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60자)

이번엔 빨리 왔군

천하제일 군사, 회귀해서 판을 다시 짠다 · 정이한

임명은 이튿날 아침 정청에서 있었다. 전날 바둑판이 놓였던 자리에 붉은 비단을 깐 상이 놓였고, 상 위에 손바닥만 한 청옥 패 하나가 올라 있었다. 하후정이 내밀었던 추천 옥패보다 두 배는 컸고, 군사부 정원이라는 네 글자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위서는 그 패를 맹주에게서 두 손으로 받았다. 차가웠고, 생각보다 무거웠다.

지난 생에 그는 이 패를 마흔 살에야 쥐었다. 그때는 이미 판의 절반이 썩어 있었다. 지금 손바닥에 놓인 패는 스무 해가 이르게 왔고, 그만큼 무게가 더 나가는 것 같았다.

“정원 위서.” 혁련광이 굵고 느리게 불렀다. “오늘부터 군사부 판은 네가 짠다. 부군사가 곁에서 돕는다.”

정청 왼쪽 줄 맨 앞에 하후정이 앉아 있었다. 그는 일어나 위서에게 허리를 숙였다. 어제 판을 넘겨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새 상관을 맞는 부하의 얼굴이었다. 옥패 두 개가 딸깍 소리를 냈다.

정청 오른쪽 기둥 옆에 낯선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강호 사람의 옷이 아니었다. 짙은 자색 비단 관복을 입었고, 수염이 없었으며, 손이 하얗고 가늘었다. 목소리가 남자치고 높았다. 동창에서 온 곽 태감이었다. 동창은 황제가 직접 부리는 환관들의 감찰 관청이었고, 태감은 그 환관 가운데 높은 이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는 임명이 끝나자 위서 앞으로 와서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정원. 어제 대국을 저도 보았지요. 버리지 않는 바둑이더군요.”

“태감께서도 바둑을 두십니까?”

“두지는 않고 구경만 합니다. 구경하는 사람은 판을 오래 볼 수 있으니까요.” 곽 태감은 소매에서 손을 꺼내 위서의 청옥 패를 손끝으로 가볍게 톡 쳤다. “다만 정원, 강호가 판을 너무 잘 짜면 조정이 밤잠을 못 잡니다. 그건 기억해 두시지요. 폐하께서는 강이 넘치는 것도 싫어하시지만, 너무 잘 흐르는 것도 걱정하시거든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정청을 나갔다. 걸을 때마다 비단 관복 자락이 바닥을 쓸며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위서는 그 뒷모습을 보며 남궁휘의 말을 떠올렸다. 소주에서 상품 침향을 사 가는 데는 셋이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동창의 소주 관아였다.

*

혁련광은 위서를 정청 뒤 작은 방으로 불렀다. 방에는 창이 하나뿐이었고, 그 창으로 장강이 보였다. 벽에는 커다란 강호 지도가 걸려 있었다. 비단에 먹으로 그린 지도였는데, 문파와 세가의 자리마다 작은 청색 깃발이 꽂혀 있었다. 서쪽 끝, 마교의 땅이 시작되는 산줄기 아래에는 붉은 깃발이 몇 개 꽂혀 있었다.

혁련광은 지도 앞에 서서 붉은 깃발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청석촌이다.”

위서는 그 이름을 듣고 숨을 멈췄다.

“마교 경계에서 사흘 거리, 우리 쪽 산 아래 있는 마을이다. 주민은 이백 남짓. 그 마을에 마교 무사들이 숨어 산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부군사가 석 달째 모은 첩보다. 군사의 첫 판으로 그 마을을 쳐라. 마교에게 맹이 새 군사를 얻었다는 걸 알려야 한다.”

지난 생에 청석촌은 이 해 겨울에 불탔다. 판을 짠 사람은 하후정이었다. 재 속에서 나온 것은 마교 무사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 마을에 마교 교주의 어린 시절 유모가 살고 있었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려졌다. 아직 젊은 교주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열일곱 해 뒤, 정마대전의 첫 불은 청석촌이 있던 산 아래에서 붙었다.

노옹이 판 위의 물로 그린 동그라미가 떠올랐다. 서른 해 전 노옹이 태운 마을도 산 아래 있었다.

“맹주, 보름을 주십시오.”

혁련광이 돌아보았다. “보름?”

“무사가 정말 있는지 제가 사람을 보내 보겠습니다. 있다면 무사만 칩니다. 마을은 두고요.”

“무사가 마을 사람인 척하고 살면?”

“그럼 무사가 마을을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리는 군사라.” 혁련광이 코로 웃었다. 웃음이 굵었다. “어제 정원은 미끼를 거두고, 오늘 정원은 기다리겠다고 한다. 나는 이기는 군사를 뽑았지, 착한 군사를 뽑은 게 아니다.”

“이기는 군사를 뽑으셨습니다. 그 마을을 태우면, 오늘은 이기고 스무 해 뒤에 집니다.”

“스무 해 뒤를 네가 어떻게 아냐?”

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혁련광은 그를 한참 보았다. 맹주의 눈은 크고 탁했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지난 생에도 이기는 쪽만 보았다. 그래서 하후정을 곁에 두었다. 하후정은 늘 이기는 쪽을 보여 주었다.

“열흘이다.” 혁련광이 말했다. “열흘 안에 무사를 찾아오든지, 판을 짜 오든지 해라. 못 하면 그 판은 부군사가 짠다. 부군사는 기다리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위서.” 맹주가 지도에서 손을 뗐다. “정원 첫날부터 맹주한테 토를 다는 군사는 네가 처음이다. 마음에 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허허, 늙은이가 원래 말이 많습니다.”

“너 스물다섯이라며.”

방을 나서자 회랑 기둥 옆에 하후정이 서 있었다. 기다린 사람처럼 손을 소매에 넣고 있었고, 위서를 보자 고개를 숙였다. 회랑에는 둘뿐이었다. 장강에서 올라온 바람이 처마의 풍경을 한 번 울렸다.

“청석촌 말씀을 들으셨지요. 그 첩보는 제가 모았습니다.” 하후정이 말했다. “열흘이면 충분하시겠습니까, 정원?”

“문 밖에서 다 들으셨구먼.”

“회랑이 좁아서요. 소리가 잘 넘어옵니다.” 하후정은 웃었다. “첩보를 보시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숨을 사람 이름, 숨긴 무기 수, 마을 우물이 몇 개인지까지 다 있습니다. 석 달 동안 공을 들였거든요.”

“우물 수까지 세는 첩보면 마을을 태울 생각부터 한 첩보요.”

“태울지 말지는 정원께서 정하시지요. 저는 부군사일 뿐입니다.” 하후정이 한 걸음 물러나 길을 비켰다. 그 물러섬은 이번에도 정중했다. “다만 열흘이 지나면 그 판은 제 손으로 옵니다. 그때는 저도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위서는 그 곁을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침향 냄새를 맡았다. 하후정의 옥패 두 개가 등 뒤에서 딸깍 소리를 냈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이 사람이 무엇을 아는지 물어 버릴 것 같았다. 묻는 순간 판 위에 제 패를 다 보여 주게 된다.

*

해가 질 무렵 위서는 총단 아래 강가 국숫집에 갔다. 장강 짐꾼들이 드나드는 집이었고, 탁자가 다섯에 기름때가 손가락 두께로 앉아 있었다. 남궁린과 담우가 먼저 와 있었다. 담우는 하급 무사 옷을 입은 채였고, 투구는 의자 옆에 엎어 두었다. 남궁린은 이 집 의자가 흔들린다며 세 번째 의자로 바꿔 앉는 중이었다.

“정원 나리 오셨다!” 담우가 소리쳤다. 국숫집 주인과 짐꾼 셋이 한꺼번에 돌아보았다. “여기 이 사람이 무림맹 군사부 정원이에요! 어제 부군사를 이겼어요! 근데 국수는 이 사람이 사요!”

짐꾼들이 박수를 쳤다. 위서는 그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허리를 짚었다. 남궁린이 이마를 짚었다.

“정원이 국숫집에서 허리를 짚고 앉으면 맹의 체면이 어떻게 되냐?”

“체면은 앉아서 생기는 게 아니오. 국수를 사서 생기지.”

위서는 주인을 불러 국수 세 그릇을 시켰다. 그리고 소매에서 동전을 꺼냈다. 정원 패와 함께 맹에서 받은 첫 녹봉이었다. 노옹이 문지방에 놓아 준 동전은 진가장 돌바닥에 두고 왔으니, 이것은 위서가 돌아와서 처음으로 제 손으로 번 돈이었다.

국수가 나왔다. 멸치 대신 장강 민물새우로 국물을 냈는데, 국물이 붉고 매웠다. 담우가 첫 젓가락을 들다가 위서를 보았다.

“서야, 너 왜 안 먹어?”

위서는 젓가락을 쥔 채 담우를 보고 있었다. 담우의 투구가 의자 옆에서 등잔불을 받고 있었다. 투구 안쪽의 서툰 이름 두 글자가 그림자 속에 있었다.

다녀올게, 국수는 네가 사. 흑석협의 새벽에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스무 해 동안 그 국수를 사지 못했다.

“먹을 걸세.” 위서가 말했다. “자네가 다 먹는 걸 보고.”

“뭐야, 징그럽게.” 담우가 국수를 크게 한 입 빨아들였다. 국물이 튀어 남궁린의 소매에 붉은 점이 났다. 남궁린이 소리를 질렀고, 담우는 사과하면서 또 한 입 먹었다. 위서는 그제야 젓가락을 들었다. 국물이 매워서 눈이 젖었다. 국물 탓이었다.

“이 집 간이 예전만 못하구먼.”

“너 이 집 오늘 처음이잖아!” 담우와 남궁린이 동시에 소리쳤다. 짐꾼들이 웃었다. 위서도 웃었다.

*

그날 밤 위서는 군사부 정원의 방에 처음 들어갔다. 지난 생에 마흔다섯까지 쓰던 그 방이었다. 서쪽 회랑이 불탔던 자리에서 열 걸음, 마지막 밤에 바둑판을 놓았던 그 자리였다. 지금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은 새로 칠한 옻 냄새가 났고, 창호지는 하얗고 팽팽했다.

그는 벽에 강호 지도를 걸었다. 맹주의 방에서 본 것보다 작고 낡은 지도였다. 그 위에 바둑돌을 하나씩 놓았다. 무한에 흑돌, 소주의 남궁 별원에 흑돌, 단가 표국에 흑돌. 청석촌에는 아무것도 놓지 않고 손가락으로 오래 짚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도 북쪽 끝, 황제가 사는 북경에 백돌 하나를 놓았다. 그리고 서쪽 산줄기 너머 마교의 땅에 또 하나를 놓았다.

판이 넓어져 있었다. 기원의 판 하나가 소주가 되었고, 소주가 무한이 되었고, 이제 무한 바깥에 돌이 두 개 놓였다.

보따리에서 노옹의 바랜 청색 띠를 꺼냈다. 그는 이번에도 그것을 허리에 매지 않았다. 지도 아래, 청석촌이 그려진 자리 바로 밑에 걸어 두었다.

*

같은 시각, 총단 서문 성루 위에 하후정이 서 있었다.

성루는 바람이 셌다. 장강 쪽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이 그의 하얀 장포 자락을 쉬지 않고 흔들었다. 아래로 서문의 두꺼운 참나무 문짝이 보였다. 빗장은 단단히 걸려 있었다. 성루 바닥 돌 틈에는 낮에 내린 비가 아직 고여 있었고, 그 위에 달이 비쳤다.

그는 난간에 팔을 얹고, 소매에서 염주 한 줄을 꺼냈다. 검붉은 침향 알들이 실에 꿰여 있었다. 그는 엄지로 알을 하나씩 넘겼다. 알과 알이 부딪는 소리가 바람 소리에 묻혔다. 어느 자리에서 엄지가 허공을 넘었다. 알 하나가 빠져 실만 드러난 자리였다.

하후정은 그 빈 실을 엄지로 오래 문질렀다. 그러다가 군사부 쪽을 돌아보았다. 정원의 방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창호지에 사람 그림자 하나가 비쳤다. 허리를 짚고 지도 앞에 선 그림자였다.

하후정이 웃었다. 성루에는 그 웃음을 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 웃음은 낮의 웃음과 달랐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웃지 않았다.

“이번엔 빨리 왔군.”

바람이 그 말을 장강 쪽으로 쓸어 갔다. 하후정은 염주를 소매에 넣고, 성루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는 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서문 빗장 앞을 지날 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쇠고리를 손가락으로 한 번 튕겼다. 쇠고리가 낮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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