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11자)

살아 있는 가주

천하제일 군사, 회귀해서 판을 다시 짠다 · 정이한

남궁철은 대청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쉰다섯이었고, 어깨가 넓고 손이 컸다. 하얗게 센 수염을 가슴께까지 길렀는데, 그 수염 끝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하는 것이 화가 났을 때 버릇이라고 남궁린이 오는 길에 알려 주었다. 위서가 대청 문턱을 넘을 때 가주는 수염을 손가락 두 마디째 감고 있었다.

남궁린이 어깨에 감은 붕대를 가리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위서는 그 옆에 섰다.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잠깐 망설였는데, 망설이는 사이 허리가 먼저 아파서 그냥 섰다.

“혼례를 미뤘다지.” 남궁철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서 대청 기둥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나한테는 길일을 다시 받았다고 서신을 보내고. 단가에는 뭐라고 했나?”

“같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길일을 받아 준 점쟁이가 저 바둑꾼이냐?”

남궁린이 대답하지 못했다. 남궁철의 눈이 위서에게로 옮겨 왔다. 지난 생에 위서는 이 얼굴을 영정으로만 보았다. 그림 속 가주는 수염이 짧았고, 눈이 온화했다. 그림을 그린 화공은 이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위서라 합니다. 운하 옆 기원에서 왔습니다.”

“내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다.”

“아직 구하지 않았습니다. 미뤄 놓았을 뿐입니다.”

남궁철의 수염이 한 마디 더 감겼다. “증거는?”

위서는 소매에서 침향 구슬을 꺼내 대청 바닥에 내려놓았다. 남궁철은 그것을 집지 않고 내려다보았다.

“그건 증거가 아니라 냄새다. 진가장에서 독이 든 술로 사람이 죽은 건 나도 들었다. 그 술이 우리 집에도 왔다는 것도. 그런데 그걸 미리 안 사람이 너 하나다. 하후 부군사가 맹에서 보낸 서신에도 그 이야기가 있더군. 아주 정중하게, 걱정스럽다고.”

하후정의 서신이 위서보다 먼저 합비에 닿아 있었다. 위서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 판에서 상대는 늘 한 걸음 먼저 말을 깔아 두었다.

*

“그래서 여쭙니다.” 위서가 말했다. “가주께서는 올가을 맹 군사부 정원 자리에 누구를 미실 생각입니까?”

대청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사내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남궁린보다 두어 살 많아 보였고, 비단 장포에 옥 장식을 셋이나 달고 있었다. 남궁철의 조카 남궁휘였다. 그는 위서를 위아래로 훑고 콧소리를 냈다.

“그 자리는 남궁에서 낼 사람이 정해져 있다.”

“휘 공자 말씀이시군요.”

“나를 아나?”

“이름만.” 위서는 지난 생의 남궁휘를 기억했다. 군사부 정원 시험에서 셋째로 떨어졌고, 그 뒤 남궁세가의 살림을 맡아 장사 수완으로 이름을 날렸다. 판을 짜는 데는 소질이 없었지만 은을 세는 데는 강호에서 손꼽혔다. “공자께서는 군사부보다 남궁 살림을 맡으시는 게 훨씬 잘 맞으실 겁니다.”

남궁휘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 나를 장사치라고 했나?”

“칭찬이었습니다만.”

남궁린이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었다. 화살 맞은 쪽 어깨까지 같이 들썩이는 바람에, 웃다가 아파서 얼굴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남궁철이 수염을 놓았다.

“말하는 꼴이 나보다 늙었구나. 몇 살이냐?”

“스물다섯입니다.”

“거짓말. 그 말투는 쉰은 넘었다.”

“가주께서 그렇게 보신다면 마흔다섯쯤으로 해 두겠습니다.”

남궁철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이 짧았고, 끝에서 뚝 끊겼다. 그는 시종을 불러 대청 구석에서 바둑판을 가져오게 했다. 검은 흑단으로 짠 판이었고, 모서리 네 곳에 은을 박아 놓았다. 판 한쪽 귀퉁이가 조금 깨져 있었다.

“이 판은 내 아버지가 두던 판이다. 아버지는 이 판 앞에서 사람을 골랐지. 판 앞에서 거짓말하는 놈은 수에서 티가 난다고 하셨다.” 남궁철이 흑을 쥐었다. “한 판 두자. 네가 이기면 남궁은 휘를 거두고 너를 군사부에 추천한다. 하후 부군사의 옥패 말고, 남궁의 이름으로. 네가 지면 오늘 소주를 떠나서 다시는 남궁 근처에 오지 마라.”

남궁휘가 벌떡 일어섰다. “숙부님!”

“앉아라. 너는 장사가 더 맞는다지 않느냐.”

*

판은 무거웠다. 남궁철의 바둑은 그의 검과 같았다. 정면으로 들어오고, 물러서지 않았다. 위서는 처음 서른 수 동안 거의 모든 싸움에서 한 걸음씩 물러섰다. 물러설 때마다 남궁휘가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

마흔째 수에서 남궁철이 판 가운데로 크게 뛰어들었다. 위서는 그 돌을 잡으러 가지 않았다. 대신 판 아래쪽 귀에 조용히 한 점을 놓았다.

“왜 안 잡나?” 남궁철이 물었다.

“잡으면 가주께서 그 바깥을 다 가지십니다. 가주의 돌은 무겁습니다. 무거운 돌은 잡는 것보다 무겁게 두게 하는 게 낫습니다.”

남궁철의 손이 판 위에서 멈췄다. 그는 판을 오래 보다가 물었다.

“남궁이 네 편에 서면, 남궁은 뭘 얻느냐?”

위서는 대답을 골랐다. 거짓말을 하면 이길 수 있었다. 남궁은 맹 군사부를 등에 업고, 스무 해 뒤 정마대전에서 이기는 쪽에 선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판 앞에서 거짓말하는 놈은 수에서 티가 난다고 했다.

“잃습니다.”

대청이 조용해졌다.

“지난 생, 아니. 제가 본 판에서는 남궁이 맹을 떠납니다. 그러고 스무 해 동안 강호의 싸움에서 비켜서 있습니다. 맹이 마교에 무너진 뒤, 강호에 남은 가장 큰 검이 남궁이었습니다. 강남의 세가들이 다 남궁 문 앞에 와서 머리를 숙였지요. 남궁이 제 편에 서면 그런 날은 오지 않습니다. 남궁은 맹과 같이 싸우고, 같이 피를 흘리고, 스무 해 뒤에 지금보다 작아질 겁니다.”

“그럼 왜 내가 네 편에 서야 하나?”

“맹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판에서는 가주께서 혼례 밤에 돌아가십니다.”

남궁휘가 숨을 들이켰다. 남궁린이 고개를 들었다. 남궁철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는 수염을 손가락에 감지 않았다.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위서가 놓은 아래쪽 귀의 한 점을 내려다보았다.

“남은 남궁이 강호의 가장 큰 검이 됐다는 거냐? 내가 없는 남궁이.”

“네.”

“린이 가주였겠군.”

“네.”

남궁철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판 가운데 크게 뛰어든 제 돌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이 돌은 살아도 무겁고, 죽어도 무겁구나.”

그 뒤로 판은 빨리 흘러갔다. 남궁철은 더 크게 뛰어들지 않았다. 위서는 아래쪽 귀를 키워 판 가장자리를 차례로 가졌다. 끝내기가 끝났을 때 위서가 두 집 반을 이겨 있었다. 남궁철이 돌 통 뚜껑을 덮었다.

“이겼다. 그런데 공짜는 아니다.”

“말씀하십시오.”

“네가 군사가 되면, 언젠가 남궁의 검을 쓸 날이 온다. 그날 남궁의 사람을 미끼로 쓰지 마라. 남궁의 검은 앞에 세워도 되고, 가장 무서운 자리에 세워도 된다. 그러나 죽으라고 내보내는 자리에 세우지는 마라. 그 약속을 하면 추천장을 쓴다.”

위서의 손바닥에 땀이 뱄다. 흑석협이 떠올랐다. 그 골짜기에 미끼로 들어간 부대가 무너지는 척하다가 진짜로 무너졌던 새벽이었다. 이 약속을 하면 그는 스무 해 뒤의 판에서 가장 좋은 수 하나를 스스로 묶게 된다.

“약속드립니다.”

“그 말이 빚이라는 건 알지?”

“늙은이는 빚이 많습니다.”

남궁철이 일어섰다. 그는 남궁린에게 다가가 붕대 감은 어깨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남궁린이 움찔했다.

“린아. 무한에 같이 가라. 남궁의 이름으로 추천한 사람이니, 남궁의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후 부군사 앞에서는 그 어깨를 보여 주지 마라. 다친 걸 보여 주면 거기를 친다.”

“예, 아버지.”

“셋째 초식에서 왼발이 늦다는 말은 누가 했나?”

남궁린의 얼굴이 하얘졌다가 붉어졌다. 그는 위서를 노려보았다. 위서는 판 위의 돌을 정리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저 바둑꾼이 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남궁철이 대청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 말을 해 주려다가 다섯 해를 참았다. 네가 언제 스스로 알까 해서. 바둑꾼한테 선수를 뺏겼구나.”

가주가 나가자 대청에는 세 사람이 남았다. 남궁휘가 비단 소매를 털며 위서 앞으로 왔다. 옥 장식 셋이 서로 부딪혀 짤랑거렸다. 위서는 저도 모르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옥 셋이 부딪는 소리는 두 개가 부딪는 소리보다 탁했다.

“장사치 소리 들은 건 안 잊는다.” 남궁휘가 말했다.

“잊지 마십시오. 칭찬이었으니.”

“칭찬이라 치고 하나 알려 주지. 장사치는 물건 값을 알거든.” 남궁휘가 바닥에 놓인 침향 구슬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건 남해에서 들어오는 상품 침향이다. 염주 한 줄이면 소주 집 한 채 값이야. 소주에서 그 등급을 사 가는 데는 셋뿐이다. 소주의 큰 절 한산사, 동창의 소주 관아, 그리고 무림맹 소주 분타.”

동창은 황제가 직접 부리는 환관들의 감찰 관청이었다. 위서는 구슬을 집어 들었다. 남궁린이 남궁휘를 보았다.

“형님이 그걸 어떻게 아시오?”

“내가 그 침향 들여오는 배에 돈을 댔으니까.” 남궁휘가 어깨를 으쓱했다. “장사가 맞는다며. 그럼 장사로 갚지. 이건 공짜 아니다, 바둑꾼. 군사가 되거든 남궁 살림 쪽 일은 나한테 먼저 물어라.”

“빚이 또 하나 느는구먼.”

“빚은 이자가 붙는다는 것도 잊지 말고.”

남궁휘는 옥 장식을 짤랑거리며 나갔다. 남궁린이 처음으로 사촌 형의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

여름이 지나는 동안 남궁린의 어깨가 아물었다. 혼례는 해를 넘겨 봄으로 미뤄졌다. 단소혜는 그 날짜를 정하는 자리에 제 아버지와 같이 앉았고, 정해진 날짜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린은 그 자리에서 땀을 너무 흘려 찻잔을 두 번 엎었다고 담우가 전했다. 담우는 그 이야기를 별원 부엌에서 찬모에게 들었다.

가을이 오고 무한으로 떠나는 날, 동문 부두에는 맹으로 가는 큰 객선이 대어 있었다. 위서의 보따리에는 남궁철이 쓴 추천장과 하후정의 옥패가 같이 들어 있었다. 추천장은 시험장에 내고, 옥패는 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단소혜가 부두에 나와 있었다. 그녀는 남궁린에게는 창 손잡이에 감는 가죽끈 하나를 주었고, 위서에게는 짧게 말했다.

“지우지 마세요. 무한에서도.”

“지우지 않겠소.”

“그 말도 빚이에요.”

“요즘 빚이 너무 느는구먼.”

배가 밧줄을 풀 무렵이었다. 부두 계단 위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내려왔다. 담우였다. 등에는 보따리를 메고 한 손에는 만두 꾸러미를, 다른 손에는 뭔가 길쭉한 천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그는 계단 마지막 세 단을 건너뛰다가 미끄러졌고, 미끄러진 채로 뱃전에 매달렸다. 남궁린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 배 위로 끌어 올렸다.

“늦었잖나?” 위서가 말했다.

“기원에 들렀다가 왔어. 노옹 어르신이 이걸 주라고 하셨어.”

담우가 천 꾸러미를 위서에게 내밀었다. 위서가 천을 풀었다. 안에는 오래된 청색 띠 하나가 들어 있었다. 띠는 바래서 하늘색에 가까웠고, 끝에 달린 은 장식은 검게 변해 있었다. 무림맹의 장식이었다. 서른 해 전 노옹이 풀었다던 띠였다.

“뭐라고 하시던가?”

“아무 말도 안 하셨어. 판 닦으시다가 이거 던져 주시고, 국수 값 남은 거 있으면 자기한테 갚으라고 하셨어. 근데 서야, 너 국수 값 진가장에 놓고 왔다며?”

위서는 띠를 손에 쥐었다. 은 장식이 손바닥에 차갑게 닿았다. 그는 그 띠를 허리에 매지 않았다. 보따리 맨 위에, 옥패와 추천장 사이에 넣었다. 배가 물살을 타고 미끄러져 나갔다. 소주의 처마들이 하나씩 멀어졌고, 그중 운하 옆 이층집 하나의 창가에 누가 서 있었는지는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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