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13자) · 2413
주야
소리 수집가 · 문가온
칠월 일일 수요일. 세 번째 의뢰서는 팀장님이 직접 내 자리에 놓고 갔다. 종이로. 팀장님은 의뢰서를 늘 뽑아서 준다. 화면으로 보면 안 읽는다고. 읽는 거랑 보는 거랑 다르다고.
의뢰번호 2413 대상 공간 · 주택 거실 주소 · 인천 동구 금곡동 ○○번지 이 층 대상 시기 · 이천사 년 봄 의뢰인 · 서정우(54)
주소를 읽고 나는 이 초쯤 아무 생각도 안 했다. 여섯 살까지 산 집이었다. 이천사 년 봄에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어머니가 죽은 봄이었다. 아버지는 그 집에 더 있을 수 없다고 했고, 우리는 부천으로 갔다. 아버지는 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
팀장님이 유리방 문간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반려할까. 이해관계.”
“규정에 이해관계 조항이 있습니까?”
“없어. 찾아봤어.”
“그럼 하겠습니다.”
팀장님은 한참 서 있다가 한 마디를 더 했다.
“미리듣기, 벌써 나갔어. 어제.”
도면은 구청에 있었다. 마루는 원목, 벽은 실크 벽지, 천장 이 미터 삼십. 거실 가로 사 미터, 세로 삼 미터 오십. 도면을 보는데 이상했다. 여섯 살의 나에게 그 거실은 운동장만 했다. 도면 위에서 그 방은 네 평이 조금 넘었다. 기억은 방을 크게 잡는다. 기억값을 넣으면 잔향이 길어지고 다른 소리가 난다. 나는 도면값을 넣었다. 정확한 값을 넣어야 정확한 소리가 난다. 이 일의 전부가 그거다.
모델에 넣은 것. 벽, 바닥, 천장, 창 두 개, 문 하나, 이천사 년 봄 인천의 평균 기상. 물체는 없음. 사람 없음.
칠월 삼일 금요일 오후, 무향실 철망 위에서 v1을 걸었다. 칠 분짜리. 빈 방 소리가 났다. 창 너머 바람이 유리를 누르는 소리, 원목 마루가 온도 따라 한 번씩 뚝 하고 우는 소리. 오른손을 스피커에 댔다. 마루 우는 소리가 손목뼈를 한 번씩 톡 쳤다. 나는 이 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손바닥은 기억하고 있었다. 뚝, 하는 그 간격을. 마루 한가운데 한 판이 유난히 크게 울었다. 거기 흠집이 있었다. 내가 장난감 트럭으로 긁어 낸.
일 분 십사 초에 손바닥 한가운데가 간지러웠다.
높고 가벼운 떨림. 1.4초. 아이가 웃는 소리였다. 나는 손을 떼고 귀로 들었다. 왼쪽 귀로. 스물두 번 들었다. 스물두 번째에 알았다. 내 웃음이었다. 여섯 살 이전 내 목소리를 나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우리 집에는 캠코더가 없었다고,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알았다. 목구멍이 먼저 알았다. 그 웃음 끝에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붙어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웃는다.
삼 분 이 초. 여자 목소리. 2.1초. 나는 그 구간에서 손을 스피커에 댄 채로 굳었다. 떨림이 손바닥 전체로 왔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떨림. 끝이 조금 올라가는. 두 음절.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주야.
귀로 들을 필요가 없었다. 손바닥이 먼저 들었다. 이십이 년 동안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목소리. 떠올리려다 안 떠오르면 두 번 잃는 거라서 한 번도 떠올리지 않은 목소리가, 무향실 철망 위에서 내 손바닥을 두 번 쳤다. 주, 야.
나는 스피커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파일은 계속 돌았다. 오 분 사십 초에 문이 여닫혔다. 칠 분 십일 초에 남자가 두 번 기침했다. 젊은 남자. 가래가 걸린 기침. 나는 그 기침을 모른다. 파일이 끝났다. 무향실이 조용해졌다. 내 숨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자마자 사라졌다. 나는 오른손을 스피커에 댄 채로 한참 있었다. 콘은 멈춰 있었다. 손바닥만 아직 떨렸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목소리를 누가 넣었는지. 계산이 아니다. 시스템이다. 마흔한 번째 다음, 마흔두 번째. 그걸 알면서도 나는 파일을 다시 걸었다. 삼 분 이 초. 주야. 다시 걸었다. 주야. 다섯 번 걸었다. 여섯 번째에 손을 뗐다.
그날 밤 나는 집에서 불을 끄고 누웠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세상이 반쯤 꺼진다. 왼쪽 귀를 베개에 대면 다 꺼진다. 나는 왼쪽으로 누웠다. 다 꺼진 곳에서 하나가 떠올랐다. 열이 내린 날 아침. 누군가 내 오른쪽 귀를 손바닥으로 덮고 있었다. 따뜻했다. 그 손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오른쪽으로 들을 수 없었다. 손바닥이 떨렸다. 말할 때마다. 그 떨림을 내 귀가 아니라 내 귓바퀴 살갗이 받았다. 그게 내가 가진 어머니 목소리의 전부였다. 소리가 아니라 떨림. 오늘 무향실 스피커가 내 손바닥에 준 떨림이 그것과 닮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닮았다고 믿고 싶었다.
가짜라는 걸 아는데 다섯 번을 들었다. 윤창배 씨와 배명희 씨와 서른여덟 명의 모르는 사람들이 왜 고맙다고 했는지, 그날 나는 처음으로 몸으로 알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나는 팀장님에게 2413 이야기를 했다. 일 분 십사 초. 삼 분 이 초. 팀장님은 헤드폰을 목에서 벗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세 번째였다.
“들었어?”
“다섯 번요.”
“나는 그 복도 스물여덟 걸음, 보내기 전에 백 번 들었어.”
팀장님은 그 말만 했다. 그러고는 내 의뢰서 위에 포스트잇을 한 장 붙였다. 오늘 외근. 복원팀장 승인. 금곡동에 가 보라는 뜻이었다.
칠월 육일 월요일 오후. 금곡동에 갔다. 이 층 벽돌집. 대문이 초록색이었다. 우리가 살 때는 파란색이었다. 초록 페인트 밑으로 파란색이 군데군데 비쳤다. 계단 난간은 그대로였다. 녹슨 자리까지. 손을 얹자 쇠가 햇볕에 달아 있었다. 서정우 씨가 문을 열어 주었다. 쉰넷. 배가 조금 나오고 눈 밑이 검었다.
그런데 거실에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정다혜 씨였다. 소파에 앉아서 태블릿을 무릎에 올려놓고.
“연구원님도 오셨네요. 고객님이 재회 패키지 청음실 첫 회차 신청하셔서요. 설명드리러 왔어요.”
정다혜 씨 태블릿 화면이 켜져 있었다. 재회 패키지 연 구독, 월 이십구만 원. 청음실 월 두 회. 고인 음성 복원 정밀도 향상 옵션. 서정우 씨가 그 화면을 가리키며 나한테 물었다. 정밀도 향상이 뭐냐고. 나도 몰랐다. 정다혜 씨가 대신 대답했다. 자료를 더 주시면 더 비슷해진다고. 영상이 많을수록. 서정우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 사진첩을 열었다. 아들 영상이 몇 개인지 세기 시작했다.
서정우 씨가 커피를 내왔다. 믹스커피 세 잔. 나는 거실을 봤다. 사 미터에 삼 미터 오십. 도면대로였다. 운동장이 아니었다. 마루 한가운데를 봤다. 흠집이 그대로 있었다. 장판을 깔았다가 걷었는지 그 부분만 색이 달랐다.
“그거 연구원님이 낸 거죠.”
서정우 씨가 흠집을 가리켰다.
“이 집 애가 이제 연구원이 돼서 이 집 소리를 복원한다니. 이상하죠. 미리듣기 받고 알았어요. 애 웃음소리가 났거든요. 우리 윤재가 아니었어요. 우리 애는 이 집 들어올 때 네 살이었는데, 그 웃음은 여자애였어요.”
“서정우 님, 접수하실 때 추억 자료 뭐 내셨어요?”
정다혜 씨가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
“연구원님, 그건 제가.”
“다락에서 나온 비디오테이프요.”
서정우 씨가 말했다. 정다혜 씨보다 먼저.
“이사 올 때부터 다락에 있었어요. 앞집 사람들이 두고 간 거. 버리려다가 못 버렸어요. 남의 집 생일 테이프를 어떻게 버려요. 영업 직원분이 이 집 옛날 소리가 들어 있으면 좋다고 해서 냈어요. 디지털로 바꿔서.”
생일 테이프. 우리 집에는 캠코더가 없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라벨에 뭐라고 적혀 있었어요?”
“주, 여섯 살 생일. 이천사 년 삼월.”
나는 믹스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받침에 닿는 소리가 거실에 크게 울렸다. 이 방은 잔향이 0.42초다. 짧다. 그래도 울렸다.
“그리고 우리 윤재 영상. 작년에 간 우리 아들. 천식이 있었어요. 기침을 늘 두 번씩 했어요.”
칠 분 십일 초. 남자 기침 두 번.
정다혜 씨가 태블릿을 덮었다.
“고객님, 연구원님이 좀 놀라신 것 같으니까 오늘은 제가 청음실 설명만 드리고.”
“팀장님.”
내가 불렀다. 정다혜 씨가 나를 봤다.
“이 테이프 속 목소리는 제 어머니입니다. 저한테도, 이분한테도, 회사에서 동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테이프 속 사람들한테 묻지도 않고 그 목소리를 학습시켜서 이분 거실 복원본에 넣었습니다. 계산이 아닙니다.”
“연구원님.”
정다혜 씨가 목소리를 낮췄다. 서정우 씨가 들으라는 듯이 조금만.
“연구원님 어머니 목소리 이십이 년 만에 들으셨죠. 누가 찾아 드렸어요? 우리가 찾아 드렸어요. 그 테이프는 다락에서 썩고 있었어요. 우리 아니었으면 연구원님은 평생 못 들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다혜 씨 말이 맞았다. 틀린 데가 없었다. 나는 다섯 번을 들었다. 여섯 번째에 손을 뗐다. 그 다섯 번이 목에 걸렸다.
“서정우 님, 그 테이프 원본 아직 있습니까?”
“있죠. 다락에.”
“그거 저한테 돌려주실 수 있습니까. 원래 저희 집 거라서요.”
서정우 씨가 나를 봤다. 오래. 그러다 정다혜 씨를 봤다. 그리고 다시 나를.
“청음실 다녀오고요. 우리 윤재 목소리, 기침 말고 목소리 한 번 듣고요. 그다음에요.”
그 사람은 그러고도 다락 문은 열어 주었다. 복도 끝 천장에 달린 접이식 계단. 올라가자 칠월 다락의 열기가 얼굴 살갗을 한 겹 덮었다. 먼지와 나무와 오래된 비닐 냄새. 구석에 과일 상자 하나. 그 안에 비디오테이프가 한 개. 검은 케이스. 흰 라벨. 볼펜 글씨. 주, 여섯 살 생일. 어머니 글씨였다. 나는 그 글씨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주 자의 마지막 획이 위로 튀는 버릇은 내 글씨에도 있었다. 케이스를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 가벼웠다. 이십이 년이 이렇게 가벼웠다. 서정우 씨가 계단 아래에서 말했다. 가져가시지는 말고요. 나는 케이스를 도로 상자에 넣었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나는 오른손을 창에 댔다. 전철 바퀴가 레일 이음매를 넘을 때마다 유리가 떨었다. 일 초에 두 번 조금 안 되게. 한내선 기차와 같은 박자였다. 나는 그 떨림으로 셌다. 한 명, 두 명. 찾아낸 목소리의 주인. 창호야를 부른 어머니. 바가지를 친 아버지. 백구. 스물여덟 걸음. 서른여덟 명의 모르는 사람. 윤재. 그리고 주야, 를 부른 사람.
마흔넷. 손바닥 안에서 수가 늘어났다. 줄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내 것이었다. 나는 그 하나를 다른 마흔셋과 같은 줄에 세우려고 애썼다. 전철이 역에 섰다. 떨림이 멎었다. 멎으니까 오히려 손바닥이 더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