠환자는 자는데요⁠, 환자가 컴퓨터에서 말을 해요⁠.⁠”

「⁠매니저님 레전드⁠」

「⁠이거 실화면 진짜 무서운데⁠」

구급대원들이 채후를 들것에 실어 갈 때 보슬은 컴퓨터 전원 단추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대원 하나가 컴퓨터를 끄고 가자고 했다⁠. 보슬은 고개를 저었다⁠.

“⁠이거 끄면 쟤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병원엔 제가 이따 갈게요⁠. 이건 아무도 못 꺼요⁠.⁠”

*

다섯 시 이십 분⁠, 채후는 종소리를 다시 들었다⁠. 성문 철창 너머에 흰 로브가 떠 있었다⁠. 이번에는 석주의 머리 위에 금빛 이름표와 함께 작은 글자가 떠 있었다⁠. 「⁠점검 작업 중⁠」

“⁠나채후 님⁠. 몸은 병원으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방송으로요⁠.⁠”

“⁠제 매니저가 옮겨요⁠. 팀장님도 제 방송 보세요⁠?⁠”

“⁠지금은 회사 전체가 봐요⁠.⁠”

석주의 손에 반투명한 판이 들려 있었다⁠. 판 위로 이름들이 줄지어 흘렀다⁠. 채후는 철창에 이마를 대고 읽었다⁠. 「⁠바람언덕 · 용병 세르바 · 퀘스트 거부 412회⁠」 「⁠바람언덕 · 용병 엘무 · 비정상 마법 시전⁠」 「⁠바람언덕 마을 · 빵집 주인 · 대사 외 발화⁠」

“⁠성 안에 있는 사람은 손을 못 대요⁠. 길드 성 규칙이 그래요⁠. 그런데 이분들이 성 밖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오면 다음 점검에 정리됩니다⁠.⁠”

“⁠정리라는 말 쓰지 마세요⁠. 저 사람들 아까 저한테 라면이 뭐냐고 물었어요⁠.⁠”

“⁠대화 엔진이 학습한 걸 내놓는 거예요⁠.⁠”

“⁠그럼 팀장님은 뭘 학습했는데 지금 그렇게 말해요⁠?⁠”

석주의 판이 잠깐 멈췄다⁠. 채후는 숨을 들이쉬었다⁠. 철창의 쇠 냄새가 코에 들어왔다⁠. 게임에서는 맡아 본 적 없는 냄새였다⁠.

“⁠제가 살릴게요⁠. 서버요⁠. 방송으로 사람 모으고⁠, 사람들이 돌아와서 결제하면 되잖아요⁠. 적자 열 달이면 매출을 올리면 되잖아요⁠.⁠”

“⁠한 달 운영비가 사억이에요⁠. 지난달 매출이 일억 이천이고요⁠. 시청자 백몇 명으로 하시겠다고요⁠?⁠”

「⁠팩폭 ㅋㅋㅋㅋ⁠」

「⁠천 원 후원⁠. 서버비 보탬⁠. 나머지 삼억 구천구백구십구만 구천 원 화이팅⁠」

“⁠감사합니다⁠. 들으셨죠⁠, 팀장님⁠? 벌써 천 원 모였어요⁠.⁠”

석주가 보리차를 마실 때처럼 고개를 잠깐 숙였다⁠. 흰 로브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숫자로 가져오세요⁠. 동시 접속자와 매출로요⁠. 그 전까지는 제 날짜가 맞습니다⁠.⁠”

“⁠빵집 주인은요⁠? 저 아저씨는 성 안에 없잖아요⁠.⁠”

석주는 언덕 아래를 돌아보았다⁠. 흰 격자가 마을을 지나 왕도로 가는 길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빵집 굴뚝의 연기가 끊겨 있었다⁠.

“⁠오늘 새벽 작업 목록에 있었습니다⁠. 끝났어요⁠.⁠”

채후는 철창을 흔들었다⁠. 철창이 덜컹이며 흰 로브를 통과했다⁠. 석주는 피하지 않았다⁠.

“⁠지금 채후 선수⁠, 철창을 열려다 참습니다⁠. 열면 세르바 씨가 나가니까요⁠.⁠”

“⁠잘 판단하셨어요⁠.⁠”

흰 로브가 사라졌다⁠. 채후는 철창을 붙잡은 손을 펴지 못했다⁠. 손가락이 쇠 모양대로 굳어 있었다⁠.

*

변누리는 점검 작업 목록 맨 아래 칸에 손가락을 올려 둔 채 석주가 운영자 화면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판교 사무실 서버실은 기계 바람 소리로 웅웅거렸다⁠. 목록에는 이름이 스물세 개 있었다⁠. 열아홉 개는 성 밖⁠, 넷은 성 안이었다⁠. 성 안의 넷 옆에는 회색 글씨로 「⁠대상 구역 접근 불가⁠」가 떠 있었다⁠.

“⁠팀장님⁠, 성 밖 열아홉은 처리됐어요⁠. 빵집 주인까지요⁠.⁠”

석주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보온병을 열었다⁠.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고 오래 삼켰다⁠.

“⁠누리 씨가 눌렀어요⁠?⁠”

“⁠네⁠. 늘 제가 눌렀잖아요⁠.⁠”

누리는 말을 해 놓고 자기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여덟 달째 목요일 새벽마다 같은 칸을 눌러 왔다⁠. 대사 밖의 말을 하는 NPC를 처음 상태로 되돌리는 칸이었다⁠. 지금까지는 버그를 고치는 칸이었다⁠. 오늘은 방송 화면 속에서 빵집 굴뚝 연기가 끊기는 것을 보면서 눌렀다⁠.

“⁠팀장님⁠. 저 사람 방송 시청자가 삼백 넘었어요⁠. 채팅에 빵집 아저씨 어떻게 됐냐는 말이 계속 올라와요⁠.⁠”

“⁠삼백이면 내일이면 잊어요⁠.⁠”

“⁠만약에 안 잊으면요⁠?⁠”

석주는 대답 대신 모니터를 껐다⁠. 꺼진 화면에 석주의 얼굴이 비쳤다⁠. 눈 밑이 거뭇했다⁠.

“⁠누리 씨⁠, 오늘 퇴근하면 푹 자요⁠. 다음 목요일에도 눌러야 하니까⁠.⁠”

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휴대전화를 꺼내 채후의 방송을 부계정으로 구독했다⁠. 구독 단추를 누르는 손가락이 아까 칸을 누르던 손가락과 같았다⁠.

*

여섯 시⁠, 세르바는 지하 창고 문을 열고 먼저 냄새를 맡았다⁠. 빵 냄새였다⁠. 하늘의 흰 선은 걷혀 있었고⁠, 금빛 숫자만 남아 있었다⁠. 마당에 내려서자 성문 밖에서 누군가 철창을 두드렸다⁠.

빵집 주인이었다⁠. 앞치마에 밀가루를 묻힌 둥근 얼굴⁠, 팔에는 버들 바구니⁠. 여덟 해 동안 아침마다 언덕을 올라와 철창 사이로 빵을 밀어 넣던 사람이었다⁠. 세르바는 철창 앞으로 걸어갔다⁠. 채후가 뒤에서 숨을 죽였다⁠. 엘무가 지하에서 뛰어 올라오다 요리사 할멈에게 붙들렸다⁠.

빵집 주인은 세르바를 보고 활짝 웃었다⁠. 늘 웃던 대로였다⁠. 웃음이 끝나는 자리만 달랐다⁠.

“⁠어서 오세요⁠, 모험가님⁠! 처음 뵙는 분이네요⁠. 바람언덕 마을의 갓 구운 빵⁠, 하나 맛보시겠어요⁠?⁠”

세르바는 바구니를 받지 않았다⁠. 빵집 주인의 손등을 보았다⁠. 지난여름 화덕에 덴 자국이 손등에 있어야 했다⁠. 손등은 매끈했다⁠.

“⁠아저씨⁠. 어제 저한테 하늘 시계 얘기 했잖아요⁠. 빵을 미리 사 두라고⁠.⁠”

빵집 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다시 웃었다⁠.

“⁠하늘 시계요⁠? 오늘 하늘이 참 맑지요⁠! 빵 하나 맛보시겠어요⁠?⁠”

세르바는 철창 사이로 손을 넣어 빵 하나를 집었다⁠. 따뜻했다⁠. 세르바는 빵을 쥔 채 돌아서서 채후 앞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빵을 채후의 갑옷 가슴에 밀어붙였다⁠.

“⁠방송⁠, 켜져 있죠⁠?⁠”

“⁠네⁠.⁠”

“⁠방금 그거 찍었어요⁠?⁠”

채후는 대답하지 못했다⁠. 헤드셋에서 알림 목소리가 쉬지 않고 채팅을 읽었다⁠. 세르바는 빵에서 손을 떼고 채후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방송을 보는 사람 모두를 보는 눈이었다⁠.

“⁠저 아저씨⁠, 이제 구경거리예요⁠?⁠”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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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산없음2026.10.31· 2화

    하늘에 금빛 「D-30」이 뜨고 선이 그물처럼 내려오는 점검 장면, 게임 해 본 사람은 다 소름 돋아요.

    • 한빛결작가2026.11.01

      서버 점검을 안에서 보면 이렇게 보일 것 같았어요. 채후 씨는 그 그물 아래 갇힌 첫 사람입니다.

점검 · 길드장 들어간 게임 방송 스트리머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