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46자) · 한내선

삼십일 초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파는 회사 · 문가온

나는 오른쪽 귀로 거의 못 듣는다. 여섯 살 봄에 열이 사흘 동안 안 내렸고, 나흘째 아침에 오른쪽 세상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나는 소리를 손바닥으로 듣는 법을 배웠다. 스피커 앞 그물망에 손바닥을 대면 콘이 밀고 당기는 것이 살갗으로 온다. 낮은 소리는 손목까지 번지고 높은 소리는 손끝에서 간지럽다. 이 회사에 들어와 이 년 동안, 나는 모든 복원본을 한 번은 귀로 듣고 한 번은 손으로 들었다. 이것은 그 손바닥이 먼저 알아챈 일에 관한 고백이다.

잔향음향연구소는 성수동 옛 봉제 공장 건물 이 층에 있다. 없어진 공간의 소리를 되살린다. 녹음이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셋이다. 공간의 구조, 재질, 그날의 기상 기록. 벽이 무엇으로 되어 있었고 천장이 얼마나 높았고 그날 공기가 얼마나 습했는지 알면, 그 방에서 났을 소리는 계산된다. 소리는 공기가 떠는 것이고, 공기가 떠는 방식은 방이 정한다. 사람 목소리는 계산하지 못한다. 성대 모양도, 그날의 기분도, 무슨 말을 했는지도 도면에 없으니까.

유월 팔일 월요일. 장마가 시작된 날이었다. 복원실 창에 빗줄기가 비스듬히 그어졌다. 내 첫 단독 의뢰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의뢰인은 윤창배 씨. 예순셋. 경기도 한내선 옛 구간, 사십이 년 전에 없어진 철길의 기차 소리.

“어릴 때 그 소리 들으면서 잤어요. 건널목 바로 옆집이었거든.”

접수 면담 때 윤창배 씨는 그렇게 말했다. 면담은 영업팀이 한다. 녹취를 뜨고, 의뢰인이 가져온 사진과 영상을 받는다. 우리 회사는 그걸 추억 자료라고 부른다. 복원에는 안 쓴다. 계산에는 도면과 기상 기록만 들어간다. 추억 자료는 의뢰인이 뭘 원하는지 알려고 받는다고, 입사 첫 주에 배웠다.

철도청 도면은 천구백칠십이 년판이 남아 있었다. 레일 규격, 침목 간격, 노반의 자갈 크기. 기상 기록은 천구백팔십사 년 구월. 의뢰인이 말한 그 가을. 계산은 나흘 걸렸다. 결과는 사십칠 초짜리 음원이었다.

복원본은 무향실에서 듣는다. 벽과 천장과 바닥이 전부 쐐기 모양 흡음재로 덮인 방. 들어가면 귀가 먹먹해진다. 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오지 않아서, 내 숨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자마자 사라진다.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삼 분을 못 견디고 나간다. 자기 심장 소리가 들린다고. 나는 그 방이 편하다. 오른쪽 귀가 늘 이 방 같으니까. 바닥은 철망이다. 철망 밑 일 미터 아래까지 흡음재가 깔려 있다. 발밑이 허공 같다. 그 철망 위에 의자 하나와 스피커 두 대가 있다.

나는 먼저 귀로 들었다. 왼쪽 귀로. 먼 데서 기차가 왔다. 레일 이음매를 넘는 소리가 일 초에 두 번 조금 안 되게 났다. 시속 육십 킬로미터 남짓. 기록과 맞았다. 건널목 경보기가 울렸다. 땡, 땡, 땡. 모델에 넣은 것이다. 기차가 가까워지고 지나가고 멀어졌다.

그다음 손으로 들었다. 스피커 그물망에 오른손을 댔다. 기차가 오자 손바닥 전체가 묵직하게 울렸다. 레일 이음매가 손목뼈를 두드렸다. 경보기 종이 손끝을 톡톡 쳤다. 그러다 삼십일 초 지점에서 손바닥 한가운데가 따끔했다. 짧게, 두 번. 높고 가는 떨림. 경보기 종도 아니고 바퀴도 아닌 것.

나는 손을 떼고 다시 들었다. 귀로. 삼십일 초. 사람 목소리였다. 두 음절. 여자였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모델에 사람은 없다. 넣을 수도 없다.

나는 파형을 열었다. 삼십일 초 지점에 뾰족한 산 두 개가 있었다. 주파수는 사람 음성 대역. 지속 1.3초. 나는 이 산이 어디서 왔는지 찾으려고 모델을 처음부터 다시 돌렸다. 입력값 전부. 레일, 침목, 자갈, 경보기, 바람, 습도. 사람은 없었다. 다시 돌렸다. 같은 자리에 같은 산이 나왔다. 계산은 같은 입력에 같은 출력을 낸다. 그러니까 입력 어딘가에 사람이 있었다. 내가 넣지 않은 곳에.

한 팀장님은 복원실 맞은편 유리방에 있었다. 마흔여섯. 팀장님은 헤드폰을 목에 걸고 산다. 벗는 걸 본 사람이 없다고 신입 때 들었다. 나는 파일을 들고 갔다.

“팀장님, 목소리가 섞였습니다. 삼십일 초.”

팀장님이 헤드폰을 썼다. 들었다. 두 번 들었다. 세 번째는 듣지 않았다. 헤드폰을 벗었다. 처음 봤다. 벗는 것을.

“지워.”

“네?”

“그 구간 잘라서 앞뒤 이어 붙이고 보내. 경보기 소리로 덮으면 티 안 나.”

“어디서 온 건지 모르는데요.”

“모르니까 지우는 거야. 모르는 걸 의뢰인한테 보내면 안 되지.”

“모르는 걸 지우는 것도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계산 안 한 게 들어 있으면, 계산이 틀린 겁니다. 틀린 걸 덮어서 보내면요.”

팀장님이 나를 봤다. 오래. 그 눈이 나를 보는 건지 내 뒤 어딘가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주 씨, 이 년 차지.”

“네.”

“나는 이 회사 십사 년이야. 이런 거 몇 번 봤어. 지우는 게 맞아.”

“몇 번이요?”

팀장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헤드폰을 다시 목에 걸었다. 대화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옆자리 은하준 씨가 편의점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서른하나. 개발팀. 우리 복원 엔진을 손보는 사람이다. 말이 빠르고 겁이 많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마다 한 발 물러선다.

“하준 씨, 우리 엔진에 사람 목소리 들어갈 데가 있어요?”

은하준 씨 손에서 떡볶이 꼬치가 떨어졌다. 국물이 키보드에 튀었다. 그 사람은 휴지를 뽑으면서 나를 안 봤다.

“없죠. 없어요. 그게 들어갈 데가 어디 있어요. 도면에 사람 없잖아요. 왜요?”

“삼십일 초에 났어요.”

“몇 헤르츠요?”

나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목소리가 났다고 했지 주파수를 말한 적은 없는데, 그 사람은 주파수부터 물었다. 은하준 씨는 키보드 사이 국물을 닦느라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닦은 자리를 세 번 더 닦았다.

나는 영업팀에도 갔다. 윤창배 씨 접수 면담 녹취를 보여 달라고 했다. 영업팀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개인정보라서 복원팀에는 안 넘긴다고. 계산에 필요 없는 자료라고. 규정이 그렇다고.

“계산에 필요 없는 소리가 계산에서 나왔는데요.”

“그럼 더 필요 없죠. 연구원님, 복원팀은 도면만 보세요. 사람은 저희가 봐요.”

파일을 지우지 않았다. 대신 파일 이름 끝에 한 단어를 붙였다. 미처리. 지우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보냈다. 윤창배 씨에게.

오후 네 시에 전체 회의가 있었다. 대회의실. 직원 스물둘이 긴 탁자에 둘러앉았다. 마석진 대표가 앞에 섰다. 쉰둘. 머리를 뒤로 넘기고 흰 운동화를 신는다. 이 회사를 십사 년 전에 혼자 차렸다. 회의 때마다 슬라이드 첫 장에 같은 문장을 띄운다. 우리는 사라진 것을 계산합니다.

그날 첫 장은 달랐다.

재회 패키지 — 그 목소리를 다시.

대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대표가 리모컨을 눌렀다. 다음 장. 월 구독, 연 구독. 가격표. 오프라인 청음실. 그리고 고객 후기 세 줄. 후기는 전부 익명이었다. 그중 하나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 받을 때 바가지 치던 소리가 들렸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복원본에 가끔 기적이 일어난다는 거, 다들 알죠.”

대표가 말했다. 목소리가 높고 맑았다. 설교하는 사람 목소리였다.

“의뢰인들이 그걸 증언해요. 들었다고. 그 사람 목소리를. 우리는 그걸 설명하지 않아요. 설명하면 기적이 아니니까. 그냥 들려 드려요. 그걸 이제 제대로 된 상품으로 만들 겁니다. 올해 적자가 십육억이에요. 이게 우리 살길입니다.”

누가 박수를 쳤다. 영업팀이었다. 박수가 번졌다. 나는 치지 않았다. 손바닥이 아직 따끔했다. 삼십일 초의 그 두 번. 기적이라는 말이 그 따끔함과 겹쳐지지 않았다. 기적은 따끔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대표님, 계산에 없는 소리가 복원본에 들어가는 건 오차입니다. 오차를 상품으로 팔면.”

대표가 나를 봤다. 웃었다.

“이름이?”

“서주입니다. 복원팀.”

“서주 씨, 한내선 건 담당이죠. 오늘 보냈다면서요. 삼십일 초 안 지우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표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 몰랐다. 파일을 보낸 지 두 시간이었다.

“잘했어요. 그게 우리가 할 일이에요. 지우지 않는 것.”

대표는 그 말을 하고 팀장님을 봤다. 팀장님은 탁자 끝에서 헤드폰을 목에 건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대표가 다시 리모컨을 눌렀다. 출시일. 칠월 이십사일. 슬라이드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청음실 좌석 열두 석, 첫 달 예약 마감. 아직 팔지도 않은 것이 벌써 다 팔려 있었다.

저녁 일곱 시에 전화가 왔다. 윤창배 씨였다. 목소리가 떨렸다. 떨림이 수화기를 타고 내 왼쪽 귀로 들어왔다. 나는 전화기를 오른손으로 바꿔 쥐었다. 손바닥으로 그 떨림을 느끼고 싶었다.

“연구원님. 그 삼십일 초요.”

“네.”

“우리 어머니 목소리예요.”

나는 창밖을 봤다. 비가 계속 왔다.

“천구백팔십사 년 구월 십이일에 제 동생이 그 건널목에서 기차에 치였어요. 창호. 여섯 살.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저는 그날 들었어요. 창호야. 두 번. 그 소리예요. 연구원님이 그걸 어떻게 넣으셨어요?”

“넣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게 어디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고 기록을 찾아본 적이 없었다. 동생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모르는 것은 계산할 수 없다. 그런데 계산에서 나왔다.

“고맙습니다. 연구원님. 정말로.”

윤창배 씨가 울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울음이 손바닥으로 왔다. 떨림이 길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 앉아 있었다. 오른손을 스피커 그물망에 댔다. 아무것도 틀지 않았다. 그래도 손바닥이 따끔했다.

여덟 시에 팀장님이 퇴근하다가 내 자리 옆에 멈췄다. 우산을 들고. 헤드폰은 목에.

“보냈어?”

“네.”

“뭐래, 그 사람.”

“고맙대요. 어머니 목소리래요. 사고로 죽은 동생을 부르던.”

팀장님은 우산 끝으로 바닥을 한 번 짚었다. 톡. 무향실 밖이라 그 소리가 사무실 벽에 부딪혀 두 번 울렸다.

“그렇지. 다들 고맙대.”

“다들이요?”

팀장님은 대답하지 않고 갔다. 계단 쪽에서 우산 펴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말을 한참 붙들고 있었다. 다들. 몇 명인지 묻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무엇을 준 건지 몰랐다. 그날 밤 작업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한내선 31초. 여성 음성 2회. 모델에 없음. 의뢰인이 안다. 나는 모른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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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가온작가2026.10.09· 1화

    작가 문가온입니다. 사라진 방의 소리는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 목소리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1화의 삼십일 초 안에서 계산에 없던 소리를 들으셨다면, 그게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 달밤에책2026.06.01· 1화

    대사 하나하나가 인물을 만들어 주네요.

    • 문가온작가2026.06.02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두 줄은 저도 오래 고쳤어요.