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12자) · 십팔 분 사십일 초
원본
소리 수집가 · 문가온
칠월 이십사일 금요일. 청음실이 열리기로 했던 날이었다.
아홉 시에 위원회 조사관 둘이 왔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회색 서류 가방 둘. 나는 직무 정지라서 출입 카드가 안 됐다. 경비 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었다. 신고인이라 조사관이 나를 부른다고, 정다혜 씨가 아침 일곱 시에 문자로 알려 주었다. 로비에서 은하준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그 사람은 한 발 물러서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물러설 자리에 내가 서 있어서였을 것이다.
조사는 대회의실에서 했다. 조사관은 서버실 봉인부터 했다. 노란 띠를 문에 엑스 자로 붙이고 날짜를 적었다. 그 문이 닫히자 벽 너머 냉각 팬 소리는 그대로인데 누구도 그 소리에 손을 댈 수 없게 됐다. 오세훈 씨가 외장 하드를 들고 와서 탁자에 놓았다. 아무 말 없이. 조사관이 봉투에 넣고 날짜를 적었다. 오세훈 씨는 창가로 가서 앉았다. 창밖을 보지 않았다. 탁자를 봤다.
대표는 열 시에 왔다. 흰 운동화. 재킷. 손에 서류철. 조사관 앞에 앉아서 첫 문장을 외운 대로 말했다. 우리는 사라진 것을 계산합니다. 조사관이 받아 적지 않았다. 대표가 그걸 보고 잠깐 멈췄다. 십사 년 동안 그 문장을 받아 적지 않은 사람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조사관은 세 시간 동안 물었다. 동의서 칠 조. 면담 질문지. post_e. 발송 천삼백팔십. 대표는 대답했다. 목소리가 맑았다. 갈라지지 않았다. 사흘 동안 목소리를 다시 다듬어 온 사람의 목소리였다. 정다혜 씨가 면담 질문지 원본을 가져왔다. 이월에 자기가 넣은 항목 여섯 줄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자기 손으로 친 밑줄이었다. 조사관이 노트를 한 장 넘기고 물었다.
“천이백십일 명이 지난 사흘 동안 답을 했습니다. 지움 백구십사, 남김 칠백이, 원본 반환 이백삼십. 회사가 한 조사입니까?”
“직원이 개인적으로.”
“직무 정지 중인 직원이요?”
대표가 나를 봤다. 나는 탁자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긴 원목 탁자. 대표 팔꿈치가 탁자 반대편에 놓여 있었다. 떨림이 왔다. 고르지 않은 떨림.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점심 뒤에 조사관이 나를 따로 불렀다. 대회의실 옆 작은 방. 창이 없고 벽이 얇아서 복도 발소리가 다 들어오는 방. 2413 이야기였다. 신고인이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 여자 조사관이 물었다. 2413 복원본과 학습에 쓰인 원본 복사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움, 남김, 반환. 다른 천이백십일 명에게 물은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 질문을 사흘 동안 이백열두 번 했다. 받은 건 처음이었다.
“복사본은 반환. 합성본은 지움.”
조사관이 적었다. 나는 덧붙였다.
“계산본은 남김. 빈 거실 소리. 그건 제가 계산한 겁니다.”
조사관이 그것도 적었다. 그러고는 볼펜을 놓고 나를 봤다.
“지우는 거, 괜찮으시겠어요.”
“다섯 번 들었습니다. 여섯 번째에 손을 댔고요. 손으로 들은 다음에는 귀로 들은 다섯 번이 안 남아 있습니다.”
그 방을 나오는데 대표가 복도에 서 있었다. 청음실 문 앞. 금색 글씨가 문 너머로 보였다. 우리는 지우지 않습니다.
“지웠어요? 서주 씨 어머니.”
“네.”
“다섯 번 들었으면서.”
“여섯 번째에 손을 댔으니까요.”
대표가 청음실 문에 등을 기댔다. 편백 문. 그 사람 등이 닿자 문이 아주 조금 울렸다. 그 울림이 복도 바닥을 타고 내 발바닥으로 왔다.
“서주 씨, 회사 연말에 닫아요. 스물두 명. 서주 씨가 한 일이에요.”
“아닙니다. 대표님이 이월에 한 일입니다. 저는 유월에 알았고요.”
“그래서 뭐가 남아요. 빈 방 소리? 그거 듣고 누가 울어요.”
“배명희 씨가 남겨 달라고 했습니다. 물 받는 소리만. 쓸쓸하다면서요. 쓸쓸한 게 진짜라서요.”
대표는 한참 나를 봤다. 무슨 말을 고르는 얼굴이었다. 고르지 못했다. 그러고는 청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혼자. 문이 닫혔다. 조금 뒤 편백 벽 너머로 낮은 떨림이 왔다. 스피커. 여자 목소리. 노인. 나는 복도에서 벽에 손을 대지 않았다. 무슨 소린지 알았다. 말끝이 매끈할 것도 알았다. 그 사람은 아직 그걸 손으로 안 들어 봤다. 앞으로도 안 들을 것이다. 그게 그 사람이 끝까지 지킨 것이었다.
저녁 일곱 시. 팀장님 집은 성수동에서 버스로 사십 분, 광진구 오래된 빌라 삼 층이었다. 문을 열어 준 건 팀장님 아내였다. 오십쯤. 나를 보고 웃었다.
“그 테이프 아가씨. 이 사람이 나흘 동안 그 기계 닦았어요. 십 년째 버리라고 하던 걸.”
거실 구석에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있었다. 뒤통수가 깊은 것. 그 밑에 비디오 플레이어. 은색. 앞면 플라스틱이 누렇게 바랬다. 팀장님이 헝겊으로 앞면을 한 번 더 닦았다. 나흘 동안 닦은 사람이 또 닦았다.
“헤드 두 번 청소했어. 테이프는 어제 한 번 감았다 풀었어. 늘어난 데 없어. 끊길 데도 없어. 아마.”
“아마요.”
“이십이 년이야. 아마가 최선이야.”
팀장님 아내가 부엌에서 말했다. 저 기계로 애들 어릴 때 테이프를 틀었다고. 딸이 대학 가고 나서는 한 번도 안 틀었다고. 그래도 못 버렸다고. 팀장님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플레이어 뚜껑을 한 번 열었다 닫았다. 헤드가 제자리에 있는지 보는 손이었다. 버리지 못한 것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었으면 벌써 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 기계 옆면에 손을 댔다. 아직 아무것도 돌지 않는데 플라스틱이 따뜻했다. 나흘 동안 사람 손이 닿은 온기였다.
은하준 씨가 여덟 시에 왔다. 치킨 두 마리. 한 마리는 프라이드, 한 마리는 양념이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했다. 팀장님 아내가 접시를 내왔다. 은하준 씨는 소파 끝에 앉았다. 텔레비전에서 한 발 떨어진 자리. 전세 대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닭 다리를 들고 말했다.
“저 오늘 조사관님한테 물어봤어요. 제가 짠 거 제가 지워도 되냐고. 안 된대요. 증거래요. 근데 그 뒤에 그러더라고요. 지우지 않는 게 벌이라고.”
“누가요?”
“여자 조사관님이요.”
나는 웃었다. 팀장님도 웃었다. 팀장님 아내가 왜 웃냐고 물었고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은하준 씨가 닭 다리를 든 채로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홉 시. 팀장님이 거실 불을 껐다. 텔레비전 화면이 파랗게 켜졌다. 텔레비전 스피커는 화면 아래 양쪽에 있다. 천 그물망. 삼십 년 된 천. 나는 바닥에 앉았다. 왼쪽 귀를 화면 쪽으로. 오른손을 왼쪽 스피커 그물망에 댔다. 천이 까슬했다. 먼지가 손바닥에 묻었다.
팀장님이 테이프를 넣었다. 기계가 테이프를 삼키는 소리. 릴이 도는 소리. 그 소리가 플레이어 몸통을 타고 텔레비전 다리를 타고 바닥을 타고 내 무릎으로 왔다. 팀장님이 재생 단추를 눌렀다. 화면에 줄이 가고, 색이 번지고, 거실이 떴다.
사 미터에 삼 미터 오십. 운동장.
케이크. 초 여섯 개. 분홍 원피스. 아이가 웃었다. 그 웃음이 손바닥에 왔다. 서버실 작업대 싸구려 스피커로 들은 것과 달랐다. 뭐가 다른지 처음에는 몰랐다. 조금 있다가 알았다. 밑에 깔린 게 있었다. 낮고 고르지 않은 떨림. 테이프 자체의 소리. 다락에서 여름을 스물두 번 난 테이프가 내는 소리. 디지털 변환본에는 그게 없었다. 깨끗하게 걸러 냈으니까. 이건 안 걸러졌다. 어머니 목소리 밑에 다락 여름 스물두 개가 깔려 있었다.
주야.
손바닥 한가운데. 두 음절. 끝이 조금 올라가는. 그리고 말이 끝난 다음, 숨이 가슴으로 내려가면서 떠는 것. 있었다. 서버실에서 한 번 확인한 것. 오늘은 확인이 아니었다.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다섯 번 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 번이면 됐다. 한 번을 끝까지.
주야, 초 불어야지. 다섯 개가 꺼지고 하나가 남았다. 어머니가 웃었다. 그 웃음이 길었다. 손목까지 왔다. 그러고는 카메라가 흔들렸고, 소파 옆 슬리퍼에 발이 들어왔고, 아버지 목소리가 났다. 한 번. 됐어, 그만 찍어. 나는 그 목소리를 안다. 십 년 전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젊었다. 나는 아버지가 젊었던 걸 처음 들었다. 캠코더는 없었다던 사람이 찍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이 분 사십 초는 거기까지가 아니었다. 그 뒤로도 어머니가 말했다. 주야, 이거 봐. 주야, 아빠한테 가. 주야, 웃어 봐. 문장이었다. 대표가 만들어 주겠다던 문장. 밥 먹자, 생일 축하해, 잘했어. 대표는 어머니가 안 한 문장을 만들려 했다. 어머니가 한 문장은 여기 있었다. 웃어 봐. 여섯 살의 내가 웃었다. 숨을 들이켰다. 화면 밖에서 어머니도 숨을 들이켰다. 두 숨이 손바닥에 겹쳐서 왔다.
십팔 분 사십일 초. 테이프가 끝났다. 화면이 파랗게 됐다. 릴 멈추는 소리가 무릎으로 왔다. 팀장님이 정지 단추를 누르지 않았다. 기계가 스스로 멈출 때까지 두었다. 그런 다음에도 한참 파란 화면이었다.
나는 손을 뗐다. 손바닥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삼십 년 된 천 그물망 먼지. 닦지 않았다.
은하준 씨가 코를 훌쩍였다. 팀장님 아내가 휴지를 건넸다. 은하준 씨는 자기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남의 집 생일이라고. 팀장님은 헤드폰이 없는 목을 손으로 한 번 만졌다. 버릇이 남은 손.
“한 번 더 틀까.”
팀장님이 물었다.
“아니요. 다음 주에요. 그다음 주에도요. 한 번씩.”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프를 꺼내서 케이스에 넣었다. 그러고는 과일 상자에서 라벨 없는 테이프를 꺼내 들었다.
“이건.”
“다음에요.”
이십이 년을 기다린 사람이 한 주를 더 못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팀장님은 그 테이프를 도로 상자에 넣었다. 뭐가 들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빈 테이프일 수도 있었다. 빈 테이프면 빈 테이프 소리를 들으면 된다. 그것도 계산이 아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창에 오른손을 댔다. 버스가 다리를 건넜다. 이음매를 넘을 때마다 유리가 떨었다. 나는 세지 않았다. 셀 것은 다 셌다. 천이백십이. 마지막 하나가 나였다. 대신 손바닥에 남은 먼지를 봤다. 가로등 밑을 지날 때마다 손금 사이에서 잿빛으로 보였다가 어두워졌다.
이것은 손바닥이 먼저 알아챈 일에 관한 고백이었다. 손바닥이 마지막으로 알아챈 것은 이것이다. 진짜 소리에는 밑이 있다. 다락의 여름, 테이프의 나이, 말끝의 숨. 걸러 내면 깨끗해지고, 깨끗해지면 가짜가 된다. 나는 앞으로도 복원본을 두 번 들을 것이다. 한 번은 귀로, 한 번은 손으로. 밑이 없는 소리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 미처리라고 적을 것이다. 지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아직 다 듣지 않았다는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