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19자)
다른 집의 술
천하제일 군사, 회귀해서 판을 다시 짠다 · 정이한
기원을 나서던 아침, 노옹은 이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위서가 계단 아래에서 절을 하는 동안 위층에서는 바둑돌을 통에 쏟는 소리만 났다. 문을 나서려는데 문지방 위에 동전 한 줄이 놓여 있었다. 국수 세 그릇 값이었다. 위서는 그것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보따리에 넣었다.
그 뒤로 위서는 남궁 별원 서쪽 객방에 묵었다. 남궁린은 그것을 손님 대접이라고 불렀지만, 객방 문 앞에는 밤낮으로 무사 둘이 서 있었다. 객방은 넓었고 이불은 비단이었으며 창밖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의 잉어들이 새벽마다 물을 튀기는 바람에 위서는 사흘 내리 해 뜨기 전에 깼다.
“이 집 잉어는 왜 이렇게 부지런하냐?” 위서가 문 앞 무사에게 물었다. “늙은이는 잠이 귀한데.”
“어르신, 잉어도 아침을 먹어야지요.”
무사들은 어느새 그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놀리느라 그랬는데, 위서가 그 말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그대로 굳었다. 담우는 그 꼴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는 별원 부엌에 이틀 만에 단골이 되어 있었고, 찬모에게 만두를 두 접시씩 얻어먹었다.
*
취선방 술병은 남궁세가 의원 손에 들어갔다. 의원은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고, 은침과 거위 깃털과 자기 접시를 꺼내 놓고 반나절 동안 술병을 들여다보았다. 위서는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의원은 밀랍을 녹여 병을 열고 술 몇 방울을 접시에 떨어뜨렸다. 은침은 검게 변하지 않았다. 술에서는 꿀과 계화 냄새가 났다. 냄새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의원이 코를 찡그렸다.
“은침으로는 안 잡히는 물건입니다.” 의원이 말했다. “강호에서는 무색산이라 부르지요. 마시면 반나절이 안 되어 가슴이 조이다가 그대로 멎습니다. 급사한 것처럼 보여요. 술에 타면 술맛이 오히려 좋아집니다.”
남궁린이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걸 우리 혼례상에 올리려 했단 말이오?”
“스무 병이면 혼례상 손님 절반이 일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남궁린이 위서를 보았다. 위서는 접시 위의 술 방울을 보고 있었다. 지난 생의 그 밤에 쓰러진 사람은 가주 한 사람이었다. 가주의 잔에만 따로 탄 것이었다. 그런데 이 병은 통째로 독이었다. 판이 바뀌어 있었다. 혼례를 미루라는 말이 별원 밖으로 새 나간 순간부터, 상대는 한 잔이 아니라 술독 전체를 노리는 수로 바꾼 것 같았다.
“이 술이 지금 이 병 하나뿐이오?” 위서가 물었다.
남궁린의 얼굴이 굳었다.
*
소주 동쪽, 소금 배가 드나드는 부두 위에 진가장이 있었다. 진가는 남궁세가에 견주면 작은 집이었다. 대대로 소금 배를 지키는 일을 했고, 장주 진만호는 무공보다 술 인심으로 이름이 났다. 그 진만호의 회갑연이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별원 집사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저녁상을 물릴 무렵이었다.
“진가장에서도 취선방 술을 받았다더군요. 우리가 돌려보낸 날, 그 사내가 그리로 갔다고. 값이 워낙 싸서…….”
위서는 듣다 말고 일어섰다. 남궁린은 이미 검을 들고 있었다.
부두까지는 말로 달려도 반 시진, 한 시간이 걸렸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등불이 말발굽 소리에 흔들렸고, 저녁 짐을 부리던 짐꾼들이 길을 비키며 욕을 했다. 위서는 말을 잘 타지 못했다. 남궁린의 등에 매달리다시피 앉아 허리를 붙잡고 있었는데, 말이 뛸 때마다 고약 붙인 옆구리가 등에 부딪혔다.
“소가주, 조금만 천천히.”
“천천히 가면 사람이 죽는다며!”
“빨리 가면 내가 죽소!”
진가장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마당에 상이 서른 개 넘게 깔려 있었고, 붉은 등이 처마마다 걸려 있었다. 악사들이 비파를 뜯었고, 아이들이 상 사이를 뛰어다녔다. 사람들 웃음소리 위로 꿀과 계화 냄새가 진하게 떠 있었다.
마당 가운데 상석에 진만호가 서 있었다. 얼굴이 술로 붉었고, 손에는 큰 잔이 들려 있었다. 그는 막 손님들에게 잔을 들어 보이며 말하고 있었다. “예순 해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거요! 덤은 마셔서 쓰는 거고!”
손님들이 웃었다. 남궁린이 말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잔을 내려놓으시오!”
진만호가 대문 쪽을 보았다. 남궁세가 소가주를 알아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그는 잔을 든 채 한 발 내디뎠다.
그리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잔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술이 돌바닥에 쏟아졌다. 계화 냄새가 마당 전체로 확 번졌다. 진만호의 무릎이 꺾였고, 그를 붙잡으려던 아들의 팔에 그대로 무너졌다. 비파 소리가 끊겼다. 누군가 웃다 만 소리가 마당에 남았다가, 그 위로 비명이 덮였다.
위서는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상 서른 개 위에 잔이 놓여 있었다. 반쯤 빈 잔, 가득 찬 잔, 엎어진 잔. 그는 그 잔들을 하나하나 세지 않았다. 셀 수가 없었다.
“아무도 마시지 마시오!” 남궁린의 목소리가 마당을 갈랐다. “술을 내려놓으시오! 다들!”
그날 밤 진가장에서는 장주 말고도 손님 셋이 더 쓰러졌다. 둘은 의원이 와서 토하게 해 살렸고, 하나는 새벽을 넘기지 못했다. 소금 배 짐꾼이었고, 장주의 잔치에 처음 초대받은 사람이었다.
짐꾼의 이름은 노삼이었다. 새벽에 그의 아내가 부두에서 달려왔다. 마흔쯤 된 여인이었는데, 앞치마에 생선 비늘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남편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편의 짚신 끈을 다시 묶었다. 끈은 이미 단단히 묶여 있었는데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남편이 잔치에 간다고 새 끈을 꿰어 준 짚신이라고, 옆에 선 진가장 일꾼이 낮게 말해 주었다.
위서는 그 곁에 오래 서 있었다. 마당 돌바닥에 쏟아진 술이 마르면서 끈적하게 짚신 바닥에 들러붙었다. 그는 보따리에서 노옹이 문지방에 놓아 준 동전 한 줄을 꺼냈다가, 그것이 국수 세 그릇 값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손을 멈췄다. 그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동전을 여인 옆 돌바닥에 내려놓았다. 여인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지난 생에 위서는 이런 자리에 서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군사부의 방에서 숫자로 받았다. 몇이 죽고 몇이 다쳤다는 보고를 받고, 그 숫자로 다음 판을 짰다. 숫자에는 짚신 끈이 없었다.
*
다음 날 진가장에는 흰 천이 걸렸다. 마당에 깔렸던 잔칫상이 치워진 자리에 빈소가 섰다. 향 냄새가 계화 냄새를 덮으려 했지만 돌 틈에 스민 술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정오 무렵, 검은 옷 가마꾼 넷이 대문 앞에 가마를 내려놓았다. 하후정이 내렸다. 그는 하얀 장포 위에 상복의 베 띠를 둘렀고, 빈소 앞에서 깊이 세 번 절했다. 진만호의 아들 진소백이 맞절을 했다. 스물여섯의 진소백은 밤새 울어서 눈이 부어 있었다.
“맹을 대표해 조문합니다. 장주께서 소금길을 지켜 주신 덕을 맹은 잊지 않을 겁니다.”
진소백이 고개를 숙였다. 하후정은 일어나다가 빈소 옆에 선 위서를 보았다. 그는 놀란 얼굴을 했다. 정말로 놀란 것처럼 보였다.
“위 공. 여기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부군사를 여기서 뵐 줄은 몰랐소.”
하후정은 위서 앞으로 와서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나 빈소 앞은 조용했고, 낮춘 목소리도 다 들렸다.
“남궁 별원에서 들었습니다. 위 공이 사흘 전에 취선방 사내가 올 거라고, 손가락까지 맞히셨다고요. 대단한 눈입니다.”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 “그 눈이면 이 집에 술이 들어오는 것도 보셨겠군요.”
빈소 앞이 얼어붙었다. 진소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위서는 하후정의 얼굴을 보았다.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정말로 걱정하는 사람처럼 눈썹 끝이 처져 있었다.
“나는 남궁 별원에 오는 것만 알았소.”
“그렇겠지요. 위 공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맹 군사부에 추천할 분이니, 이런 말이 돌기 전에 제가 먼저 여쭙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말이 돌게 한 건 지금 부군사요.”
하후정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물러섬이 너무 정중해서, 보는 사람들 눈에는 위서가 그를 밀어낸 것처럼 보였다.
진소백이 빈소 앞에서 일어섰다. 상복 소매가 떨리고 있었다.
“알았소?”
“진 공자.”
“알았느냐고 물었소! 그 술이 독이라는 걸 사흘 전에 알았으면, 그 사내가 남궁가에서 쫓겨나 어디로 갈지도 알았을 것 아니오? 남궁가는 미루라고 해 주고, 우리 집에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소?”
위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은 있었다. 지난 생에 진가장은 이 봄에 아무 일도 없었다. 위서는 진가장을 판에 올려놓은 적이 없었다. 판 바깥의 집이었다. 그런데 그가 남궁의 혼례를 판 위에서 들어내자, 독은 판 바깥으로 굴러가 가장 가까운 잔칫상에 떨어졌다.
“몰랐소.” 위서가 말했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소.”
진소백의 주먹이 날아왔다. 위서는 피하지 않았다. 광대뼈에 불이 붙은 것 같았고, 몸이 빈소 기둥에 부딪혔다. 남궁린이 진소백의 팔을 붙잡았다. 진소백은 끌려가면서도 위서를 보고 있었다.
“생각을 못 해? 우리 아버지는 남궁가 혼례 대신 죽은 거요!”
하후정은 그 소란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향을 하나 더 꽂았다. 그러고는 위서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판 하나를 바꾸면 돌은 다른 데로 굴러가지요. 바둑 두는 분이니 아실 텐데.”
하후정은 가마에 올랐다. 가마 뒤를 따르는 호위 가운데 손등에 덴 자국이 있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이번에도 위서를 아주 짧게 보고 지나갔다.
*
그날 밤 별원 객방의 등잔이 꺼지지 않았다. 위서는 판 위에 소주 지도를 펴 놓고 바둑돌로 집들을 짚었다. 남궁 별원에 흑돌, 진가장에 흑돌, 취선방 사내가 지나간 길목마다 백돌이었다. 백돌이 놓인 자리를 이으면 운하 한 줄기가 되었다.
담우가 만두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가 위서의 퉁퉁 부은 뺨을 보고 접시를 내려놓았다.
“먹어. 부은 데는 기름진 게 약이래.”
“그런 말은 누가 하나?”
“찬모 아주머니. 그분 말이 다 맞더라. 어제는 내 관상 보고 노름하지 말래.”
위서는 웃으려다 뺨이 아파서 그만두었다. 담우가 판 위의 돌들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무슨 판이야? 흑이 둘밖에 없네. 이러면 지는 거 아냐?”
“지고 있지.”
“그럼 돌을 더 놔. 나는 질 것 같으면 그냥 판을 크게 벌리는데.”
“그래서 자네가 늘 지는 걸세.”
담우는 입을 삐죽 내밀고 백돌 하나를 집어 운하 끝, 지도 맨 위쪽 무한 방향에 올려놓았다. 아무 생각 없이 놓은 돌이었다. 위서는 그 돌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운하는 거기서 중원을 가로지르는 큰 강, 장강으로 이어졌다. 그때 문이 열렸다. 남궁린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검을 뽑아 위서의 목에 댔다. 차가운 쇠가 목젖 바로 아래 닿았다. 담우가 만두를 든 채 굳었다.
“하후 부군사 말이 머리에서 안 떠난다.” 남궁린이 말했다. “네가 그 술을 넣은 거냐? 우리 집에 들일 판이 틀어지자 진가로 돌린 거냐?”
“그랬으면 사흘 전에 당신한테 그 사내 손가락까지 말해 줬겠소?”
“그래서 더 모르겠다. 너는 너무 많이 안다.” 검끝이 살갗을 살짝 눌렀다. 따끔했다. “이번에는 내기 말고 진짜로 대라. 넌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