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15자) · 청음실
숨
소리 수집가 · 문가온
청음실은 무향실의 반대다. 벽이 나무다. 곧은 결의 편백 판자가 비스듬히 붙어 있어서 소리가 벽에 닿으면 부드럽게 한 번 돌아온다. 잔향 0.8초. 사람 목소리가 가장 따뜻하게 들리는 값이라고 대표가 설명회 때 말했다. 조명은 촛불 색. 의자는 열두 개, 전부 한 방향. 등받이가 높아서 앉으면 옆 사람 얼굴이 안 보인다. 우는 얼굴을 서로 안 보게 하려는 설계라고 했다. 앞에 스피커 두 대. 벽 한가운데에는 금색 글씨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지우지 않습니다.
칠월 십칠일 금요일. 낮 열두 시에 은하준 씨와 팀장님과 나는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민원실에 서면을 냈다. 개인정보 침해 신고. 첨부 자료 스물세 개. 창구 직원이 두께를 보고 번호표를 한 장 더 뽑아 주었다. 오래 걸린다는 뜻이었다. 접수증을 받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은하준 씨는 접수증을 사진으로 세 번 찍었다. 팀장님은 헤드폰을 목에 걸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줄 알았는데 내릴 역에서 정확히 눈을 떴다.
저녁 일곱 시. 정식 개관은 칠월 이십사일이었다. 그날은 VIP 사전 체험이었다. 초대받은 사람은 셋. 그중 한 사람이 서정우 씨였다. 정밀도 향상 옵션을 신청한 첫 고객.
나는 초대권을 들고 갔다. 퇴근 뒤 지하철에서 봉투를 몇 번이나 꺼냈다 넣었다. 봉투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서랍 속에 세워 두었던 흰 봉투. 칠월 이십사일 첫 회차 일 번 좌석이라고 적힌 카드. 날짜가 달랐다. 입구에 선 정다혜 씨가 카드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연구원님, 이건 이십사일 거예요.”
“알아요.”
“그리고 연구원님은 이제.”
“일 번 좌석이요. 대표님이 지우지 않은 사람한테 준다고 하셨죠. 저 아직 아무것도 안 지웠어요.”
정다혜 씨 뒤에서 대표가 나왔다. 흰 운동화. 오늘은 정장 재킷을 걸쳤다. 나를 보고 잠깐 눈이 가늘어졌다가, 웃었다.
“들어와요, 서주 씨. 들어와서 봐요. 우리가 뭘 하는지. 보면 달라져요.”
대표는 나를 막지 않았다. 막으면 내가 뭘 할지 몰라서였을 것이다. 들여보내면 적어도 보이니까.
입구 탁자에 손수건이 쌓여 있었다. 회사 로고가 수놓인 흰 손수건. 정다혜 씨가 들어오는 사람마다 한 장씩 건넸다. 나한테도 건넸다. 나는 받았다. 로고가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있었다. 눈물을 닦으면 로고가 눈가에 닿는 자리였다.
청음실 맨 앞줄에 서정우 씨가 앉아 있었다. 양복을 입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입는 검은 양복.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지 않고 한 칸 건너 앉았다.
둘째 줄에 다른 초대 손님 둘이 있었다. 일흔쯤 된 부인과 서른쯤 된 여자. 부인은 손수건을 벌써 쥐고 있었다. 여자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리고 있었다. 부인이 먼저 들었다. 삼십 년 전 문 닫은 남편 양복점. 가위 소리 사이로 남편이 헛기침을 했다. 두 번. 부인은 소리 내어 울었다. 고맙다고 했다. 대표 손을 잡고. 여자는 이 년 전 떠난 반려견 이야기를 들었다. 발톱이 마루를 치는 소리. 여자는 울지 않았다. 끝나고 조용히 물었다. 이 소리 어디서 오는 거냐고. 대표는 웃으며 계산이라고 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 끄덕임이 아니었다.
대표가 스피커 옆에 섰다.
“서정우 고객님. 고객님이 보내 주신 윤재 씨 영상 열한 개로, 윤재 씨 목소리를 되살렸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문장을 들으실 겁니다. 두 음절이 아니라. 준비되셨습니까?”
서정우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명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스피커에서 먼저 방 소리가 났다. 금곡동 거실. 내가 계산한 방. 원목 마루가 뚝 하고 울었다. 창에 바람이 닿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났다. 젊은 남자. 조금 쉰.
아빠, 나 왔어. 밥 먹었어?
서정우 씨의 어깨가 무너졌다. 한꺼번에. 무릎 위에 모았던 두 손이 풀렸다.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로고가 위로 오게.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소리가 없었다. 어깨만 떨렸다.
아빠, 울지 마. 나 괜찮아.
나는 의자 팔걸이를 쥐었다. 나무였다. 편백. 스피커 떨림이 바닥을 타고 의자 다리를 타고 팔걸이로 올라왔다. 손바닥으로 그 목소리를 받았다. 매끈했다. 말이 끝나면 그냥 끝났다. 말끝에 가슴으로 내려가는 숨이 없었다. 윤재 씨는 천식이 있었다고 했다. 천식 있는 사람은 말끝 숨이 더 떤다. 이 목소리는 한 번도 안 떨었다.
목소리가 세 문장을 더 했다. 아빠 무릎 괜찮아? 엄마한테 전화해. 나 여기 좋아. 그리고 멈췄다. 조명이 밝아졌다. 대표가 서정우 씨 옆으로 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떠셨어요, 고객님.”
서정우 씨가 손을 내렸다. 눈이 빨갰다.
“우리 윤재 목소리요. 맞아요. 우리 윤재가 나 왔어 할 때 꼭 저렇게.”
“다음 달부터는 고객님이 원하시는 문장으로 들으실 수 있어요. 생일에, 기일에.”
나는 일어섰다. 의자가 편백 바닥을 긁었다. 잔향 0.8초. 그 긁는 소리가 부드럽게 한 번 돌아왔다.
“서정우 님.”
대표가 나를 봤다.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정다혜 씨가 입구에서 한 발 들어섰다.
“서정우 님, 윤재 씨 원본 영상 휴대폰에 있으시죠. 열한 개 가운데 하나만 여기서 틀어 주실 수 있어요? 스피커 말고, 휴대폰으로.”
서정우 씨가 나를 봤다. 대표를 봤다.
“서주 씨, 오늘은 고객님 시간이에요.”
“압니다. 그래서 여쭙는 거예요. 고객님 시간이니까.”
서정우 씨가 한참 있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영상을 골랐다. 틀었다. 작은 화면 속에서 젊은 남자가 웃고 있었다. 식탁. 뭔가를 먹다가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아빠 또 찍어? 그리고 기침. 두 번. 가래가 걸린.
나는 서정우 씨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뒷면에 손바닥 대 보세요. 스피커가 뒤에 있어요.”
서정우 씨가 휴대폰을 뒤집어 손바닥에 올렸다. 큰 손이었다. 휴대폰이 손바닥 안에 다 들어갔다.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아빠 또 찍어. 서정우 씨가 눈을 감았다. 기침. 두 번. 그리고 기침 끝에 숨. 목에서 가슴으로 긁히며 내려가는 숨. 휴대폰 뒷판이 그 숨을 서정우 씨 손바닥에 옮겼다. 작게. 한 번.
서정우 씨가 눈을 떴다.
“이거.”
“숨이요. 말 끝나고 들이쉬는 거. 귀로는 잘 안 들려요. 손으로는 와요. 윤재 씨 숨이에요. 천식이라서 조금 긁히는.”
“아까 거는.”
“아까 거는 없었어요. 말만 있었어요. 제 손으로 들었어요.”
대표가 한 걸음 다가왔다.
“서주 씨, 그건 기술 문제예요. 숨은 넣으면 돼요. 다음 버전에.”
“넣으면 되죠. 하준 씨도 그러더라고요. 삼 주면 된대요. 그럼 그 숨은 누구 숨이에요? 윤재 씨가 한 번도 안 쉰 숨을 윤재 씨 이름으로 넣는 거예요.”
청음실이 조용했다. 잔향 0.8초가 끝나고도 조용했다. 서정우 씨가 휴대폰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을 폈다. 오래 봤다. 그러다 나를 봤다.
“연구원님은 어머니 목소리 안 듣고 싶소?”
“들었어요. 다섯 번. 2413 삼 분 이 초. 주야. 가짜인 줄 알면서 다섯 번 들었어요. 손은 안 댔어요. 대면 알 것 같아서요. 여섯 번째에 손을 댔어요. 없었어요. 숨이.”
서정우 씨가 오래 말이 없었다. 대표가 뭐라고 말하려고 했다. 서정우 씨가 손을 들어 막았다. 대표가 입을 다물었다. 그날 처음으로 대표가 누군가에게 막혔다.
“대표님.”
서정우 씨가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가짜라도 들을라고 했소. 가짜인 줄 알았소, 처음부터. 우리 윤재가 아빠 울지 마, 그런 말을 할 애가 아니오. 그 애는 내가 울면 방에 들어가 문 닫는 애였소. 그래도 들을라고 했소. 가짜라도.”
그 사람이 일어섰다. 양복 무릎이 구겨져 있었다.
“근데 숨이 없는 건 못 듣겠소. 그 애가 제일 힘들어한 게 숨이오. 이십육 년 동안 숨 쉬는 게 제일 힘들었던 애한테서 숨을 빼 놓고 목소리만 남긴 거. 그건 우리 윤재가 아니오. 그건 우리 윤재가 제일 되고 싶어 한 애요. 숨 안 차는 애.”
서정우 씨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대표를 봤다.
“정밀도 향상 취소하겠소. 그리고 우리 윤재 영상 돌려주쇼. 열한 개 다. 지우지 말고 돌려주쇼. 원본으로.”
대표가 웃었다. 이번에는 입꼬리도 안 올라갔다.
“고객님, 동의서에.”
“동의서는 내가 썼소. 우리 윤재는 안 썼소.”
둘째 줄의 서른쯤 된 여자가 그때 휴대폰을 뒤집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었다. 자기 휴대폰에 든 반려견 영상을 틀고. 발톱이 마루를 치는 소리. 그 사람은 눈을 감고 오래 있었다. 입구의 정다혜 씨는 손수건 더미에 손을 얹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누구에게도 더 건네지 않았다.
서정우 씨가 청음실을 나갔다. 나는 따라 나갔다. 복도에서 그 사람이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다락 테이프, 내일 가져가쇼. 그건 원래 연구원님 거요. 나는 남의 집 생일을 이십이 년 갖고 있었소. 우리 집 생일은 휴대폰에 열한 개 있는데.”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쇼. 그 말 요새 주인 없이 돌아다닌다면서.”
나는 웃었다. 울면서. 복도 벽은 편백이 아니라 석고보드였다. 잔향이 짧았다. 내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숨만 남았다. 들이쉬는 숨이 가슴으로 내려가면서 떨었다. 나는 그걸 손바닥이 아니라 가슴으로 알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팀장님이 가로등 밑에 서 있었다. 헤드폰을 목에 걸고. 기다린 줄 몰랐다.
“어땠어.”
“서정우 씨가 취소했어요. 정밀도 향상. 영상 돌려 달래요.”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가로등 기둥에 손바닥을 댔다. 쇠 기둥. 지나가는 버스가 기둥을 떨게 했다.
“나도 손으로 들어 볼걸. 그 복도. 백 번 귀로만 들었어.”
그 사람은 기둥에서 손을 떼지 않고 한참 서 있었다. 버스가 두 대 더 지나갔다. 손바닥으로 버스 두 대를 들은 다음에야 팀장님은 손을 뗐다. 그러고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내일 서정우 씨 집에 같이 가자고. 테이프 받으러. 비디오 플레이어는 자기 집에 있다고. 아직 버리지 못한 게 하나 있다고.
그날 밤 작업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7월 17일. 청음실 잔향 0.8. 문장 다섯. 숨 없음. 목소리 주인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돌려 달라고 했다. 원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