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87자)
모래판
천하제일 군사, 회귀해서 판을 다시 짠다 · 정이한
남궁린은 무한에 처음 와 보았다. 배가 장강으로 들어서자 강폭이 갑자기 넓어져서 건너편 기슭이 안개 속에 가물거렸고, 물빛은 운하처럼 푸르지 않고 누런 흙빛이었다. 강바람에서 비린내 대신 젖은 흙냄새가 났다. 무림맹 총단은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었다. 회색 성벽이 언덕 허리를 한 바퀴 감았고, 그 안에 기와지붕들이 층층이 올라가 있었다. 동서남북 네 문 위에 청색 깃발이 바람을 받아 펄럭였다.
위서는 배에서 내려 언덕길을 오르는 내내 말이 없었다. 남궁린은 그것이 이상했다. 그 바둑꾼은 소주에서 넉 달을 지내는 동안 한시도 입을 다문 적이 없었다. 잉어가 시끄럽다, 국수 간이 짜다, 요즘 젊은 것들은 걸음이 빠르다. 그런 사람이 총단 서문 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고 문짝에 손바닥을 댔다.
서문은 두꺼운 참나무에 쇠못을 박은 문이었다. 위서는 그 문을 한참 쓰다듬었다. 문을 여는 빗장 자리에 손을 대고, 빗장이 걸리는 쇠고리를 손가락으로 튕겨 보았다. 쇠고리가 낮게 울렸다.
“뭐 하는 거냐?”
“문이 튼튼한지 보는 거요.”
“튼튼해 보이는데.”
“문은 늘 튼튼하오. 여는 사람이 문제지.”
담우가 뒤에서 보따리를 고쳐 메며 끼어들었다. “서야, 너 무한 처음이라며. 근데 왜 길을 다 알아? 아까 갈림길에서 왼쪽이라고 먼저 그랬잖아.”
“냄새로 알았네.”
“무슨 냄새?”
“늙은이 냄새.”
남궁린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담우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자기 소매 냄새를 맡아 보았다.
*
시험은 사흘에 걸쳐 치러졌다. 첫날은 문답이었다. 응시자 마흔둘이 대청에 앉아 장로들이 던지는 병법 물음에 붓으로 답했다. 남궁린은 관전석에서 하품을 참느라 턱이 아팠다. 위서는 붓을 들고 한 시진 내내 거의 움직이지 않다가, 끝나기 직전에 한꺼번에 써 내려갔다. 나와서 남궁린이 무엇을 썼느냐고 묻자 위서는 대답했다.
“장로님들이 좋아할 말.”
“그게 뭔데?”
“장로님들이 스무 해 전에 했던 말.”
“지금 장로님들 말이 아니고?”
“지금 장로님들은 스무 해 전에 젊었소. 사람은 젊을 때 한 말을 제일 좋아하거든.”
남궁린은 그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한참 생각했다. 그날 저녁 객사 식당에서 위서는 응시자들 사이에 앉아 국수를 먹었는데, 옆자리 응시자 하나가 그에게 고향 어르신 말투를 닮았다며 술을 한 잔 따라 주었다. 위서는 그 잔을 받고 허허 웃었다. 맞은편에서 남궁린은 젓가락을 든 채 그 꼴을 보았다. 마흔둘 가운데 위서에게 술을 따라 준 사람이 셋이었고, 셋 다 위서를 형님이 아니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둘째 날 마흔둘이 열여섯으로 줄었다. 사흘째 아침, 그 열여섯이 다시 넷으로 추려졌고, 넷은 두 쌍으로 나뉘어 모래판 모의전을 치르게 되었다.
모래판은 총단 동쪽 연무장 옆 누각에 차려져 있었다. 커다란 나무 상 위에 젖은 모래를 깔고, 그 모래로 산과 골짜기와 강을 빚어 놓은 판이었다. 그 위에 작은 깃발들을 꽂아 군대를 나타냈다. 그런데 이번 시험의 모래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각 아래 연무장에 진짜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맹의 하급 무사 백여 명이 나무 칼과 색깔 깃발을 들고, 모래판과 똑같이 줄을 그어 놓은 땅 위에 흩어져 있었다. 누각 위 응시자가 모래판의 깃발을 옮기면, 북소리와 깃발 신호를 받아 아래의 사람들이 그대로 움직였다.
“사람을 바둑돌로 쓰는군.” 위서가 누각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싫으냐?” 남궁린이 물었다.
“아니. 너무 익숙해서.”
위서의 상대는 사마겸이었다. 하북 사마세가의 둘째 아들이었고, 스물일곱에 병서를 여든 권 읽었다고 첫날부터 대청이 떠나가게 말하고 다녔다. 그는 모래판 맞은편에 서서 부채를 펴고 위서를 보았다.
“소주 기원 출신이라고? 바둑하고 병법은 다르네, 위 형.”
“허허, 그렇지. 바둑은 진 돌이 말을 안 하는데, 병법은 진 사람이 말이 많지.”
사마겸의 부채가 멈췄다. 남궁린은 고개를 돌려 웃음을 삼켰다.
*
판이 시작되었다. 사마겸은 병서대로 두었다. 산을 먼저 차지하고, 골짜기 입구를 막고, 강가에 진을 쳤다. 흠잡을 데가 없었다. 위서는 처음 열 수 동안 깃발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골짜기 오른쪽 입구에 작은 부대 하나를 내보냈다. 붉은 깃발 열 개짜리 부대였다.
“그 부대는 뭐냐?” 남궁린이 곁에서 낮게 물었다.
“미끼.”
위서는 북잡이에게 신호를 일렀다. 붉은 깃발 부대가 골짜기로 들어가 사마겸의 진 앞에서 일부러 흐트러지고, 무너지는 척 물러나라는 신호였다. 사마겸의 본진이 그것을 쫓아 골짜기 깊이 들어오면, 위서는 산 뒤에 숨겨 둔 본대로 골짜기 입구를 닫을 생각이었다.
판이 그렇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때 누각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뒤꿈치가 한 번도 바닥을 치지 않는 발소리였다. 남궁린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누구인지 알았다.
하후정이 하얀 장포 차림으로 누각에 올라왔다. 시험관 자리에 서서 모래판을 한 바퀴 내려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판이 너무 교과서 같군요. 하나 더하겠습니다.”
그는 백색 깃발 셋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위서 쪽 진영 뒤편, 모래로 빚어 놓은 작은 성의 서쪽 문 안에 그 깃발들을 꽂았다.
“지금부터 위 공의 성 서문이 안에서 열렸다고 칩시다. 적이 이미 문 안에 있습니다. 누가 열었는지는 모릅니다. 전쟁이란 원래 그렇지요.”
누각이 술렁였다. 관전하던 장로들이 수군거렸다. 사마겸이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남궁린은 위서를 보았다.
위서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 있었다. 그는 모래판 위 서문 안에 꽂힌 하얀 깃발 셋을 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난간을 쥐고 있었는데, 손톱 끝이 하얬다. 남궁린은 그 얼굴을 소주에서 한 번 보았다. 진가장 마당에서 상 서른 개를 내려다보던 얼굴이었다.
“시험관.” 위서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문을 연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고 하셨소?”
“모릅니다. 그걸 알아내는 것도 군사의 일이겠지요.”
“나는 알 것 같소.”
하후정의 웃음이 그대로 있었다. “그럼 판 위에서 보여 주십시오.”
*
위서는 깃발을 옮겼다. 산 뒤의 본대를 쪼개 서문 쪽으로 돌렸다. 골짜기 입구를 닫을 병력이 모자라게 되었다. 이제 남은 수는 하나였다. 미끼를 더 깊이 넣어 사마겸의 본진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 것. 미끼 부대가 골짜기 안에서 버티는 동안 서문의 적을 치고, 그다음 돌아와 골짜기를 닫는다.
“미끼를 안쪽으로.” 위서가 북잡이에게 말했다. “골짜기 끝까지 들여보내.”
북이 울렸다. 연무장의 붉은 깃발 부대가 골짜기 금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남궁린은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깃발을 든 하급 무사 열 명이 사마겸 쪽 푸른 깃발 무리에 둘러싸이고 있었다. 나무 칼이 부딪는 소리가 딱딱하게 올라왔다. 모의전이라도 나무 칼은 아팠다. 벌써 둘이 이마를 감싸 쥐고 땅에 주저앉아 있었다.
붉은 깃발 맨 앞줄에서 누군가 너무 큰 투구를 쓰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투구가 눈까지 내려와서 앞이 안 보이는지, 깃발을 휘두르다가 옆 사람 머리를 쳤다. 맞은 사람이 욕을 했고, 그 사람이 투구를 들어 올리며 사과했다.
담우였다.
남궁린은 그 얼굴을 알아보고 입을 벌렸다. 그 녀석이 맹에 무슨 일자리를 얻었다고 떠들던 것이 사흘 전이었다. 하급 무사 시험에 붙었다고, 이제 맹 밥을 먹는다고, 서야 너보다 내가 먼저 맹 사람이 됐다고.
위서도 보았다. 남궁린은 그것을 위서의 손으로 알았다. 난간을 쥔 손이 떨렸다. 바둑돌을 쥘 때는 한 번도 떨리지 않던 손이었다.
“위 공, 신호를.” 북잡이가 재촉했다. “미끼가 더 버티라는 신호를 주십니까?”
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지 않았다. 아래에서 담우가 푸른 깃발 셋에게 둘러싸여 나무 칼을 엉터리로 막고 있었다. 투구가 또 흘러내렸다.
“거둬라.”
“예?”
“미끼를 거둬. 지금 당장. 골짜기 밖으로 다 빼.”
북이 바뀌었다. 붉은 깃발 부대가 골짜기에서 우르르 빠져나왔다. 담우는 투구를 손에 들고 뛰었다. 사마겸이 부채를 탁 접었다. 그의 본진이 골짜기를 빠져나와 위서의 산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판이 단숨에 기울었다.
남궁린은 그다음 한동안 위서가 무엇을 하는지 거의 따라가지 못했다. 위서는 깃발을 빠르게 옮겼다. 서문 안의 하얀 깃발 셋을 성 안 골목으로 끌어들여 가두고, 산의 본대를 버리고, 강가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작은 나루 하나를 쥐었다. 그 나루에서 배로 병력을 돌려 사마겸 본진의 뒤를 찔렀다. 바둑에서 대마를 버리고 귀를 사는 것과 같은 수였다.
마지막 북이 울렸을 때, 모래판 위에는 양쪽 깃발이 거의 반씩 남아 있었다. 장로 셋이 깃발을 셌다. 다시 셌다. 위서가 깃발 둘 차이로 이겨 있었다.
사마겸은 부채를 바닥에 던졌다. “나루라니, 그건 병서에 없는 수요!”
“병서는 이긴 사람이 나중에 쓰는 거요.”
*
하후정이 모래판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위서가 거둔 미끼 부대의 깃발을 하나 집어 들고 손끝으로 돌렸다.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위 공, 왜 미끼를 거두셨습니까? 그대로 두셨으면 깃발 열 개 차이로 이기셨을 겁니다.”
장로들이 위서를 보았다. 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 하후정이 연무장 쪽을 내려다보았다. 담우가 투구를 옆구리에 끼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는 분이 계셨군요. 정이 깊으십니다. 다만 군사의 자리에서 정은 값이 비쌉니다. 오늘은 깃발 여덟 개였지만, 전쟁에서는 깃발 하나가 사람 백이니 팔백이 될 수도 있지요.”
장로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하나가 무언가를 적었다. 남궁린은 그 붓놀림을 보며 이를 갈았다. 하후정은 위서를 깎아 내리지 않았다. 칭찬하는 말 안에 흠 하나를 정성껏 박아 넣었을 뿐이었다.
“부군사.” 위서가 말했다. “서문을 열어 놓고 정을 따지는 건 좀 이상하지 않소?”
“판 위의 문입니다, 위 공. 모래로 만든.”
“모래도 젖으면 무겁소.”
그때 누각 아래에서 북이 세 번 울렸다. 연무장의 하급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누각 계단을 무거운 발소리가 올라왔다. 쉰 남짓의 큰 사내였다. 검붉은 장포에 금실로 수놓은 띠를 맸고, 눈썹이 짙고 목이 굵었다. 장로들이 모두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무림맹주 혁련광이었다. 그는 모래판을 한 번 내려다보고, 위서를 한 번 보고, 하후정을 보았다.
“올라온 넷 중에 이 사람이 제일이냐?”
“판은 그렇습니다.” 하후정이 대답했다. “다만 정이 깊습니다.”
“정은 고치면 된다.” 혁련광이 굵고 느리게 말했다. “군사부의 판을 맡길 사람이면, 지금 군사부의 판을 짜는 사람을 이겨야지. 마지막은 바둑으로 하자. 부군사가 직접 두게. 사흘 뒤, 대청에서. 내가 본다.”
남궁린은 위서를 보았다. 위서는 맹주를 보지 않았다. 그는 하후정이 손끝에 들고 있는 붉은 미끼 깃발을 보고 있었다.
연무장에서 담우가 손을 흔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투구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서야! 이겼어? 나 잘했지? 나 하나도 안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