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60자)
당신 혼례를 미루시오
천하제일 군사, 회귀해서 판을 다시 짠다 · 정이한
남궁세가 별원은 소주 서쪽 수문 안쪽, 운하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자리에 있었다. 남궁세가는 안휘 합비에 본가를 둔 검의 가문이었고, 세가란 대대로 한 핏줄이 무공을 이어 온 집안을 말한다. 혼례를 한 달 앞두고 소가주가 신부 집 가까운 이 별원에 머문다는 것은 소주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담우가 다리 난간에 기대며 말했다. “빈손으로 가서, 처음 보는 남궁세가 소가주한테, 혼례를 미루라고 한다.”
“그렇지.”
“서야, 너 어제 판 엎은 뒤로 사람이 이상해진 거 알아? 나는 빚쟁이한테 손가락을 걸어 봤지, 남궁세가한테 목을 걸어 본 적은 없어.”
“자네는 문 앞에서 기다리게.”
“그건 또 싫어. 구경은 해야지.”
별원 대문은 검게 옻칠한 두 짝이었고, 문 위에는 남궁이라는 두 글자가 금박으로 박혀 있었다. 문지기는 둘이었다. 위서가 소가주를 뵈러 왔다고 하자 키 큰 쪽이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무명 두루마기에 짚신, 허리에는 칼 대신 바둑돌 주머니였다.
“소가주께서는 아무나 안 만나신다.”
“그럼 이렇게만 전해 주시오. 소가주의 검은 남궁 검법 셋째 초식에서 왼발이 반 치 늦는다고. 그 반 치 때문에 가주께 아직 한 번도 못 이겼다고.”
문지기 둘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키 작은 쪽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담우가 위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너 지금 우리 둘 다 죽이려고 그러지?”
*
연무장은 별원 안쪽 뜰에 있었다. 바닥에 고운 모래를 깔고 가장자리를 대나무로 둘러 놓았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잎이 서로 비비는 소리가 마른 종이를 구기는 것 같았다. 모래 한가운데에 젊은 사내 하나가 검을 들고 서 있었다. 흰 연습복 등판이 땀으로 짙게 젖어 있었고, 목덜미에서 김이 올라왔다.
남궁린이었다. 위서가 기억하는 남궁린은 마흔넷이었고, 맹 총단 앞에서 위서의 이름을 부르며 침을 뱉던 사내였다. 그 남궁린은 한쪽 눈 밑에 칼자국이 있었다. 지금 앞에 선 사람의 얼굴에는 아무 자국도 없었다.
“누가 너한테 그 말을 했나?”
“아무도.”
“그럼 어떻게 아나? 반 치를.”
“보면 압니다. 소가주는 셋째 초식에서 늘 숨을 한 번 더 쉽니다.”
남궁린의 턱 근육이 움찔했다. 그는 검끝을 모래에 꽂았다가 다시 들었다. “용건이 뭐냐?”
위서는 연무장 가장자리에 섰다. 대나무 울타리 너머로 담우가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당신 혼례를 미루시오.”
뜰이 조용해졌다. 대나무 잎 소리만 남았다. 남궁린의 시종 하나가 들고 있던 수건을 떨어뜨렸다.
“다시 말해 봐라.”
“혼례를 미루시오. 한 달 뒤가 아니라 석 달 뒤, 아니면 반년 뒤로. 그날 밤 이 집에 화가 듭니다.”
남궁린이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다음 순간 그의 검이 모래를 차고 날아왔다.
위서는 무공이 삼류였다. 내공은 얕았고 발은 느렸다. 그러나 그는 지난 생에 남궁린의 검을 스무 해 동안 보았다. 맹의 비무대에서, 남궁세가가 맹을 떠나던 날의 대문 앞에서, 위서를 죽이겠다고 쳐들어온 객잔 이층에서였다. 남궁린의 첫 칼은 언제나 오른쪽 어깨를 노렸고, 둘째 칼은 그 칼을 피한 상대가 왼쪽으로 빠질 자리를 쳤다.
그래서 위서는 피하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를 반 걸음 앞으로 내밀었다. 칼날이 그 어깨 위 한 뼘 허공을 지나갔다. 남궁린이 피할 줄 알고 깊게 찌른 칼이었다.
“어?”
둘째 칼은 왼쪽을 쳤다. 위서는 그 자리에 없었다. 셋째 칼에서 남궁린의 왼발이 반 치 늦었고, 위서는 그 반 치 동안 모래 위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부러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 발이 꼬였다.
“아이고, 내 허리.”
남궁린이 검을 거두지도 내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울타리 너머에서 담우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너, 지금 피한 거냐, 넘어진 거냐?”
“둘 다요. 허허, 젊은이, 칼은 좋은데 성질이 급하오. 늙은이를 일으켜 주지는 못할망정.”
“늙은이?” 남궁린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몇 살이냐?”
“스물다섯.”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말투는 우리 할아버지 같구나.”
“할아버님은 정정하시오?”
“돌아가셨다!”
넷째 칼은 칼날이 아니라 칼등이었다. 위서의 옆구리에 둔한 소리가 났고, 숨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위서는 모래 위에 옆으로 누웠다. 갈비뼈 하나가 우는 것 같았다. 입안에 쇠 맛이 퍼졌고, 모래 알갱이가 뺨에 붙어 따끔거렸다.
*
남궁린은 검을 시종에게 넘기고 위서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제 말해라. 누가 보냈나? 모용가냐, 제갈가냐? 이 혼사가 깨지면 득 볼 집이 한둘이 아니다.”
“아무도 안 보냈소.”
“그럼 왜 미루라는 거냐?”
위서는 옆구리를 짚고 일어나 앉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아래가 결렸다. 그는 지난 생의 그 밤을 다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미친놈이 되고, 미친놈의 말은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
지난 생의 그 밤, 위서는 이 혼례에 오지 않았다. 대신 술을 소개했다. 기원 손님 하나가 항주의 좋은 술도가를 안다고 했고, 위서는 그 말을 별생각 없이 남궁세가 집사에게 전했다. 그 술이 혼례상에 올랐다. 남궁린은 그 뒤 스무 해 동안 그 술을 들여온 사람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내기를 합시다.”
“내기?”
“사흘 안에 항주 술도가 「취선방」 사람이 이 별원에 혼례 술을 대겠다고 찾아올 겁니다. 서른 남짓한 사내고, 왼손 새끼손가락이 없소. 값을 시세의 반만 부를 거요. 그 사람이 오면 혼례를 미루시오.”
“안 오면?”
위서는 왼손을 펴서 모래 위에 올려놓았다. “새끼손가락을 드리리다.”
울타리 너머에서 담우가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야! 어제는 내 손가락이 걸렸는데 오늘은 네 손가락이야? 우리 집안에 무슨 손가락 귀신이 붙었나?”
남궁린이 위서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바둑돌을 오래 잡아 검지와 중지 끝이 반들반들했다. 그는 한참 그 손가락들을 보다가 일어섰다.
“사흘이다. 그 사이 소주를 뜨면 끝까지 쫓아가서 손가락이 아니라 손목을 받는다.”
“허허, 손목까지는 필요 없소.”
“그 말투 좀 어떻게 해라.”
남궁린은 돌아서려다 말고 다시 위서를 보았다. “하나만 묻자. 그 술도가 놈이 오면, 그게 왜 화냐? 싼 술 파는 게 죄냐?”
“싸게 파는 사람은 대개 다른 데서 값을 받습니다.”
“어디서?”
“그건 그 사람이 오면 그 사람한테 물으시오. 나한테 물으면 나는 또 칼등을 맞소.”
남궁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는 시종을 불러 위서에게 고약을 붙여 주라고 일렀다. 시종이 가져온 고약은 검고 끈적했고, 뚜껑을 열자 쑥과 송진과 무언가 썩은 듯한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옆구리에 그것을 붙이자 처음에는 차갑다가 곧 불을 댄 것처럼 뜨거워졌다. 위서는 이를 악물었다. 지난 생에 남궁세가 고약을 써 본 적은 없었다. 그 집안은 원수에게 약을 주지 않았다.
“이 고약, 남궁세가 것이오?”
“우리 집 의원이 만든다. 왜?”
“아니오. 냄새가 고약해서 고약이구먼.”
시종이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남궁린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위서가 앞뜰로 나설 때까지 연무장에서 칼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소가주는 칼을 든 채 모래 위에 서서 셋째 초식의 왼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위서가 시종의 부축을 받아 별원 앞뜰로 나왔을 때, 대문 안으로 수레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수레에는 비단 궤짝과 붉은 천을 두른 상자들이 실려 있었고, 앞에는 키가 큰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짙은 남색 겉옷을 걸쳤고, 머리는 단정하게 하나로 묶었으며, 손에는 천으로 감싼 긴 막대 하나를 들고 있었다.
“단가 표국에서 왔습니다. 혼수 첫 짐입니다.”
목소리가 낮고 또박또박했다. 표국은 돈을 받고 남의 짐과 사람을 지켜 나르는 집이고, 단가 표국은 소주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었다. 여인은 짐을 받으러 나온 집사에게 궤짝 수를 하나씩 불러 주더니, 위서의 옆구리를 짚은 손과 뺨의 모래를 차례로 보았다.
“소가주께 맞으셨어요?”
“칼등으로 한 대.”
“칼등이면 좋게 봐주신 거네요.” 여인이 말했다. “저는 단소혜입니다. 그 혼례의 신부예요.”
위서는 숨을 고르며 그 얼굴을 보았다. 지난 생에 이 얼굴을 본 것은 맹의 재판정에서였다. 그날 단소혜는 하얀 상복을 입고 있었고, 말을 할 때마다 두 손으로 무릎을 꽉 쥐고 있었다. 위서는 그 손을 똑똑히 기억했다. 지금 그 손은 천으로 감싼 막대를 가볍게 쥐고 있었다. 막대 끝에서 천이 조금 벗겨져 쇠 빛이 비쳤다. 창끝이었다.
“그건 혼수입니까?”
단소혜가 막대를 등 뒤로 돌렸다. “깃대예요. 표국 깃대.”
“허허, 표국 깃대가 날이 서 있구먼.”
단소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담우가 위서 옆으로 다가와 팔을 붙잡았다.
“서야, 너 오늘 남궁 소가주한테 맞고, 신부한테 째려보이고, 손가락 걸고. 하루에 할 일을 다 했어.”
“아직 하나 남았네.”
“뭐가?”
위서가 대문 쪽을 보았다. 별원 앞 돌길에 가마 한 채가 멈춰 서고 있었다. 가마꾼 넷이 모두 검은 옷을 입었고, 가마 앞에 선 호위는 허리에 무림맹의 청색 띠를 맸다. 가마 문에 걸린 발이 걷혔다.
하얀 장포 자락이 먼저 나왔다. 그 위로 단정하게 빗은 머리, 온화하게 휜 눈매, 웃는 입이 따라 나왔다. 서른여덟의 하후정이었다. 아직 서문을 열지 않았고, 아직 칼에 피를 묻히지 않은 얼굴이었다.
하후정은 별원 대문을 올려다보다가, 그 앞에 서 있는 위서를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했다.
“남궁 소가주께 혼례 축하를 드리러 왔습니다. 무림맹 군사부의 하후정이라 합니다.”
위서는 옆구리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갈비뼈가 다시 울었다.
“위서라 하오. 운하 옆 기원에서 바둑을 둡니다.”
“바둑이라.” 하후정의 웃음이 조금 깊어졌다. “언제 한 판 청해도 되겠습니까?”
지난 생에 하후정을 처음 만난 곳은 노옹의 기원이었다. 이 봄의 끝 무렵, 비가 오던 날이었고, 하후정은 젖은 우산을 접으며 이층으로 올라왔다. 남궁세가 대문 앞에서 그를 만난 적은 없었다. 위서가 남궁린을 찾아온 한 수가 벌써 판 한쪽을 움직여 놓았다.
“기원은 운하 옆 이층집입니다. 처마에서 물이 새는 자리만 피해 앉으시면 되오.”
“꼭 찾아가겠습니다.” 하후정은 위서의 옆구리를 내려다보았다. “다치셨군요. 남궁 소가주의 칼은 손이 맵다고 들었습니다.”
“칼등이었소.”
“칼등을 내주셨다니, 소가주께서 위 공을 꽤 마음에 들어 하신 모양입니다.”
하후정은 웃으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르는 호위 하나가 위서 곁을 지나가면서 아주 짧게 그를 보았다. 왼손 손등에 불에 덴 자국이 있는 사내였다. 위서는 그 손등을 기억하지 못했다. 지난 생에 하후정 곁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아무리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야.” 담우가 목소리를 낮췄다. “저 사람 웃는 거 좀 무섭지 않냐? 우리 동네 전당포 주인이 딱 저렇게 웃고 이자를 두 배로 불러.”
위서는 대답하지 않고 고약 붙인 옆구리를 짚은 채 돌길을 걸어 내려갔다. 운하 쪽에서 짐배 한 척이 뱃고동 대신 징을 두 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