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33자) · 서버실
18도
소리 수집가 · 문가온
서버실은 춥다. 18도. 사람을 위한 온도가 아니라 기계를 위한 온도다. 문을 열면 찬 공기가 먼저 팔뚝 솜털을 세운다. 그다음 소리가 온다. 냉각 팬 수십 개가 한꺼번에 도는 소리. 귀로 들으면 쉬익 하는 한 덩어리인데, 손바닥을 랙 철판에 대면 그 한 덩어리가 수십 가닥으로 풀린다. 빠른 것, 느린 것, 조금 덜걱거리는 것. 나는 이 년 동안 이 방에 두 번 들어와 봤다. 둘 다 입사 첫 주였고, 둘 다 삼 분을 못 있고 나왔다. 추워서가 아니라 손바닥이 너무 시끄러워서.
칠월 십삼일 월요일 밤 열 시. 세 번째로 들어왔다. 복도 끝 경비실 앞에는 팀장님이 서 있었다. 헤드폰을 목에 걸고, 경비 아저씨한테 무향실 흡음재가 떨어졌다며 사다리를 빌려 달라고 하는 중이었다. 흡음재는 안 떨어졌다. 팀장님은 사다리를 받아 들고 무향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경비 아저씨가 그 뒤를 따라갔다. 사다리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팀장님이 부탁했으니까. 뒤꿈치를 조금 끄는 걸음이었다. 은하준 씨가 출입 카드를 댔다. 삑. 그 사람은 문이 열리자 한 발 물러섰다가, 나를 먼저 들여보내고 자기가 들어왔다. 문이 닫혔다.
“저 이거 하면 전세 대출 못 갚아요.”
은하준 씨가 말했다. 두 번째였다. 복도에서 한 번, 문 앞에서 한 번.
“하준 씨가 그러자고 했잖아요.”
“알아요. 제가 그러자고 했어요. 근데 그러자고 해 놓고 무서운 거랑, 안 무서운 거랑 달라요.”
그 사람이 나를 도와주기로 한 건 금요일 오후였다. 탕비실에서. 나는 대표실 스피커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 목소리. 말끝에 숨 떨림이 없었다고. 은하준 씨는 커피 컵을 든 채 굳었다.
“숨은 넣으면 돼요. 말끝 흡기 모델 따로 붙이면 돼요. 그거 사 주면 삼 주면 해요.”
그렇게 말해 놓고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었다. 얼굴이 하얘졌다.
“아니, 제 말은, 기술적으로는 된다는 거지 하겠다는 게 아니라.”
“하준 씨가 짠 거죠. post_e.”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았다. 한참 뒤에 말했다.
“저 그거 짤 때, 대표님이 그랬어요. 위로하는 기계를 만드는 거라고. 저 그 말 좋았어요.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저 아무 말도 못 했거든요. 기계라도 뭐라고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계가 뭐라고 했어요?”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왔어.”
은하준 씨가 웃었다. 우는 얼굴로. 그러고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덧붙였다.
“억양 고치는 제가 싫었어요. 그래서 조금만 넣자고 한 거예요. 두 음절만. 두 음절이면 고칠 게 없으니까.”
“대표실 시연 목소리요. 그거 우리 할머니 영상으로 만든 거예요. 제 휴대폰에 할머니 영상이 딱 네 개 있었어요. 명절에 찍은 거. 다 합쳐서 일 분도 안 돼요. 그걸로 만들었어요. 처음 돌렸을 때 저 화장실 가서 울었어요. 두 번째 돌렸을 때는 안 울었어요. 열 번째 돌렸을 때는 억양 고치고 있었어요. 할머니 목소리를. 제가 동의했어요. 저는 동의했어요. 근데 할머니는 동의 안 했죠.”
서버실 안쪽 구석에 모니터 하나 달린 작업대가 있었다. 은하준 씨가 관리자 계정으로 들어갔다. 손이 떨려서 비밀번호를 두 번 틀렸다. 세 번째에 들어갔다.
post_e는 세 부분이었다. 첫째, 추억 자료 폴더에서 음성을 뽑는다. 면담 녹취, 영상, 음성 메시지. 둘째, 그 음성으로 한 사람의 목소리 모델을 만든다. 셋째, 면담 녹취에서 그 사람의 버릇을 뽑아, 복원본 빈자리에 1초에서 2초씩 끼운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 기침, 바가지 치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조금만. 너무 많으면 의심하니까. 조금이면 기적이 되니까.
“조금만 넣는 거, 그거 제 아이디어예요.”
은하준 씨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처음엔 문장으로 넣었어요. 테스트 때.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했어요. 너무 많이 말하니까 가짜 같다고. 두 음절로 줄였어요. 그랬더니 다들 울었어요.”
화면에 목록이 떴다. 재회 패키지 베타 다시 듣기 발송. 천삼백팔십 행. 행마다 의뢰 번호, 고객 이름, 끼운 음원 종류, 발송일, 답장 여부. 답장 여부 칸에 초록 점이 구백열두 개. 나는 목록을 끝까지 내렸다. 한참 걸렸다. 손가락이 마우스 휠을 굴리는 동안 서버실 냉기가 손등을 훑었다.
중간에 아는 이름이 있었다. 윤창배. 끼운 음원, 여성 음성 이 음절. 답장, 초록 점. 배명희. 끼운 음원, 금속 타격 이 회. 답장 없음. 서정우. 끼운 음원 세 개. 그리고 한 칸 더. 정밀도 향상 옵션 신청, 칠월 칠일. 우리가 거실에서 만난 다음 날이었다. 그 사람은 아들 영상을 몇 개 더 보냈을 것이다.
천삼백팔십. 그 수가 화면 위로 길게 흘러갔다. 사람 이름이 하나씩. 할머니 부엌의 고객, 군부대 내무반의 고객, 폐교 음악실의 고객. 나는 이름들을 읽었다. 대부분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름을 읽으니까 수가 무거워졌다. 대표실에서 천삼백팔십은 무게가 없었다. 여기서는 한 줄씩 무거웠다.
“2413 원본 자료 있어요?”
은하준 씨가 폴더를 열었다. 추억 자료. 2413. 파일 세 개. 서정우 윤재 영상 두 개, 그리고 하나.
2413_다락_VHS_주여섯살생일_디지털변환.mp4 · 18분 41초
“저 이거 틀까요? 저 나가 있을까요?”
“있어요. 괜찮아요.”
은하준 씨가 파일을 열었다. 작업대 모니터에 화면이 떴다. 화질이 나빴다. 줄이 가고 색이 번졌다. 거실이었다. 사 미터에 삼 미터 오십. 운동장처럼 보였다. 카메라가 낮았다. 누가 소파에 앉아서 무릎 위에 올려놓고 찍은 것 같았다. 마루 한가운데 케이크가 있었다. 초 여섯 개. 그 앞에 여자아이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분홍 원피스. 아이가 웃었다. 웃음 끝에 숨을 들이켰다.
나였다.
아버지는 화면에 없었다. 소파 옆에 아버지 슬리퍼 한 짝이 보였다. 나머지 한 짝은 화면 밖이었다. 창틀에 화분이 셋. 벽에 달력. 이천사 년 삼월. 이 주 뒤에 어머니가 쓰러진다. 달력은 그걸 몰랐다.
그다음에 화면 밖에서 목소리가 났다. 카메라 뒤. 찍는 사람.
주야.
나는 모니터 스피커에 오른손을 댔다. 작업대에 붙은 작은 스피커. 싸구려. 떨림이 손바닥에 왔다. 두 음절. 끝이 조금 올라가는. 그리고 말이 끝난 다음, 아주 작게, 숨이 가슴으로 내려가면서 떠는 것. 귀로는 안 들리는 것. 손바닥 한가운데가 그 떨림을 받았다. 한 번. 짧게.
있었다.
2413 복원본 삼 분 이 초의 주야에는 그게 없었다. 나는 오늘 낮에 그걸 확인했다. 백소윤 씨가 안 열겠다는 2413을, 무향실 출입 기록이 남지 않게 내 노트북 스피커로 한 번 틀어서. 손을 댔다. 매끈했다. 말이 끝나면 그냥 끝났다. 대표실 할머니 목소리처럼.
화면 속에서 어머니가 카메라를 돌렸다. 잠깐 자기 얼굴을 비췄다. 번진 화면. 웃는 얼굴. 누군가를 닮았다. 거울에서 본 얼굴. 그러고는 다시 나를 찍었다. 주야, 초 불어야지. 여섯 살의 내가 초를 불었다. 다섯 개가 꺼지고 하나가 남았다. 어머니가 웃었다. 그 웃음이 손바닥에 왔다. 떨림이 길었다.
나는 파일을 멈췄다. 십팔 분 가운데 일 분 이십 초를 봤다. 멈춘 화면에 어머니 손이 반쯤 걸려 있었다. 카메라를 든 손. 손가락이 길었다. 내 손가락도 길다. 스피커를 덮기 좋은 손이라고, 입사 면접 때 팀장님이 그랬다.
“더 안 봐요?”
은하준 씨가 물었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원본으로 볼게요. 이건 회사가 가진 복사본이잖아요. 학습시킨 거.”
그때 서버실 문이 열렸다. 삑. 찬 공기가 흔들렸다. 개발팀장 오세훈 씨였다. 마흔셋. 손에 외장 하드를 들고 있었다.
“하준 씨, 여기서 뭐 해. 그리고 복원팀이 왜 여기 있어.”
은하준 씨가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철바닥에 부딪혀 쾅 소리가 났다. 서버실 소음 속에서도 컸다.
“팀장님, 그게.”
“대표님이 금요일까지 post_e 로그 정리하랬잖아. 베타 발송 기록이랑 추억 자료 원본. 외부 백업 없이. 하준 씨가 안 해서 내가 하러 왔어.”
정리. 지운다는 말을 그 사람은 정리라고 했다. 나는 작업대 앞에서 일어섰다.
“지우시면 천삼백팔십 명이 자기가 뭘 받았는지 영영 모릅니다.”
오세훈 씨가 나를 봤다.
“연구원님은 복원팀이에요. 서버실 출입 권한 없어요. 지금 나가시면 오늘 일은 못 본 걸로 할게요.”
“못 본 걸로 하시려면 지우시면 안 됩니다. 지우면 봤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오세훈 씨가 외장 하드를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은하준 씨를 봤다.
“하준 씨. 선택해. 나랑 이거 정리하고 대출 갚을래, 아니면.”
은하준 씨가 넘어진 의자를 세웠다. 천천히. 앉았다. 모니터를 봤다. 그러고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나는 그 손을 봤다. 고양이 밴드 자국이 아직 손등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은하준 씨가 쳤다. 명령어 하나. 화면에 진행 막대가 떴다. 오세훈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멈췄다. 막대 위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복사 중 · 외부 저장소 · 개인정보보호위원회_제출용
“하준 씨.”
“팀장님, 저 커밋 기록 못 지워요. 제가 짠 거라서요. 제 이름이 다 박혀 있어요. 지우면 제가 지운 것까지 남아요. 연구원님 말이 맞아요. 지우면 봤다는 증거가 돼요.”
진행 막대가 천천히 찼다. 서버실 냉기 속에서 은하준 씨 이마에 땀이 맺혔다. 오세훈 씨는 한참 서 있다가 외장 하드를 들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삑.
막대가 끝까지 찼다. 은하준 씨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저 이제 전세 대출 못 갚아요.”
세 번째였다. 이번에는 웃으면서 말했다.
은하준 씨가 외부 저장소 주소를 적은 종이를 내게 건넸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신고 창구는 금요일까지 서면을 받는다고 했다. 커밋 기록, 발송 목록, 추억 자료 목록, 그리고 동의서 칠 조 원문. 팀장님 메일도. 그 사람은 종이를 건네면서 덧붙였다. 저 내일 출근해도 되나요. 안 나오면 도망간 것 같고 나오면 뻔뻔한 것 같아요. 나는 출근하라고 했다. 뻔뻔한 게 낫다고. 은하준 씨는 그 말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
나는 오른손을 랙 철판에 댔다. 수십 가닥의 떨림 속에 천삼백팔십 개의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한 개의 진짜가 있었다. 말끝에 숨이 떠는 것. 나는 그 차이를 이제 손으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