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263자)
흑석협의 모양
천하제일 군사, 회귀해서 판을 다시 짠다 · 정이한
대국 전날 밤, 담우는 하급 무사 숙소에서 위서의 객사까지 투구를 들고 찾아왔다. 투구는 아직도 그의 머리보다 컸다. 그는 그것을 바둑판 위에 엎어 놓고, 그 안에 만두 여섯 개를 담아 왔다. 투구 안쪽에서 쇠 냄새와 만두 기름 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먹어. 내일 이기라고.”
“투구에 만두를 담아 오는 사람은 처음 보네.”
“그릇이 없잖아. 숙소에 숟가락도 열둘인데 사람은 스물이야.”
위서는 만두 하나를 집었다. 식어 있었지만 속은 아직 촉촉했다. 그는 그것을 반쯤 먹다가 내려놓았다.
“담우야. 하급 무사 그만두게.”
담우가 만두를 문 채 위서를 보았다. “왜?”
“위험하네. 맹은 머지않아 싸움을 시작할 걸세. 맨 앞에 서는 게 하급 무사야.”
“그러니까 하는 거지.” 담우가 만두를 삼켰다. “서야, 나 평생 내기에서만 졌어. 바둑도 지고, 투전도 지고, 주사위도 지고. 근데 이번엔 시험 봐서 붙었어. 내가 뭘 해서 붙은 건 처음이야. 너 따라온 것도 맞는데, 그거만은 아니야.”
위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담우는 투구 안의 마지막 만두를 위서 쪽으로 밀어 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오늘 너 나 빼 줬잖아. 다 봤어. 북소리 바뀌는 거. 고마운데, 다음엔 그러지 마. 장로들이 너 흉보더라. 친구가 군사 시험 떨어지는 거 보는 건 내가 칼 맞는 것보다 싫어.”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방 안에 쇠 냄새만 남았다. 위서는 투구를 들어 등잔 아래 비춰 보았다. 안쪽에 칼로 긁어 새긴 글씨가 있었다. 서툰 글씨로, 담우라는 두 글자였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새긴 이름이었다.
지난 생에 흑석협에서는 시신을 찾지 못했다. 투구도 찾지 못했다.
*
대국은 총단 정청에서 열렸다. 정청 바닥은 검은 돌을 깔아 반들반들했고, 천장이 높아서 돌 놓는 소리가 위로 올라가 한참 만에 내려왔다. 북쪽 높은 자리에 맹주 혁련광이 앉았다. 그 아래 양옆으로 장로들과 각 세가의 대표들이 줄지어 앉았다. 남궁린은 오른쪽 줄 끝, 남궁세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판은 정청 한가운데 놓였다. 하후정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하얀 장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군사부 옥패 두 개를 찼다.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옥패가 서로 부딪혀 딸깍 소리를 냈다. 위서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침향 냄새가 은은하게 건너왔다.
“덕분에 잠을 잘 못 잤습니다.” 하후정이 웃으며 말했다. “위 공 생각을 하느라고요.”
“나는 잘 잤소. 늙으면 잠이 줄어서 짧게 깊이 자지.”
혁련광이 손을 들었다. “둬라.”
위서가 흑을 쥐었다.
*
처음 백 수는 조용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귀를 하나씩 가져가고, 변을 나누어 가졌다. 장로들 가운데 바둑을 아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모르는 이들은 졸음을 참았다. 남궁린은 판을 볼 줄 몰랐지만, 위서의 등을 볼 줄은 알았다. 위서의 등은 백 수 내내 한 번도 굽지 않았다.
여든째 수 무렵, 왼쪽 줄의 늙은 장로 하나가 고개를 꾸벅이다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정청의 높은 천장이 그 소리를 받아 두 배로 키워 돌려주었다. 혁련광이 그쪽을 한 번 보았다. 옆자리 장로가 팔꿈치로 그를 찔렀고, 깬 장로는 큰 소리로 “좋은 수요!” 하고 외쳤다. 그때 판 위에는 아무도 돌을 놓지 않은 참이었다. 하후정이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고, 위서는 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했다. 저 양반은 스무 해 뒤에도 똑같이 졸 것이다. 멀리 앉은 남궁린은 그 입 모양만 보고도 무슨 말인지 짐작했고,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백열째 수에서 하후정이 판 왼쪽, 흑의 큰 돌무리 옆에 백을 하나 놓았다. 위서는 그 돌을 보았다. 그다음 수, 하후정은 그 아래 한 칸 떨어진 자리에 또 하나를 놓았다. 그다음은 위쪽에 하나였다.
판 왼쪽에 길고 좁은 길이 하나 생겨나고 있었다. 양쪽이 백으로 막힌 좁은 골, 그 골 입구에 흑의 작은 돌 다섯이 갇혀 있었고, 골 바깥에 흑의 대마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대마가 살려면 골 안의 작은 돌 다섯이 먼저 골 깊이 들어가 백을 붙잡고 죽어 주어야 했다. 다섯을 버리면 대마가 살고, 대마가 살면 판을 이긴다.
위서는 그 모양을 알았다. 스무 해 동안 군사부 방의 지도 위에서 수백 번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
흑석협은 검은 바위가 양쪽으로 솟은 좁은 골짜기였다. 정마대전 세 해째 겨울, 마교 본대가 그 골짜기 북쪽 끝에 진을 쳤다. 맹의 본대는 골짜기 바깥 남쪽에 있었다. 마교를 골짜기 안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그러려면 누군가 먼저 들어가 무너져야 했다.
새벽이었다. 입김이 하얗게 얼어붙었고, 말들이 발을 구를 때마다 언 땅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위서는 막사 앞에서 미끼 부대장들을 불렀다. 그 가운데 담우가 있었다. 마흔여섯의 담우는 배가 조금 나왔고, 투구가 그제야 머리에 맞았다.
“무너지는 척만 하면 된다. 한 시진만 버텨.” 위서가 말했다.
“한 시진이면 국수 한 그릇 먹을 시간이네.” 담우가 웃었다. “다녀올게. 국수는 네가 사.”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담우의 부대가 골짜기로 들어가는 동안 말발굽에 깨진 얼음 조각이 바위에 부딪혀 쨍쨍 울렸고, 그 소리가 다 사라질 때까지 위서는 막사 앞에 서 있었다. 마교 본대는 골짜기로 들어왔다. 판은 위서가 짠 대로 흘러갔고, 맹은 그 골짜기에서 이겼다. 담우의 부대는 한 시진을 버텼고, 한 시진이 지나자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날 저녁 위서는 군사부 막사에서 다음 판을 짰다. 국수는 사지 않았다. 살 사람이 없었다.
*
“위 공.”
하후정의 목소리가 정청의 높은 천장에서 내려왔다. 위서는 눈을 들었다. 손에는 흑돌 하나를 쥐고 있었다. 모서리 이가 빠진 돌이었다. 언제 주머니에서 꺼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 모양, 어디서 보신 적 있으십니까?”
하후정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정청 안 모든 사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물음의 뜻은 판 맞은편에 앉은 한 사람에게만 닿았다.
“골짜기 같구먼.”
“그렇지요. 골짜기에서는 누군가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하후정이 판 위 작은 흑돌 다섯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이 돌에 닿지는 않았다. “이 다섯이 들어가 주면 위 공이 이깁니다. 아주 쉬운 수입니다. 위 공 같은 분이면 백 번 두셨을 수지요.”
위서는 하후정의 눈을 보았다. 웃고 있었다. 그 눈 안에 무엇이 있는지 위서는 끝내 읽지 못했다. 지난 생을 아는 눈일 수도 있었다. 판을 잘 읽는 사람이 상대의 버릇을 읽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하후정은 지금 위서에게, 그가 스무 해 전 새벽에 내린 명령을 한 번 더 내리라고 권하고 있었다.
위서는 정청을 둘러보았다. 혁련광이 턱을 괴고 있었다. 장로들이 판을 보고 있었다. 오른쪽 줄 끝에서 남궁린이 주먹을 무릎 위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정청 문간, 하급 무사들이 경비를 서는 자리에 너무 큰 투구를 쓴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위서는 흑돌을 내려놓았다. 골 안이 아니었다. 골 바깥, 대마의 꼬리 쪽이었다.
정청이 술렁였다. 장로 하나가 소리 내어 혀를 찼다. 바둑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위서는 대마의 꼬리를 스스로 잘라 냈다. 판 왼쪽 아래, 서른 집이 넘는 땅이 백에게로 넘어갔다. 대신 골 입구의 작은 흑돌 다섯이 대마의 잘린 꼬리를 딛고 골 밖으로 빠져나왔다.
“버리셨군요.” 하후정이 말했다. 웃음이 아주 조금 옅어졌다.
“다섯을 버리면 대마가 살지. 꼬리를 버리면 다섯이 사오. 어느 쪽을 버려도 돌은 죽소.” 위서는 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이번엔 내 쪽 살을 잘라 내기로 했소.”
“그러면 지실 텐데요.”
“지켜보시오.”
*
그 뒤 육십 수는 정청에 있던 누구도 숨을 크게 쉬지 못했다. 땅을 크게 잃은 흑이 판 오른쪽에서 버텼다. 빠져나온 작은 돌 다섯이 판 가운데로 기어 나와 백의 이음매를 하나씩 건드렸다. 하나를 건드릴 때마다 백은 한 수를 지켜야 했고, 그 한 수씩이 쌓여 판 오른쪽 흑의 집이 조금씩 넓어졌다. 버리지 않은 돌들이 판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후정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위서가 만든 모든 위협을 정확하게 받았다.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수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잃은 수를 되찾을 수 없었다.
끝내기에 들어서자 정청 안의 바둑 아는 장로들이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꼽다가 멈추고, 다시 꼽았다. 남궁린이 옆에 앉은 남궁세가 사람에게 낮게 물었다. 누가 이기고 있느냐는 물음이었고,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가까워서 모른다는 뜻의 고갯짓이었다.
위서는 알았다. 반 집이었다. 마지막 끝내기 자리 하나를 하후정이 먼저 차지하면 백이 반 집을 이기고, 위서가 먼저 차지하면 흑이 반 집을 이겼다. 그리고 지금은 백의 차례였다.
하후정이 그 자리를 보았다. 손이 통 안으로 들어갔다. 백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정청이 숨을 멈췄다.
하후정은 그 돌을 놓지 않았다.
그는 집어 든 백돌을 손가락으로 한 번 굴리더니, 판 위에 던졌다. 돌이 판 가운데로 굴러가 흑돌 다섯 가운데 하나에 부딪혀 멈췄다. 딱 하는 소리가 높은 천장으로 올라갔다. 바둑에서 돌을 던지는 것은 기권이었다.
“제가 졌습니다.”
장로들이 웅성거렸다. 혁련광이 턱을 괸 손을 내렸다. 바둑을 아는 장로 하나가 일어나며 외쳤다.
“부군사, 아직 끝내기가 남았소! 그 자리를 두면 백이…….”
“남은 자리를 두어도 반 집입니다. 이기든 지든 반 집이면, 오늘은 진 걸로 하지요.” 하후정이 웃었다. 소리를 내어 웃었다. 정청에서 그가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웃음이 높은 천장에서 오래 맴돌았다. “위 공이 버리지 않으신 다섯이 판을 이겼습니다. 저는 그 다섯을 버리실 줄 알았거든요.”
위서는 판을 내려다보았다. 판 위에서는 백이 이기고 있었다. 하후정이 한 수만 두었으면 이겼을 것이다. 그는 이긴 판을 위서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맹주와 장로들과 세가 대표들이 다 보는 앞에서.
위서의 등이 처음으로 굽었다. 남궁린이 그것을 보았다. 위서는 이겼는데, 이긴 사람처럼 앉아 있지 않았다.
“왜 그 수를 안 두었소?” 위서가 물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하후정이 일어나 장포 자락을 털었다. 옥패 두 개가 서로 부딪혀 딸깍 소리를 냈다.
“반 집을 이기는 것보다, 위 공이 어디서 돌을 버리지 않는지 아는 쪽이 저한테는 더 값이 나갑니다.”
그는 혁련광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정청을 걸어 나갔다. 정청 문간을 지날 때, 큰 투구를 쓴 하급 무사가 엉겁결에 길을 비켰다. 하후정은 그 무사 앞에서 걸음을 아주 잠깐 늦추었다. 투구 아래 얼굴을 한 번 보고, 웃으며 지나갔다.
판 위에는 하후정이 던진 백돌 하나가 흑돌 다섯 가운데에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