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32자) · 대성탕
딱, 딱
소리 수집가 · 문가온
두 번째 의뢰는 목욕탕이었다. 인천 동구 송림동, 십이 년 전에 헐린 동네 목욕탕 「대성탕」. 의뢰인은 배명희 씨, 마흔여덟. 아버지가 삼십 년 동안 하던 목욕탕이었다.
의뢰서에 붙은 요청은 한 줄이었다. 탕에 물 받는 소리.
자료는 넉넉했다. 구청에 건축 도면이 있었고, 타일은 의뢰인이 기억했다. 흰색 정사각 십오 센티. 벽 타일 높이 이 미터 십. 온탕 수조는 가로 사 미터 이십, 세로 삼 미터, 깊이 일 미터 십. 급수관 지름 오십 밀리. 물은 분당 백이십 리터씩 들어갔다. 수도꼭지는 황동이었다고 배명희 씨가 덧붙였다. 반들반들하게 닳아서 거울 같았다고. 이 정도면 소리는 계산된다. 나는 사흘 걸려 모델을 짰다. 천장이 낮아서 잔향이 짧았다. 1.8초. 목욕탕치고는 마른 울림이다.
유월 십오일 월요일 오후, 무향실 철망 위에서 v1을 걸었다. 물 받는 소리가 났다. 빈 수조 바닥을 물이 때리는 낮은 소리. 수조가 차오르면서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물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계산대로였다. 나는 스피커에 오른손을 댔다. 낮은 물소리가 손목까지 묵직하게 번졌다. 삼십 년 동안 매일 새벽 네 시에 이 소리가 났을 것이다. 손바닥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떨림은 온도가 없는데도.
이 분 사십 초에서 손끝이 튀었다.
금속이 딱딱한 것에 닿는 떨림. 짧게, 두 번. 간격은 0.6초. 나는 손을 떼고 귀로 다시 들었다. 스테인리스 바가지가 타일을 치는 소리였다. 딱. 딱.
내 모델에 바가지는 없다. 물체는 하나도 넣지 않았다. 수조와 급수관과 벽뿐이다. 없는 물체는 소리를 못 낸다. 나는 다시 돌렸다. 같은 자리에 같은 딱, 딱.
두 번째였다. 삼십일 초의 창호야. 이 분 사십 초의 딱, 딱. 둘 다 사람이 낸 소리였다. 계산이 모르는 사람.
나는 배명희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목욕탕에 스테인리스 바가지가 있었습니까?”
“있었죠. 노란 플라스틱 말고 은색이요. 아버지 것.”
“아버님이 그걸로 무엇을 하셨습니까?”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러다 배명희 씨가 웃었다.
“연구원님도 들으셨구나. 아버지가 탕에 물 다 받으면 바가지로 수도꼭지를 두 번 쳤어요. 다 됐다고. 이 층 살림집에 대고. 그 소리 나면 엄마가 아침밥을 안쳤어요. 저는 그 소리에 깼고요. 학교 다니는 십이 년 동안 자명종이 없었어요. 딱, 딱, 그게 자명종이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목욕탕 헐리고 나서, 저 알람을 세 개나 맞춰 놓고 자요. 그래도 못 일어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저희 회사 누구한테 하신 적이 있습니까?”
“접수할 때 다 했죠. 영업 직원분이 되게 자세히 물어보시던데요. 아버지가 무슨 버릇이 있었는지, 어떤 말을 자주 했는지, 목소리가 높았는지 낮았는지. 소리 복원하는 데 그런 것도 필요하냐고 했더니, 필요하대요.”
나는 볼펜을 쥐었다.
“그리고 연구원님, 이거 이미 들었어요.”
“네?”
“지난주 월요일에 미리듣기 파일 받았어요. 문자로. 거기서도 딱, 딱, 났어요. 그래서 후기도 썼잖아요. 회사 홈페이지에. 어떻게 아셨냐고.”
지난주 월요일. 유월 팔일. 대표가 대회의실에서 재회 패키지 슬라이드를 띄운 날. 그 슬라이드 후기 세 줄 가운데 하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 받을 때 바가지 치던 소리가 들렸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그날 이 모델을 짜기 시작도 안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사내 시스템에서 대성탕 의뢰 기록을 열었다. 의뢰 번호 2409. 작업 이력에 내 이름보다 먼저 찍힌 줄이 있었다. 유월 팔일 오전 열 시 이 분. 미리듣기 생성. 작업자 칸에 사람 이름이 없었다. 시스템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업팀은 복원실 반대편 창가에 있다. 창가라서 늘 밝다. 복원팀은 무향실 옆이라 늘 어둡다. 나는 밝은 쪽으로 걸어갔다. 창가 쪽 바닥은 카펫이라 발소리가 안 났다. 영업팀장 정다혜 씨가 모니터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서른아홉. 대표가 회의 때마다 이름을 부르는 사람.
“팀장님, 미리듣기는 누가 만듭니까?”
“시스템이요. 접수하면 자동으로 나가요. 고객님들이 기다리는 거 힘들어하시니까.”
“무슨 값으로 만듭니까? 도면은 제가 받기 전이었는데요.”
“대략적인 값으로요. 비슷한 공간 표본으로. 연구원님 모델이 정식이고 미리듣기는 맛보기예요.”
“맛보기에 바가지 소리가 났습니다. 제 정식에도 났고요. 저는 바가지를 안 넣었습니다.”
정다혜 씨의 표정이 잠깐 멈췄다. 모니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다시 나를 봤다.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맛보기랑 정식이 같으면.”
“접수 면담 녹취 보여 주세요. 2409번. 의뢰인이 바가지 이야기를 거기서 했다고 합니다.”
“연구원님.”
정다혜 씨가 웃었다. 영업하는 사람의 웃음.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그대로인 웃음.
“면담 녹취는 개인정보예요. 고객님 가족사가 다 들어 있어요. 복원팀에 넘기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연구원님, 지난주 회의 때 대표님이 칭찬하셨잖아요. 지우지 않았다고. 그 칭찬 받은 분이 왜 자꾸 이상한 걸 찾으세요?”
“이상한 게 나와서요.”
“이상한 게 나오면 고객님이 좋아하세요. 그게 우리 회사예요.”
영업팀 창가 자리들이 조용했다. 다들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를 보는 척하면서 귀는 이쪽에 있었다. 나는 왼쪽 귀로 그 조용함을 들었다. 오른쪽으로는 아무것도 안 들렸다. 가끔은 오른쪽이 부러웠다.
나는 유리방으로 갔다. 팀장님은 헤드폰을 목에 건 채 도면을 보고 있었다. 미리듣기 이야기를 했다. 팀장님은 도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미리듣기 생긴 게 언제인지 알아?”
“모릅니다.”
“올해 이월.”
팀장님은 그 말만 하고 도면을 한 장 넘겼다. 이월. 나는 그 숫자를 손바닥에 적듯 쥐었다. 팀장님이 그걸 왜 말해 줬는지 묻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 대신 헤드폰을 쓸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나는 은하준 씨를 탕비실에서 붙잡았다. 커피 머신 앞. 원두 가는 소리가 둘 사이를 가렸다.
“하준 씨, 미리듣기 시스템 누가 짰어요?”
“저요. 아, 아니, 저도 짰어요. 여럿이.”
“거기 사람 목소리 넣는 기능 있어요?”
머신이 멈췄다. 조용해졌다. 은하준 씨는 컵을 꺼내다가 커피를 손등에 흘렸다. 뜨거웠을 것이다. 소리를 안 냈다.
“연구원님, 저 이거 대답하면 안 돼요. 계약서에 비밀 유지 조항이 있어요. 칠 조. 위반하면 손해 배상. 저 전세 대출 있어요.”
“있다는 거네요.”
“안 있다고 안 했어요. 대답을 안 했어요. 다른 거예요.”
그 사람은 손등을 흐르는 물에 대고 오래 서 있었다. 수돗물 소리가 탕비실 벽에 부딪혀 울렸다. 나는 그 옆에서 기다렸다. 은하준 씨가 수도를 잠그고 말했다. 나를 안 보고.
“연구원님, 접수 면담 녹취는 영업 서버에 있어요. 추억 자료 폴더. 그 폴더는 영업팀이랑 개발 일부만 열려요. 저는 그 폴더 이름도 모르는 거예요. 지금 이 말도 안 한 거고요.”
퇴근 무렵 정다혜 씨가 내 자리에 왔다. 복원팀 쪽으로 오는 걸 이 년 동안 처음 봤다. 손에 흰 봉투가 있었다. 봉투 안에 두꺼운 카드 한 장. 재회 패키지 청음실 사전 체험 초대권. 칠월 이십사일, 첫 회차, 일 번 좌석.
“대표님이 연구원님 드리래요. 첫 자리. 지우지 않은 사람한테 첫 자리.”
“저는 들을 사람이 없는데요.”
“누구나 있어요.”
정다혜 씨는 그 말을 하고 내 책상 모니터 옆에 봉투를 세워 두었다. 그러고는 조금 낮게 말했다.
“연구원님, 미리듣기 얘기 대표님한테는 제가 안 했어요. 앞으로도 안 할게요. 그러니까 연구원님도 추억 자료 얘기는 여기서 끝내요. 서로 좋게.”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나는 봉투를 서랍에 넣었다. 버리지 않았다. 누구나 있다는 말이 서랍 안에서도 들리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은하준 씨 손등에는 고양이 그림 밴드가 붙어 있었다. 세 개. 편의점에 그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개발팀 사람들이 그 밴드를 보고 한마디씩 했다. 은하준 씨는 누가 물을 때마다 커피 머신이 뜨거웠다고 했다. 나를 볼 때만 그 말을 안 했다.
그 주 토요일 나는 송림동에 갔다. 대성탕 자리는 이십 층 아파트였다. 목욕탕이 있던 자리쯤에 서서 눈을 감았다. 버스가 지나갔다. 발바닥으로 먼저 왔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환풍기가 돌았다. 정강이에 낮게 웅웅거렸다. 가까운 교회에서 종이 울렸다. 손끝이 간지러웠다. 이 땅은 지금도 떨고 있었다. 떠는 방식이 삼십 년 전과 달랐다. 나는 그 다름을 계산할 수 있다. 삼십 년 전 타일과 수조와 급수관이 떨던 방식을. 그런데 딱, 딱, 그 두 번은 계산할 수 없었다. 그건 땅이 떤 게 아니라 한 사람 손목이 떤 것이니까. 그 사람 손목을 아는 건 그 사람 딸뿐이었다. 그리고 그 딸의 말을 받아 적은 누군가.
그날 저녁 나는 대성탕 복원본을 두 개로 나눠 저장했다. 하나는 이 분 사십 초를 잘라 낸 것, 계산만 남은 것. 다른 하나는 그대로 둔 것. 파일 이름을 하나는 계산, 하나는 미처리라고 붙였다. 배명희 씨에게 둘 다 보냈다. 설명을 붙였다. 한 파일에는 저희가 계산하지 않은 소리가 들어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아직 모릅니다. 확인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밤 아홉 시에 배명희 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둘 다 들었어요. 계산만 있는 건 좀 쓸쓸하네요. 그래도 둘 다 갖고 있을게요.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꼭 알려 주세요. 우리 아버지 버릇을 누가 알았는지.
나는 그 문자를 읽고 작업 노트를 폈다. 어제 한 줄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대성탕 2분 40초. 금속 바가지 2회, 간격 0.6초. 모델에 없음. 면담에 있음. 미리듣기에 먼저 있었음.
적고 나서 보니 줄 끝이 셋 다 같은 말로 끝났다. 있음, 있음, 있었음. 모델에만 없었다. 모델 밖 어딘가에는 전부 있었다.
손바닥을 폈다. 서랍 속 초대권이 생각났다. 누구나 있어요. 나한테도 있기는 했다. 여섯 살 봄에 죽은 사람. 열이 내린 날 아침, 나는 그 사람 목소리를 오른쪽으로 못 들었고 왼쪽으로만 들었다. 그 뒤로 이십이 년 동안 그 목소리가 어땠는지 떠올려 보려고 한 적이 없다. 떠올리려다 안 떠오르면 그게 두 번째로 잃는 거라서. 오늘 두 번 튄 자리가 아직 간지러웠다. 그 떨림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누가 만든 것이었다. 사람이. 이 건물 안 어딘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