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76자) · 옥상
천이백십일
소리 수집가 · 문가온
전화는 오른손에 쥔다. 수화기를 왼쪽 귀에 대고, 오른손바닥으로는 휴대폰 뒷판을 감싼다. 그러면 상대 목소리가 귀로 한 번, 손바닥으로 한 번 온다. 귀로는 말을 듣고, 손바닥으로는 말 사이를 듣는다. 말 사이에 사람이 숨을 고르는 떨림. 망설이는 떨림. 울기 직전의 떨림. 칠월 이십일일부터 사흘 동안 나는 그 떨림을 이백열두 번 받았다.
직무 정지라서 회사 전화는 못 썼다. 내 휴대폰으로 걸었다. 저녁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동네 도서관 옥상 벤치에서. 도서관은 여섯 시에 닫는데 옥상은 열려 있었다. 사서 아주머니가 첫날 옥상 문을 잠그러 왔다가 내 통화를 듣고 그냥 내려갔다. 둘째 날에는 보리차 한 병을 벤치에 놓고 갔다.
도서관 옥상은 넓지 않다. 바닥은 우레탄이고 난간은 쇠다. 벤치 하나, 화분 셋, 그리고 옆 건물 에어컨 실외기가 돌아가는 소리. 나는 첫날 그 실외기 소리를 손바닥으로 재 보았다. 낮고 고르게. 그 위에 사람 목소리를 얹으면 어떻게 들릴지 계산할 수 있었다. 계산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계산할 게 없었다. 통화는 계산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첫 문장은 매번 같았다. 정다혜 씨가 쓰고 내가 고친 문장.
“안녕하세요. 잔향음향연구소 복원 연구원 서주입니다. 지난달 받으신 다시 듣기 파일에 대해 꼭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파일에 들어 있던 짧은 목소리는 저희가 계산한 소리가 아닙니다. 고객님이 접수 때 주신 자료로 만든 합성 음성입니다. 동의 절차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다음은 매번 달랐다.
첫날 첫 통화는 폐교 음악실 고객이었다. 예순일곱. 교사였다고 했다. 풍금 소리 끝에 제자가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어 있었다. 이십 년 전 물에 빠져 죽은 아이였다. 고객은 내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러고는 오래 조용했다. 손바닥에 떨림이 없었다. 숨을 참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요.”
“네?”
“그 애는 저를 선생님이라고 안 불렀어요. 쌤이라고 했어요. 한 번도 선생님이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알면서도 들었어요. 매일.”
“지워 드릴까요?”
“아니요. 남겨 두세요. 대신 파일 이름을 바꿔 주세요. 합성이라고. 그래야 제가 들을 때마다 알죠. 이건 그 애가 아니라는 거.”
나는 노트에 적었다. 남김, 표시 요청. 그 줄 옆에 번호를 붙였다. 하나.
둘째 통화는 군부대 내무반 고객. 서른둘. 훈련 중에 죽은 동기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 야, 하고 부르는 한 음절. 그 사람은 내 말을 반쯤 듣고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고. 그놈은 나를 야라고 안 불렀다고. 형이라고 불렀다고. 자기가 두 달 빨랐다고. 지워 달라고 했다. 대신 계산한 내무반 소리는 달라고 했다. 관물대 문 여닫는 소리, 모포 터는 소리. 그건 진짜냐고. 진짜라고 했다. 그 사람은 그거면 된다고 했다.
셋째, 넷째, 다섯째. 답이 하나씩 쌓였다. 노트 한 장이 찼다. 두 장째로 넘어갔다.
첫날 마지막 통화는 배명희 씨였다. 밤 아홉 시 사십 분. 대성탕. 정다혜 씨 목록에는 그 이름 옆에 답장 없음이 적혀 있었다. 나는 첫 문장을 말했다. 배명희 씨는 끝까지 듣고 나서 웃었다. 한 달 전 전화에서 바가지 이야기를 하며 웃던 그 웃음이었다.
“연구원님, 저 그거 알고 있었어요. 연구원님이 두 개 보내 주셨잖아요. 계산이랑 미처리. 그때 알았어요. 회사가 뭘 하는지는 몰라도, 연구원님이 안 넣었다는 건요.”
“그때 다 말씀드렸어야 했는데요.”
“모르는 걸 어떻게 말해요.”
배명희 씨가 그러고는 물었다. 바가지 소리는 누가 만든 거냐고. 나는 말했다. 접수 때 하신 말씀으로, 기계가. 배명희 씨는 잠깐 조용했다. 손바닥에 떨림이 없었다. 숨을 고르는 사람의 손바닥은 고요하다. 그러다 말했다.
“그럼 그건 우리 아버지 손목이 아니라 제 입이네요. 제가 말한 대로 기계가 친 거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배명희 씨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지워 주세요. 딱, 딱, 그거. 대신 계산만 있는 거, 그건 둘게요. 쓸쓸한 거요. 물 받는 소리만. 그게 진짜니까요. 그리고 연구원님, 저 알람 세 개 중에 하나 껐어요. 지난주에. 두 개로도 일어나지더라고요.”
배명희 씨가 먼저 끊었다. 나는 노트에 적었다. 지움. 계산본 보존. 번호, 여섯. 그 옆에 작게 한 줄을 더 적었다. 알람 둘. 옆 건물 실외기 소리가 벤치 밑으로 낮게 깔렸다. 옥상 바닥 우레탄이 낮에 받은 열을 발바닥으로 올려 보냈다. 첫날 여섯 통. 여섯 사람이 여섯 가지로 답했다. 같은 답이 하나도 없었다. 천삼백팔십을 하나의 수로 부르던 대표실이 그날 처음으로 틀린 방이라고 느껴졌다.
둘째 날 저녁 일곱 시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소리를 질렀다. 쉰 살쯤. 남자. 할머니 부엌 고객의 아들이었다. 칼 도마 소리 사이에 어머니가 얘야, 하고 부르는 소리. 이 분 십 초.
“당신이 뭔데 우리 엄마를 가짜라고 해.”
“어머니가 가짜라는 게 아닙니다. 그 목소리를 저희 회사가 만들었다는.”
“그 목소리가 우리 엄마라고. 내가 들었다고. 내 귀로. 당신이 들었어? 당신이 우리 엄마 알아?”
“모릅니다.”
“그럼 입 다물어. 삼 년 만에 엄마 목소리 들었어. 그걸 왜 뺏어.”
“뺏지 않습니다. 고객님이 정하시는 겁니다. 지울지, 남길지.”
“남겨. 그리고 다시는 전화하지 마.”
전화가 끊겼다. 손바닥에 끊긴 뒤의 떨림이 남았다. 내 손이 떨고 있었다. 나는 보리차를 마셨다. 식어 있었다. 노트에 적었다. 남김. 번호, 이십칠.
십 분 뒤 그 번호에서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고. 화낸 건 미안하다고. 근데 남겨 달라고. 엄마가 얘야, 하고 부르는 게 가짜라도 자기는 그게 필요하다고. 자기 딸이 태어났는데 엄마가 못 봤다고. 그 목소리를 딸한테 들려주고 싶다고. 할머니가 이렇게 불렀다고. 나는 그 문자를 오래 봤다. 답장했다. 남기겠습니다. 파일에 합성이라고 표시하겠습니다. 따님한테는 그것도 같이 말씀해 주십시오. 답장이 왔다. 알겠다고. 그리고 한 줄 더. 그래도 고맙다고. 나는 그 고맙다는 말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랐다. 노트에 그냥 적어 두었다. 주인 없이.
그 사람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 어머니를 모른다. 그 사람 귀가 들은 것을 나는 안 들었다. 내가 아는 건 그 목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뿐이다. 그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채로 삼 년 만에 어머니를 들었다. 나는 그 사람한테서 모르는 것을 뺏었다. 그건 무엇을 뺏은 것일까. 옥상 난간에 손을 댔다. 저녁 바람에 쇠 난간이 아주 조금 울렸다.
백소윤 씨는 스무 명 가운데 열여덟 명과 통화했다. 문자로 결과를 보냈다. 지움 셋, 남김 아홉, 원본 자료 반환 여섯. 은하준 씨는 전화를 안 걸었다. 대신 파일 이름을 바꾸는 스크립트를 짰다. 남김을 고른 사람의 파일마다 이름 앞에 합성이라는 말을 붙이고, 파일 맨 앞에 일 초짜리 안내 음성을 넣었다. 이 파일에는 합성 음성이 들어 있습니다. 그 안내 음성은 은하준 씨가 직접 녹음했다. 합성으로 하면 말이 안 되니까, 라고 했다. 녹음 끝에 은하준 씨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어갔다. 지우지 않았다.
정다혜 씨는 하루에 백 통씩 걸었다. 셋째 날 밤 열한 시에 문자가 왔다.
윤창배 님은 연구원님이 직접 하시는 게 좋겠어요. 첫 번째 분이니까.
셋째 날 밤 열 시 반, 나는 윤창배 씨에게 전화했다. 신호가 여섯 번 갔다. 일곱 번째에 받았다.
“연구원님이구먼.”
“늦게 죄송합니다.”
“아니오. 기다렸소. 영업하는 아가씨가 오늘 낮에 전화해서 연구원님이 직접 한다고 했소.”
나는 첫 문장을 말했다. 윤창배 씨는 중간에 끊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한참 있다가 말했다.
“연구원님, 우리 어머니는 창호를 세 번 불렀소.”
“네?”
“그날 건널목에서. 창호야, 창호야, 창호야. 세 번. 내가 그 옆에 있었소. 그 파일에는 두 번이오. 처음 들을 때부터 알았소. 하나가 모자라다고.”
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 윤창배 씨 숨이 왔다. 길게.
“그래도 고맙다고 했소. 두 번이라도. 이십 년 넘게 그 소리를 내 머릿속에서만 들었소. 밖에서 들은 건 처음이오. 두 번이라도.”
“그 두 번은 저희가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접수 때 하신 말씀으로.”
“그러니께. 내가 한 말이오. 내가 이십 년 동안 한 말. 그게 기계를 거쳐서 우리 어머니 목소리로 돌아온 거요. 그러면 그건 누구 거요? 기계 거요, 우리 어머니 거요, 내 거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에 답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대표도, 위원회도.
“연구원님이 계산한 기차 소리는 진짜요?”
“네. 그건 계산입니다. 도면과 날씨로.”
“그럼 그걸 주쇼. 기차 소리만 있는 거. 두 번 없는 거.”
“원래 파일은 지울까요?”
“아니오. 그건 합성이라고 적어서 두쇼. 내가 두 개 다 들을 거요. 기차만 있는 거 먼저. 그다음에 두 번 있는 거.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부를 거요. 내 목소리로.”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참 옥상 벤치에 앉아 있었다. 노트에 적었다. 계산본 추가, 합성본 표시 보존. 번호 옆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세 번째는 본인이.
사흘째 밤 열한 시, 여덟 명이 보낸 숫자를 합쳤다. 천삼백팔십 명 가운데 연락이 닿은 사람 천이백십일. 지움 백구십사. 남김, 합성 표시 칠백이. 원본 자료 반환 이백삼십. 계산본만 받음 팔십오. 답하지 않겠다 백일. 그리고 한 줄, 정다혜 씨 목록 끝에 따로 적힌 것. 화내며 끊음 사십사. 그 사람들도 답이었다.
천이백십일. 대표가 자랑하던 구백열두 개의 초록 점보다 많은 답. 그 가운데 고맙다는 말을 한 사람은 대표 목록보다 적었다. 대신 고맙다는 말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정에 은하준 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위원회 조사관이 내일 아침 아홉 시에 회사로 온다고. 서비스 전면 중단 권고가 오늘 오후 대표에게 갔다고. 대표가 칠월 이십사일 청음실 개관을 연기했다고. 취소가 아니라 연기라고.
그리고 연구원님, 팀장님이 비디오 플레이어 헤드 청소 끝냈대요. 내일 저녁이래요.
나는 옥상 난간에 기댔다. 도서관 앞 도로로 버스가 지나갔다. 난간이 떨었다. 한 번. 사흘 동안 나는 천이백십일 명의 숨을 손바닥으로 받았다. 내일은 한 사람의 숨을 받을 차례였다. 이십이 년 동안 받지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