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30자) · 미처리 여섯 건

스물여덟 걸음

소리 수집가 · 문가온

우리 회사는 십사 년 동안 이천사백열두 건을 복원했다. 복원본은 전부 서버에 있다. 초안부터 최종본까지 다 남긴다. 작업 노트도 남는다. 연구원이 한 줄이라도 적었으면 그 줄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운 것도 지웠다고 남는다.

유월 이십이일 월요일 밤. 사무실에 나 혼자였다. 비가 창에 부딪혀 흘렀다. 서버실은 사무실 안쪽 벽 너머에 있다. 밤이 되면 그 벽이 떤다. 냉각 팬 수십 개가 한꺼번에 도는 낮은 떨림. 낮에는 사람 소리에 묻혀 모른다. 밤에 책상에 손바닥을 대면 나무 상판이 그 떨림을 옮겨 온다. 이 회사가 기억하는 이천사백열두 개의 방이 그 벽 너머에서 돌고 있었다. 나는 작업 노트 전체에서 한 단어를 검색했다. 미처리.

여섯 건이 나왔다.

2013년 3월 · 초등학교 교실 · 작업자 한은석 2017년 8월 · 재래시장 골목 · 작업자 한은석 2021년 11월 · 대학병원 야간 복도 · 작업자 한은석 2026년 2월 · 단독주택 마당 · 작업자 백소윤 2026년 6월 · 한내선 건널목 · 작업자 서주 2026년 6월 · 대성탕 · 작업자 서주

한은석. 팀장님 이름이다. 앞의 셋이 팀장님 것이었다. 셋 다 미처리 옆에 한 단어가 더 붙어 있었다. 삭제.

나는 간격을 셌다. 이천십삼 년에서 십칠 년까지 사 년 반. 십칠 년에서 이십일 년까지 사 년 석 달. 이십일 년에서 올해 이월까지 사 년 석 달. 그리고 이월에서 유월까지 넉 달. 유월 안에서는 일주일. 사 년에 한 번 나던 것이 넉 달에 한 번이 되고, 일주일에 한 번이 됐다. 줄자처럼 감기던 간격이 갑자기 끊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건 연구원이 알아채고 적은 것만이었다. 알아채지 못한 건 노트에 없다. 나는 복원 엔진 로그를 열었다. 엔진은 결과를 뽑을 때마다 잔차를 적는다. 모델이 설명하는 소리와 실제로 나온 소리의 차이. 보통은 영에 가깝다. 계산은 계산대로 나오니까. 나는 잔차가 사람 음성 대역에서 튄 출력만 걸렀다.

이천십삼 년부터 이천이십육 년 일월까지 세 건.

이천이십육 년 이월부터 유월까지 마흔한 건.

나는 모니터 앞에서 오른손을 폈다. 손바닥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 떨렸다. 마흔한 번. 마흔한 명의 의뢰인이 계산에 없는 목소리를 받았다. 그 가운데 연구원이 알아챈 것은 세 번. 백소윤 씨가 한 번, 내가 두 번. 나머지 서른여덟은 아무도 모르게 나갔다. 나는 그 서른여덟 건의 제목을 훑었다. 할머니 부엌, 군부대 내무반, 폐교 음악실, 신혼집 베란다, 문 닫은 이발소. 잔차가 튄 자리는 제각각이었다. 부엌에서는 칼 도마 소리 사이에, 음악실에서는 풍금 소리 끝에, 이발소에서는 가위 소리 틈에. 한결같이 짧았다. 1초에서 2초. 그리고 한결같이 사람 소리였다. 그리고 서른여덟 명의 누군가가 전화로 고맙다고 했을 것이다. 영업팀에게.

앞의 셋부터 봤다. 팀장님이 지운 셋.

이천십삼 년 교실. 팀장님은 모델에 학교 종을 넣었다. 정각에 울리게. 그런데 복원본에서는 이십 분에 울렸다. 나는 그 학교 옛 학사 기록을 찾아봤다. 그해 그 학교는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 오후반을 돌렸고, 오후반은 정각이 아니라 이십 분에 수업을 시작했다. 팀장님은 교실 종과 별도로 복도 끝 전교 방송 스피커 위치를 도면대로 넣어 두었는데, 엔진이 그 스피커의 시정표를 학교 기록에서 끌어와 이십 분에 울린 것이었다. 모델 안의 일이었다. 팀장님 기억이 틀렸고 계산이 맞았다. 설명되는 오차.

이천십칠 년 시장. 없는 상인의 호객 소리. 파형을 봤다. 사람 음성처럼 보였지만 스펙트럼이 달랐다. 밑에 규칙적인 낮은 울림이 깔려 있었다. 그 시장 지하 삼십 미터로 지하철 칠 호선이 지나간다. 팀장님은 그 진동을 모델에 넣었다. 지하철 차내 안내 방송이 레일과 땅을 타고 올라와 시장 바닥을 떨게 했다. 이번 역은. 그 떨림이 호객 소리처럼 들렸다. 이것도 계산 안에 있었다. 땅이 떤 것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두 건은 설명됐다. 사 년 반에 한 번, 사 년 석 달에 한 번. 드문 오차. 복원 일에 원래 있는 틈.

이천이십일 년 병원 복도는 달랐다.

모델에 들어간 것은 복도 길이 육십 미터, 리놀륨 바닥, 방화문 둘, 새벽 세 시의 공조기.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복원본에 발소리가 났다. 규칙적인 발소리. 뒤꿈치가 먼저 닿고 앞꿈치가 따라 닿는, 조금 끄는 걸음. 스물여덟 걸음. 복도 끝에서 끝까지. 잔차 로그를 봤다. 이 발소리는 엔진이 뽑은 게 아니었다. 엔진 출력이 끝난 뒤에 파일이 한 번 더 저장된 흔적이 있었다. 저장한 사람 계정은 한은석.

그리고 작업 노트의 삭제라는 단어는 그 발소리 옆에 없었다. 교실과 시장 옆에만 있었다. 병원 복도 옆에는 다른 말이 있었다.

미처리 → 보냄.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백소윤 씨를 찾았다. 삼 년 차. 이월에 마당 복원을 한 사람. 개 짖는 소리.

“그거요. 저 그거 칭찬받았어요. 대표님이 전체 메일로. 의뢰인이 키우던 진돗개 목소리라고, 이름이 백구라고, 고객님이 울면서 전화하셨다고.”

“모델에 개 넣었어요?”

“안 넣었죠. 마당 도면에 개집은 있었는데 개는 없었어요. 그래서 미처리라고 적었어요. 이상해서. 근데 칭찬받고 나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백소윤 씨는 그 말을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물었다.

“연구원님, 그거 제가 잘못한 거예요?”

“소윤 씨는 적었잖아요. 미처리라고.”

“적기만 했어요.”

“적은 게 있어서 제가 찾았어요.”

백소윤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 모니터를 봤다. 그러다 서랍에서 작은 액자를 꺼냈다. 대표 메일을 인쇄해 넣어 둔 것이었다. 백소윤 씨는 액자를 엎어 놓았다.

나는 유리방으로 갔다. 문을 닫았다. 팀장님이 헤드폰을 목에 건 채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 이천이십일 년 병원 복도요. 발소리.”

팀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헤드폰을 쓰려고 손을 올렸다. 나는 그 손보다 먼저 말했다.

“교실하고 시장은 계산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다 풀었습니다. 병원은 계산 뒤에 팀장님 계정으로 저장됐습니다. 팀장님이 넣으셨죠.”

손이 멈췄다. 헤드폰이 목에 걸린 채로 반쯤 들려 있었다.

“지운 건 교실하고 시장이고, 병원은 보내셨습니다. 저한테는 지우라고 하시고요.”

팀장님이 헤드폰을 내려놓았다. 책상 위에. 목에서 완전히 벗긴 것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한내선 삼십일 초를 들었을 때.

“의뢰인이 과부였어.”

팀장님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유리방은 무향실이 아니라서 그 낮은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한 번 돌아왔다.

“남편이 그 병원 외과 당직의였어. 새벽마다 그 복도를 걸어서 병동을 돌았대. 과로로 죽었어. 서른아홉에. 부인이 그 복도 소리를 원했어. 새벽 세 시. 계산했지. 공조기 소리하고 방화문 소리가 났어. 비어 있는 복도 소리. 부인이 들으면 더 슬플 것 같았어.”

“그래서요.”

“그래서 내가 걸었어.”

팀장님이 발을 내려다봤다. 낡은 운동화. 뒤꿈치 바깥쪽만 닳아 있었다. 원래 그렇게 걷는 사람인지, 그해 겨울부터 그렇게 걷게 된 사람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병원 가서, 새벽 세 시에, 그 복도를 내가 걸었어. 녹음해서 넣었어. 부인이 말한 대로 조금 끌면서. 뒤꿈치 먼저. 스물여덟 걸음. 부인한테 보냈어. 부인이 전화해서 울었어. 남편 걸음이라고. 어떻게 아셨냐고.”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 말도 안 했어.”

“걸을 때 누가 안 막았어요? 새벽 세 시 병원 복도를.”

팀장님이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간호사가 막았지. 누구시냐고. 보호자라고 했어. 몇 호냐고 묻길래 복도 끝 호실을 댔어. 그 방이 비어 있었어. 간호사가 한참 보더니 보내 줬어. 끝까지 걸었어. 스물여덟 걸음. 끝에서 돌아서니까 그 간호사가 아직 보고 있더라. 두 번째 녹음 때는 커피를 줬어. 자판기 거. 세 번째 녹음 때는 안 물었어.”

“세 번이나 걸으셨어요?”

“처음 두 번은 너무 똑바로 걸었어. 남의 남편처럼 안 걸어졌어.”

팀장님은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질렀다.

“그 통화를 대표가 옆에서 들었어. 스피커폰이었거든. 부인이 우는 걸. 다음 주에 대표가 나한테 메일을 보냈어. 이거 자동으로 만들 수 있냐고. 의뢰인 이야기를 받아서, 그 사람 걸음이나 목소리를 조금씩 넣는 거. 나는 안 된다고 했어. 사람 소리는 계산이 안 된다고. 대표는 그 뒤로 나한테 안 물었어. 대신 개발팀에 물었겠지.”

“그래서 이월부터.”

“나는 몰랐어. 진짜로. 이월에 백소윤 씨가 개 짖는 소리 가져왔을 때 알았어. 개는 계산 안 되는데. 그때 알았어. 내가 걸은 스물여덟 걸음이 여기까지 왔다는 거.”

팀장님이 창밖을 봤다. 비가 그쳐 있었다. 유리창에 빗방울 자국만 남아 천천히 말라 갔다.

“서주 씨한테 지우라고 한 거, 서주 씨 파일 지키려고 한 거 아니야. 나 지키려고 한 거야. 서주 씨가 그걸 파고들면 스물여덟 걸음까지 오니까.”

나는 한참 서 있었다. 화가 나야 할 것 같았다. 화가 안 났다. 손바닥이 따끔했을 뿐이다. 스물여덟 걸음을 걸은 사람의 발바닥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의 남편처럼 걸으려고 뒤꿈치를 끌던 발.

“팀장님, 그 메일 아직 있습니까. 대표님이 보낸 거.”

팀장님이 나를 봤다. 오래.

“있어.”

“지우지 마세요.”

“지웠으면 지금 이 얘기 안 하지.”

유리방을 나오면서 나는 문을 열어 두었다. 영업팀 창가에서 정다혜 씨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복원팀 유리방 문이 닫혀 있던 이십 분을 그 사람은 봤을 것이다. 눈이 마주쳤다. 정다혜 씨가 먼저 웃었다. 입꼬리만. 닫고 들어갔으니 열고 나오는 게 맞았다. 자리로 돌아와 작업 노트에 새 표를 만들었다. 설명된 것과 설명되지 않은 것.

설명됨 · 2건 · 계산 안(방송 종, 지하철 진동) 사람이 넣음 · 1건 · 한은석, 2021, 발소리 28걸음 시스템이 넣음 · 41건 · 2026년 2월부터

표를 다 만들고 나서 오른손을 책상에 대 보았다. 서버실 벽의 떨림이 손목까지 올라왔다. 그 떨림 안에 마흔한 개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손바닥이 그걸 가려내지는 못했다. 마지막 줄의 마흔하나를 오래 봤다. 사람이 한 번 걸은 걸음을 기계가 마흔한 번 걸었다. 그리고 아무도 걷지 않았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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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줄2026.06.03· 3화

    첫 문단에서 이미 분위기가 잡히네요. 다음 화 기다립니다.

    • 조용한책상2026.06.04

      완전 공감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요.

스물여덟 걸음 · 소리 수집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