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06자) · 대표실
합성
소리 수집가 · 문가온
보고서는 네 장이었다. 칠월 칠일 화요일 밤에 썼다. 제목은 오래 고민했다. 번역하듯 고르고 또 골랐다. 결국 가장 밋밋한 제목을 붙였다. 복원본 비모델 음원 조사.
1. 이천이십육 년 이월부터 유월까지 음성 대역 잔차 초과 출력 마흔한 건. 2. 전부 복원 엔진 출력 뒤에 한 단계를 더 거쳤다. 단계 이름은 시스템 로그에 「post_e」로만 남아 있다. 3. 끼어든 소리는 전부 접수 면담 녹취와 추억 자료에 나오는 사람·동물·버릇과 일치한다. 확인한 것 네 건(한내선, 대성탕, 마당, 2413). 4. 끼어든 소리의 주인에게 동의를 받은 기록이 없다. 2413의 경우 음성 주인 가운데 한 사람(임선희, 이천사 년 사망)의 유족은 본 연구원이다. 본 연구원은 동의한 적이 없다. 5. 이 단계는 계산이 아니다. 합성이다.
마지막 줄을 쓰고 한참 앉아 있었다. 합성. 이 단어를 쓰는 순간 윤창배 씨의 고맙습니다가, 배명희 씨의 알람 세 개가, 내 손바닥의 주야가 전부 그 단어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걸 알고 썼다. 수신인은 대표, 복원팀장, 개발팀장. 참조는 넣지 않았다.
수요일 아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은하준 씨를 만났다. 그 사람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한 발 물러섰다. 늘 그랬다. 그러다 나를 보고 두 발 물러섰다.
“연구원님, 대표님이 새벽 네 시에 개발팀 단톡방에 보고서 올렸어요. 누가 쓴 거냐고. post_e 로그 누가 열어 줬냐고.”
“아무도 안 열어 줬어요. 로그는 복원팀 권한이에요.”
“알아요. 저도 그렇게 답했어요. 복원팀 권한이라고. 그랬더니 대표님이 복원팀 권한을 바꾸라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우리 둘 다 안 탔다. 은하준 씨는 계단 쪽으로 갔다. 고양이 밴드가 손등에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아홉 시 사 분에 대표실에서 불렀다.
대표실은 사 층 옥탑에 있다. 벽 한 면이 전부 유리다. 성수동 지붕들이 내려다보인다. 옛 봉제 공장들의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새로 지은 카페 옥상들이 하얗게 끼어 있었다. 이 회사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십사 년을 버텼다. 방 한가운데 스피커가 있었다. 우리 무향실 것보다 비싼 것. 대표는 그 앞 소파에 앉아 있었다. 흰 운동화. 탁자 위에 내 보고서가 네 장 펼쳐져 있었다. 형광펜 줄이 그어져 있었다. 합성이라는 단어에만.
“앉아요, 서주 씨.”
나는 앉았다. 소파가 깊었다. 몸이 가라앉았다. 가죽 냄새가 났다. 새것의 냄새. 이 소파는 올해 들어온 것 같았다. 적자가 십육억이라던 해에. 대표는 앉지 않고 창가로 갔다.
“잘 썼어요. 정확해요. 우리 회사에 이렇게 정확한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뻐요. 진심으로.”
“그럼 멈추실 겁니까?”
“뭘요?”
“post_e요.”
대표가 돌아섰다. 웃었다. 대회의실에서처럼 높고 맑은 목소리로.
“서주 씨, 우리가 하는 일이 뭐예요.”
“사라진 공간의 소리를 계산합니다.”
“왜 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표가 대신 대답했다.
“사람들이 울고 싶어서 와요. 제대로 울고 싶어서. 사라진 방을 듣고 싶어서 오는 사람은 없어요. 그 방에 있던 사람을 듣고 싶어서 와요. 우리는 십사 년 동안 방만 팔았어요. 빈 방. 사람들은 그걸 듣고 더 외로워져서 돌아갔어요. 한 팀장이 이천이십일 년에 그걸 처음으로 바꿨어요. 복도에 걸음 하나. 그 부인이 어떻게 울었는지 서주 씨는 몰라요. 나는 옆에서 들었어요. 그건 슬퍼서 우는 울음이 아니었어요. 고마워서 우는 울음이었어요.”
“그 걸음은 팀장님 걸음이었습니다.”
“그래서요? 부인한테는 남편 걸음이었어요.”
대표가 탁자로 와서 내 보고서를 집었다. 형광펜 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합성. 맞아요. 우리는 합성해요. 계산이 뼈고 보정이 살이에요. 뼈만 있는 건 해골이지 사람이 아니에요. 서주 씨 계산이 뼈를 정확하게 세우니까 우리 살이 제자리에 붙는 거예요. 서주 씨는 우리 회사에서 제일 좋은 뼈를 만들어요.”
“동의를 안 받았습니다.”
“누구한테요? 죽은 사람한테?”
대표는 그 말을 하고 잠깐 웃음을 거뒀다.
“유족은 동의했어요. 접수할 때. 추억 자료 활용 동의서. 칠 조. 복원 품질 향상을 위해 제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 다들 서명했어요.”
“2413 테이프는 서정우 씨 가족 자료가 아닙니다. 제 가족입니다. 저는 서명한 적이 없습니다.”
대표가 나를 봤다. 오래. 그러다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처음으로.
“그 얘기 들었어요. 정 팀장한테. 서주 씨 어머니.”
나는 소파 깊은 데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십이 년 만에 들었다면서요. 다섯 번 들었다면서요.”
정다혜 씨는 그것까지 보고했다. 서정우 씨 거실에서 내가 한 말을. 아니, 한 말이 아니었다. 다섯 번은 말한 적이 없다. 팀장님한테만 했다. 팀장님이 대표한테 했을까. 아니면 무향실 출입 기록을 누가 본 걸까. 같은 파일을 다섯 번 튼 기록.
대표가 리모컨을 들었다. 방 한가운데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여자 목소리였다. 노인. 할머니, 나 왔어, 가 아니라, 할머니가 손주에게 하는 말.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왔어. 따뜻했다. 억양이 자연스러웠다. 고객 동의를 받은 시연용이라고 대표가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 스피커 그물망에 오른손을 댔다. 대표가 그걸 보고 웃었다. 손바닥으로 목소리가 왔다. 그런데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말끝에서. 사람은 말을 끝내고 숨을 한 번 들이켠다. 그 숨이 목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며 아주 작게 떤다. 귀로는 안 들리는 떨림. 손바닥에는 온다. 이 목소리는 말이 끝나면 그냥 끝났다. 떨림이 없었다. 매끈했다. 나는 손을 뗐다. 2413의 주야, 도 그랬을까. 나는 그걸 확인하지 않았다. 다섯 번을 들으면서 귀로만 들었다. 손은 대지 않았다. 대기가 무서워서.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서주 씨, 그 목소리 더 들을 수 있어요.”
대표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대회의실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금은 두 음절이죠. 주야. 테이프에 어머니 목소리가 이 분 사십 초 있어요. 우리 모델이면 그걸로 문장을 만들어요. 주야, 밥 먹자. 주야, 생일 축하해. 주야, 잘했어. 서주 씨가 듣고 싶은 문장으로. 정밀도 향상 옵션이 그거예요. 서주 씨한테는 무료로. 평생.”
창밖에서 비행기가 지나갔다. 유리가 떨었다. 나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받으려는 모양으로. 나는 손을 뒤집었다.
“그리고 이건 제안이에요. 칠월 이십사일에 청음실 열어요. 책임자가 필요해요. 계산을 제일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 청음실 책임자면, 고객들이 믿어요. 연봉은 지금의 두 배. 서주 씨 이름으로 보정 기준을 만들어요. 어디까지 넣고 어디서 멈출지. 서주 씨가 정하는 거예요. 동의 문제도. 서주 씨가 고치면 돼요.”
“거절하면요.”
대표가 보고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네 장을 가지런히 모아서.
“거절하면 서주 씨는 계속 뼈를 만들어요. 우리는 계속 살을 붙이고. 서주 씨가 모르는 데서. 서주 씨 계약서 칠 조는 비밀 유지예요. 이 보고서를 회사 밖으로 내면 그건 서주 씨가 책임져요. 그리고 하나 알려 줄게요. 서주 씨가 찾은 마흔한 건은 신규 의뢰뿐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유월 첫 주에 재회 패키지 베타를 보냈어요. 지난 십사 년 의뢰인 가운데 연락처 살아 있는 사람들한테. 옛날 복원본을 다시 뽑아서. 새로 보정해서. 다시 듣기, 라는 이름으로. 천삼백팔십 명이요. 답장 온 게 구백 통이 넘어요. 거의 다 고맙대요.”
천삼백팔십.
나는 그 숫자를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 무게가 없었다. 마흔하나일 때도 무게가 없었다. 수가 커질수록 가벼워졌다. 그게 이상했다.
“그 천삼백팔십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이게 계산이 아니라는 걸 압니까?”
“알 필요가 있어요?”
“있습니다. 고맙다는 말이 누구한테 가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윤창배 씨는 저한테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목소리를 안 만들었습니다. 그 고맙다는 말은 주인이 없습니다. 천삼백팔십 개의 고맙다는 말이 주인 없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대표가 잠깐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구름이 지나갔다. 방이 한 번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주인은 있어요. 나예요.”
대표가 일어섰다. 대화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문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깊어서 한 번에 안 일어나졌다. 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짚었다. 가죽이 차가웠다.
문간에서 대표가 한 마디를 더 했다.
“서주 씨가 넣은 단어 하나는 좋아요. 미처리. 지우지 않았다는 뜻이죠. 우리 청음실 슬로건으로 쓸까 해요. 우리는 지우지 않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나는 난간을 짚었다. 계단 난간은 쇠라서 건물 전체의 떨림을 모은다. 사 층에서 이 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난간이 내 손바닥에 준 떨림은 세 가지였다. 에어컨 실외기, 서버실 냉각 팬, 그리고 누가 대표실에서 스피커로 트는 무언가. 낮은 목소리. 여자 목소리. 누구의 것인지 나는 가려내지 못했다.
이 층으로 돌아오자 내 계정이 잠겨 있었다. 복원 서버 접근 권한 변경. 2413은 백소윤 씨에게 재배정. 사유 칸에 이해관계.
백소윤 씨가 내 자리로 왔다. 재배정 통보 메일을 인쇄해서 들고. 액자에 넣었던 대표 칭찬 메일처럼. 백소윤 씨는 그 종이를 내 책상에 놓고 말했다. 저 2413 안 열 거예요. 열면 연구원님 어머니 목소리 들어야 되잖아요. 그건 제가 들을 게 아니에요. 그러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모니터를 껐다. 오전 열한 시였다.
팀장님이 유리방에서 나를 봤다. 헤드폰을 목에 건 채로. 나는 팀장님에게 가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작업 노트를 폈다. 계정이 잠겨도 종이 노트는 안 잠긴다. 팀장님 말이 맞았다. 읽는 거랑 보는 거랑 다르다.
7월 8일. 천삼백팔십. 대표가 이 수를 자랑했다. 나한테는 문장을 주겠다고 했다. 주야, 밥 먹자. 듣고 싶었다. 거절했다. 둘 다 사실이다. 대표 스피커의 목소리에는 말끝 숨 떨림이 없었다.
퇴근할 때 모니터 옆에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팀장님 글씨. 이천이십일 년 메일, 개인 메일로 옮겨 둠. 서버가 잠겨도. 나는 그 포스트잇을 떼어 노트 사이에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